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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21화 (21/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21화

벡브란 전대 공작의 생일 파티가 길어짐에 따라 영지에 내려가 있던 가신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속속 마를렌으로 들어와 공작성에 입성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많은 가신과 가문을 대표하는 가주들이 한곳에 모이는 것은 매우 드물었다.

이 특별하고도 드물 일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벡브란 전대 공작은 왠지 뚱한 표정으로 이러한 가신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인사를 받아주고, 덕담도 해주었지만 이런 축하 인사를 주고받는 덕담에 영주들이나 가신들이 자신들이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게 아닌가 곰곰이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벡브란 전대 공작의 기분은 영 별로인 듯했다.

그래서인지 인사만 하고 벡브란 곁을 황급히 떠나는 영주들과 가신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들이 주레인 공작을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서 벡브란만 따돌린 채 즐겁게 이야기를 주고받는다는 것 정도였지만, 이 역시 벡브란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와인 잔에 와인이 채워지기 무섭게 벌컥벌컥 들이켰다.

“영 기분이 별로이신 듯합니다?”

그런 그에게 그나마 다가갈 수 있는 가론 자작이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 넌지시 말을 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벡브란은 재차 하인이 가져다준 와인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런 그를 보다 잠시 갸웃하던 가론 자작은 누가 이 불같은 전대 공작님의 심기를 건드렸나, 하는 생각이 연회장 내부를 둘러보았지만 새파랗게 질려 있는 가신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갸웃하던 가론 자작이 이내 연회장에 안 보이는 누군가를 떠올리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공자님이 안 보이시네요.”

“끄응……. 또 어딜 돌아다니는 것인지……. 아까 치안청에 갔다가 돌아왔다더니,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군. 또 제 어미 쫓아다니고 있지나 않은지…….”

“예전에는 얼굴도 보기 싫어하시더니, 이젠 아닌가 봅니다.”

“쯧!”

점잖게 기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고 있는 가론 자작의 모습에 벡브란 전대 공작이 짧게 혀를 차며 와인을 한 번에 들이켰다.

공작가의 가장 큰 어른답지 않은 그런 털털함은 여타 귀족들에겐 조금 꺼려지는 어르신이지만, 가론 자작이나 일부 군에 몸을 담았던 가신들은 허물없는 그의 모습을 매우 존경했다.

게다가 파티는 이제 막 시작되었고, 그전에 주안은 파티 때마다 꼬박꼬박 얼굴을 비추고 있었다.

일정도 넉넉하게 되어서 오늘 하루쯤 조금 늦는다 해서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지만,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는 그게 아닌 듯했다.

“그보다 자네는 무슨 바람이 불어서 주안이의 하인 꼬마에게 가문의 마상술을 가르치는 건가?”

“아, 그 녀석 말입니까?”

벡브란이 토미를 언급하자, 가론 자작의 표정이 매우 밝아졌다.

“하하……. 그냥 말 타는 법만 가르치려 했는데, 애가 완전 물건입니다. 공자님 하인만 아니었으면 저희 가문으로 데리고 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재능이 있는 아이란 말이지?”

“재능이라는 말조차 아까울 지경이더군요. 애가 하나를 가르치니 둘을 깨닫고 스스로 셋을 생각해 내잖습니까.”

“호오……. 고 녀석, 참 탐나는 녀석일세.”

다른 것은 몰라도 말을 타는 것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진지해질 수 있는 가문이었고, 그 가문의 가주인 가론 자작은 이와 관련된 일에선 절대 빈말을 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칭찬할 때도 질타를 할 때도, 그는 상대가 누구건 할 말은 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토미라는 하인 꼬마에게 푹 빠져 이토록 칭찬하는 것을 보니, 벡브란 전대 공작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벡브란 전대 공작의 마음을 안다는 듯한 가론 자작이긴 했지만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 녀석 노리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피터가 온종일 노려보는 것 때문에 아직도 뒤통수가 따끔거립니다.”

“피터가 그 꼬마의 스승이라지?”

“스승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안 공자님이 피터에게 지도를 부탁했다고 하더군요.”

“그 녀석도 참……. 변한 것만이 아니라 사람 보는 눈도 생긴 것인가. 아니지, 그 아이를 데리고 온 것도 배려라고 하였으니, 허허……. 이거 참…….”

무엇을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을 달라진 손자 생각에 벡브란 전대 공작이 더없이 밝아졌다.

하지만 반대로 가론 자작은 표정이 조금 어두워지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조금 문제가 있는 아이이긴 합니다.”

“문제라니?”

“몸이 생각보다 많이 허약합니다. 피터에게 개인 훈련을 받는다고 들었지만 아무리 봐도 이곳 서방 검술과는 어울리지 않는 몸이더군요.”

“아직 성장기라 그런 건 아니고?”

“성장기라 더 걱정입니다. 몇 달은 훈련을 받았다 들었는데, 생각보다 체중이나 몸의 근육이 많이 늘지 않았더군요.”

“흐음……. 그건 좀 문제가 있긴 하군.”

벡브란 전대 공작 역시 기사 훈련을 받고, 랭크 6의 끝자락까지 올라갔던 인물이었고, 가론 자작 역시 비슷했다.

적어도 검을 다루는 이들을 보고 판단하는 능력은 전혀 모자라지 않았다.

가론 자작은 토미가 성장기임이며, 제대로 된 훈련을 받고 있는데도, 생각보다 몸이 만들어지지 않은 것을 크게 걱정하는 듯했다.

서방의 검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만든 몸이 곧 기사이자 검사의 재산이 된다.

다부진 근육과 쉽게 지치지 않는 몸은 성년이 된 후 제대로 된 기사와 검사의 훈련을 받기 시작하면 폭발적으로 실력이 상승한다.

밑바탕이 충분하니 실력은 금세 쑥쑥 자라기에 어릴 때 성장이 더디더라도, 충분한 몸만 만들게 된다면 이후 다른 또래들만큼 충분히 실력을 쌓을 수 있다.

물론 개중에서도 특출난 재능을 가진 이들은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겠지만, 일정한 수준까지는 비슷하게 오를 수 있는 것이 바로 서방 스타일의 검인 것이다.

“아들 내외 녀석이 뭐, 먹는 것 가지고 크게 차별할 것으로 보이지 않네만.”

“주안 도련님이 몰래 산삼도 먹였다고 하더군요.”

“……심하게 잘 먹였군. 그런데 몸이 그렇다고?”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주안도 토미의 체격이 생각보다 커지지 않는 것에 걱정한 듯 엄마가 준비해 준 산삼을 몰래 토미에게 먹였고, 그것이 산삼이었다는 것을 알고 체할 뻔한 토미의 등까지 두드려주며 소화시키게 도와준 것까지 가론 자작이 다 알아버린 듯했다.

하지만 동방의 영약 중 영약이라는 산삼을 먹고도 몸이 그런 것이라면 천형이라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더욱 걱정스러운 것이 바로 가론 자작이었다.

“피터도 슬슬 눈치채고 있을 겁니다. 그 꼬마에게 서방 스타일의 훈련과 검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죠.”

“하지만 그 녀석도 한 고집 하지 않나? 문제가 있다면 무언가 변화를 줘서라도 가르치려 들 게 뻔해.”

“그래서 더 걱정입니다. 안 되는 것에 붙잡고 고치려고 하는 그 시간이 너무 아까워요.”

“자네도 푹 빠진 것 같군.”

“……정말 주안 도련님에게 부탁해서라도 데리고 가고 싶은 녀석이라서요. 우리 아들 녀석이 좀 보고 배웠으면 싶습니다. 재능만 믿고 노력도 안 하는 그 녀석이 자극을 받아 변할지, 누가 알겠습니까.”

“미안하네만, 전혀 변할 것 같지는 않네만?”

“너무하시네요. 빈말로라도 변한다고 말해주시면 어디 덧난답니까.”

하지만 가론 자작의 아들에 대해선 너무 잘 알기에 빈말로라도 그런 말을 해줄 수 없는 게 벡브란 전대 공작의 입장이었다.

토미라는 아이는 오가며 몇 번 만났을 뿐, 그 재능에 대해선 직접 보지 못 하여 알 수 없지만, 가론 자작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면 꽤나 대단한 재능을 가진 아이라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보았던 최고의 재능을 가진 이가 둘 있었으니, 지금은 은퇴한 황실 근위대 단장이었던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과 가론 자작의 아들인 워랜 노밀.

이 두 사람이었다.

* * *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벡브란 전대 공작보다 꽤 어리다고 하지만 50대의 중년으로, 검에 대한 열정은 여느 젊은 기사들과 다르지 않고 항상 활활 타오르던 인물이었다.

5년 전 뚫리지 않는 랭크 8의 그 벽을 뚫기 위해 스스로 황실 근위대 단장직을 내려놓고 가문과 작위도 아들에게 던져준 후 홀로 동방으로 떠나버린 인물이었다.

랭크 7의 끝에 머문 시간이 20년 가까이 된 그의 절박함은 주변의 인물들이나 제국 내에서나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황제도 그런 그를 배려해서 업무를 당시 부단장이던 바스티아노 백작에게 일임하는 것을 오히려 권해주었고, 그에게만 따로 개인 연무장과 함께 황실 보고의 영약, 필요한 것들도 적극적으로 지원해 줬었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조치였다.

그는 제국 역사상 가장 어린 나이에 랭크 7에 도달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겨우 20대에 랭크 7의 벽을 허물고 발을 디딘 인물이었으며, 30대에 그 끝에 도달한 기사 중의 기사, 검사 중의 검사였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랭크 7의 끝에서 8의 벽에 막힌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 점이다.

제국에서도 그의 랭크 8로 가는 길을 알아보았지만, 막연하게나마 남은 자료들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스스로 물러나면서 혼자의 힘으로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동방이라는 미지의 땅으로 떠난 것이다.

적어도 동방의 무인들은, 서방에서 말하는 랭크 8의 단계.

초월경의 무인들이 한 세대에 한 명씩은 등장하는 신비로운 땅이었기에, 그곳에서 그들에게 무릎을 꿇는 한이 있더라도 배움을 청하겠다며 떠난 것이었다.

“……그 친구는 살아나 있나 모르겠군.”

나이는 비록 벡브란 전대 공작보다 어리긴 하나, 그 열정이나 배움에 대한 방식은 존경할 만한 인물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마지막으로 그를 본 것도 바로 벡브란 전대 공작이었다.

그가 동방으로 떠나기 전, 마를렌에 들렸을 때 벡브란에게 인사를 하러 왔었고, 그런 그가 떠나는 것에 안타까워하는 한편, 편안히 갈 수 있도록 직접 배편과 동방에 대한 여러 자료를 알아봐 준 것이 바로 그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그의 식지 않는 검에 대한 열정과는 반대로, 검에 흥미가 없음에도 어쨌든 배워야 하니 배웠고, 배우다 보니 랭크가 오른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인물이 바로 가론 노밀 자작의 아들인 워랜 노밀이었다.

현재 스물넷인 워랜 노밀은 랭크 6의 기사로 열정은커녕, 의욕도 없고 그저 놀고먹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인 듯 동방의 말로 한량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귀족으로서 배워야 할 교양 중 하나인 검을 다루는 방법, 말 그대로 기본적으로 배웠을 뿐이지만 그 놀라운 재능을 통해 순식간에 동부에서 가장 유명하고 강한 기사로 성장했다.

그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열정도 없었다.

그리고 그의 검은 딱딱하고 우직한 서방의 검이라기보단, 가문의 성향답게 자유롭고 여유 있는 동방의 검에 가까웠다.

게다가 랭크를 높인 이유도 노밀 자작가의 체면을 위해서였을 뿐, 그 이상으로 간다는 생각도 전혀 없었기에 그는 매우 젊은 나이로 랭크 6에 올랐지만 거기서 답보 상태로 있을 뿐이었다.

황제도 안타까워했고, 벡브란 전대 공작 역시 그런 워랜 노밀을 불러 호통을 쳤지만, 소용이 없었기에 지금은 그러려니 하며 내버려 둔 상태였다.

“자네가 그 정도로 빠졌다면, 자네 아들만큼의 재능도 가졌고, 마리우스 그 친구만큼의 열정도 있는 아이라는 의미인데…….”

재능과 열정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노력을 하는 이라면 나이가 많건 적건 존중할 만한 존재라는 생각을 가진 벡브란이기에, 토미라는 아이를 언제 한번 제대로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무엇보다 그 아이가 주안을 진심으로 따르고 있는지도 알아보고, 정말 그렇다면…… 벡브란은 그 아이에게 멋진 선물이라도 하나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아이는 내 나중에 보고, 정말 자네가 반할 만큼의 그런 아이라면 피터에게 이야기해서라도 그 아이에게 새로운 길을 걷는 방법을 알려주어야겠네.”

“……제가 뭐라 했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 녀석, 노려보는 게 장난 아닙니다. 꿈에 나올까 무서울 정도라고요.”

“그건 아스란 왕국 전쟁 때 자넬 만난 놈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할 것이니, 업보라 생각하게.”

“으…….”

장난스레 미소를 짓는 벡브란의 그 말에 할 말이 없어진 가론 자작이었다.

* * *

“주안아~!”

“응? 푸업?!”

지나치게 밝은 그 익숙한 목소리에, 공작성 복도를 통해 연회장으로 향하던 주안이 고개를 돌렸을 땐, 커다란 두 개의 둥근 무언가가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게 뭔가 하고 생각하고, 피하기 이전에 주안을 덮쳐 버린다.

“아앙~! 우리 주안이! 엄마 보고 싶지도 않았어? 엄만 오늘 온종일 주안이를 못 봐서 힘들었는데!”

“읍! 우읍! 우으으읍!”

매일 보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주안을 발견하자마자 공작부인의 체면이고 뭐고 없다는 듯 굽이 높은 힐을 신고, 하인을 떨쳐 버릴 정도로 달려와 냅다 주안을 안아버리는 안젤라.

하지만 주안이 꽈악 껴안긴 채 그 커다란 가슴에 끼여 데롱데롱 매달려 있다는 것은 전혀 인지하지 못 하는 듯했다.

“아, 안젤라 님. 공자님이 너무 불편해 보이세요.”

‘너무 불편한 게 아니라 죽을 거 같아요…….’

그나마 하녀가 이런 안젤라를 말려주고 있지만, 주안의 현재 상황과는 조금 많이 벗어나 있는 말을 꺼낼 뿐이었다.

그래도 하녀의 그 말에 정신을 차린 듯 안젤라가 황급히 주안을 껴안은 것을 풀고 가슴 사이에 끼여 버린 주안을 떼어내 바닥에 내려주자 겨우 숨을 돌리는 주안이었다.

“괘, 괜찮니, 주안아?”

“괜찮아요. 그런데 엄마, 연회장에 안 있고 여긴 왜……?”

“그야 우리 주안이 데리러 가고 있었지. 엄마 혼자 심심했단 말이야.”

“……할아버지한테 또 혼나겠어요.”

“흥~ 이다, 뭐.”

나잇값 못하는 그 말투에 주안이 쓴웃음을 지었지만, 엄마가 엄마답다는 것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주안이 손을 내밀자 엄마가 활짝 웃으며 그런 주안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같이 가요. 아빠도 거기 있을 텐데, 엄마가 빠지면 안 되잖아요.”

“핏, 가봐야 장식된 꽃처럼 있어야 할 텐데. 게다가 마음에도 없는 말이나 하면서, 웃기만 해야 하고……. 엄만 그런 거 완전 싫은데.”

“그럼 할아버지랑 같이 있는 건요? 저 할아버지한테 할 이야기 있는데.”

“……차라리 방에 가면 안 돼?”

“안 돼요.”

“……너무해.”

둘 다 싫지만, 그래도 좀 더 싫은 쪽은 할아버지라는 듯 엄마인 안젤라가 울상을 짓자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내일은 아침부터 엄마랑 같이 있어 줄게요. 괜찮죠?”

“응!”

주안은 금세 해맑게 웃으며 좋아하는 엄마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전에 대체 엄마에게 어떻게 휘둘리고 살았던 것인지 지금의 엄마를 보면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엄마를 다루는 게 훨씬 쉬운데 말이다.

* * *

주안이 엄마와 함께 손을 잡고 연회장을 들어오자, 모두의 시선이 이들 모자에게 모였다.

제각각 다른 사람들이지만, 생각은 모두 비슷했다.

소문을 듣긴 했지만, 믿지 않았고 믿지 않아서인지 주안과 엄마인 안젤라의 모습에서 그러면 그렇지, 라는 공통된 생각을 하며 작게 혀를 차거나 고개를 가로젓는 가신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들과는 달리 공작성에 상주하던 가신들이나 하인, 하녀 그리고 기사 계급의 몇몇 인물들이 주안에게 보내는 시선은 다른 이들과는 전혀 달랐다.

두 사람, 아니, 주안을 보는 그들의 시선은 다른 이들과는 달리 따뜻했고, 흐뭇해하고 있었다.

주안이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 뒤, 아빠인 주레인 공작에게 엄마와 함께 향했다.

그러면서도 주변의 여러 가신과 영주들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그 행동에 못마땅해하던 그들이 짐짓 놀란 눈으로 주안을 보며 당황했다.

그런 그들을 뒤로한 채 엄마와 함께 아빠인 주레인 공작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자, 두 모자의 모습을 보면서 주레인 공작이 예전과는 달리 미소를 지어주며 반겼다.

“왔소, 부인? 그리고 주안이 너도 왔느냐.”

“조금 늦었어요. 죄송해요.”

주안이 고개를 숙이자, 주레인 공작이 괜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곁에 자리를 잡고 있던 노년의 남성은 이런 주안과 주레인 공작의 다정한 모습에 짐짓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그의 모습에 주레인 공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주안아, 인사하거라. 펜 남작님이시다, 기억하느냐?”

“아…….”

아빠의 그 말에 주안의 눈이 후덕한 인상의 중년에게 시선이 갔다.

조쉬 펜 남작.

소니아 펜의 아버지인 그는 마를렌 남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펜세니아를 근거지로 한 영지의 영주였다.

이제 곧 나이 60에 접어들어 그런지 머리카락 사이로 희끗희끗한 흰 머리카락이 다수 보였지만, 아직 정정하였으며 처음 보는 사람들도 쉽게 호감을 느낄 인자한 인상을 가진 사람이었다.

영지는 작다 해도 제국 최대의 염전을 소유한 그의 영지는 상당히 부유했고, 염전에 종사하고 그와 관련된 일을 하는 영주민들의 삶도 매우 좋은 편이라 그런지 그런 영주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영주 중 한 명이었다.

그런 조쉬 펜 남작을 보는 주안은 마치 감회가 새롭다는 듯 그에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과거, 많은 영지의 영주들과 가신들이 등을 돌렸어도 펜 남작가와 노밀 자작가 그리고 북부의 소벡 백작가는 끝까지 공작가를 지지해 준 가문이었다.

공작가가 망할 때는, 나이로 인해 이미 이 세상 사람은 아니었지만.

가문을 이어받은 그의 큰딸과 데릴사위도 끝까지 공작가를 지지해 줬지만, 결과는 가문의 멸문과 함께 공작가와 역사에서 사라졌다.

그래서 주안에게 조쉬 펜 남작에 대한 기억은 많지 않았다.

어렸을 때나 몇 번 보았을 뿐이고, 커서는 엄마 치마폭에 싸여 놀러 다니느라 가신들과 만남 자체도 거의 없었다.

아니, 여기 있는 귀족들과 가신, 영주들 모두 중에 제대로 기억하는 것은 가론 자작 외에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너무나 낯선 조쉬 펜 남작이지만…… 주안은 그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간직한 채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동안 강녕하셨습니까, 펜 남작님.”

“허……?!”

사실 주안 정도의 집안과 후계자라는 입장 그리고 서로 주인 가문과 그런 그들을 모시는 가신이라는 그 관계만 보아도 주안은 이렇게 고개를 숙일 필요도, 말을 높일 필요도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주안의 행동에 조쉬 펜 남작뿐만이 아니라 여전히 못마땅하게 바라보던 다른 영주들과 가신들도 매우 놀란 듯 보였다.

주안의 이런 행동에 안젤라는 불만을 드러냈지만, 그럼에도 말릴 수 없는 것은 주레인 공작과 몇몇 가신과 기사, 거기다 주안의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마저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주안의 인사에 잠시 당황하던 조쉬 펜 남작이 이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많이 변하셨군요, 공자님.”

“좋은 분들 덕분이죠. 소니아 누나도 거기에 포함이 되고요.”

“허허……. 우리 막내딸이 방해나 하지 않았나, 걱정되었는데 그건 아니었나 보군요.”

주안이 고개를 들고 생긋 미소를 지어주자 조쉬 펜 남작도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공작부인께서도 여전히 아름다우시고, 공자님도 정말 잘 성장해 주셨으니…… 이거 참으로 공작가의 미래가 밝아 보입니다.”

“그 밝은 미래도 모두 펜 남작님이나 가론 자작님, 그리고 다른 영주님들과 공작가를 위해 희생해 주시는 모든 분 덕분이죠. 앞으로도 잘 부탁드릴게요.”

“허, 허허…….”

펜 남작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에게 하는 말인 듯 어느새 조용해진 연회장 내에 주안의 목소리가 잔잔하게 울렸다.

주안이나 공작부인 안젤라에 대해 분명 좋지 않은 시선과 생각을 가진 이들도, 저 마마보이 공작가의 후계자가 무언가 달라졌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 한 번의 모습을 보고 판단하기에는 이르긴 하겠지만, 적어도 그동안 주안에 대해서 생각하던 그 부분이 많이 달라졌고, 무언가 변했다는 사실만은 모두가 깨달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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