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9화
워랜의 난동은 순식간에 공작성에 퍼져 나갔고, 주안의 방으로 자리를 잠시 옮긴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노크도 없이 무례하게 방문을 벌컥 열고 등장한 사람이 있었다.
“너 이놈의 자식!”
“크억?! 아, 아버지……?!”
“오자마자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게냐!”
가론 자작이 주안의 방문을 활짝 열고 들어와 주변에 누가 있는지조차 모를 만큼 화가 잔뜩 난 모습으로 워랜에게 달려가 그 멱살을 붙잡으며 소리쳤다.
“자, 자, 자작님…….”
“솔! 네가 있으면서 이 멍청한 놈을 말리지 않고 뭐 했던 거냐!”
“대체 제가 어떻게 말려요……. 저도 하늘을 날고 구르고 난리였단 말이에요.”
“네가 어떻게 하늘을 날아?!”
……진짜 날긴 날았지만, 그것을 전혀 믿지 못하는 가론 자작은 솔의 통통한 몸을 보고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스스로 난 것은 아니고 타인에 의해서 강제로 날아갔다는 말을 붙였어도, 가론 자작은 믿지 않았을 것으로 보일 만큼 단단히 화가 난 모습이었다.
이 모습에 주안도 나서기 조금 힘들었고, 그래서인지 가론 자작을 말릴 수 있는 유일한 인물, 안젤라가 조용히 가론 자작에게 말했다.
“가론 자작, 조금 시끄럽구나. 이곳이 어디인지 잊은 게냐?”
마르티네스 공작가라면 벡브란 전대 공작을 제외한 주레인 공작이나 주안도 가론 자작에게 하대할 수 없었지만, 안젤라는 그게 아니었다.
그녀는 황실의 일원이었고, 황녀였으며 마르티네스 공작가로 시집을 왔다 해도 여전히 가문의 법도를 지키기보단 황실에 있었던 그때의 그 고고한 모습을 계속 유지했다.
물론, 주안 앞에서는 전혀 아니지만.
“아, 안젤라 님……. 죄, 죄송합니다.”
가론 자작이 워랜의 멱살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황급히 안젤라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였다.
가론 자작이 크게 무례를 저지른 것은 아니지만, 주안의 방에 제멋대로 들어온 것에 조금 심통이 난 듯, 안젤라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그것을 자신의 무례에 화가 잔뜩 났다고 생각한 가론 자작이 식은땀을 흘리며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괜찮아요, 가론 자작님. 워랜 경이 저희 토미를 가르친다는 게, 조금 소란스러워졌을 뿐이었어요.”
“네? 이 녀석이 누굴 가르쳐요?”
“토미 말이에요, 토미.”
“그 아이를…… 이 녀석이 말입니까?”
가론 자작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자신의 멍청한 게으름뱅이 아들을 바라보았다.
아버지에게 멱살을 붙잡힌 탓에 콜록거리며 기침을 하던 워랜이 입술을 삐죽이며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그 행동에 가론 자작이 이를 갈았지만, 주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토미가 정말 좋은 걸 배웠나 봐요. 또 연무장으로 달려갔다니까요.”
토미는 함께 오지 않고 주안의 허락을 받은 후 그대로 연무장으로 달려가 버렸다.
워랜에게서 배운 것을 잊어버리기 싫다는 듯 허겁지겁 달려가는 토미의 그 모습은 흐뭇하게 만들었고, 그렇게 만들어준 워랜에 대해 주안은 감사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가론 자작은 영 못 믿겠다는 듯, 여전히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아들인 워랜을 바라보았다.
이런 가론 자작과 워랜의 모습에 미소를 짓던 주안이 곁에 앉아 있는 엄마인 안젤라에게 말했다.
“그보다 엄마. 오늘 마지막 파티는 제대로 참석해야 하지 않아요? 준비 안 해도 괜찮으세요?”
“화장하기 싫은데……. 귀찮아.”
“에이, 그래도 제대로 꾸미셔야죠. 그래야 저랑 같이 손잡고 들어갈 때 엄마도, 저도 예쁘고 멋지게 보일 거잖아요.”
“응! 그러면 화장 열심히 할게, 우리 아들~ 엄마랑 손잡고 꼭 가야 하는 거야. 또 할아버지 때문에 혼자 가면 엄마 진짜 화낼 거야.”
“아, 아하하……. 알았어요.”
게다가 약속이라도 하자는 듯, 새끼손가락을 내밀자 주안이 할 수 없이 엄마의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고 약속해 주었다.
그제야 엄마인 안젤라도 표정이 밝아지며 자리에서 일어났고 뒤이어 소니아 역시 그런 안젤라를 따라나섰다.
“소니아 누나, 잘 부탁드려요.”
“걱정 마세요. 제가 이번에 동방에서 쓴다는 화장품을 잔뜩 구해왔거든요.”
찡긋 윙크를 해주며 그래도 아쉽다는 듯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안젤라를 떠밀어 방을 나서는 소니아.
그러면서도 자신에게는 제대로 눈길조차 주지 않고 하품이나 해대는 워랜을 찌릿 노려봐 준 후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며 방을 나가 버린다.
‘……대체 어떻게 사귀게 된 거지.’
아무리 봐도 워랜 쪽은 소니아에게 관심도 없었고, 소니아도 그런 워랜을 참 싫어하는 듯했다.
대체 이 두 사람은 어떻게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면 그냥 소니아 누나의 짝사랑이려나.’
뭐가 되었든 지금의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참 복잡하기만 했다.
안젤라가 방을 나가자, 가론 자작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주안에게 말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공자님. 제 멍청한 아들이 소란만 피우고…….”
“아니에요. 정말 괜찮다니까요. 오히려 저나 토미가 감사해야 할 지경인데…….”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공작가에서, 그것도 공작성 안에서 소란이라니요. 제가 나중에 따끔하게 혼을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으음……. 그래도 절 봐서라도 한 번만 용서해 주시면 안 될까요?”
“그건…….”
주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부탁하자, 가론 자작이 조금 고민하는 듯했다.
그리고 정말 자신이 알던 주안 공자가 많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느낄 수가 있었다.
주안에게 부탁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었고, 늘 엄마를 통해서 명령이 하달되었기에 이들 모자를 좋아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름 자존심 강한 귀족들이고, 기사들이었고, 부당한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는 잘 훈련받은 병사들이나 하녀와 하인, 더군다나 공작가에 큰 도움을 주는 상인들마저 이런 명령의 대상이 되어왔다.
가지고 싶은 것은 가졌고, 괜한 심통에 피해를 보았으며, 이 두 모자의 행동에 많은 이들이 곤란한 일들을 다양하게 겪었다.
하지만 올해 찾아온 주안은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주레인 공작의 말처럼 사춘기라도 겪은 듯 성숙해졌고 배려를 할 줄 알았으며, 마냥 엄마에게 휘둘리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가론 자작은 이런 주안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니, 계속 이런 부탁을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아주 조금은 있었다.
“예,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후우……. 일단 이 바보 녀석을 잠시만 부탁드려도 괜찮겠습니까? 벡브란 님과 함께 있다 달려오는 바람에…….”
토미의 마상술을 가르치는 김에 벡브란도 그런 토미를 한 번쯤 제대로 보고 싶어 가론 자작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보 아들의 난동에 그런 벡브란 전대 공작을 놔두고 달려온 것이 굉장히 마음에 걸리는 가론 자작이었다.
가론 자작의 말에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하하, 할아버지 외롭겠어요. 얼른 가보세요.”
“예, 공자님. 그럼 저녁 파티에 뵙겠습니다.”
가론 자작이 고개를 숙여 주안에게 인사까지 하자 오히려 그런 행동에 당황한 것은 주안 본인이었다.
딱히 가론 자작 정도나 되는 노밀가문의 어른이 주레인 공작도 아닌 아직 어린 자신에게 고개를 숙일 필요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런 행동에 가론 자작은 아무렇지도 않게 행했고,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방을 나섰다.
그런 아버지인 가론 자작을 눈을 휘둥그레 뜨고 보던 워랜이 한마디 했다.
“우리 아버지 맞나.”
“그러게요. 가주님 맞으신가…….”
워랜 뿐만이 아니라 솔마저 갸웃하게 만드는 가론 자작의 행동이었다.
이 두 사람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왜 솔이 워랜의 죽음에 그토록 분노하고, 워랜을 지켜주지 못하고 도움도 주지 않는 공작가에 화를 냈던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이 두 사람은 마치 친형제처럼 보였다.
“그런데 주안 공자, 정말 소문대로 뭔가 좀 많이 바뀌었네?”
“그러는 워랜 경은 소문 그대로시네요.”
“흐흥~ 나야 뭐, 늘 그렇지.”
“……제발 도련님도 좀 바뀌세요.”
“시끄러, 솔. 차나 좀 따라.”
“저, 전 하인도 아닌데…….”
하지만 워랜의 말에 솔이 투덜거리면서도 몸은 정직하게 워랜의 말에 따라, 주안과 워랜의 찻잔에 직접 차를 따라준다.
뒤에서 하녀가 매우 곤란해했지만, 신경 쓰는 이는 주안 정도밖에 없어 보인다.
그런 하녀에게 괜찮다는 손짓을 해주자, 하녀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솔이 따라준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워랜에게 말했다.
“그런데 저희 토미를 가르쳐 주신 건 감사하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하지 않으셔도 괜찮지 않았나요? 제게 말해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잘못하면 공작가의 후계자가 아끼는 하인을 습격했다는 이유로 큰 곤욕을 치를 수 있겠지만, 그런 건 전혀 걱정되지 않는다는 듯 워랜이 심드렁하게 답했다.
“뭐라고 할까, 그 영감님의 짜증 나는 느낌을 좀 받아서 눈이 좀 돌아가 버렸거든.”
“영감님이라고 하면, 마리우스 후작님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뭐, 그렇지. 그 영감님이 여기 있을 리 없다는 건 아는데…… 그 꼬맹이에게서 영감님 같은 짜증 나는 느낌이 나서 말이야.”
“아하하……. 마리우스 후작님께 꽤 심하게 시달렸다는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네요.”
“응? 그런 소문이 있었어? 그 영감님 입도 싸지.”
사실 그딴 소문이 돌고 있을 리가 없었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워랜을 가르치고, 마를렌의 공작성으로 바로 와서 벡브란 전대 공작과 간단히 담화를 나눈 후 동방 대륙으로 떠나 버렸다.
워랜 역시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에게 시달린 것 때문에 부끄럽기도 하여서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었다.
단지 주안은 먼 미래에 워랜과 검을 나눈 토미로 인해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의 검을 이어받은 이가 워랜이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주안 공자.”
“네?”
“……어째 내가 반말을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네?”
“그야 당연하잖아요.”
주안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노밀가문은 저희 마르티네스 가문과 가장 가까운 가문이잖아요. 그리고 노밀가문의 어른에겐 저희 마르티네스 가문의 어른처럼 대하라는 것이 저희 초대 공작님이셨던 힉스 마르티네스 선조님의 말씀이셨고요.”
할아버지인 벡브란 마르티네스 전대 공작도 그랬고, 아빠인 주레인 마르티네스 공작 역시 현재의 가론 자작에겐 말을 높였다.
그렇기에 주안 역시 두 분과 마찬가지로 노밀 자작가의 어른, 워랜 노밀에게 말을 높이고 그가 반말하는 것을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워랜이나 솔은 오히려 이런 주안의 당연한 태도에 잠시 갸웃했지만, 이내 워랜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주안에게 말했다.
“그럼 나한테 형이라고 칭해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어?”
“도, 도, 도, 도련님!”
“시끄러, 솔. 자, 형이라고 한번 해봐. 주안.”
워랜의 갑작스러운 그 행동에 솔의 얼굴이 더없이 창백해졌다.
아무리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노밀 자작가의 관계가 그렇다 해도, 형 동생까지 할 정도는 아니다.
어른에 대한 공경을 해주며, 말을 높이고 그들을 위해주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진짜 나이가 있다 해서 형으로 모시거나 그러진 않았다.
그래도 공작가와 자작가.
주인과 가신의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이런 워랜의 행동에 솔뿐만이 아니라, 주안의 보필하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하녀까지 워랜을 노려보았다.
이 따끔거리는 시선에도 워랜은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주안의 대답을 기다렸다.
“형이라…….”
“주, 주안 공자님. 도련님이 농담으로 그러신 거니까 너무 언짢아하지 말아 주…… 아야얏?!”
“농담 아니다, 솔.”
솔의 귀를 잡아당기며 주안을 주시하는 워랜.
그의 눈은 싱글거리며 웃고 농담을 하고, 만사 게으른 그런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차가운 연녹색의 그 눈은 주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진지했으며 주안의 답을 바라고 있었다.
잠시 그런 워랜을 바라보던 주안이 찻잔을 매만지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워랜에게 말했다.
“물론 노밀 자작가의, 제게는 어른이신 워랜 경에게 형이라고 불러 드릴 수 있어요.”
“주, 주안 공자님!”
솔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지만, 주안은 그런 솔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하지만 아무것도 이루시지 못한 워랜 경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인 제게 형이라 불릴 만한 분은 아니시죠.”
“뭐?”
“가론 노밀 자작님은 할아버지를 보필해 훌륭하게 전쟁을 이끌었고, 마를렌을 포함한 마르티네스 공작령의 전반적인 행정, 내정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이시죠. 그렇기에 제 아버지인 주레인 마르티네스 공작님에게 충분히 어른으로 대접을 받으실 수 있으시고, 저 역시 그분을 진심으로 가문의 어른으로 대접해 드릴 수 있어요.”
가론 자작이 없으면 공작성, 마를렌, 공작령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은, 가신들도 알고, 주레인 공작이나 주안, 벡브란 전대 공작과 안젤라까지 아는,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그렇기에 가론 노밀 자작은 현 공작인 주레인 마르티네스 공작과 주안에게도 충분히 어른으로서 공경을 받아도 되는 노밀 자작가의 어른이시다.
하지만…….
“워랜 경이 대체 무엇을 이루셨다고 저희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 후계자인 저에게 형 대접을 받으셔야 하는 거죠?”
“호오…….”
“그만한 가치를 보이시지 않는 이상, 저는 워랜 경을 형이라고 부르는 일도 어른으로서의 공경을 보이는 일도 없을 거예요.”
과거이자 미래, 워랜도 그랬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공작가의 주인이었던 주안을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 명령도 따르지 않았으며, 대대로 모셔온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 한발 물러나게 되었다.
가주였던 가론 자작만이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끝까지 따랐지만, 워랜과 워랜을 따르는 다수의 노밀 자작가의 이들은 아니었다.
반란군과 대적한 이유도 자신의 고향이자 터전인 노밀 자작가의 땅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지, 절대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내가 그 무언가를 보이면 주안 공자는 언젠가 날 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말씀?”
“예, 가론 자작님처럼 훌륭하신 분으로 성장하신다면, 워랜 경을 형이라고 부르며 어른으로 대할 거예요. 초대 가주님이셨던 힉스 마르티네스 공작님의 말을 이어받은 후손이자 후계자로서 말이죠.”
당당하게 워랜을 보며 말하는 주안의 모습에 놀라던 솔도, 이죽거리던 워랜도 잠시 멍하니 주안을 바라본다.
그런 두 사람, 아니, 워랜을 보며 주안이 생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반말은 허용해 드릴게요. 하지만 제게 형이라고 불리고 싶다면 아버님이신 가론 자작님만큼 저희 공작가에서 인정받을 일을 하셔야만 하세요. 특히 저한테 말이죠.”
“좋아, 반드시 주안 공자에게 형이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어주지.”
“저도 기대할게요.”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자 솔은 적응을 못 한 듯했지만 워랜과 주안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워랜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이거 참. 주안 공자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아보려 했는데……. 이건 너무 심하게 변한 거 아니야?”
“그런가요?”
담담하게 말을 하며 차를 마시는 주안의 그 모습은, 사실 주안에 대한 뜬소문만 듣던 이들이 본다면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긴 했다.
그만큼 주안에 대한 소문은 좋지 않았고, 바로 이게 현실이었다.
“설마 이곳에 온 이유도 절 알아보고 싶으셔서 그러셨던 거예요?”
“뭐, 그것도 조금 있다고 할까. 아버지가 물러나면 내가 가주가 될 텐데, 아버지처럼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그 바로 곁에서 모신다는 것은 사실 달갑지 않거든.”
“도, 도련님!”
“왜? 너도 별로잖아?”
워랜이 놀라는 솔에게 당당히 말했지만, 그것을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는 솔은 그저 우물쭈물하며 주안의 눈치를 살필 뿐이었다.
하지만 주안은 오히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맞는 말씀이세요. 능력도 없는 사람을 강제로 모셔야 한다는 것만큼 괴로운 일도 없겠죠. 하지만 언젠가 워랜 경이 마음에 들 만한 그런 어른이 될 테니, 그때까진 조금 봐주세요.”
“하…….”
기어이 헛웃음을 터뜨린 워랜이 졌다는 듯 두 손을 들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 주안 공자. 일단…… 반쯤은 합격이니까.”
“하하, 반이나요?”
반밖에? 솔은 갸웃했지만 주안은 그 반이라는 부분이 얼마나 큰 것이고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기에, 놀란 눈으로 워랜을 바라보았다.
지금이야 이 게으름뱅이 청년에게 무엇을 바라기에 이렇게 주안이 숙이고 들어가나 하겠지만, 더한 짓을 해서라도 주안은 워랜의 마음에 들고 싶었다.
미래의 토미와 쌍벽을 이루는 그 실력 때문?
아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으로서, 믿어주는 가족을 위해서, 나를 지지해 줄 가신들을 위해서…….’
마르티네스 공작가 하나의 힘만으로는 절대 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었다.
수많은 가신 가문과의 끈끈한 유대 관계, 그 신뢰의 관계가 공작가의 힘이자 모든 것이었다.
워랜은 차기 노밀가문의 가주이며 마르티네스 공작령 남부를 대표할 영주가 될 것이다.
비록 게으르고 의욕도 없다 할지라도, 그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은 마르티네스 공작령 남부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노밀 자작가와 친분이 두터운 말란체 남작 가문뿐만이 아니라 인연이 깊은 펜 남작가와도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착실하게 하나하나, 인정을 받자.’
주안은 조용히 그렇게 생각을 하며 차를 홀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