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8화
“재능을 잡아먹는 괴물…….”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리고 주안은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것을 들은 소니아가 되묻자,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그런 워랜을 안젤라도 안다는 듯 말했다.
“어머? 쟤가 그 유명한 동부의 게으름뱅이?”
“안젤라 님, 이쪽은 중부의 마마보이이지 않아요? 유명한 걸로 따지면 이쪽이 더 유명할걸요.”
“흥, 우리 애는 엄마 말 잘 듣는 착한 아이일 뿐이야. 그런 걸 시기해서 험담이나 하는 인간들의 말은 들어줄 필요도 없고 그럴 가치도 없거든.”
“우픕?!”
안젤라가 입술을 삐죽이며 마음에 들지 않는 그 소문에 조금 심통이 난 듯했지만, 주안을 껴안아주는 것으로 그런 기분을 풀어내었다.
단지 그 아들이 엄마의 커다란 가슴 사이에 끼어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아……. 따지고 보면 주안 도련님도 동부 출신이시지……. 이 땅은 무슨 저주를 받았나. 마마보이에, 게으름뱅이에, 놈팡이까지 죄다 이상한 후계자들뿐이야.”
“흥, 그보다 쟤들을 말리는 게 낫지 않겠니?”
“그래야 할 것 같아요. 토미가 다치면 피터 아저씨도 그렇지만, 가론 아저씨도 자기 아들 다리를 분질러 버릴 수도 있거든요.”
“어머? 정말? 토미는 사랑받는 아이구나.”
농담이 아니라, 두 아저씨의 토미에 대한 사랑은 지나치다 못해 징글징글하다는 게 소니아의 평가였다.
게다가 나잇살 먹고 아이를 두고 누가 가르칠 것인지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도 참 웃기는 일이었다.
소니아가 잠시 저 두 사람을 어떻게 말릴까, 고민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꽤 통통한 청년이 안절부절하지 못 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그녀는 히죽 웃고는 반갑게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야! 뚱땡이 솔!”
“응? 흐익?! 소, 소, 소니아 누나?!”
솔 역시 어떻게 말려야 하나, 고민하던 중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방실거리며 자신에게 손을 흔드는 소니아를 보고 작게 경기를 일으켰다.
그리고 겨우 엄마의 품에서 벗어난 주안이 소니아와 새파랗게 질린 솔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보다 갸웃했다.
“아는 사이예요?”
“뭐, 나름 소꿉친구라고 할까요. 저 녀석이 노밀 자작가에 신세를 질 때, 자주 오가면서 봤거든요.”
“그런 것치고 심하게 무서워하는 것 같은데요?”
“흐흐흥~ 글쎄요.”
히죽 웃는 소니아의 미소가 점점 짙어질수록 솔의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만 갔다.
통통한 몸 때문에 동글동글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지만, 소니아 때문인지 잔뜩 주눅이 들어 있는 모습은 정말 귀엽기까지 하다.
그런 솔의 모습을 보던 안젤라가 갸웃했다.
흔치 않은 곱슬머리라 더 눈이 갔지만, 매우 낯이 익었고, 소니아가 언급한 이름이 매우 귀에 익었다.
주안이 솔에 대해 떠올리기 전 엄마인 안젤라가 먼저 솔이 누구인지 생각난 듯 말했다.
“저 곱슬머리 그리고 솔이라고 하면 분명 말란체 남작가의 덕트 장군 손자일 텐데…….”
“덕트 장군……? 아!”
엄마인 안젤라의 말에 주안도 솔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아스란 왕국 전쟁 당시 마르티네스 가문에서 활약한 덕트 말란체 장군은 비록 작위는 남작이었지만, 아스란 왕국 전쟁 당시에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군단 하나를 맡았던 명장 중의 명장이다.
그의 아들 역시 스스로의 힘으로 기사이자 전략가로 유명해졌다.
손자인 솔, 정확히는 베누아미솔은 그런 할아버지나 아버지와는 달리 기사 체질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머리를 잘 쓰는 인물도 아니었기에 가족들은 매우 안타까워했다.
게다가 그의 형제들은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닮아 벌써 두각을 드러내고 있어서 그런지 집안 내에선 늘 주눅이 들어 있던 그였다.
닮은 것이라고는 가족 대대로 내려오는 곱슬머리뿐, 그 외의 외모나 똑똑한 머리, 검술 재능 등등 그 모든 것이 달랐다.
하지만 그런 재능이 없다뿐이지, 솔은 말을 다루는 솜씨 하나만큼은 정말 대단했다.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타기는커녕 만지기도 어렵다는 노밀 자작가의 말들을 거리낌 없이 대하는 것을 본 덕트 장군은 솔을 노밀 자작가에 맡겼다.
그리고 운 나쁘게도 워랜의 눈에 띄는 바람에 그에게 붙잡혀 매일 함께 다니는 신세가 된 것이다.
“헤에, 솔이 예전에는 저렇게 살이 쪘었구나…….”
“응? 저 아이는 우리 주안이보다 어렸을 때부터 저렇게 통통했는걸?”
“아, 아하하……. 그랬어요?”
하지만 주안이 떠올린 예전은, 과거이자 미래의 일이었다.
주안이 베누아미솔을 제대로 본 것은 한 번밖에 되지 않았다.
그 한 번의 인상이 워낙 강해서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는 것이지만 말이다.
워랜이 사망하고 찾아온 솔은 매우 거칠었고, 거구의 사내였으며 사나운 인상의 인물이었다.
워랜의 복수를 원했지만, 당시의 주안은 그를 매몰차게 내쳤고, 그런 그를 이미 노구의 몸이 된 가론 자작이 붙잡을 수도 없었다.
그리고 베누아미솔은 말란체 남작가문과 흩어졌던 노밀 자작가의 기사와 병사들을 모아, 마를렌 방어선을 지키고 있던 가론 노밀 자작을 뒤로한 채, 반란군을 기습, 토미를 습격했지만, 그 수백의 인원은 다시는 마를렌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일이 떠오르자 주안의 기분이 괜히 울적해졌다.
솔은 떠나기 전, 주안과 안젤라에게 워랜을 죽인 토미보다 더한 분노를 품고 떠났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솔에 대한 미안함에 지금이라도 사과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는 주안이었지만 소니아는 이런 주안의 생각을 전혀 모르는 듯 솔에게 당당하게 걸어갔다.
“야, 인마. 너희 도련님 안 말리고 뭐 하는 거야?!”
“대, 대체 어떻게 말려요?!”
“몸으로 말려, 몸으로!”
“네?”
소니아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몰라 몸을 잔뜩 움츠린 채 갸웃하는 솔.
히죽 웃으며 다가오는 소니아의 모습에, 솔은 본능적으로 큰 두려움을 느끼며 뒤로 조금씩 물러났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누, 누나?!”
솔의 통통한 몸이 허공에 둥실 떠오르자 당황한 솔이 버둥거리며 소니아를 불렀다.
주변에서 이런 솔의 모습에 무언가 좋지 않은 것을 느낀 듯 황급히 물러났지만, 솔을 구해준다거나 할 수가 없었다.
웃고 있지만 다가가기 꺼려지는 여성, 소니아가 어느새 솔의 곁으로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 너네 도련님에게 출발.”
“히익?! 사, 사, 사……?!”
생긋 웃으며 소니아가 손가락을 튕겼고.
“사람 살……! 히에에에에엑?!”
채 말을 다 하기도 전에 솔의 통통한 몸이 허공을 날아 워랜과 토미가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불쌍해라.”
“그러게요.”
안젤라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주안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것은 주변에 있던 모두가 다 똑같은 심정인 듯 솔의 모습에 다들 안타까워했다.
* * *
‘대체 이 사람은 누구지?’
토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저 그가 휘두르는 검에 집중하였고, 움직임을 눈에 새겼으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대, 대단해…….’
갑작스러운 습격과 과격한 행동에 화도 났지만, 그보다 워랜의 이런 실력에 계속해서 놀라는 토미였다.
이 사람은 너무나 이상했다.
분명, 그 행동도 문제라면 문제지만 그가 보여주며, 알려주며, 유도해주는 방향대로 몸을 움직이는 게 너무나 편했다.
가끔 그가 알려주지 않은 방향으로도 움직여 보았지만, 그럴 땐 검으로 호통을 쳤고, 때론 칭찬하는 느낌마저 받았다.
게다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게 실례이긴 하지만…….
‘피터 기사님만큼 강해.’
피터의 제대로 된 실력을 본 것은 아니지만, 그가 주안을 지키며 쥬도 일행을 막아섰을 때의 그 기세는 오싹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지금 자신에게 검을 내지르는 이 사람, 워랜은 그런 피터와는 다른 느낌을 주고 있었다.
피터가 단단한 바위 같았다면, 이 사람은 바람과도 같았다.
유유자적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이 몸놀림, 유연한 손목과 팔의 움직임으로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서 나타나는 그의 검로.
여유로운 그 모습이나 그러면서도 토미를 끝없이 지켜보고 알려주고 가르치고 있는 이 행동.
‘……대체, 이 사람 누구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냐, 꼬맹아. 움직임은 또 왜 이렇게 딱딱해? 이거 완전 답답한 기사들의 움직임이잖아?”
“으극?!”
순식간에 토미의 목검을 쳐서 떨어뜨리고, 손목을 친 후 팔꿈치까지 세 번에 걸쳐 쳐 낸 워랜이 토미를 돌려세운 후 발로 토미의 종아리를 톡 치며 자세를 바꾸어주었다.
“누구를 보고 따라 해보는 건지 모르겠지만, 너처럼 어리고 유연한 몸을 가진 애들은 근육 돼지 기사들의 검이랑 전혀 안 어울려.”
“근육 돼지?!”
그 말에 토미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워랜이 토미의 어깨를 붙잡고 살짝 눌러준 후 팔의 자세를 다시 고쳐주었다.
“응, 역시 금방 따라 하네. 이 자세를 잘 기억하는 게 좋을 거다.”
“아…….”
워랜이 바닥에 떨어진 토미의 목검을 자신의 검으로 톡 쳐서 허공으로 띄우더니 그것을 간단히 붙잡은 뒤 토미의 손에 쥐여주었다.
‘편안해…….’
피터에게 한 시간씩 목검을 휘두르는 훈련을 받았지만, 그때와는 달리 자세가 너무나 편했다.
사실 피터에게 목검 휘두르는 법을 받을 땐 종아리나 팔목이 조금 불편했지만, 그건 아직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묵묵히 시키는 대로 했었다.
“자, 휘둘러 볼래?”
더 이상 이상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버린 채 토미가 워랜의 말에 따라 목검을 휘둘렀다.
후웅-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그것을 본 주변의 많은 이들이 조금 놀란 듯 토미를 바라본다.
그리고 이런 놀라움을 심하게 느낀 이들은 모두 검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기사나 병사들이었다.
“마, 말도 안 돼…….”
“헤에, 역시.”
워랜이 놀라는 토미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머리카락을 마구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넌 그 영감님이나 나랑 완전 닮았…….”
“히에에에에엑?!”
“응?”
갑자기 왠 돼지 멱따는 소리에 워랜과 토미가 뒤를 돌아보았다.
“피, 피하세요, 도련……!”
하지만 그 말이 나오기도 전에 이미 워랜과 토미는 서로 떨어져 거리를 벌렸고, 그 사이로 솔이 스쳐 지나가더니 이내 바닥에 처박혀 데굴데굴 굴러갔다.
안쓰러운 그 모습에 토미가 조심스레 워랜에게 물었다.
“저기, 아시는 분 아니에요?”
“괜찮아, 괜찮아. 솔은 꽤 튼튼해서 저 정도는 침만 발라도 낫거든.”
“침 바르면 상처 덧난다고 주안 도련님이 그러셨는데…….”
“호오, 너 주안 공자를 알아?”
“아, 저는…….”
“야! 워랜!”
“응?”
날카로운 그 소리에 워랜이 토미에게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굉장히 귀에 익은 그 목소리에 여유로워 보이는 워랜의 얼굴을 잔뜩 찌푸려졌다.
“소니아?”
“남의 집에 찾아와서 남의 애한테 뭐 하는 짓이야?!”
“……여기가 너희 집이었냐. 그보다 오빠라고 불러, 오빠라고.”
“오빠 같은 소리 하시네.”
소니아가 당당하게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는 콧방귀를 뀐다.
“그보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니까. 왜 애를 괴롭히고 그래?”
“괴롭히는 게 아니라 마리우스 그 영감님 좀 따라 해봤다, 왜.”
“마리우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님?”
이번에는 워랜이 검을 품에 껴안고 하품을 한다.
하지만 제국 제일의 검이라고 하는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을 영감님이라 칭하며 아무렇지도 않게 부르는 워랜의 모습에 소니아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도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특히 검을 가진 이들이라면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닮고 싶은 기사이자 우러러볼 수 있는 모두의 스승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워랜에겐 무지막지한 괴물 영감님일 수밖에 없는 것이, 5년 전 갑자기 찾아와서 워랜에게 냅다 검을 휘두르며 며칠씩이나 괴롭혔던 탓에 좋아할 수 있는 영감님이 아니었다.
공식적으로는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에게 검을 배운 제자로 바스티아노 백작 하나밖에 없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비공식적으로 워랜도 포함되어 있었다.
단 며칠이긴 하지만, 바스티아노 백작에게 가끔 하나의 답을 툭툭 던져주던 것과는 달리 워랜을 대할 땐 아주 죽일 듯이 검으로만 대화를 해주었기에 좋아할 수가 없었다.
이런 워랜과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과의 관계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워랜은 매우 무례하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분위기가 조금 무거워지고 워랜을 보는 눈들이 좋지 않게 변할 때쯤, 작은 박수 소리가 울렸다.
“정말 대단하세요, 워랜 경. 소문이 정말 거짓이 아니네요. 아니, 그 이상이세요.”
“응? 넌, 누구…… 푸업?!”
“주안 도련님이셔, 주안 도련님!”
갸웃하는 워랜의 행동에 소니아가 도끼눈을 뜨고 달려와 워랜의 머리를 붙잡고 강제로 고개를 숙이게 만들었다.
그 우악스러운 행동에 워랜이 버둥거리며 반항하려 했지만, 아주 마법까지 써서 몸을 옭아매는 탓에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행동을 강제로 하는 워랜과는 달리 다른 이들은 자연스럽게 물러나 주안 그리고 그의 곁에서 함께 있는 안젤라에게 황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소문으로 듣고 알고 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고, 직접 본 이들도 있을 것이지만 그들에겐, 주안이 있는 곳에 반드시 공작부인도 함께 있다는 것이 공통된 생각이었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행동이었다.
“되었다. 그보다 사람이 많은 듯하니, 자리를 조금 옮기지 않겠느냐?”
주변에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안젤라는 평소의 말투가 아닌, 한때 황녀였고 현재는 공작부인다운 말투로 좌중을 한 번에 아울렀다.
소문과는 전혀 다른 안젤라의 모습이었다.
다들 조금 놀란 듯했지만 이내 안젤라의 말대로 웅성거리던 것을 멈추고 각자 할 일을 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그럼에도 주안과 안젤라 쪽에 계속 시선을 주며 미적거리는 이들은 많았다.
“일단 엄마 말대로 조금 조용한 곳으로 자리를 좀 옮길까요? 아, 저기 쓰러진 분도 데리고 가죠, 소니아 누나.”
“네에~ 네에~”
워랜 때문인지 소니아가 입술을 삐죽인 채 눈매를 좁히며 그를 노려보다, 주안의 말에 심드렁하게 답하며 솔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누나…….’
그런 소니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지은 주안은 시선을 옮겨 워랜을 바라보았다.
그를 직접 본 것은 없었지만, 몇 번인가 스쳐 지나가며 봐왔던 워랜이었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에는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고, 수염도 길러서 인상이 완전 달랐지만, 그는 항상 주안 자신을 경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가주가 되는 것을 거부했던 것도 공작가를 보필하는 것, 주안을 모시는 것을 혐오했을 정도로 그는 주안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터전을 더럽히러 온 반란군에 맞서 노밀 자작가와 말란체 남작가문 그리고 펜 남작가문의 병력을 모아 대항했다.
실로 오랜 시간을 버티어주었고, 마를렌에 처박혀 숨어 있던 주안을 보호하기 위해 방어선을 펼치던 가론 노밀 노 자작에게 충분한 시간을 만들어주었다.
하지만 펜 남작가는 멸문을, 노밀 자작가와 말란체 남작가는 일부만 마를렌으로 도망쳐 올 수 있었고, 그러한 마지막 시간도 워랜이 토미를 막아서며 번 시간이었다.
이후 주안은 토미로 인해 전해진 그에 관한 소문을 가문이 망한 뒤에 접했고, 그가 얼마나 대단했던 기사이자 검사였던 것인지 그제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직접 보니 토미가 왜 그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고 대단히 여겼는지 이해가 되었다.
서방의 검을 배운 사람답지 않게 필요한 근육만 키운 매끄러운 몸매를 자랑하는 워랜은, 그 유연한 손목과 근육의 미세한 부분까지 컨트롤이 가능해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가 없는 축복받은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동부의 게으름뱅이라고 불릴 정도로 게으른 탓에 검에는 전혀 흥미가 없던 그였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그를 한 번에 알아보고 억지로 가르쳤지만 그게 다였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배움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는 그를 결국 포기한 채 동방 대륙으로 떠났다.
남겨진 워랜은 여전히 검에 대한 흥미는 없이 유유자적, 그렇게 허송세월하다, 인생의 끝에 가서야 진정한 적수를 만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준 후 사라진 비운의 천재였다.
그때 그가 후회를 한 것인지, 아니면 만족을 한 것인지는 모른다.
다만, 그를 기억하는 주안은 그를 되돌아보면 참 미안하고, 또 미안해지는 사람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소니아가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