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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30화 (30/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30화

“그런데 워랜 경의 검은 좀 특이하네요? 이곳의 검과는 달라 보여요.”

“아, 이거?”

주안의 물음에 워랜이 자신의 검을 주안에게 건네주었다.

검은 곧 자신의 분신이라는 말을 이곳의 서방 대륙이나 동방 대륙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런 검을 쓴다는 기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검을 건네주니 황당할 뿐이었다.

주안은 일단 워랜이 건네준 검을 받아 들었다.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볍기에 내심 놀랐다.

“굉장히 가볍네요. 게다가 저희 서방 대륙의 검처럼 보이지 않아요.”

“이쪽 검은 나한테 안 맞아.”

“네? 안 맞다니요?”

워랜이 솔의 손에서 과자를 하나 뺏어 입에 털어 넣으며 말했다.

“무거우니까.”

“……합리적이네요.”

“검사도 마법사만큼 합리적이어야 하거든.”

어디선가 들어본 말이라는 것이 잠시 주안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게다가 난 땀내 나도록 검을 휘두르고 움직이는 거, 딱 질색이야. 그래야만 강해진다고 믿는 건 좋지만, 사람에겐 그 사람의 스타일이라는 게 있으니까.”

“하긴…….”

조금 황당한 말이었지만,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실제로 그렇게 해서 강해졌고, 절대자가 되기 직전의 토미와 제대로 맞상대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분명 서방 대륙의 검은 보편적이고 노력만 하면 일정 수준까지 오를 수 있는 것은 맞다.

육체를 제대로 강화시킬 수 있다는 랭크 3의 단계까진 정말 어디 몸에 문제가 있지 않은 이상은 누구나 가능했다.

하지만 거기서 그 이상을 노리는 사람 중에,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올라서지 못하는 사람들이 간간이 있었다.

그들은 체격도 작고, 근육도 적었다. 마치, 지금의 워랜, 토미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워랜은 키가 매우 크다는 것과 필요 이상으로 근육을 키우지 않았다는 것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었다.

“모두가 다 똑같은 곳까지는 올라갈 수 있지만, 더 높은 곳을 보려면 그 사람에 맞는 방식의 훈련이 필요한 법이야.”

“……그거 워랜 경이 생각한 거 아니죠?”

“…….”

뜨끔 했던 것인지 이번에는 솔이 마시고 있던 차를 빼앗아 마시는 워랜이었다.

애초에 워랜은 검을 들고 제대로 훈련도 하지 않는 인물이라고 소문나 있으며, 그럼에도 이미 랭크 6이라는 초인에 가까운 반열에 오른 정말 비정상적인 인물이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간단했다.

무리해서 근육을 키우지 않아도, 압축된 그의 근육은 매우 탄력적이어서 언제든지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었고, 유연한 몸과 동물에 가까운 직감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몸의 반응을 이끌어내고 그것을 실행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런 것은 워랜이 스스로 알아낸 것이 아니라, 모두 타인에게 들은 것들이었다.

“흠흠. 거, 마리우스 영감님 진짜 입도 싸네. 별걸 다 소문내고 다니신단 말이야.”

“하하……. 역시.”

“뭐, 그 영감님이 좀 싫긴 하지만 그 말은 흘려들을 만한 것은 없긴 해. 나도 뭐, 아버지가 억지로 시킨 기사 훈련을 어렸을 때부터 받긴 했지만 정말 싫었거든. 힘만 들고, 그게 무슨 개고생인지…….”

토미가 주안을 통해 검을 잡고 그 천재성을 드러냈다면, 애초에 워랜은 날 때부터 그런 소리를 듣고 자랐던 인물이었다.

워랜은 성인이 되기도 전에, 단순히 기본적인 훈련만 받으면서 어린 나이에 랭크 3에 들어서 육체 강화를 진행시켰다.

그 결과 제2의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라고 불렸을 정도로 동부에서는 매우 유명했고, 가문 내에서는 매우 기대를 받던 인물이었다.

물론 그 게으름 때문에 19살까진 그냥저냥 빈둥거리며 훈련도 등한시하는 바람에 가론 노밀 자작에게 크게 꾸중도 들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니, 그렇게 빈둥거렸지만, 워랜이 나이를 먹고, 체격이 커지자, 그의 육체는 그의 의도와는 달리, 그에게 가장 안성맞춤인 몸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마치 신에게 축복을 받은 육체인 것처럼 그의 몸은 어디 모자란 부분이 전혀 없는 그런 몸이었다.

하지만 그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 것은 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에게 훈련이라는 이름의 괴롭힘을 받은 이후였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억지로 그의 잠재력을 이끌어냈고, 또 부족한 부분을 지적했으며, 그의 장점을 새겨듣도록 만들었다.

물론 한 귀로 흘려들을 수도 있었지만, 이미 몸은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에게 괴롭히던 그것을 그대로 기억했고, 제멋대로 반응했다는 게 문제였다.

“뭐, 그렇다는 거야. 내 몸에는 서방 스타일이 잘 맞지도 않고, 정형화된 것은 오히려 재능을 깎아 먹는다나? 그냥 내 생각대로 움직이고 검을 휘두르라고 하셨어. 가장 기초적인 부분은 억지로 주입시키셨지만, 그래도 기초는 기초일 뿐이니까.”

“그 기초적인 부분이라는 게 저희 토미에게 가르쳐 준, 그런 것들인가요?”

“정답. 나야 그딴 거 별로 필요 없어서 한 귀로 흘려듣긴 했지만, 일단 생각나는 것만 좀 알려줬어.”

워랜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안도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왜 갑자기 동방으로 건너갔고, 왜 그곳에서 희망을 찾게 된 것인지 말이다.

“마리우스 후작님이 그래서 동방으로 건너가신 것인가…….”

“그 영감님도 오랜 시간을 지내면서 깨달으셨다고 하셨으니까. 억지로 서방 스타일의 검을 배웠지만, 그게 자신의 몸과는 잘 맞지 않았다는 걸 아셨어.”

“그럼에도 그런 대단한 실력을 갖추셨다니…….”

“한마디로 괴물이시지.”

워랜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주안도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 역시 서방의 검이 몸에 맞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 서방의 검이 오를 수 있는 거의 끝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섰고, 모자란 한 걸음을 깨닫고는 지금까지 이룬 모든 것을 버렸다.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을 평생에 걸쳐 이룩한 것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그렇게 하였고, 자신과 비슷한 워랜을 보고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게 억지로 교정을 시켜준 것이다.

의욕이 없는 워랜에게 실망하고 떠나 버리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떠남 역시 자신의 발전을 위한 것이기에 그 누구도 비난할 수가 없다.

‘……그분은 과연 그 끝에 도달하셨을까.’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의 소식은 사실 이곳을 떠난 것에서 끊어졌다.

그리고 이후 그의 소식은 그저 소문으로만 간간이 들렸다.

개중에는 동방 대륙의 제국 슌을 지키던 수호룡 파사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미쳐 버린 뒤 자신이 지키던 제국의 수도를 불바다로 만든 후 스스로 자살한 사건에 휘말려 사망했다는, 이런 뜬소문이 있었다.

물론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동방으로 건너간 뒤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이는 많았다.

장장 50년이 지나도록 그에 대한 정확한 소식은 없었으니까.

“우리 토미에게 그런 것을 느끼셨다면, 토미에겐 서방의 검은 정말 어울리지 않는 것이군요.”

“뭐, 그 영감님 같은 녀석이라 서방의 검을 계속 배운다 해도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을 거야.”

“흐음…….”

그게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확실히 토미는 미래에 검성으로서 활약한 그 검은 동방의 검이었고, 나름 체계적으로 배운 것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토미는 워랜과 달리 그렇게 잘 먹였음에도 체격이 커지지도 않고, 근육도 별로 붙지 않았다.

주안은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워랜의 말대로 토미에게 서방의 검이 아닌 동방의 검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고민이 되었다.

“하아, 그런데 그 녀석……. 정말 가르치는 재미가 있었다니까. 이거 완전 그 영감님이 된 기분이야. 왜 그 망할, 아니, 영감님이 미친 듯이 날 괴롭혔는지 알 것만 같아.”

“……악취미세요.”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키득거리며 웃는 워랜의 모습에 주안이 뚱해진 입술을 삐죽였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토미를 괴롭히는 것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동방의 검사는 영입하기도 어렵고, 정말 뛰어난 실력자는 혼자 수련하는 것에만 시간을 쓰는 존재들인데…….”

어중이떠중이야 영입할 수 있겠지만, 진정한 실력자들은 수행을 명목으로 동방 대륙의 깊은 산속을 떠나오지도 않았다.

‘대체 토미는 어떻게 그런 스승을 만난 거지.’

거기까진 알려진 게 전혀 없었기에 토미의 스승을 찾을 수도 없었다.

아쉬워하는 워랜과 고민에 빠진 주안.

다과로 내어온 과자를 우물거리던 솔이 이 둘을 보고는 갸웃하며 말했다.

“그 토미라는 애, 그렇게 재능이 좋아요?”

“솔, 너랑 비교하면, 너를 한 천 명 정도 모아서 그 재능과 네 몸무게를 합하면 그 꼬마의 재능의 무게와 비슷해질걸?”

“……엄청나네요.”

솔보다 주안이 더 놀랐지만, 솔은 담담하게 과자를 우물거리며 말했다.

“도련님은 괴롭히고 싶고, 공자님은 가르치고 싶다면…… 간단하잖아요.”

“뭐가?”

“네?”

이번에는 워랜과 주안이 갸웃했다.

워랜은 말 그대로 이상하게 토미를 상대로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한 것처럼 검을 휘두르고 싶었고, 주안은 그런 토미에게 서방의 검이 아닌 동방의 검을 가르쳐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고민이 간단하다?

주안은 토미를 괴롭히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을 것이고, 동방의 검사를 영입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 될 것인데…….

이런 두 사람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솔이 여유롭게 차를 홀짝인 뒤 말했다.

“그냥 도련님이 걔 훈련을 도우면 되지 않아요?”

“내가?”

“도련님은 그 훈련하는 거, 아신다면서요?”

“하지만 난 그냥 괴롭히고 싶은데…….”

“진짜 악취미시네요. 엄마한테 다 일러 버릴까 보네요.”

주안이 웬만해선 엄마를 언급하고 싶지 않았지만, 워랜은 정말 중증이었다.

“저는 뭐, 도련님이 그렇게 즐거워하는 것도 처음 봤고, 그렇게 행동하는 것도 낯설긴 한데, 그럴 거면 적당히 괴롭히는 것으로 타협 보시면 되지 않아요?”

“적당히도 안 되거든요?”

“하지만…… 안 그러면 그 아이 재능이 아깝잖아요. 저야 뭐, 그 애의 재능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지만.”

“으음…….”

재능이 아깝다는 말에는 주안은 극심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보다 토미의 재능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직접 겪어본 이는 없었다.

워랜 역시 토미의 재능에 대해 대충 파악은 한 듯했지만, 그 재능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는 모를 것이다.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과 제국을 집어삼킨 재능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니 사실 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사실 잠시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그것을 깨닫고는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거 다 쓸데없는 고민이네요. 저희 내일 황도로 돌아가거든요.”

“아…….”

솔도 그제야 깨달은 듯 조금 아쉬워했다.

“……도련님을 조금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너나 좀 움직여, 너나. 이 뱃살 어쩔 거야?”

“아, 아파요. 잡아당기지 마세요. 아우우?!”

“이 턱살 하며, 여기 이 팔은 내 허벅지보다 굵잖아?!”

솔의 뱃살을 쭉쭉 잡아당기다 기어이 턱살과 팔의 살을 쭉쭉 잡아당기며 괴롭히는 워랜.

이런 두 사람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회귀 전 자신을 무시무시한 눈으로 노려보며 분노하던 솔은 너무나 순진했고, 경멸 어린 시선을 보내던 워랜은 매우 유쾌했다.

‘정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인데…….’

그때의 자신은 대체 어떻게 했기에 이런 사람들이 등을 돌리게 만들고, 분노와 경멸을 받았던 것일까.

‘나란 녀석도 참…….’

주안은 쓴웃음을 짓고는, 솔을 괴롭히는 워랜을 보며 조용히 차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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