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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31화 (31/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31화

파티의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공작령 내의 많은 영주가 공작성으로 입성하였다.

공작가를 모시는 가신들과 함께 마를렌에 적을 두고 있는 대상인들, 동방에서 온 무역상들과 유람차 혹은 일 때문에 방문한 동방의 귀족들까지 참석한 파티는 이전과는 그 규모가 완벽히 달라졌다.

많은 사람과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인종들이 한데 어우러지는 이 모습은 마를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이들을 맞이한 것은 벡브란 전대 공작과 함께 있는 주안이었다.

벡브란 전대 공작이 마치 주안을 소개하듯, 주안을 앞세웠고, 주안은 어쩔 수 없이 방문한 이들을 일일이 맞아, 인사를 나누고 안면을 트며 미소를 짓는 등…… 사실 꽤나 고달픈 일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주안을 보며 워랜이 내심 대단하다는 듯했다.

“주안 공자가 참 열심이네.”

“…….”

“그만 좀 먹어, 이 돼지야.”

“아우움, 우음…… 음! 음!”

“뭐가 먹을 땐 개도 안 건든다는 거야?”

접시에 먹을 것을 한가득 가져와 옆에서 먹고 있는 솔의 볼때구를 죽죽 잡아당기며 워랜이 잔소리를 하였다.

사실 이런 연회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고, 그냥 방에서 잠이나 잤으면 했다.

그러나 아버지인 가론 자작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쫓아와 이곳으로 끌고 오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었다.

물론 곁에 있던 솔을 붙잡아 온 것은 가론 자작이 아닌 워랜이었지만.

“끄응……. 이 파티는 대체 언제 끝나는 거람.”

“왜? 또 어디 가서 드러누워 잠이라도 자려고?”

“응?”

뾰족 날이 선 그 목소리에, 연회장 벽에 기대어 하품이나 해대던 워랜과 잔소리를 듣던 솔의 고개가 돌아갔다.

“호오……. 못 본 사이에 완전 여자가 됐네?”

“원래 여자였거든?”

워랜의 말에 소니아가 작게 투덜거리며 다가와 워랜의 곁에 섰다.

꽤나 작은 키에 아담한 체구라 그런지, 워랜과 소니아가 나란히 서자, 완전 오빠와 여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나름대로 예쁘게 꾸민 파티용 옷도, 사실은 아버지인 조쉬 펜 남작에게 붙잡혀 하녀들에게 강제로 입혀진 채 연회장에 던져진 것이라 그런지, 소니아는 볼을 통하게 부풀리고 잔뜩 불만을 드러내고 있었다.

“왜 이렇게 심통이 난 거야? 너도 나처럼 강제로 끌려왔어?”

“뭐, 비슷하려나…….”

“어휴, 이런 게 대체 뭐가 좋다고.”

“그러게…….”

워랜과 소니아와는 달리 솔은 두 사람이 투덜거리거나 말거나 음식을 더 가지러 가버린다.

워랜과 소니아는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솔의 뒷모습을 보다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잠시 뒤, 워랜이 조용히 소니아에게 물었다.

“잘 지내고는 있고?”

“응.”

“황도는 지낼 만해?”

“나쁘진 않아. 볼 것도, 즐길 것도 많거든.”

“하긴 뭐, 너네 집이나 우리 집이나 시골이나 마찬가지니까.”

펜 가문의 펜세니아나 노밀가의 노밀비스크는 화려한 황도나 마를렌에 비해선 매우 초라한 시골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지의 많은 부분을 염전과 말 목장이 차지하고 있어, 딱히 즐길 것은 없었다.

“그래도 집이 좋지. 말도 타고, 배도 탈 수 있고, 수영도 하고 물고기도 잡고…….”

노밀 자작가와는 바로 인근에 위치한 펜 가문의 영지라 서로 왕래가 꽤나 활발했다.

공식적으로는 서로 생일이라거나 파티 같은 행사가 있을 때 오가며 만났지만, 사실 워랜은 가끔 말을 타고 펜세니아에 놀러 오거나 소니아 역시 반대로 노밀비스크에 놀러가던 일이 많았다.

뭐, 그것도 어릴 때의 즐거운 추억의 한 조각이었다.

“일은 안 힘들어? 안젤라 님에 대한 소문은 영 별로잖아.”

“흥~ 이다 뭐. 워랜 네 소문보단 낫거든?”

“오빠한테 워랜이 뭐냐.”

“오빠가 오빠 같아야 오빠지. 오빠다운 짓이나 하고 그래.”

“쳇.”

그렇게 말을 하면 할 말이 없어지긴 한다.

워랜이 혀를 차자 소니아가 쿡쿡거리며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너도 아직 여전히 그래?”

“뭐가?”

“여전히 게으르냐고. 황도까지 소문이 자자하단 말이야.”

“무슨 아줌마들의 수다가 거기까지 갔나…….”

“동부는 완전히 저주받은 장소야……. 왜 안 좋은 후계자에 대한 소문은 다 동부에서 나오는 거람.”

“위상이 올라간 건가…….”

“악명이거든?!”

소니아가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주변의 시선이 갑자기 쏠린다.

그 때문에 볼이 발갛게 물든 소니아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손가락을 꼬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정신 좀 차려. 언제까지 그렇게 지낼 생각이야?”

“딱히 지금도 나쁘지 않잖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지금 그대로 있는 게 나쁘지 않다고?”

“뭐 큰일 날 것도 없잖아.”

담담한 워랜의 그 말에 소니아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부터 워랜은 늘 이랬다.

크게 흥미를 느끼는 것도 없었고, 유유자적 지내어왔다.

가론 자작의 호통도 있었고, 최근엔 백브란 전대 공작에게도 큰 소리를 듣긴 했지만 한 귀로 흘려버려, 게으른 그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그와 반대로 소니아는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마법사로서의 자질에 더해 속성력에 눈을 뜨고 바람의 속성력을 품으며, 성년이 되었을 때 정식으로 마법에 입문했다.

그 후 1년 뒤, 지금처럼 벡브란 전대 공작의 생일 때문에 황도에서 내려온 주레인 공작 일가는 돌아갈 때 마르티네스 공작가 남부 순시를 겸해서 남부 가신들의 영지를 방문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소니아는 안젤라의 눈에 띄어 함께 황도로 올라갔다.

하지만, 워랜은 그게 참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했다.

“그런데 넌 왜 안젤라 님 곁에 머무는 거야? 그때, 왜 넙죽 받아들이고 따라갔던 거야?”

아니, 납득이 되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지금은 주안이 변했다는 사실을 워랜도 잘 알고 있지만, 당시의 안젤라나 주안은 정말 자신이 보아온 최악의 인간 중 하나였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는 게 나을 정도로, 그들이 쓰는 돈은 천문학적이었고, 또 하는 행동은 하나같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공작가 일행이 노밀 자작가에 방문했을 당시, 워랜은 그 꼴을 보기 싫어서 일부러 자리를 비웠을 정도였다.

하지만 소니아는 반대로 행동했기에, 워랜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안젤라 님이 너무 좋으니까.”

“어렸을 때부터 계속 그 소리인데, 대체 왜? 지금은 뭐 그때보단 나아 보이시지만 솔직히 지금도 난 별로거든.”

“쉿! 쉿! 누가 듣겠어, 멍청아.”

“쯧…….”

황급히 소니아가 마법을 이용해 워랜과 자신의 주변에 공기층을 형성해서 소리가 거의 새어 나가지 않게 만들었다.

누가 들은 것은 아닌가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지만, 이런 두 사람을 주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다행이라는 듯 소니아가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입술을 삐죽이며, 곁에 있는 워랜을 찌릿 노려보았다.

“정말, 나이 먹고 그렇게 말을 막 하면 목이 날아갈 수 있다는 걸 좀 알아, 멍청아.”

“우리 집이 워낙 남의 눈치를 안 보는 집안이라서 말이야.”

“으…….”

노밀가문이 그런 경향이 있긴 하지만, 워랜은 그 정도가 더욱 심했다.

소니아는 바로 이런 워랜의 태도가 나중에 큰일로 돌아올 것만 같았기 때문에 걱정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주의를 줘도 그대로인 워랜이다 보니, 이젠 지칠 지경이다.

볼까지 부풀리고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거리는 소니아의 모습에 워랜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소니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그래서, 우리 꼬마 아가씨가 그 안젤라 님에게 반한 이유는 대체 뭔데?”

“반한 거 아니라니까!”

워랜의 키가 큰 이유도 있지만, 이곳 서방 대륙의 여성들 평균보다 작은 소니아의 키 때문인지, 이렇게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오빠와 여동생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을 알기에 소니아가 워랜의 손을 거칠게 쳐 냈다.

“반한 게 아니라면 뭐야. 그때, 그분을 따라갈 이유는 전혀 없었는데.”

적당한 소문 정도라면 이해하고 넘어가겠지만, 전혀 그러지 못했다.

어릴 때의 주안의 모습이나 그런 주안을 품에 껴안고 다니는 안젤라의 모습은 눈살만 찌푸리게 만들었다.

주안이 어렸을 때는 그런 안젤라의 행동을 이해했지만, 그게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아지기는커녕 심해져만 가는 모습에 걱정도 했고, 주변에서 말려도 보았지만 소용도 없었다.

그것을 알기에 이곳 동부의 마르티네스 공작령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이 두 모자를 절대 좋아할 수가 없었다.

평범한 인물이라면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지 않겠지만, 안젤라는, 그리고 주안은 언젠가 자신들을 이끌고 공작가를 짊어져야 할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소니아는 옛날부터 이 두 모자, 정확히는 안젤라에게만큼은 큰 호감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고, 3년 전 안젤라를 따라 황도로 훌쩍 떠나 버린 그 행동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워랜이었다.

“그분을 보면 뭐라고 할까, 참 안쓰러워 보였어.”

“안쓰럽다고? ……지나치게 행복해 보였는데?”

“그거야 주안 도련님이 태어난 후였으니까 그렇지.”

“응? 그럼…….”

“예전에, 난 봤어. 이곳 마를렌에서 사실 그때의 안젤라 님, 주안 도련님을 낳기 전의 안젤라 님이 어땠는지는 워랜 너도 알잖아.”

“그야 뭐……. 그땐, 참 좋으신 분이셨지.”

전 황녀이자 공작부인답지 않은 그 생기발랄한 모습에 공작성 내의 하인들이나 하녀, 더 나아가 기사들이나 병사들마저 그런 안젤라를 매우 좋아했다.

아랫사람이라고 막 대하는 사람도 아니었고, 누군가 아프거나 하면 직접 신관을 보내어 치료해 주는 등 매우 살갑고, 좋아할 수밖에 없던 그런 공작부인이었다.

단지…….

“그 일 때문에, 안젤라 님이 많이 변하실 수밖에 없었으니까.”

“후우…….”

안젤라가 변한 이유에 대해선 모두가 알고 있고, 그것을 공감하며 당시에는 모두가 그런 안젤라를 안쓰럽게 생각하고 불쌍하게 여겼다.

그리고 이런 안젤라를 위해서 주레인 공작도 마를렌을 떠나 황도로 올라간 것이었다.

그곳에서 안정을 찾고, 새로운 아이를 임신한 뒤 주안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 깐깐하고 파티를 싫어하던 벡브란 전대 공작이 나서서 공작령 내에서 거대한 축제를 벌였을 정도였다.

그만큼 주안은 모두의 기대와 축복 속에 태어난 아이였고, 공작가로 돌아왔을 땐 마를렌의 모든 주민이 그런 공작가 일행을 열렬히 맞이했을 정도였다.

“나, 있잖아. 어렸을 때 안젤라 님이랑 같이 잤던 일 있어.”

“응? 그건 무슨 소리야?”

“아빠가 공작성에 소금을 납품하러 직접 가실 때, 같이 따라왔었어. 그때…… 안젤라 님 처음 봤어.”

소니아가 그때를 생각하는 듯,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잔뜩 기대를 하고 처음으로 방문한 마를렌은 굉장히 화려했고, 다양했다.

펜세니아와 마찬가지로 바다도 바로 곁에 있어서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장소였다.

이런 화려한 도시의 여주인인 안젤라를 공작성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의 그 감정을 지금도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 듯 소니아의 눈이 반짝였다.

“안젤라 님을 처음 봤을 때, 세상에 그렇게 예쁘신 분은 처음이라고 생각했다니까.”

“뭐, 예쁘신 건 여전하시지만. 단지…….”

……저게 다 공작령의 세금을 엄청나게 쏟아부어 유지한 미모라는 말까지 한다면, 열광적인 안젤라 팬인 소니아가 꼬집을 것만 같아 말을 하진 않았다.

“그때, 날 본 안젤라 님이 날 꼬옥 껴안아주셨다?”

“좋았겠네…….”

“응, 진짜 좋았어. 정말, 그렇게 예쁜 분이 날 안아주시는데…….”

“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닌데…….”

단지 안젤라의 특정 부위가 심하게 크다 보니, 모든 남자의 로망 같았다고 할까.

불경한 생각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은 본능이다.

뭐, 그렇다고 그걸 말하고 다닐 만큼 워랜이 정말 멍청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게다가 안젤라 님이 먼저 우리보고 자고 가라고 했다니까. 그것도 모자라, 나랑 같이 자고 싶다고…….”

“호오…….”

워랜은 안젤라에게 그런 면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의외의 일로 다가오긴 했지만, 이내 그것은 안젤라가 주안을 낳기 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납득했다.

그 시절의 안젤라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그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던 여성이었으니까.

“모든 게 다 신기했었어. 너, 여기 공작성에 아기방이 있었다는 거 알아?”

“진짜?”

“응, 엄청 예쁘게 꾸며진 아기방이었어. 아니, 아기방이라기보단 안젤라 님이랑 주레인 공작님의 방을 아기방처럼 꾸몄었어. 아기 침대도 있었고, 인형도 잔뜩 있었고…….”

그때의 그 일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인지 소니아의 눈이 반짝였다.

“공작님께는 미안했지만, 그때 안젤라 님이랑 단둘이서만 잤거든. 왜 주안 도련님이 그렇게 안젤라 님이랑 같이 자는지,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공감이 가더라.”

“그 정도 품위를 지니신 분이라면, 그 어떤 사람이라도 똑같이 생각할 거야.”

“헤헷, 그렇지?”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품위였지만, 어쨌든 크게 상관없다는 듯 소니아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안젤라 님이 나한테 동화책도 읽어주고, 같이 인형도 가지고 놀고, 함께 목욕도 하고 같이 잠도 자고…… 참 좋았는데…….”

행복함에 미소를 짓던 소니아가 말을 잠시 흐리더니 이내 그 표정이 우울해졌다.

그 모습에 워랜이 흠칫 놀랐지만, 이내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보는 소니아의 모습에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나, 그때 봤어. 안젤라 님이…… 아기 옷을 껴안고 울고 있는 거…….”

“…….”

“그 아기 옷도, 아기 침대도, 나한테 읽어주던 동화책도, 나랑 같이 가지고 놀던 인형도, 목욕도, 침대에서 같이 자는 것도……. 사실 전부 안젤라 님이 유산한 그 아이랑 함께하고 싶어 하던 거였어.”

그때 보았던 흐느껴 울던 안젤라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 듯, 씁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소니아는 금세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워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조용히 다시 소니아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쓰다듬어 주었다.

다행이 이번에는 소니아가 그런 워랜의 손을 쳐 내지 않았다.

“처음에는 안젤라 님이 왜 그랬는지 몰랐는데, 집에 와서 안젤라 님에 대해서 듣고는 너무 아파서, 가슴이 너무 아파서…… 나도 계속 울었어.”

소니아 본인에겐 동생이 없었지만, 동생이 그렇게 되었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하니, 어린 나이에 엉엉 울면서 엄마에게 매달렸던 그때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랬기에 결심할 수가 있었다.

“그때 생각했어. 어렸지만, 결심했던 거야. 이분을 외롭게 만들어드리고 싶지 않다, 이분을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고 싶다. 이분의 곁에 계속 있어 드리고 싶다, 이렇게 말이야.”

소니아 자신에게 보여주던 그 미소를 다시 지어주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소니아는 자신에게 안젤라는 도울 힘이 생겼다는 것에 기뻐했고, 노력했다.

안젤라의 눈에 띄어 함께 황도로 갈 수 있었을 때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행동했었다.

“세상 모두가 그분을 버리고 등을 돌려도, 나는 절대 그러지 않겠다고…… 안젤라 님이 내게 손을 다시 내미셨을 때 결심했으니까.”

안젤라에게 주안이 전부이듯, 소니아에겐 안젤라의 행복이 그 무엇보다 우선이 되었으니까.

“너도 언젠가 그런 사람을 만나면, 나처럼 될 거야.”

“그런 사람이라…….”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그런 사람이 영 떠오르진 않았다.

꼬장꼬장한 아버지는 자신이 없어도 혼자 잘 사시는 분이고, 어머니도 딱히 보호를 받으셔야 할 연약한 분도 아니셨다.

솔을 생각해 봤지만, 자신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해서 어디 가서 맞고 다닐 녀석은 절대 아니었다.

“흠…….”

잠시 소니아를 떠올리긴 했지만, 금세 지워 버리며 픽 하고 웃어 주었다.

“나도 언젠가 그런 사람이 생기긴 하려나.”

“생겨. 반드시 생길 거야. 안젤라 님에게 주안 도련님이 생겼듯, 나한테 안젤라 님이 생겼듯, 반드시 그런 사람은 생겨.”

자신만만하게 답하고는 허공에 손 하며 마법을 지워 버린 소니아가 이내 워랜의 곁에서 벗어나 걸어간다.

그리고 소니아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워랜을 돌아보며 생긋 웃어 주었다.

“그 사람이 생겼을 때, 너도 조금 변하겠지?”

그 말을 남기고, 소니아는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는 부모님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워랜은 그런 소니아의 뒷모습을 담담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가까운 집안과 그만큼 가까운 영지라 오가며 자주 보았던 말괄량이 꼬맹이가 어느새 자신에게 인생을 논하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말하고 조언까지 해줄 정도로 컸다는 사실에, 워랜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만 전혀 성장하지 않긴 했구나.’

스스로의 힘으로 곁에 서고 싶은 이를 위하여 노력했고, 그것을 쟁취한 소니아가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와 반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유유자적 일단 살아 있으니 살아간다는 듯 그렇게 지내온 자신과 너무나 반대되어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나한테도 그런 사람이 정말 생길까.’

그렇게 된다면, 소니아처럼 반짝이며 빛을 낼 수 있을까.

조금 닭살이 돋긴 했지만, 그렇게 살아도 썩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저 말괄량이 꼬맹이는 아냐.’

그렇게 생각을 하며 워랜도 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니아의 말에 아주 조금은 바뀌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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