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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2화 (22/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2화

주안은 펜 남작뿐만이 아니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낯설게만 느껴지는 이곳에 모인 모든 가신을 만나 한 명, 한 명 제대로 인사를 하고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 향했다.

벡브란 전대 공작도 바로 자신에게 오지 않은 것에 대한 섭섭함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간 듯했다.

그는 주안이 그런 그들과 만나는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언제나 찌푸린 탓에 험악해 보이던 얼굴에도 미소가 자리를 잡아 인상이 완벽하게 바뀐 듯했다.

“할아버지~!”

“그래, 그래. 인사는 제대로 하고 왔느냐?”

벡브란 전대 공작의 말에 주안이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내일은 더 많은 분이 오시겠죠?”

“그래. 이 할애비가 호통이라도 쳐서 모조리 다 오게 만들어주마.”

“에이, 그러지 마세요. 지금도 무리해서 오시는 거잖아요. 내년에는 제대로 준비해서 다들 만족할 수 있게 맞이해요. 이번처럼 급하게 하지 말고요, 네?”

“크, 크흠. 그, 급하게는 무슨……. 하여튼 가론 이 녀석은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해도 말을 안 들어. 빠져 가지고.”

“…….”

곁에 있던 가론 자작은 매우 억울했지만,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이런 할아버지와 가론 자작의 모습에 주안이 장난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키득거렸다.

“그보다 할아버지, 저 할아버지한테 부탁드릴 게 좀 있어요.”

“응? 부탁?”

“네.”

갑자기 부탁이라는 말에 벡브란 전대 공작이 갸웃했지만, 이내 얼굴을 잔뜩 굳히며 말했다.

“네 아비에게 공작위라도 빼앗아 주랴? 어차피 하는 일도 없는 녀석인데.”

“……농담이시죠? 그런 거 아니에요.”

“흠…….”

그거 농담 아닐 겁니다, 공자님…… 이라는 말이 가론 자작의 목 끝까지 올라왔다가 겨우 삼켜졌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농담과 함께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아 뚱해진 주안의 모습을 보며 아무 말을 하지 않기로 다짐을 하는 가론 자작이었다.

“그보다 부탁이라니. 네 엄마가 뭐든 다 들어주지 않았더냐?”

“엄마에게는 할 수 없는 부탁이라서요.”

“호오…….”

웬만한 부탁이라면 모두 주안이 엄마를 통해서 하였고, 그렇게 하면 모두 다 해결이 된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런 엄마에게 할 수 없는 부탁이라는 게 존재하는지 갸웃하게 만든다.

“할아버지랑 따로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어요. 안 될까요?”

“뭐, 그러도록 하자.”

“음, 그러면 전 빠지도록 하겠습니다.”

“응? 어디 가려고?”

벡브란 전대 공작의 말에 가론 자작이 슬그머니 물러나는 시늉을 하며 말하자, 벡브란 전대 공작이 갸웃하며 가론 자작에게 물었다.

그러자 가론 자작이 멋지게 기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할아버지와 손자의 비밀 대화에 끼어들 만큼 눈치가 없는 제가 아니죠. 뭐, 여기 있는 것도 귀찮고 밖에 나가서 토미 녀석이나 좀 보렵니다.”

벡브란 전대 공작을 오래 모셔서 그런지, 아니면 노밀 자작 가문의 자유분방한 성향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론 자작 그도 벡브란 전대 공작만큼이나 이런 연회를 즐기는 편이 아니었다.

그것을 이해한다는 듯 벡브란 전대 공작이 그러라며 고개를 끄덕였고, 주안과 벡브란 전대 공작은 함께 연회장을 나와 집무실로 향했다.

* * *

“그래, 할 말이 무엇이냐.”

집무실에 도착한 후 하녀가 전해준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벡브란 전대 공작이 주안에게 물었다.

그리고 주안 역시 동방의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치안청에 잡혀 있는 쥬도 일행을 풀어주셨으면 해요.”

“뭐?”

주안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벡브란 전대 공작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놓칠 뻔했다.

그리고 놀란 눈으로 주안을 보며 물었다.

“그 망할 녀석을 왜?”

주안은 잠시 심호흡을 한 후 생각하던 부분을 다시 정리한 뒤에 벡브란 전대 공작을 마주보며 말했다.

“쥬도 그 사람이라면 이미 벌을 제대로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홈멜스 상단이 상당히 어렵다고 소니아 누나에게 들었어요.”

“흠…….”

쥬도가 일으킨 사건은 단순히 그 하나만의 문제로 끝난 게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로닐이 상단주로 있는 홈멜스 상단에도 큰 타격으로 돌아왔다.

마를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상단이 그 마를렌의 주인이자 거대한 공작령의 지배자인 공작가의 후계자와 척을 져버렸으니, 그와 거래하던 다수의 거래처가 거래를 끊고, 등을 돌렸다.

그럴 리는 없지만, 행여 그들과 연관되어 공작가에 밉보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한 행동이었고, 그 자체만으로도 수십 년을 신뢰와 실력으로 성장한 홈멜스 상단이 단번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 로닐 그 친구, 상인치고는 신뢰를 줄 만했으니 말이야.”

사실 홈멜스 상단은 주안이 과거로 돌아오기 전, 이미 상단의 문을 닫아버렸었다.

망한 것은 아니며, 상단주 로닐이 스스로 상단을 닫고 해산해 버렸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알 수는 없지만, 그는 은퇴 후 그동안 모은 모든 재산을 가지고 고아원을 세워 운영하며 내란과 제국의 전쟁 그리고 그 후 일어난 제국의 붕괴에서 발생한 난민과 고아들을 거두어 선행을 펼쳤던 좋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기억은 있어도, 여전히 쥬도에 대한 기억을 없는 것을 보면 조금은 예상 가능한 부분이 있었다.

쥬도는 이미 그 시절, 사망한 뒤였다는 것이다.

소니아를 통해서 여러 가지로 알아본 주안은 로닐 상단주가 쥬도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마치 엄마인 안젤라와 자신과 비슷한 그런 형태의 일그러진 사랑이라고 볼 수 있었지만, 이런 자신과는 달리 적어도 쥬도는 가족과 자신의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지만 말이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가 받아야 할 벌을 그의 아버지가 대신 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 그렇긴 하지. 그래서 그 녀석을 선처해 주고 싶다는 것이냐.”

“선처까진 아니에요. 그를, 정신 차리게 만들고 싶어요.”

“응? 그건 무슨 소리냐.”

갸웃하는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 주안이 말했다.

“쥬도와 도리안을 제 개인 호위대로 만들고 싶어요. 그리고 쥬도 그 사람은, 정신 좀 차리게 피터 아저씨에게 교육을 받게 하고요.”

“뭐?”

주안의 말에 벡브란 전대 공작이 놀란 눈으로 주안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인가, 이해되지 않는 벡브란 전대 공작이었지만, 그와 반대로 주안은 사뭇 진지한 눈으로 그런 할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쥬도 그 사람은 분명 무례하고 안하무인이에요. 하지만, 그는 적어도 자기 가족과 자기 사람들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어요. 사실, 너무 오냐오냐 키운 로닐 상단주의 잘못도 있지만, 그런 잘못을 바로잡아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게 된 것뿐이지, 정말 나쁜 사람이라고 보긴 어려워요.”

그리고 주안이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적어도 예전의 저보단 낫잖아요.”

“…….”

주안의 말에 벡브란 전대 공작은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 말 그대로, 1년 전의 주안이라면 쥬도라는 놈보다 더하면 더했지, 절대 모자라지 않을 그런 몹쓸 아이였고 실망만 주던 손자였다.

하지만…….

“과거보다 현재가 중요한 것이다. 넌 변했고, 훌륭하게 컸어. 그러면 되는 거니, 너무 과거에 연연하지 말거라.”

“예…….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 안 해요. 전 이제 앞만 보고, 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며 갈 거거든요.”

“그래, 그러면 되는 거다.”

주안의 미소에 벡브란 전대 공작도 인자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쥬도 그 사람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이런 큰일이 일어났다 해도, 그가 이것을 계기로 변하면 좋겠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더 큰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니까요.”

자신은 그 변화를 몰랐고, 변화하지 않았으며 그렇기에 그 끝은 후회와 절망만 남았었다.

가장 후회되었던 것은 엄마 말만 듣고,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던 것이었으며 쥬도 역시 비슷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안하무인이지만, 그래도 그는 이전의 자신과는 달리 구제 불능이 아닌, 적어도 누군가에게 연민을 느끼고 주변의 인물에게는 너무나 좋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는 분명 변할 수 있을 것이고, 변화를 도와줄 수만 있다면 보다 쉽게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치안청에서 빼내는 것이야 어렵지는 않구나. 하지만 꼭 너의 호위대로 만들 필요가 있겠느냐? 이 할아버지가 실력 좋고, 배경도 좋은 녀석들로만 모아줄 수 있는데 말이다.”

“그 사람들은 실력이 모자랄 수 있지만,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에요.”

“신뢰?”

“네, 실력자는 얼마든지 구할 수 있겠죠. 하지만 등을 맡기고 신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드물어요. 물론 우리 가문의 기사와 병사들은 신뢰할 수 있지만, 그 사람들이 할 일은 가문을 지키는 것이니, 제 개인 호위로 쓸 수는 없어요.”

“이 가문이 너의 가문이고, 네가 언젠가 이 가문 그 자체가 될 것이다. 그러니 부담가지지 말거라.”

“아니에요. 할아버지의 사람, 아빠의 사람, 엄마의 사람……. 하지만 제 사람은 제가 만들어야죠. 그게 언젠가 가문을 짊어질, 제 역할이잖아요.”

“녀석…….”

할아버지의 사람, 아빠의 사람, 엄마의 사람…….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뒤로하고 자신만의 사람을 모으겠다는 주안의 말은 벡브란에게 적잖은 감동으로 다가왔다.

주안의 말대로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도, 주레인 공작에게 충성하는 사람도, 안젤라에게 충성하는 사람도 그들의 명만 있다면 주안에게 충성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진정한 충성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충성을 바치던 이의 명령에 움직였을 뿐이겠지만, 진심으로 그 대상에게 충성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주안은 그 도움 없이, 자신에게 충성을 바칠 사람을 스스로 구하고 싶다는 말을 하며, 언젠가 짊어질 공작가를 자신의 사람으로 채울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는 너무나 대견하게 다가왔다.

“그래, 그러면 그 녀석들을 빼내고, 너의 사람으로 만들겠다면 계획은 있느냐? 그 녀석들이 단지 치안청에서 빼준다고 너에게 충성을 맹세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만?”

이미 쥬도에게 충성을 바치고, 그를 진심으로 따르는 이가 그저 치안청에서 빼주는 것만으로 주안을 달리 보거나 주안을 따를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벡브란이었고, 주안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주안은 할아버지에게 큰 부탁을 하나 하고자 했다.

“네. 제가 도와주고, 그것을 대가로 호위를 하라고 하면 할 수는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단지 계약 관계이지 충성은 아니죠. 그래서 한 가지 생각을 해봤어요. 할아버지 도움도 필요하고요.”

“흐음? 그게 무엇이더냐.”

주안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축인 후 할아버지에게 말했다.

“홈멜스 상단을 구해주면 쥬도, 그 사람도…… 그 호위책임자인 도리안 경도 저를 단지 구해준 대가로 같이하는 계약상의 호위가 아니라, 저를 조금은 믿을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해주겠죠.”

“홈멜스 상단을…… 구해준다고?”

“예, 그들은 모두 쥬도로 인해 모였고, 아직 많은 이가 쥬도의 호위를 통해 얻는 돈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고 있어요. 홈멜스 상단과 쥬도 자체가 그들 가족의 목숨줄이나 마찬가지죠.”

단순히 도리안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홈멜스 상단주인 로닐에게 거금을 통해 영입되었지만, 그는 아직도 많은 돈이 필요했고, 그것을 쥬도의 도움으로 아들의 목숨을 지속해서 연장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돈이 필요했고, 이번 일로 그 모든 것이 다 끊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그는 쥬도에게 충성을 보이는 믿음직한 모습을 보였고, 다른 이들도 모두 비슷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가족들 그 자체가 홈멜스 상단과 함께하는 이상, 상단이 망하면 그들의 목숨도 마찬가지로 끝나는 것이었다.

“호위 모두가 가족을 위해서 쥬도와 함께하는 사람들이에요. 그 가족들도 홈멜스 상단과 함께하는 공동체나 마찬가지고요. 만약, 홈멜스 상단이 이대로 무너진다면 호위대나 그 가족 모두가 큰 위험에 처할 거예요.”

“그러니 한마디로 홈멜스 상단을 구해주는 것으로 너에게 은혜를 입히고, 자연스럽게 그들이 충성을 바칠 인물로 보이겠다, 이것이냐?”

“네.”

주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벡브란 전대 공작이 턱을 매만지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주안의 생각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들은 홈멜스 상단과 생사를 함께 나누는 운명 공동체라는 입장에서, 무너져 가는 홈멜스 상단을 구해주면 주안의 말대로 주안에 대해 새롭게 생각을 하고, 충성을 바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단지 그것만 생각해서 홈멜스 상단을 구하려는 건 아니에요.”

“응? 그건 또 무슨 소리더냐.”

“홈멜스 상단을 단지 구해주는 것이 아니라 공작가 휘하의 상단으로 만드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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