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7화
치안청의 병사들에게 끌려온 쥬도와 그 호위들과 함께 전해진 주안에 대한 소식에 공작성은 난리가 났다.
진짜 주안이 그렇게 한 것인지, 여전히 의심하는 자들도 많았지만, 점점 많은 이들을 통해 전해진 말에 사실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가 변했다.
그것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에는 희소식이었고, 가신들에게는 기쁨이었다.
* * *
공작성의 집무실의 분위기는 매우 무거웠다.
갑작스러운 일로 연회는 중단되었으며 주안에 의해 끌려온 녀석들은 잠시 공작성으로 왔다가 벡브란의 호통에 그대로 치안청 유치장으로 가버렸다.
그리고 집무실 소파의 상석에 앉은 벡브란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중년의 남성에게 조용히 말했다.
“아들 농사는 썩 잘 지은 것 같지는 않군, 로닐.”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집안 자체에 죄를 물을 것은 아니니,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말게.”
“…….”
연좌제는 제국 내에서 금지된 법안이었기에 역모가 아닌 이상 아들의 죄를 부모와 가족에게 물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주안도 그럴 생각이 없었고, 벡브란도 그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홈멜스 상단주 로닐의 생각은 달랐다.
자신과 집안은 끝났다.
죄를 묻지 않아도, 상인으로서는 끝난 것이다.
마르티네스 공작령의 근거지, 마를렌에 상단을 두고, 먹고 사는 상인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의 눈 밖에 났다.
그것도 모자라 현 황제 폐하의 따님이자, 현 마르티네스 공작의 부인을 능멸했고, 마를렌 시내에서 한 행동으로도 상인으로서의 신뢰는 박살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가보게.”
“…….”
벡브란 전대 공작의 말에 홈멜스 상단주 로닐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그의 얼굴은 10년은 더 늙어버렸다.
초췌한 모습으로 인사를 한 후 비척거리며 나가는 로닐, 그의 등을 바라보며 벡브란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 농사를 잘못 지은 대가를, 내가 아니라 자네가 먼저 받게 될 줄이야.”
벡브란은 홈멜스 상단주 로닐을 싫어하진 않았다.
상단을 운영하면서도 그는 청렴했고, 귀족들에게 늘 있는 상납도 하지 않았으며, 순수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동방 대륙과의 교역로를 개척했던 유능한 인물이었다.
흠이라면, 결국 자식 농사를 잘못 지었다는 것뿐이었다.
거기에 대해서 벡브란은 그와 비슷한 상황이라 안쓰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죄를 묻지 않는다 했지만, 그의 상단은 끝이 났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능한 남자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일군 것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달갑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우리 손자 녀석이 정말 제대로 정신 차려주었구나.”
로닐 상단주에게는 미안했지만, 자신의 손자는 정신을 차렸다는 것이 기쁘게 다가왔다.
그도 항구에서 일어난 일을 들었고, 주안이 어떻게 대처했고 어떻게 행동한 것인지 모두 들었다.
그렇기에 로닐 상단주에 대해선 안타까워했지만, 주안을 생각하면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녀석.”
벡브란은 테이블 한쪽에 놓인 작은 도자기 인형을 집어 들고 매만지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에는 주안이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후계자로 잘 클 때까지 돌보며 절대 죽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주안이 잘 자라서 손자며느리를 보고 증손자, 증손녀를 낳는 모습을 보며 눈을 감고 싶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 * *
깊은 밤이었지만 공작성의 테라스에서 내려다보는 마를렌의 풍경은 여전히 불야성이나 다름없었다.
도시는 화려했고, 바다는 신비롭게 반짝이며 빛이 난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공작부인, 안젤라의 마음은 조금 심란했다.
“안자고 여기서 뭐 하는 거요?”
“……왜 멋대로 들어오시는 거예요.”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돌아보자, 그곳에는 주레인 공작이 서 있었다.
그리고 방의 입구 근처에는 두 명의 하인과 하녀가 보였지만, 그건 상관없었다.
안젤라의 찌푸린 그 모습에 주레인 공작이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몇 번이나 불렀소만…….”
“흥.”
개인 하녀에게는 방해하지 말라고 일러서 그런지, 그 명에 그대로 따랐기에 나무랄 수가 없었다.
“주안이랑 함께 잘 수 없는 게 그렇게 불편하오?”
황도에 있는 저택이었다면 모를까, 벡브란 전대 공작이 버티고 있는 이 공작성 내에서 안젤라와 주안이 함께 자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무리 안젤라라 해도, 시아버님인 벡브란은 대하기 매우 어려운 존재였다.
그렇기에 웬만한 일이 아니고선 이곳을 방문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니까.
주레인 공작이 안젤라가 있는 테라스로 걸어와 조용히 의자에 앉았다.
그런 주레인 공작을 흘겨보던 안젤라도 조심스레 주레인 공작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러자 뒤따르던 하녀와 하인이 차를 데운 후 두 사람의 앞에 놓인 찻잔에 따라주었다.
“국화차라오. 최근 마를렌에서 유행한다는 동방의 차인데, 맛이 깔끔해서 아주 좋더이다.”
동방과 서방의 문물이 교차하는 마를렌은 서방 대륙 유행의 중심지이기도 했다.
매일 낯설지만 신비로운 동방의 물건들이 들어오다 보니, 유행은 빠르게 찾아오고 빠르게 사라지기도 하는, 변화가 매우 심한 곳이었다.
마를렌에서 이미 유행이 지났지만, 황도에서는 대유행을 할 때도 있을 정도라, 이 동방의 차와 다과 문화를 접한 주레인 공작은 머지않아 황도에서 이것이 유행할 것이라 직감했다.
서방의 티타임과는 달리 화려하지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든 간단하게 차를 마시고 조용히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이 차와 다과 문화는 평소 검소하다 알려진 벡브란 전대 공작이나 주레인 공작의 마음을 한 번에 빼앗은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화려함을 온몸으로 뿜어내는 안젤라는 매우 검소한 차와 찻잔 그리고 간단한 다과에 그다지 흥미가 없어 보였다.
남편인 주레인 공작이 권하니, 일단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지만, 이내 흥미를 잃은 듯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 모습에 주레인 공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피터에게 바깥일을 대충 들었다오. 어디 다친 곳은 없소?”
“다쳤다면 그 상인 가족이 무사하기나 했겠어요?”
“후훗, 하긴…….”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퉁명스레 답하는 안젤라의 말에 주레인 공작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차를 홀짝였다.
사실 안젤라나 주안이 엮여 있지 않았다면 큰일은 아니었다.
소란을 일으킨 죄를 물을 수 있어도 홈멜스 상단이라면 크게 사과하고, 어느 정도 기부금을 내는 선에서 아들의 선처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만, 거기에 그들의 힘으로는 도저히 무마시킬 수 없는 두 사람이 있었다는 게 그들에게는 큰 불행으로 다가온 것이다.
“……주안이, 정말 많이 변한 것 같소. 직접 보지 못 했지만, 그 아이가 그렇게 당당하게 나서서 말을 했다는 게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오.”
“…….”
주레인 공작은 그 장소에 없었고, 그곳에 있던 피터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지만,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하지만 주안이 한 행동과 보여준 모습은 그곳에 있던 주민들과 오가는 상인들을 통해서 순식간에 마를렌 시에 소문이 났다.
그러한 이들을 통해서 소문을 접한 병사나 하인, 하녀들로 인해 공작성 내에도 이야기가 파다하게 퍼졌다.
마마보이의 철없는 공작가의 후계자.
그것이 그들이 듣고 보고 겪었던 주안의 이미지였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 완벽히 인식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전과는 달리 공작가의 마마보이이자 철없는 후계자가 조금은 변했고,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모두가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유일한 불안은, 그런 주안이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걱정 정도뿐이었고, 주레인 공작은 그런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안젤라, 당신이 보았던 주안은 어땠소? 여전히 당신이 품에만 품고 있어야 할, 그런 연약한 아이로 보였소?”
주레인 공작의 물음에 안젤라는 그저 마시지도 않는 찻잔을 매만지며 손바닥을 통해 전해져 오는 따뜻함을 느낄 뿐이었다.
“아버님도 매우 기뻐하셨다오. 아시지 않소? 아버님이…… 주안과 당신을 얼마나 싫어하셨던 것인지.”
사실 평소였다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겠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주레인 공작의 말대로 벡브란은 주안과 안젤라를 매우 싫어했고,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달가워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의 생일이랍시고 황도에서 마를렌으로 내려오는 아들 내외를 반기지 않았다.
그것을 알기에 안젤라나 주안도 이곳을 찾는 게 싫었다.
평소라면 안젤라의 행동과 말에 지고 들어갈 주레인 공작이라도 이것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찾을 수밖에 없는 것뿐이었다.
그렇기에 시아버님인 벡브란이 자신들을 싫어하는 만큼, 안젤라도 벡브란과 가신들, 더 나아가 마를렌 시를 포함한 공작령 내의 모든 이들을 다 싫어했다.
“자랑스럽지 않소? 나는, 아비로서 해선 안 될 일이었지만…… 그냥 포기하고 있었소. 당신에게도, 주안에게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으니 말이오.”
첫 아이의 유산 이후 주레인 공작은 그녀가 바라는 모든 것을 다 이루어주려고 했다.
원하는 것은 다 해줬고, 바라는 것은 모두 들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임신을 하고, 건강히 주안을 낳은 후 주레인 공작은 안젤라의 과잉보호적인 모습을 보일 때도 그러려니 하면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게 하루, 이틀, 한 달, 일 년…….
장장 십오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주레인 공작은 안젤라를 말리지 못하고, 주안을 가르치지 못한 잘못을 느꼈지만, 그것을 깨달은 것이 너무 늦었다.
되돌리기에는 안젤라의 주안에 대한 집착은 병적으로 심했고, 주안은 그저 엄마만을 보는 마마보이 아들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주안이는 변했소. 그리고, 당신도 조금은 변했다는 걸 아시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주레인 공작은, 주안만이 아니라 안젤라도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주안에 대한 집착은 여전했지만, 피터에게 들었던 그 상황에서 안젤라가 한 행동…….
그것을 알게 된 후 안젤라도 조금이지만 변했다는 것을 주레인 공작은 직감했다.
이런 주레인 공작의 말에 안젤라가 조용히 말했다.
“주안이가……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다른 사람이라……. 그런 게 아니라 성장이라는 것이오.”
“성장……?”
소니아도 그랬다.
주안이 혹시 사춘기가 아닐지, 라는 그러한 말을 했고 안젤라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씩 변해가는 사랑스러운 아들, 주안은 오늘 그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여전히 작고 가녀려 보이는 모습이지만, 당당하게 엄마의 앞에 서서 무수히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주안의 등을 보고 무척이나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사실 그게 무엇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결코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 아이도 깨달은 것이겠지. 언제까지고 엄마가 그리고 아빠인 내가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오. 누가 가르치지 않았지만, 훌륭하게 스스로 일어서서 걷는 법을 배운 것이라오.”
“하지만……!”
“우린 그저 지켜보고, 그 아이가 넘어지려 할 때 다가가 일으켜 세워주면 되는 거라오. 부모란 그 아이의 인생 그 자체를 돌봐주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의 인생을 뒤에서 지켜봐 주고 응원해 주는 것만으로도 족하다오.”
“왜…… 그 아이를 곁에서 지켜주면 안 된다는 거예요.”
“당연하지 않소? 그렇게 한다면 주안이 본인의 삶이 아니라 그저 당신의 삶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오. 만약, 우리가 잘못되고 주안이 혼자 세상에 남겨진다 생각해 보시오. 아무것도 못 하고 보호만 받던 그 아이가, 정말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고 보오?”
뭐라 말을 하려던 안젤라였지만, 주레인 공작의 말에 무슨 답을 해줘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평소처럼 화를 내고 자리를 떠나도 되었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답답하다는 듯 안젤라가 아직 따뜻한 온기가 남아 있는 차를 단번에 들이켜자, 귀족답지 못한 그런 행동임에도 주레인 공작이 빙그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 두 사람의 삶도 영원하진 않소. 정말 그 아이가 행복해지는 것을 바란다면 곁에 두고 보호만 해줄 것이 아니라, 그 아이가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부모로서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오.”
“부모로서의 의무……. 그럼 그동안 전, 그러지 못했다는 말이에요?”
“아니요, 조금 지나쳤다 뿐…… 당신도 당신만의 의무를 지키려고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안다오. 다만, 그 방향이 잘못되었을 뿐이지. 주안을 위한다면 조금은 놓아두고 그 아이가 혼자 스스로 걸을 수 있는 환경만 만들어줬어도 되었다오.”
“……그러는 당신도 잘못했으면서.”
“하하……. 그렇긴 하지. 우리 둘 다 사실 훌륭한 부모는 아니었다오. 당신은 과보호가 지나쳤고, 나는 너무 쉽게 포기하고 방관을 하였으니……. 참으로 못난 부모들이지 않소?”
“흥.”
털털하게 웃는 주레인 공작의 모습에 안젤라가 작게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려 버렸지만, 이상하게도 웃음이 자꾸 나오려 해서 참느라 애를 썼다.
주레인 공작의 말대로 좋은 부모가 아니라는 말에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었지만, 안젤라는 오히려 기분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아이가 잘 성장하는 모습을 이제 한 걸음 물러나서 지켜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주안이가 넘어지고 아파할 때, 그때 우리가 손을 내밀어도 늦지 않으니 말이오.”
“넘어지기 전에 붙잡아줄 거거든요?”
서른이 훌쩍 넘었음에도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그 발랄한 성격마저 그대로인 안젤라의 모습에 주레인 공작도 기분 좋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미소와 웃음, 즐거움이 대체 얼마 만인지 주레인 공작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일이 자주 있을 것 같았기에 주레인 공작의 기분은 마냥 즐겁고 행복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