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23화
“홈멜스 상단을? 하지만 대체 왜? 우리 가문이 어디 모자란 것도 없고 나름 풍족하지 않으냐? 굳이 상단이라는 것을 운영하지 않아도 충분하단다.”
공작령 내에서 올라오는 세수도 충분하고 마를렌이나 기타 항구도시로부터 들어오는 서방과 동방의 물건들에 매겨진 세수도 많다.
전혀 모자라지 않은, 제국 내에서 황실 다음으로 부유한 것이 바로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공작령이기에 골치 아픈 상단 운영 같은 것을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홈멜스 상단은 이미 신용을 잃어버렸어요. 그들이 스스로 자립할 방법은 사라졌다고 봐야 해요. 그런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살리는 방법은 결국 이 일의 원인이 되었던 저희가 손을 내밀어주는 방법밖에 없을 거예요.”
일반적인 귀족가가 그들에게 손을 내밀 수도 있다.
단지 그들을 그렇게 만든 원인이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아니라면 말이다.
분명 홈멜스 상단이 버리기 아까운 상단이라는 것은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이유는 결국 마르티네스 공작가라는 막강한 가문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었다.
혹여 공작가의 눈 밖에 난다면 제 2의 홈멜스 상단이 될 것이 뻔하기에 스스로 몸을 사리는 것이지만, 그로 인해서 홈멜스 상단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 있었다.
“우리 공작가가 더 이상 문제를 삼지 않겠다고 하면 되지 않겠느냐?”
“……과연 사람들이 그걸 믿을까요? 아직도 많은 사람은 저나 엄마에 대해서 좋지 못한 시선을 가지고 있어요.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해요.”
“으음…….”
공작가가 나서서 홈멜스 상단을 용서한다고 하면, 몇몇 귀족들이 손을 내밀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예전의 그 홈멜스 상단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반쪽짜리만 되어도 다행일 정도로 이후의 홈멜스 상단은 예전의 위세는 사라진 채 그저 그런 상단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럼 홈멜스 상단을 인수한다고 우리에게 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는 것이냐, 주안아. 오히려 그런 홈멜스 상단을 망가뜨리고 손에 넣었다는 비난만 일어날 수 있단다.”
“예, 그럴 수 있죠. 인수라고 말은 하지만, 투자라고 보는 게 더 나을 거예요.”
“투자?”
“네. 저희는 홈멜스 상단을 건드리지 않을 거예요. 단지 그들을 우리 가문과 연결되어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그들에게 막대한 투자금을 밀어 넣어 저희가 원하는 물건에 대해서 최우선으로 수입과 수출을 바라는 게 다이니까요.”
주안이 찻잔을 들어 맑은 녹색의 차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마를렌을 포함한 동부에서 조금씩 유통되는 이 차는 아직 유행까진 아니지만 깔끔한 그 맛에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차를 바라보던 주안은 머지않은 미래에, 이 차로 인해서 심각한 외교 갈등까지 벌어졌던 그때를 생각하며 주안이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동방의 차를 대규모로 수입하는 역할을 홈멜스 상단에게 제시할 생각이에요.”
* * *
지금은 아직 마니아들로 인해서 간간이 수입되는 이 동방의 차는 몇 년이 지난 뒤에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서방 대륙 전역에 팔려 나가기 시작한다.
서방에서의 티타임은 귀족들에겐 매우 중요한 행위였으며 이것은 서방 대륙의 하나의 문화나 마찬가지였다.
이와 비슷하게 동방 대륙 역시 다과 문화를 통해 차를 마시는 문화가 있었으며, 이들 역시 일반 서민들이 간단하게 마시는 차는 일과였고 또 당연시되는 문화였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 차에 대한 서방 대륙의 수입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문제가 발생한다.
동방 무역상이나 서방 무역상들은 비싼 값에 팔 수 있으니 좋았고, 동방에 비해 금전적인 여유가 있는 서방 대륙은 거리낌 없이 그들의 차를 수입해 대기 시작했다.
뱃길로 꽤나 오래 걸린다는 것은 크게 중요치 않았다.
동방은 이미 넓은 동방 대륙 전역에 차를 상하지 않게 옮길 수 있게끔 개발된 보관과 건조 방법이 이미 통용되고 있었다.
그들의 건조 방법도 건조 방법이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점은, 새롭게 개발된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작은 구슬 모양으로 뭉쳐놓은 환단 형태의 차에 있었다.
이 환단 형태의 차는 따뜻한 물에 집어넣는 것만으로도 채 1분도 되지 않아 잘 우려낸 깊이 있는 맛의 차를 만들어내는 매우 획기적인 발명품이었고, 이 제조 방식은 동방의 차 기술의 정수와도 같았다.
이로 인해서 많은 이득을 내기 위한 동방의 무역상들은 직접 서방 대륙으로 차를 대규모로 수출했고, 서방 대륙의 무역 상단들은 동방의 대규모 차 밭의 소유주들 및 그와 연관된 차 기술자들과 직접 계약을 해서 차를 서방 대륙으로 가져오기도 했다.
동방 대륙에서 팔아도 크게 이익이 남지 않던 이 차는 서방 대륙에서 엄청난 값에 팔리는 바람에 동방의 차 밭을 소유한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서방 대륙에 차를 팔아치우기 시작하면서 그 가격이 점차 폭등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서방 대륙의 티타임만큼이나 동방 대륙의 차 문화는 매우 중요하였다.
서민들도 심심찮게 마시던 차인데, 갑작스러운 가격 폭등 때문에 서민들이 더 이상 손대기 힘든 지경에 이르자, 각 국가에서 서방 대륙의 수출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서방 대륙과 동방 대륙이 이 차를 놓고 기 싸움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서방 대륙에 팔리는 차의 물량을 조절하고, 서방 대륙의 무역상들에게 높은 관세를 부과하며, 그들이 개인적으로 차 농장과 거래할 수 없게 끊어놓거나, 차 기술자들을 회유하는 한편, 신공법으로 만든 차의 수출을 막는 등 일부러 방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일로 다수의 무역상과 그와 관련된 나라들에서 반발하는 것을 동방 대륙은 일절 상대하지 않고 무시했다.
결국 서방 대륙의 각 나라 역시 동방 대륙으로 수출되고, 수입되는 물건들에 어이없는 세금들을 물리면서 각 대륙의 물가가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귀족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이 다수라 서민들은 느끼지 못하였지만, 점차 사치품뿐만이 아닌, 서방이나 동방 대륙의 원자재들에도 높은 세금이 붙자, 그것을 재료로 한 서민들이 사용하는 물건들의 가격도 덩달아 상승했다.
이로 인해서 동방 대륙이든, 서방 대륙이든 갑작스럽게 오른 높은 물가로 인해서 꽤나 혼란스러워졌다.
두 대륙의 이런 신경전은 꽤 오래갔으며 경제가 상당히 흔들릴 즈음, 겨우 서로 타협하여 고관세, 고세율의 정책을 폐지하게 된다.
이 일은 동방에서 차의 재배를 늘리고, 서방에서는 차의 종자를 수입하고, 차 재배가 가능한 기술자들을 다수 영입해, 차 밭을 가꾸면서 겨우 진정되었다.
하지만 그 후폭풍으로 인해서 서방 대륙과 동방 대륙의 신경전은 수면 아래에서 계속되었고, 언제든 다시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일로 기록된다.
“이 차를 수입한다고?”
“네, 처음에는 차를 그리고 이후에는 그 종자를, 최종적으로 차 재배를 위한 이들과 차 기술자들을 영입하는 것으로 이 차를 저희 마르티네스 공작령의 주 수입과 수출원으로 썼으면 해요.”
“이 차라는 것은 확실히 괜찮은 것이긴 하나, 그것을 위해서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더욱이 그것을 단지 수입만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재배를 한다고?”
할아버지의 말에 주안이 고개를 끄덕인 후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언제가 되었건 이 차라는 것은 저희 서방 대륙의 티타임을 밀어내고 하나의 문화로 자리를 잡을 게 확실해요.”
“음?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느냐. 물론 이 차라는 게 매우 신기한 맛이긴 하나, 티타임은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의 고유문화란다.”
“네, 역사도 깊고, 그만큼 존중받고 지켜야 할 역사와 문화죠. 하지만 시대는 항상 변하고 있어요. 저희의 티타임 문화의 가장 큰 문제가 뭔지 아세요?”
“흐음……. 글쎄다.”
벡브란 전대 공작이 턱을 쓰다듬으며 갸웃했다.
서방 대륙의 티타임 문화가 최초로 시작된 곳은 먼 북방의 어느 섬나라라고 그는 알고 있었다.
깊이 알지는 못하였으며, 지금은 서방 대륙의 문화로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그도 몰랐다.
애초에 티타임을 별로 즐기는 편이 아닌 것도 컸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주안은 그런 할아버지에게 조용히 말했다.
“바로 시간을 너무 많이 잡아먹는다는 거예요.”
“시간을?”
“네, 준비할 것도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으며, 예절을 지켜야 하고 오랜 시간을 공들여야 하며, 서민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귀족들과 있는 이들만의 문화. 이게 가장 큰 문제죠. 하지만 이 차라는 것은 조금 달라요.”
주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동방에서도 저희와 비슷한 차 문화가 있어요. 하지만 이 차 문화는 저희 서방 대륙과 아주 큰 차이가 있어요.”
찻잔을 매만지며 주안이 말했다.
“누구든 마실 수 있고, 빠르게 소비할 수 있다는 것이죠. 물론 그들도 저희 귀족 계급에선 따로 형성된 차 문화가 있지만, 저희처럼 쓸데없는 허례허식은 필요하지 않아요. 누군가를 대접할 때 간단히 내올 수 있고, 편안히 이야기하며 마실 수도 있고 그저 물처럼, 일상에서 언제든 접할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죠.”
“흐음……. 하긴. 전쟁 중에도 티타임을 가지겠다며 쉬던, 웬 미친것들도 있었으니까.”
“하하……. 그만큼 저희 서방 대륙에선 그 티타임이 매우 중요하긴 하죠. 하지만…….”
주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시대는 변하고, 시간의 중요함을 귀족들도 느낄 거예요. 특히 시간이 곧 돈이라는 대상인들에겐 그런 허례허식 가득한 티타임보다 더욱 간단하게 즐길 수 있는 차 문화가 딱이니까요.”
아무리 소중한 문화라 해도 모두에게 필요한 문화가 아닌, 일부 있는 자들을 위한 문화는 다수 서민의 공감을 받지 못한다.
동방과는 달리 서방 대륙은 생각보다 서민들이 즐길 만한 것이 많이 부족했다.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이 차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으로 넘어온 동방 대륙의 차는 매우 비쌌지만, 동방 대륙에서 산다면 매우 싼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주안도 이 차를 매우 즐겨 마셨다.
물론 주안에게 시간은 곧 돈이라는 개념은 없었으며, 그저 유행하니 따라 한 것이었을 뿐, 그 이상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 차는 동방 대륙에서 넘어와 서방 대륙에 풀렸지만, 그 가격은 매우 비쌌고, 여전히 귀족들과 있는 이들에게만 전파된 그들만의 문화였다.
그렇기에 주안은 차 수입과 재배를,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힘을 통해 서방 대륙에 전파하고 싶은 것이다.
“할아버지도 이 차를 마셔서 아시겠지만, 이 차는 분명 머지않아서 돈 있고, 힘 있는 이들에게 유행처럼 퍼질 거예요.”
“그래……. 나 역시 이 차라는 것이 티타임보다 시간을 절약할 수 있어서 매우 좋더구나.”
“먼 뱃길을 통해 들어온 이 차는, 결국 비싼 가격에 팔려나갈 거고 티타임은 사라지겠죠. 하지만 또 이러한 문화에서 일반 서민들은 배제될 거예요. 일부의 귀족과 있는 이들을 위한 문화가 아닌, 다수가 함께할 수 있게끔…… 이 차를 수입해야만 해요.”
“하지만 주안아. 이 차를 수입한다면, 결국 네가 말하는 그 일반 서민들은 접할 수 없을 것이다. 재배하는 게 목적이라면 애초에 종자만 수입하면 되지 않느냐?”
차를 수입한다면 대규모 선단이 필요하고, 뱃길로 오랜 거리를 오가야 하며, 차를 구입하고, 선적하는 등 여러 일을 처리하는 것은 상상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대항해이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가격은 오를 것이고, 결국 그것을 처분한다면 일반 서민들은 꿈도 못 꿀 가격이 된다는 의미였다.
이런 할아버지의 당연한 말에 주안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저희는 당장 수익을 낼 수는 없어요. 아니, 오히려 손해만 봐야 할 거예요.”
“수익은 없고 손해만 나는 사업을 하잔 말이더냐??”
할아버지의 말에 주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 수입은 적자일 거고, 재배에 들어가면 또 돈은 엄청 들겠죠. 게다가 차를 재배할 기술자들도 다수 필요하고, 빈 땅도 필요하고, 거기에서 일할 다수의 인부에, 그들을 먹이고, 입히고, 그들이 지낼 수 있는 장소와 오랜 시간을 공들여 키워야 하는 차 밭까지……. 우와, 이게 다 얼마야.”
“아니, 그러면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닌데 대체 왜?”
“지금 당장은 그렇지요.”
주안이 싱긋 웃으며 마지막 차를 입에 털어 넣은 후 말했다.
“이것은 일종의 투자에요. 당장 눈앞의 이익을 보고 하는 게 아닌, 시간이 지난 뒤 얻게 될 영지의 막대한 이득을 위해서 하는 투자 사업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