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6화
쥬도는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의 호위들로 보이는 남자들이 한데 모여 있는 것을 보고는 갸웃했다.
그리고 발걸음을 옮겨 도리안과 함께 그곳으로 향했다.
그런 쥬도의 모습을 발견한 파론이 곤란해하며 말했다.
“도, 도련님.”
“뭐야. 무슨 일이야……? 벨, 저 자식은 왜 저래?”
자신의 직속 호위들이기도 하고 몇 년이나 함께 해서 그런지 서로 나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던 게 쥬도와 호위들이었다.
그렇기에 호위들의 얼굴이나 이름, 그리고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알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기도 했다.
그런데 쥬도가 호위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걸음을 옮겨 본 것은, 평소 나서기 좋아하던 벨이 바닥에 고꾸라져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벨이 기절한 상태에서도 여전히 붙잡고 있는 창대를, 움켜쥐고 있는 중년의 사내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런 중년의 사내 때문인지, 호위들이 하나같이 긴장한 채 검과 창을 그 남자에게 겨누고 있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쥬도도 그 중년인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지만, 그 뒤에 있는, 보호받는 것으로 보이는 두 남매의 모습에 지금 상황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가족인가?’
하지만 이내 그런 생각은 접었다.
중년의 남성이나, 젊은 여성이나, 꽤나 어린 꼬마 모두가 저 금발의 남매를 보호하는 듯한 행동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자신의 호위에 손찌검한 것을 넘어갈 생각은 없었다.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그건 저희가 할 말입니다만?”
“뭐?”
중년인에게 말을 했지만, 대답은 뒤에 있던 금발의 남자아이에게서 나왔다.
뭐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 곱지만은 않았다.
뱃멀미에 촉박한 시간과 지금의 이 상황에 짜증이 확 솟구친 쥬도가 잔뜩 찌푸리며 남자아이를 노려보았다.
* * *
주안은 꽤나 화가 나 있었다.
자신이 망하게 한 가문이고, 그 가문의 근거지인 항구도시 마를렌이긴 하나, 가족들과 소중한 영주민들 그리고 방문객들을 위해서 선조 어르신들과 할아버지가 최선을 다해 일군 소중한 장소였다.
그런 장소를, 제멋대로 휘젓고 다니며 주민들을 겁박하고, 기어이 자신과 엄마에게도 험한 손길을 뻗은 이 일행들의 행동에, 과거로 돌아와 처음으로 화가 났다.
무엇보다 이들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타났지만, 사과는커녕, 오히려 자신과 엄마 그리고 피터와 소니아, 토미를 매우 귀찮은 벌레라도 보는 듯한 시선으로 흘겨보았다.
주안은 그러한 태도를 참을 수가 없었다.
빈민 시절,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있는 자들의 시선이었기 때문이다.
“여긴 당신들을 위한 길이 아니에요. 제멋대로 사람들을 물러나게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사람이 좀 바쁘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그 정도도 이해해 줄 수 없어?
“이해는 사람들이 해줄 수 있을 때나 가능한 것이지 당신이 결정하는 게 아니에요.”
“그래? 그런데 어쩌나? 모두 이해해 주고 있는 것 같은데.”
쥬도가 빈정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자, 그의 말 때문인지 아니면 그가 누구인지 알아서 그런 것인지, 주민들이 흠칫거리며 눈길을 피했고, 알아서 자리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주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지긋지긋하게 겪었던, 있는 자들의 강압적인 행동에 피해를 보는, 주민들의 본능과도 같았다.
그것은 주안 역시 지겹게 겪었던 것이었기에 공감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안타까웠다.
이것은 분명 잘못된 일임에도 소리를 칠 수 없는 연약한 자들의 모습이었고, 과거의 자신의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제멋대로이시군요.”
“제멋대로가 아니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는 것뿐이지. 어디 시골에서 돈깨나 만진 것 같은데, 여긴 너 같은 졸부 도련님이 멋대로 행동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우리 꼬마 도련님은 그것부터 좀 배워야겠는데?”
쥬도가 본 주안의 옷차림은 꽤나 고급스러웠다.
하지만 단지 그뿐이다.
호위라고는 꽤 실력 있어 보이는 중년의 남성 하나에 잡일을 하는 어린 하인과 젊은 여성뿐.
귀족이라고 보기는 어렵고, 예상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신과 같은 상인의 집안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크게 신경을 쓸 필요도 없는 어디 시골에서 돈깨나 만졌을 그저 그런 졸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죽이지는 말도록.”
말이 조금 심해지자 피터가 잡고 있던 창대를 놓고, 기어이 검 손잡이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이에 안젤라도 차가운 눈으로 쥬도를 보며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엄마. 그리고 피터 아저씨. 제가 해결할게요.”
피터의 말에 안젤라가 차분히 명령했지만, 그런 두 사람을 말리듯 주안이 나섰다.
피터가 나서면 지금 여기 있는 이 남자의 호위들은 단번에 때려눕힐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지금 조용히 마법을 준비하고 있는 소니아 혼자서도 그게 가능했다.
하지만 주안은 그것을 바라는 게 아니었다.
제멋대로 행동하던, 그런 공작가의 후계자였고, 공작가의 가주였다. 다신 그렇게 되어선 안 되었다.
동방 대륙의 어느 검사가 이렇게 말했다.
머리는 항상 차갑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되, 가슴은 뜨겁게 열정적으로 불살라라.
주안은 냉정하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쥬도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 권리라는 것, 저도 행사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음대로 해. 파론, 빨리 길이나 치워. 그리고 이 자식 어디 치료소에라도 집어넣어 놓고 와.”
쥬도는 쓰러진 벨의 엉덩이를 발로 밀며 다그쳤고, 그러는 그들을 보며, 주안은 조용히 피터에게 물었다.
“피터 아저씨. 여기, 이 공작령에서 제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뭐가 있나요? 엄마의 권한이 아니라, 온전히 제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요.”
“…….”
피터는 공작가의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공작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주안의 그 권한이라는 것을 대충이나마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하는 피터 대신 안젤라가 나서서 말했다.
“네 아버지나 네 할아버지에게 해가 되는 일을 제외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단다. 아버님의 측근인 가론 자작을 내치는 것도 말이지.”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가론 자작의 충성심은 미래에서 지겹도록 겪었고, 앞으로도 그를 내치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엄마도 예를 들어 한 말이기는 하나, 그만큼 주안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 막강하다는 것을 알려주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생각을 정리한 주안이 조용히 쥬도에게 말했다.
“당신은 저와 저희 어머니에게 위해를 끼치려 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저희 가족을 능멸하였고, 공작령의 주민들을 겁박하였습니다. 인정하십니까?”
“……저 사람이 엄마였어?”
너무나 젊어서 남매 정도로 봤는데, 엄마라는 말에 쥬도는 어이가 없었다.
“어디 졸부의 첩이라도 되나…….”
“…….”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그대로 내뱉었지만, 그 말에 주안도, 안젤라도, 그리고 피터와 소니아, 토미까지 얼굴을 잔뜩 굳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쥬도가 주안에게 말했다.
“아니, 그보다 인정 못 하겠다면?”
“……당신이 바라는 그 권한을 행사해 드리도록 하죠.”
“하아……. 진짜 별 같잖은 것들이 자꾸…….”
뱃멀미와 스트레스에, 짜증까지 겹치는 것도 모자라 주안의 이런 행동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쥬도가 소리쳤다.
“도리안!”
“네, 도련님.”
“이 짜증 나는 것들을 치워!”
쥬도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알기에, 도리안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명대로 검집에서 검을 꺼냈다.
이제 30대에 접어든 그는 아직 젊은 나이이지만 이미 랭크 4에 위치한 검사였다.
그는 홈멜스 상단의 상단주이자, 쥬도의 아버지가 거금을 내밀고 영입했던 인재였다.
그가 검을 꺼내자 피터의 기세에 짓눌려 있던 호위대가 말에서 내려와 검과 창을 고쳐 잡았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던 주안이 한 걸음 나서, 눈앞에 펼쳐진 날카로운 검과 창 그리고 도리안과 쥬도를 마주하며 말했다.
“피터 몰리나 경, 마법사 소니아 펜.”
“예, 공자님.”
“네, 공자님.”
주안이 조용히 그들의 이름을 말하자, 자연스럽게 두 사람이 한쪽 무릎을 꿇고 주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었지만,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먼저 주안의 말에 본능적으로 무릎을 꿇은 것이었다.
거기에 대한 그 어떤 의문도 없었고, 오히려 피터나 소니아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바빴다.
그리고 이런 아들을 바라보는 안젤라 역시 사랑스러운 아들의 듬직한 그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벡브란 마르티네스 공의 손자이자 주레인 마르티네스 공작과 안젤라 마르티네스 공작부인의 아들이며, 위대한 선조 초대 마르티네스 공작 힉스 마르티네스 공의 마지막 후손인, 저 주안 마르티네스가 공작가의 후계자로서 그 권한을 행사하겠습니다.”
마르티네스.
그 말이 주안의 입에서 나오자 시끌벅적하던 주변에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무슨 일인지 몰라 구경 나왔던 사람들도, 쥬도 일행에 떠밀렸던 일꾼들도, 지나가던 상인들도…… 모두의 시선이 주안에게 향했다.
그리고 주안은 그들에게 마치 들으라는 듯 말했다.
“공작가에서 제멋대로 권력을 행사한 죄. 나의 어머니에게 위해를 끼치려 한 죄. 나의, 소중한 영주민들을 겁박한 죄를 물을 것입니다. 도와주시겠습니까?”
피터 몰리나와 소니아 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주안의 앞으로 한 걸음 나서자, 금세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던 쥬도의 호위들과 도리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피터의 기세에 밀린 것도 있었다.
소니아의 몸 주변의 허공에서 맹렬히 회전하는 바람 때문인 이유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뒤, 조용히 차가운 파란 눈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아직 어린, 공작가의 후계자가 더 큰 이유로 다가왔다.
“반항하는 자는 제 어머니이자, 현 황제 폐하의 딸이며, 황실의 일원인 안젤라 마르티네스 공작부인에게 위해를 끼치려 한 반역죄를 물을 것입니다.”
그 말에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손에서 검과 창을 놓았고, 그것은 도리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쥬도는…… 다리에 힘이 풀린 것인지 새파랗게 질린 채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쥬도를 신경 쓰지 않았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던 호위들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은 단 한 사람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주안 마르티네스.
소문이 무성하던 공작가의 후계자이자 공작가와 공작령의 수치.
심각한 마마보이이자, 엄마 없이 아무것도 못 하는 멍청이.
하지만 눈앞에 있는, 스스로 주안 마르티네스라 말하는 작은 소년은 조금 달랐다.
냉정하면서도 차분했고 당당하기까지 했다.
소문은 소문일 뿐이라고 하지만, 하나같이 마마보이라 욕을 하던 그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던진 한마디.
나의 소중한 영주민.
공작령의 영주민들은 그를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를 손가락질했고, 비아냥거렸으며, 심심찮게 욕했다.
하지만 주안은 그들을 소중한 영주민이라고 했다.
단순한 한마디였지만, 그곳에 있던 많은 영주민은 자신들이 심각하게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