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7화
“쥬도 형은 정말 괜찮을까…….”
토미는 휴식도 충분히 취했고, 피터의 훈련 뒤에 있을 가론 자작의 마상술을 배우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면서도 피터에게 끌려가는 쥬도의 얼굴이 자꾸 눈앞에서 아른거렸다.
분명 처음 쥬도를 만났을 땐 참 싫었던 사람이라 다가가기 꺼려졌지만, 피터와 함께 훈련하다 보니 아주 조금 정도 쌓였고, 더군다나 자신의 배 이상으로 힘들어하는 그의 모습은 정말 안쓰러웠다.
피터나 주안은 그런 쥬도에게 벌을 내리는 한편 이 훈련은 정신 개조라고 했다.
토미 역시 쥬도가 정신을 좀 차려야 할 어른이라는 것을 이해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좀 불쌍한 건 사실이었다.
“도리안 아저씨도 참 불쌍해.”
게다가 그런 쥬도 때문에 하지도 않을 보모 역할까지 하는 도리안을 보니, 이 두 사람이 토미는 조금 불쌍해졌다.
그리고 피터의 그런 훈련을 언젠가 자신도 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몸이 오싹했다.
“어이, 너!”
“응?”
좋지 않은 생각에 안색이 창백해진 토미가 갑작스레 들려온 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았다.
“아?!”
그것은 분명 몇 걸음이나 떨어진 장소에서 다가오고 있는 남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는 눈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어느새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리고 거리낌 없이 손에 들린 무시무시한 검을 자신에게 휘두르는 게 똑똑히 보였다.
매우 가볍고 얇아 보이는 그것은 서방의 검이라기보단 동방의 검에 가까웠고, 검집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손잡이 부분에 매우 특이한 매듭이 매어져 있었다.
단순한 동작이었고, 내지르기 전 미세하게 움직인 근육과 손잡이를 꽉 움켜쥔 손의 악력.
지면에 닿은 발과 그 움직임이 토미의 눈에 똑똑히 새겨졌다.
그 찰나의 순간, 그 모든 것이 눈에 들어왔지만,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따악-!
워랜이 휘두른 검집이 씌워진 검과 토미가 휘두른 목검이 부딪치자 공작성 성문 인근에 맑은 소리가 울렸다.
“호오, 역시~ 역시~!”
‘이 사람…… 대체 누구야?!’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손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통증에 토미가 이를 꽉 깨물고 워랜을 노려보았다.
“야, 꼬맹이, 옆구리 비었다.”
“윽?!”
말과 함께 동시에 검을 빼더니 그 움직임에서 끊어지지 않고 그대로 토미의 왼쪽 옆구리로 검이 휘어지듯 움직인다.
하지만 워랜의 말과 동시에 이미 토미가 검을 거두어 옆구리로 향하던 워랜의 검을 막아내며 뒤로 물러났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막아냈다고 생각한 워랜의 검이 어느새 다시 토미를 집요하게 노려왔다.
그것에 화들짝 놀란 토미는 막고 피하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그 모든 것도 미리 워랜이 지적해 줬기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다.
하지만 정신없는 그런 상황에서도 토미는 워랜의 말에 제대로 반응하였고, 때론 오히려 워랜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먼저 몸이 움직여 워랜을 놀라게 만들었다.
고작 스무 번 정도였지만, 토미의 얼굴은 금세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하지만 그 눈은 끝없이 워랜의 모습을, 그 움직임을, 발걸음과 손동작, 근육의 미세한 변화까지 모두 눈에 담아내고 있는 듯했다.
그 모습에 워랜이 오싹오싹함을 느끼면서도 매우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이 꼬맹이…….’
힘 조절을 하고 있었고, 단지 순수한 검술만으로 토미를 상대해 주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런 어린아이가 받아낼 그런 것은 아니었다.
아니, 워랜이 알려준다고 해서 막고 피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점점 알려주지 않아도 그 짧은 순간에 알아서 받아내고 피하고 있었다.
‘역시……!’
워랜의 미소가 점점 더 진해졌다.
“그 영감님이 나한테 왜 그랬는지 이젠 좀 알겠다, 꼬맹아!”
몇 년 전 갑자기 찾아왔던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에게 지겹도록 시달렸던 그때의 기억은 떠올리기도 싫었다.
하지만 그때 그 영감이 자신을 괴롭히면서 왜 웃고 있었던 것인지 아주 조금이지만 이해할 수가 있었다.
* * *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어머, 경박해라. 우리 주안이는 저런 거 닮으면 안 되는데.”
마지막 날이라 공작성을 찾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알지만, 외성의 성문 쪽이 매우 시끄럽고 북적거렸다.
그 모습에 주안이 갸웃했지만, 안젤라는 이런 주안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손수건을 든 채 입과 코를 가리며 휘날리는 먼지에 잔뜩 찌푸렸다.
게다가 그들의 눈에는 누군가 싸우고 있는 듯한 모습이 보였기에 더욱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병사들은 대체 뭐 하는 거람.”
주변에 병사들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고, 귀족이나 대상인들의 호위로 있는 기사들도 간간이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들은 무언가 매우 신기한 것을 구경이라도 하듯 가끔 오오~! 하는 소리나 파이팅, 꼬맹아! 등등의 응원이 들려왔다.
그것을 보며 안젤라와 주안이 갸웃했고, 사람들의 틈으로 보이는 매우 낯이 익은 얼굴에 주안이 잔뜩 찌푸렸다.
뭔가, 매우 친숙하고 어리바리하고 특이한 하얀색이 주안의 눈에 띄었다.
“제가 말릴까요? 안젤라 님.”
“그렇게 해줄래? 이왕이면 성 밖으로 날려 버려.”
“넵! 저 멀리 날려서 땅에 처박아 버릴게요.”
“자, 잠깐!”
좀 싸운다고 성 밖으로 사람을 날려 버리라는 엄마나, 그렇다고 또 그러겠다며 나서려는 소니아의 행동에 주안이 황급히 말렸다.
아무래도 파티 전까지 마를렌 시내를 돌아다니며 쇼핑이나 할 생각이었는데, 안 좋은 것을 봐서 그런지 기분이 매우 언짢아지신 듯한 엄마라 매우 과격해지셨다.
“토미라고요! 토미! 저기 있는 거 토미잖아요!”
“응? 토미?”
주안이 급하게 소니아를 말린 것도, 자세히 보면 북적거리고 시끄러운 저 장소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토미였기 때문이었다.
일단 소니아를 말린 후 주안이 토미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 대체 뭐 하는 거야. 아니, 그보다 저 사람은 또 누구야.”
“……왠지 엄청 낯이 익은데?”
“응? 낯이 익어요?”
눈매를 좁히며 지그시 그곳을 바라보던 소니아가 왠지 매우 불쾌하다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저 재수 없게 생긴 얼굴 하며, 남자 자식이 머리카락 기른 거 하며, 느끼함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것 하며…….”
“왜 멀쩡한 사람 욕을 하고 그러세요.”
“별로 멀쩡해 보이진 않잖니, 주안아.”
“그, 그렇긴 하지만…….”
공작성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이 멀쩡한 사람일 리가 없다는 사실을 엄마가 언급하자, 주안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제정신이 아닌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보다 토미를 구해야 하지 않니? 저러다 큰일 나겠어.”
아들 바보인 안젤라이지만, 그래도 아들과 친한 토미가 다칠 수 있다는 것은 영 마음에 걸렸다.
피터나 소니아도 귀여워하는 아이라는 이유도 있었고, 주안도 매우 아끼는 아이라는 점이 굉장히 컸다.
그런 안젤라의 말에 주안이 황급히 엄마와 소니아를 데리고 토미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장소이기는 하나, 주안과 안젤라가 다가가자 이들이 누구인지 아는 듯 황급히 물러나며 자리를 비켜주었다.
북적거리던 인파가 갈라져 길을 만들어지는 것은 장관이었다.
그리고 그 길의 너머에서 보이는 토미를 괴롭히고 있는 워랜의 얼굴을 보며 소니아가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저 상판, 확실해.”
“말이 엄청 험하세요, 소니아 누나. 그보다 누구예요? 누군데 우리 토미를 괴롭히고 있는 거예요?”
가까이 다가가서 살펴보니, 다행히 싸우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다행이긴 했지만, 그래도 토미를 괴롭히고 있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기에 주안이 잔뜩 찌푸리며 나설 준비를 하였지만, 소니아가 그런 주안의 어깨를 붙잡고 말렸다.
“저 자식, 노밀 자작가의 그 게으름뱅이잖아요.”
“게으름뱅이?”
“네, 가론 아저씨 아들. 노밀 자작가의 후계자 말이에요.”
소니아의 말에 잠시 갸웃하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주안이 놀란 눈으로 토미에게 검을 휘두르는 워랜을 바라보았다.
“설마……?”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엄마에게 기대며 몸을 흠칫 떨고는, 워랜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워랜 노밀…….”
그는…….
과거이자 미래, 토미에게 죽임을 당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으로 토미는 랭크 8의 단계로 올라설 수 있었다.
* * *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사라지고 뒤이어 황실 근위대의 단장이 된 바스티아노 백작은 명실상부한 제국 제일 검이었다.
바스티아노 백작은 서방의 정통 검술을 제대로 이어받은 인물이었고, 그런 만큼 검은 매우 단순했지만 강맹했고 우직하였으며 단단했다.
랭크가 오를수록 높아지는 강화된 육체와 그 강인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의 검술은 동급의 랭크 7에 위치한 검사가 아닌 이상 일 합을 버틸 수 없다고 알려진 괴물 같은 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에게 간간이 검을 가르쳤다고 알려진 전대 황실 근위대 단장이던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그를 성난 황소에 종종 비교했고, 단순히 힘과 파괴력만 놓고 본다면 서방 대륙과 동방 대륙의 그 어떤 검사라도 그에게 못 미친다고 언급했을 정도였다.
게다가 황실 근위대의 제1 목표인 황실의 검이자 병기가 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한 존재로, 강철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와 정 반대가 되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노밀 자작가의 후계자인 워랜 노밀이었다.
그는 노밀 자작가의 인물답게 자유로운 영혼이나 마찬가지였다.
놀 때 놀고, 쉴 때 쉬고, 공부 조금 하며 검을 휘둘러 보고 가끔 말도 타며 유유자적 그런 생활 즐기는 인물로서, 동방의 말을 빌리자면 한량, 서방의 말을 빌린다면 게으름뱅이.
그리고 아버지인 가론 노밀 자작의 말을 빌린다면 놈팡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는 젊었을 때부터 노력하는 천재 바스티아노 백작과 항상 비교되는, 노력하지 않는 천재로 언급되었다.
실제로 그는 20대의 젊은 나이로는 믿기 힘든 랭크 6에 올랐었지만, 죽기 직전까지 그 상태를 계속 유지했었다.
그에게 자극을 줄 수 있는 인물이 있었다면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들은 늘 그렇게 말했다.
바스티아노 백작도 충분히 천재라고 할 만하나, 그는 노력으로 얻어낸 천재였고, 워랜 이전의 진정한 천재라 불렸던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 역시 자신의 길을 가기가 바빴다.
아주 잠깐 워랜을 가르치긴 하였으나 그게 전부였다.
게다가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동방 대륙의 슌 제국 황도에서 난동을 피우고 자살한 동방의 용에게 휩쓸려 사망했다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로, 동방으로 건너간 뒤 소식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였다.
그런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향해 검을 들이댄 반역자들과 함께하고 있던 토미였다.
토미에겐 적수가 없었다고 평가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의 목숨을 빼앗아갈 뻔한 사람이 둘 있었다.
첫 번째는 토미의 스승이었던 동방의 검사였고, 다른 한 사람은…….
노밀 자작가의 천재, 워랜 노밀이었다.
토미가 평가하길 그의 검은 정형화된 그 무엇도 없는 자유로운 검이었고, 본능에 의지하던 야생동물이었으며, 끝없이 성장하는 괴물이라 말했다.
랭크 6의 단계에 머물던 워랜 노밀은 이미 랭크 7의 극에 이르렀던 토미와 열 번의 검을 겨루고 물러났을 때, 랭크 7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서른 번의 검을 나누고 수많은 자상을 입었을 땐 토미와 동등하게 검을 나누어도 모자라지 않을 단계에 접어들었다.
20년이 넘는 그 긴 시간 동안 성장하지 않았던 동부의 천재는 마치 그 막힌 둑이 터지듯 재능을 모조리 터뜨렸다.
그는 마르티네스 가문과 제국에 검을 든 반역자들의 무리에 서 있던 토미와 당당하게 맞서 싸웠지만, 결국 토미에게 큰 상처를 입힌 뒤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상처를 견뎌낸 토미는 비공식적이지만 랭크 8에 들어섰다고들 한다.
실제로 이후 바스티아노 백작과 검을 겨룰 당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고는 하나, 토미는 거의 상처를 입지 않고 바스티아노 백작의 심장에 검을 꽂아버렸다.
그 압도적인 무력을 가진 그는 이후 언제나 워랜을 언급할 때 이렇게 말했다.
“재능을 잡아먹는 괴물…….”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워랜에게 해준 말이었고, 워랜이 죽기 전 토미에게 해준 말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토미는 그 말을 그대로 워랜에게 되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