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26화 (26/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6화

벡브란 전대 공작의 생일 파티는 공작령을 매우 떠들썩하게 만든 하나의 사건이었다.

그가 이런 허례허식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 영감님이 대체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 의아했다.

거기에 하루 이틀의 일정도 아닌 갑자기 일주일의 일정으로 파티가 진행되자 가신들의 영지는 난리가 나버렸다.

가론 자작에게 마법 통신으로 연락을 받고 올 수 있는 이들은 급하게 채비를 해 마를렌으로 향했다.

시간이 촉박한 이들은 생일 파티에 참석은 못 하지만, 조금 늦더라도 마를렌에 방문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어쨌든 공작령의 가장 큰 어르신이자 실질적인 지배자인 그에게 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생겼는지 궁금한 이들이 많았기도 했고, 그와 더불어 한 가지,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소문이 흘러들어 왔기 때문이었다.

“주안 마르티네스……. 소문이 사실이려나.”

“네?”

그 말에 마차를 몰던 솔이 갸웃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짐 마차에서 짐들을 베개와 침대 삼아 느긋하게 하늘을 보며 누워 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매우 여유롭고 안락해 보인다.

마르티네스 공작령은 동방과 서방의 물류가 모여 이동하는 장소라 그만큼 길은 크고 반듯하게 잘 닦여 있어 마차로 이동하기 굉장히 편한 영지였다.

그 때문에 심하게 낡은 짐 마차 같은 것만 아니라면 큰 흔들림 없이 편안하게 이동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짐들을 베개 삼아 누워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워랜 노밀 역시 이대로 그냥 잠들어 버리고 싶을 정도로 안락했다.

“워랜 도련님,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아니, 별로…….”

길게 하품을 하던 워랜이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쭈욱 폈다.

“그런데 솔, 마를렌까진 얼마나 남은 거야?”

“반나절은 더 가야 하지 않을까요?”

“거, 참 더럽게 머네.”

“그러게 그냥 말을 타고 오자니까요. 왜 짐 마차를 끌고 오셔서…….”

“귀찮아서 싫은걸. 말 타는 것도 힘들고, 온종일 땡볕에 이동하는 것도 싫고……. 이렇게 마차를 이용하면 얼마나 좋아. 게다가 그 영감님 줄 선물도 가져왔으니 됐잖아.”

“아니, 영감님이 아니라 벡브란 전대 공작님이잖아요. 그보다 대표적인 기마의 가문에서, 말이 싫다니…….”

황당해하는 솔의 모습에 워랜이 미소를 지으며 도로 벌렁 드러누웠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딱히 별 의미는 없는 동방의 말. 그냥, 이런 느긋함과 편안함을 표현한다나.”

“……느긋함과 편안함이 아니라 무책임함이겠죠.”

“시끄러워. 나 잘 거니까 도착하면 깨우기나 해.”

“또 잔다고요?!”

꽤 통통한 편에 속하는 솔이 워랜의 말에 볼살이 움찔거릴 정도로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그런 솔의 말을 한 귀로 흘린 워랜이 금세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버린다.

“하아……. 집에 가고 싶다…….”

워랜에게 붙잡히는 바람에 그의 곁에 함께 있게 되었지만, 정말 적응이 안 되는 도련님이었다.

나이는 자신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스물넷의 청년인 워랜은 제국 동부에서는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서방의 검을 배운 사람답지 않게 그의 몸매는 최소한의 필요 근육들만 발달한 건강미 넘치고 매끈한 몸매였고, 화려하진 않지만 밝은 갈색의 머리카락은 허리까지 내려올 정도로 길게 길렀다.

간단하게 묶어 다니고 있지만, 미청년에 가까운 그의 외모와 잘 어울려 영지에서나 그 주변에서나 그를 따르며 좋아하는 여자들은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그 외에도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최측근인 가신의 가문이라는 노밀가문인 것도 있었고, 후계자라는 점도 매우 부각된다.

게다가 나이답지 않은 검술의 실력과 천재성은 여러 존재들이 그를 언젠가 제국 동부의, 아니, 더 나아가 제국과 서방 대륙의 제일 검으로 올라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그에게는 매우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다.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에 소문 자자한 후계자, 주안 마르티네스만큼은 아니지만, 워랜 노밀 역시 조금 좋지 않은 의미로 소문이 자자한 후계자 중 하나였다.

그는 동방의 말로 표현하면 한량이었고, 서방의 말로 표현한다면…….

“완전 게을러…….”

지독한 게으름뱅이였다.

* * *

“오늘도 수고했어요. 토미, 이제 금세 숨도 편해지네?”

“아, 정말요? 그러고 보니…….”

주안이 건네준 수건으로 얼굴의 땀을 훔치던 토미가 그 말에 안색이 환해졌다.

주안의 말대로 예전과는 달리 피터의 훈련 후 그 자리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지 않았다. 체력이 조금 붙은 것인지 금세 편해지는 것이다.

물론 오늘의 훈련은 아무래도 공작성이기도 했고, 또 벡브란 전대 공작의 생일 파티가 다 끝난 것이 아니라, 평소보다 일찍 끝나긴 했지만 그래도 좋은 것은 좋은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쥬도 씨 당신은 영 아니네요.”

“…….”

말할 기운도 없는 것인지 쥬도는 바닥에 쓰러진 채 가쁜 숨만 몰아쉬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그는 여전히 팔 다리와 허리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훈련이라고 해봐야 토미와는 달리 그는 그저 달리고, 팔굽혀 펴기를 하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하며 중간중간 쉬는 시간까지 가졌지만, 이 꼴이었다.

“괘, 괜찮으십니까. 쥬도 도련님.”

작게 혀를 차는 피터와는 달리 도리안은 쓰러진 쥬도를 일으켜 앉힌 후 그를 속박하고 있던 모래주머니를 다 떼어주었다.

그리고 수건으로 꼼꼼하게 그의 얼굴을 닦아주며 시원한 물까지 직접 먹여주었다.

“완전 지극정성이네요…….”

“죄,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뭐, 도리안 경이 아니라면 저 사람을 누가 돌보겠어요.”

쥬도를 포함해서 그 호위대 모두는 석방된 상태이지만, 쥬도와 도리안을 제외한 나머지 호위대는 현재 홈멜스 상단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들의 죄에 대해선 거액의 배상금을 물었다는 것과 직접적인 잘못을 한 쥬도와 도리안은 공작가 내에서 처분한다는 소문을 살짝 흘려놓은 뒤였다.

그래서인지 쥬도를 돌보는 것은 현재 도리안 혼자로, 그에겐 마땅한 하녀나 하인도 배정되어 있지 않았다.

말 그대로 온실 속에서만 자라던 화초가 사막에 버려진 꼴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모습을 주안도 안타까워했기에, 도리안이 그를 여전히 도련님이라 부르며 지극정성으로 모시는 것에 별말은 하지 않았다.

“주안아~ 그만 이쪽으로 오렴.”

“앗, 네.”

멀지 않은 곳에 이곳 연무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양을 친 화려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주안의 엄마 안젤라가 생글거리며 주안을 불렀다.

그녀의 곁에는 소니아와 안젤라의 전속 하녀가 함께였고, 테이블 위에는 시원한 음료와 간식들이 가득했다.

더군다나 마법사가 없다면 겨울 외에는 만들어 먹을 수도 없다는 그 비싼 아이스크림과 셔벗도 놓여 있을 정도였다.

평소라면 이런 곳에 오지 않을 안젤라이긴 하나, 주안이 이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할 수 없이 따라오게 된 것이었다.

뭐, 그렇다 해도 주안이 계속 엄마의 곁에서 함께 간식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다 가끔 토미가 쉴 때만 자리에서 일어났기에 조금 아쉬워도 그런 불만은 드러내지 않았다.

“토미, 너도 아이스크림 먹을래? 셔벗이라는 것도 있는데, 엄청 맛있어.”

“네, 네?! 하, 하지만 전…….”

“피터 아저씨도 같이 가요. 아저씨도 단 거 엄청 좋아하시잖아요.”

“아, 아니, 전 단 게 좋은 것이 아니라…….”

아는 사람은 몇 없지만, 피터는 그 무뚝뚝한 외모와는 달리 단 것을 매우 좋아했다.

허둥거리는 그의 모습을 토미뿐만 아니라.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쥬도와 그런 그를 보살피는 도리안까지 바라본다.

그 때문인지 괜히 무안해진 피터가 헛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

“크, 크흠! 그보다 안젤라 님과의 시간이 아닙니까. 저희가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동석은 절대 안 됩니다.”

“음…… 뭐, 그러면…….”

주안이 엄마가 있는 곳으로 빠른 걸음으로 가더니, 이내 하녀가 들고 있던 쟁반을 대신 집어 든 후 셔벗과 아이스크림 그리고 주스를 쟁반위에 올린 후 그것을 가지고 네 사람에게로 향했다.

“자, 드시고 싶은 것 드세요.”

“도, 도련님…….”

그런 주안의 행동에 잠시 당황한 토미였다.

이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피터는 주안의 뒤에서 눈매를 좁힌 채 찌릿찌릿 이상한 신호를 보내어오는 안젤라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어찌해야 할지 크나큰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은 나이 지긋한 피터와 도리안 뿐이었고, 천진난만한 아이인 토미나 정신연령이 좀 어린 쥬도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먹고 싶은 것을 집어 든다.

그리고 주안이 기어이 피터의 손에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도리안에겐 시원하고 상큼한 주스를 쥐여준 후 쟁반을 들고 엄마가 있는 테이블 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우웅……. 우리 주안이 먹이려고 엄마가 잔뜩 준비한 건데…….”

“그래도 다들 고생하는데, 저희만 먹기는 좀 그렇잖아요. 소니아 누나랑 마리아 누나도 같이 드세요.”

“넵!”

“아, 아뇨, 저는…….”

머뭇거리는 엄마 안젤라의 전속 하녀인 마리아와는 달리 소니아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눈여겨보던 셔벗을 냉큼 가져가 작은 티스푼을 이용해 한 스푼 떠서 입속으로 쏙 집어넣었다.

“아우웅……. 시원해, 달콤해, 맛있어~.”

“으으으! 내, 내가 우리 주안이 주려고 준비한 건데……!”

“아하하, 전 이거로도 좋아요. 이거 엄마가 고르신 거 맞죠?”

“응! 우리 주안이는 세브로 군도의 이 파파야 열매 좋아했잖아.”

세브로 군도는 서방 대륙과 동방 대륙을 잇는 항로에 위치한 작은 섬들이 모인 장소였다.

딱히 지배하고 있는 왕국은 없지만, 각 섬마다 대표하는 부족들이 있었다.

이 세브로 군도는 동방과 서방에서는 매우 중요시되는 장소라 절대 분쟁을 일으키지 않기로 협정을 맺었기에 누군가의 침략과 지배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장소이기도 했다.

게다가 해적 때문에 교역선들의 안전을 이유로 중요한 몇 개의 섬에는 서방 대륙과 동방 대륙의 군선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제노폴 제국의 해군 기지가 위치한 섬도 있었다.

사실 말뿐인 협정이라, 보이지 않는 알력 싸움은 언제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뱃길은 한 번에 이동하기에 너무나 피곤한 항로였지만, 그 중간중간 위치한 보급섬들과 세브로 군도는 이러한 피로를 풀고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중간 보급지 역할도 하며, 때론 무역상들이 이곳에서 중개무역을 펼치기도 한다.

서방과 동방에서 출발한 무역선들은 모두 이곳을 한 번 들렀다 보급을 하고 이동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중간 기항지와 보급항의 역할도 잘 수행하지만,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것들로도 열대의 과일들과 먼 바다에서만 잡을 수 있는 고래 고기가 있었고, 이것은 매우 비싼 값에 팔렸다.

“맛있다……. 헤헷.”

“자, 아앙~.”

“제, 제가 먹어도 되는데…….”

“아앙~!”

“…….”

주안이 손으로 잘게 썰어놓은 파파야 조각을 집어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을 본 안젤라는 앞의 언짢았던 일들이 모두 사라진 듯 포크로 파파야 열매를 찍어 직접 주안에게 먹여주었다.

잠시 머뭇거렸지만, 그런 엄마의 행동에 할 수 없이 주안도 따랐다.

“아, 맞다. 저희 내일 집에 가는 거죠?”

“응, 파티는 오늘로 끝. 내일 드디어 집에 가는 거지.”

드디어 집에 간다는 것에 안젤라는 무척 기뻐했지만 주안은 매우 아쉬워했다.

“왜에? 우리 주안이는 집에 가는 게 싫어?”

“집에 가면 마를렌에는, 할아버지 보러 오는 건 힘들잖아요…….”

사실 주안이나 안젤라가 이곳에 계속 남아 있다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인 안젤라는 마를렌의 생활 그 자체를 매우 싫어하였고 달가워하지 않았다.

분명 눈을 혹하게 만드는 동방과 서방의 물건들이 모이긴 하지만, 다른 그 무엇보다…… 시아버님인 벡브란 전대 공작이 버티고 있는 이곳은 어쨌든 그녀에겐 최악이었다.

그런데 주안은 이런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아쉬워하는 모습에 안젤라가 입술을 삐죽이며 괜히 자신의 셔벗에 티스푼으로 콕콕 찌르며 불만을 드러냈다.

“엄마는 우리 주안이랑 집에 가서, 그동안 하지 못한 쇼핑도 하고, 외할아버지 집에도 놀러 가고, 공연도 보러 가고 그러고 싶었는데…….”

“집에 가면 바로 외할아버지한테 인사하러 갈게요.”

“응!”

맛있게 셔벗을 먹던 소니아는 이런 두 모자의 즐거운 대화에 먹고 있던 셔벗이 목에 걸릴 뻔했다.

스케일이 커도 너무 큰 그 대화가 매우 불편했다.

아니, 무슨 집에 가서 외할아버지 만나는 이야기를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것일까.

……그 외할아버지가 황제 폐하이신데 말이다.

* * *

“도련님, 도련님. 워랜 도련님.”

“웅…… 응?”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솔의 거친 손길에 워랜이 잔뜩 찌푸리며 눈을 떴다.

그리고 부스스한 모습으로 몸을 일으킨 후 눈을 비비며 말했다.

“왜? 벌써 도착한 거야?”

“어떻게 반나절 내내 잘 수가 있는 거예요?! 그것보다 공작성에 못 들어가고 있어요.”

“응? 어째서?”

길게 하품을 한 워랜이 정신을 좀 차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귀족들로 보이는 이들이 공작성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고, 많은 이가 이런 자신들을 흘겨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워랜이 갸웃하자 솔이 못 참겠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 사람들이 저희가 노밀 자작 가문에서 왔다고 하는데 자꾸 증명할 것을 보여달라고 하잖아요!”

“증거?”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달랑 마부 한 명이 이끄는 짐 마차와 그 짐 마차에 드러누워 자고 있는 남자의 어디를 봐서 공작성을 드나들 수 있는 귀족으로 보겠나.

병사들은 할 일을 하고 있었기에 워랜은 근처에 내팽개쳐 둔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솔에게 던져주었다.

“자, 솔.”

“으악?! 가문의 인장을 막 던지지 마세요!”

워랜이 아무렇지도 않게 솔에게 가문의 인장을 던져주자, 그것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솔이 허둥거리며 그것을 받아 내었다.

아니, 애초에 이런 가문의 인장을 막 가지고 나오는 것도 매우 이상한 일이었지만, 공작성을 드나들기 위해선 증명할 것이 필요하다는 것 정도는 워랜도 알기에 가지고 온 것이기도 했다.

다른 것도 있지만, 그건 크고 무겁고 불편했기에 상대적으로 가볍고 가지고 다니기도 쉬운 가문의 인장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이었다.

뭐, 어차피 아버지 때문에 가지고 온 것이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니, 대체 이걸 왜 가지고 오시는 건데요.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시려고…….”

“나도 몰라. 아버지가 가지고 오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잃어버리면 솔 네가 잃어버렸다고 하면 되지.”

“너무하세요. 그럼 저 호위에서 잘리는 게 아니라 목이 잘린단 말이에요.”

“아하하, 그땐 내가 구해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아……. 진짜 최악이세요.”

너털웃음을 터뜨리는 워랜과는 달리 솔의 안색은 무척 나빴다.

농담이라고 생각이 될 수도 있지만, 그가 진짜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라는 것을 곁에서 오랜 시간을 함께했기에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어쨌든 솔이 워랜에게서 받아든 가문의 인장을 보여주자 병사들이 바짝 긴장한 채 사과를 하고 길을 비켜주었다.

그런 병사들을 지나쳐 공작성 안으로 짐 마차를 몰고 들어가며 솔이 워랜에게 물었다.

“그런데 겨우 이런 선물로 될까요?”

“뭐 어때. 그 영감님도 우리 가문에 놀러 오셨을 때 이 과일주가 맛있었다고 그랬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그 영감님도 쓸데없이 비싼 건 오히려 별로라 생각하시는 분이라, 오히려 이거 드리면 그 자리에서 마셔 버릴걸.”

가문 내에서 생산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지 내에서 과일주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상단이 있었고, 그곳을 통해 얻는 이 과일주는 노밀 자작령에선 꽤 유명했다.

예전에 벡브란 전대 공작이 맛이 좋다고 했던 것을 떠올린 워랜이, 가문 내에서 더 좋은 선물을 하자는 말들을 뿌리치고 이것을 가지고 나온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디 예쁜 아가씨는 없나……. 왜 죄다 아저씨들뿐이야.”

“제, 제발 공작성 안에서는 그런 말씀 마세요. 그러다 혼나시겠어요. 여기 가주님도 계신단 말이에요.”

“아버지한테 혼나는 거야 한두 해도 아닌데 뭐.”

“제가 혼난다고요, 제가!”

“그럼 더 괜찮잖아.”

“너무하세요…….”

솔의 우울한 그 모습을 무시한 채 워랜은 짐 마차의 짐들에 기대어 느긋하게 공작성을 둘러보았다.

몇 년 만에 온 곳이긴 하지만, 여전히 변함없이 크고 웅장함 모습에 감탄이 나올 정도다.

게다가 벡브란 전대 공작의 생일 파티가 막바지에 이른 탓에 여타 귀족들뿐만이 아니라 규모가 큰 상인들의 상단주들까지 모여들어 마지막 인맥 쌓기에 들어간 듯 북적거렸다.

“응?”

그런 그들 사이로 흐리멍덩한 눈을 부릅뜨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뭐지?”

“도련님, 왜 그러세요?”

“아니, 그게 말이지……. 뭐라고 할까, 뭔가 오싹한 게 소름이 돋는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거 있잖아.”

“너무 주무셔서 그런 거 아니에요? 켁?! 아, 아프잖아요!”

“잠 다 깼거든?”

워랜이 검집으로 솔의 머리를 콩콩 때리며 신경 쓰이는 그곳을 계속 주시했다.

솔만큼이나 살집이 푸짐한 늙은 상인도 보였지만, 인상만 찌푸리게 한다.

조금 강해 보이는 기사들도 보였지만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

귀족들과 하인, 하녀, 병사들과 일꾼들까지…….

그 수많은 인파 속을 살펴보던 워랜의 눈이 반짝였다.

“찾았다.”

“네?”

자신의 머리를 콩콩 때리던 그것이 멈추자, 솔이 아픈 머리를 감싼 채 워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워랜은 자신의 검을 고쳐 잡았다.

늘 하품만 하던 그러한 모습을 지운 채 뭐가 그리 좋은지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대체 뭘 보시고는…….”

갸웃하며 솔도 워랜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고는 많은 사람들만 있는 그런 장소일 뿐이었다.

“어이, 너!”

“도, 도련님?!”

워랜이 짐 마차에서 박차고 뛰어내리더니 단 한 걸음 만에 수 미터를 나아갔다.

사람들을 스치지도 않고 달려 나간 그 모습에 솔이 화들짝 놀랐지만, 말리기에는 이미 늦은 듯했다.

게다가 그런 워랜이, 비록 검집을 씌우고 있는 검이기는 하나, 그것을…….

“망했다…….”

어린아이에게 휘두르는 것을 목격하고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고야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