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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5화 (15/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5화

평소 무슨 날이라 해서 파티를 하거나 하는 일이 없는 나름 검소한 벡브란 전대 공작이다.

그런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인지 갑자기 자신의 생일에 성대한 파티를 연다는 소식이 마를렌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 소식을 들은 가신들은 경악을 했고 허겁지겁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늦은 밤에도 마를렌 시내를 돌아다녔다.

이것은 가신들뿐만이 아니라 마를렌 시에 머물고 있던 거대 상단들의 귀에도 들어가며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잘 보이기 위해 값비싼 선물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멀리 떨어진 영지의 귀족들도 소식을 전해 들었지만, 참여를 하지 못 하는 것에 내심 안도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타까워했다.

인근에 위치한 영지의 영주들은 가론 자작에 의해 소식을 접하고 황급히 채비를 갖춰 선물을 바리바리 싸 들고 밤새 마를렌 시로 달려가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이런 일에 익숙하지 못하던 공작성의 하인과 하녀들은 당황하긴 했지만, 이내 마를렌에 거주하던 가신들과 대상단의 저택에 고용되어 있던 하인들과 하녀들의 도움을 받아 파티를 준비하였고, 저녁이 되었을 땐 화려한 연회장을 꾸밀 수 있었다.

내일 있을 제대로 된 성대한 연회와는 달리, 작고 조촐하게 꾸며졌지만 이런 일에 익숙하지 못한 공작성의 하인들과 하녀들은 이것만으로도 허둥거릴 정도로 당황하였다.

그래도 다행히 이러한 일에 익숙한 가신들과 대상인들에게 고용된 이들로 인해 큰 도움을 받으며 조금씩 익숙해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당장 내일 있을 성대한 파티에 대해 오늘 안으로 모든 것을 다 배워야 한다는 과제가 남았지만 말이다.

“낭비야, 낭비…….”

그리고 그런 잘 꾸며진 공작성과 연회장의 모습에 벡브란 전대 공작이 언짢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래도 자신에게 축하 인사를 하러 오는 가신들과 마를렌에 거주하는 대상인들에게 그런 표정을 풀고 일일이 대응을 하며 나름대로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도 다들 즐거워하고 있지 않습니까? 언제 저희가 이런 파티를 열었던 일이나 있었습니까.”

“흠…….”

곁에 있던 가론 자작의 말에 벡브란이 잠시 헛기침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인상을 쓰던 것을 버리고 보니, 가론 자작의 말대로 다들 삼삼오오 모여 파티를 즐기고 있는 가신들과 인근의 영주들 그리고 인연이 있는 대상인들과 그 자제들까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인맥을 쌓기 위해 노력을 하는 모습들도 보였다.

벡브란 전대 공작 이전에는 이런 연회를 여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그가 가주가 된 후로는 이렇다 할 파티는 거의 없다시피 하였다.

가론 자작의 말에 벡브란 전대 공작도 표정을 조금이나마 풀고는 주변을 제대로 돌아볼 수가 있었다.

“가끔 이렇게 파티를 여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결속력을 다지는 데 이런 파티만큼 좋은 것도 없습니다. 이번에 참석 못 한 먼 거리에 있는 영주들도 한번 모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뭐, 그 부분은 생각해 보도록 하지.”

이런 돈 낭비와 쓸데없는 인맥 쌓기는 벡브란 전대 공작이 매우 싫어하던 일이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하고 보니 자신은 몰라도 다른 이들은 매우 즐거워하는 모습에 조금은 달리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가론 자작도 호통을 치지 않고 생각해 본다는 벡브란 전대 공작의 그 말에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이 꼬장꼬장한 어르신을 이렇게 만든 주안을 떠올리자, 기분이 좋아지기까지 하였다.

“그 도자기 인형이 참 마음에 드시나 봅니다.”

“……손자 녀석이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준비해서 준 선물이 아닌가.”

자신의 손 위에 놓여 있는 작은 도자기 인형을 매만지며, 벡브란 전대 공작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내일 받을 수도 있던 것이었지만, 벡브란은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었다.

손자에게 거의 빼앗듯 얻어낸 이 선물은 벡브란 전대 공작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새의 형상을 한 이 도자기 인형은 동방 대륙에서 넘어온 도자기 기술공이 만든 물건이기도 했으며, 최근 황도에서 유행하는 장식품 중 하나였다.

생각보다 가격은 꽤 센 편이긴 하나, 주안의 용돈으로도 충분히 구입이 가능한 것이라 크게 부담스럽지 않았고, 수수한 외형인 탓에 화려한 것을 싫어하는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도 마음에 들어 했다.

무엇보다 손자가 준 것이라 더욱 특별했고, 이곳을 찾은 동방의 대상인이나 서방의 대상인들도 값비싼 도자기들을 선물했지만. 그 모든 것보다 손자가 선물한 이 작은 도자기 인형이 더 좋았다.

“그보다 주안이랑, 망할 아들 내외가 안 보이는데 어디 간 게야?”

“그게…….”

“왜 그러나?”

벡브란 전개 공작의 말에 가론 자작이 조금 곤란해했다.

왜 그런지 몰라 갸웃하며 벡브란 전대 공작이 애용하는 동방의 곰방대를 꺼내 불을 붙이고 입에 물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손자가 선물한 도자기 인형을 이리저리 만지며 흐뭇해한다.

“……공작 전하는 몇 가지 사안을 정리하기 위해 집무실에 계십니다.”

“흥. 어련히 알아서 잘하고 있는데, 제깟 녀석이 이제 와서 무슨……. 그럼 주안이는?”

“공자님은…….”

그런 벡브란 전대 공작을 보던 가론 자작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공작부인과 함께 밤바다를 보러 놀러 나가셨습니다. 파티가 끝나기 전까지 오신다고 하셨습니다만…….”

순간 벡브란 전대 공작은 손자가 선물한 소중한 생일 선물을 꽈악 움켜쥐어 가루로 만들 뻔했다.

* * *

“와아~!”

해가 진 바다는 어둠에 잠겨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전혀 아니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정박한 배들이 밝힌 불들이 바다를 가득 메웠고, 마치 바다 위에 떠오른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주안도 눈을 반짝였고, 토미도 그 풍경을 보며 볼을 발갛게 상기시킬 정도로 즐거워하는 게 보였다.

“황도보다 더 멋진 거 같아요, 엄마.”

“핏. 그래도 황도가 훨씬 크고 화려하지 않니?”

“헤헷.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바다는 없잖아요.”

안젤라는 바다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기에 주안이 이렇게 즐거워하는 모습을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아들이 이렇게 좋아하니 그녀 역시 조금은 기분을 풀며 함께 주변을 둘러보며 구경하였다.

호위라고는 소니아와 피터, 그리고 주안이 데리고 온 토미뿐이었지만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피터의 실력도, 소니아의 실력도 대단하지만 사실 이곳 마를렌의 치안은 제국 내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안전한 곳이었고, 지금도 곳곳에 치안청 소속 경비대들이 돌아다니며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희만 이렇게 나와도 괜찮아요? 아빠랑 할아버지는…….”

“너희 아빠는 바쁘다고 연회에는 얼굴만 내밀고 가버렸잖니. 그리고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들 만나느라 바쁘거든. 그리고 어차피 할아버지 생신 파티는 내일이잖니.”

“그치만…….”

“자, 그보다 오랜만에 순화에 가볼까? 우리 아들, 거기 해산물 요리 좋아했지?”

“수, 순화……!”

순화는 제국 동부의 항구도시마다 있는 동방 대륙의 고급 식당으로, 실제 요리사가 동방 대륙 출신이자 슌 제국 황실 소속의 요리사로 유명했다.

그 본점은 이곳, 마를렌에 있었으며 다른 분점들은 동부 항구도시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지만, 본점과의 맛 차이가 조금 난다고도 한다.

분점은 모두 순화 본점의 주인이자 메인 요리사의 제자들이기 때문에 미묘한 맛의 차이가 있다고도 했지만, 사실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주안은 과거, 할아버지가 있는 공작령에 오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너무 먼 마를렌에 오는 것도 싫어했다.

그나마 이곳에 오면 순화에 들려 먹는 해산물 요리 때문에 참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가, 가요. 아, 그런데 예약해야 하잖아요.”

“후훗. 우리 아들을 위해서 미리 다 예약했지.”

“엄마 최고예요.”

“아앙~ 우리 아들도 최고!”

길 한복판에서 엄마와 아들이 서로 껴안고 좋아하는 모습은, 어떻게 보면 참 행복한 가정이라고도 볼 수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민폐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이 한두 번도 아닌 만큼, 호위로 나선 피터와 소니아는 그러려니 했지만, 토미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비켜라! 길을 비켜라!”

“응?”

하지만 두 모자의 행복한 시간을 방해라도 하려는 듯 멀지 않은 곳, 항구 쪽에 정박한 배에서 급하게 내려 말을 타고 소리를 치며 달려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키라고 하지 않느냐! 당장 길에서 물러나라!”

먼저 다가온 말을 탄 인원들이 거칠게 주변의 길들을 비우게 만들며 뒤의 마차가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 행동이 너무 고압적이었고 항구 주변이라 대부분 일반 주민만 있는 탓에, 귀족가나 있는 집안으로 보이는 그들의 행동에 어떻게 불만을 내비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점점 더 안하무인으로 행동하여, 말 위에 올라탄 채 검집과 창대를 들고 휘두르며, 사람들을 강제로 길 바깥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거친 손길은 기어이 길 한복판에서 즐겁고 행복함을 만끽하던 주안과 안젤라에게까지 향했다.

“당장 길을 비키라는 말을 못 들었느냐! 썩 길을……!”

“…….”

하지만 말을 타고 소리를 치던 남자는 주안과 안젤라의 곁에 있던 피터가 노려보자 흠칫 놀라며 숨을 헛 삼켰다.

그도 일단 검을 잡는 검사였고, 낮은 랭크이긴 했지만, 칼 밥을 먹은 게 인생의 절반이나 되었다.

피터의 분위기나 몸집은 일반적인 검사의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그도 느끼고 있었다.

“뭐야? 파론,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냐.”

“이것들은 또 뭐야?”

“자, 잠깐!”

파론이 뭐라 말을 할 틈도 없이 동료가 창대를 안젤라와 주안에게 휘둘렀다.

하지만 그러한 창대는 두 사람에게 닿지 않았고, 순식간에 그 창대를 붙잡은 피터가 그것을 그대로 잡아당겼다.

“으악?!”

“벨!”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창을 붙잡은 채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져 말에서 떨어진 벨이라 불린 남자는 길바닥에 엎어져 버렸다.

“이, 이 자식은 대체 뭐야?!”

“어이!”

잔뜩 굳어 있는 파론과는 달리 근처에서 사람들을 물리던 동료들이 다가와 험악하게 인상을 구기며 피터를 노려본다.

하지만 피터는 표정 변화 없이 그런 그들을 보며 한마디 했다.

“내려.”

조용히 울려 퍼진 그 목소리는 서늘하기 그지없었다.

* * *

“끄응……. 그 영감님은 왜 갑자기 안 하던 생일 파티를 한다고 사람을 힘들게 하는 거야.”

“그래도 멀리 나가지 않아서 다행이지 않습니까, 도련님.”

“이런 건 그냥 아버지가 알아서 하시지.”

“다 전대 공작 어르신께 도련님을 소개시켜 드리려는 생각이시지 않겠습니까.”

홈멜스 상단의 후계자인 쥬도는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긋지긋한 상단 일에서 잠시 벗어나 휴양을 핑계로 배를 이용해 마를렌 인근의 섬들로 유람을 떠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아 되돌아와야만 했던 것이 매우 기분 나빴다.

게다가 유람을 갈 때와는 달리 시간이 촉박하여 돌아오는 길은 매우 빠르게 올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심한 뱃멀미까지 일어나 오는 내내 구토를 하느라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쥬도가 상단의 후계자라고는 하나 이제 갓 스물을 넘은 나이로, 젊다 못해 어리다고까지 할 수 있었고, 나이답게 그 외모 역시 이게 막 성년을 넘어선 듯 어린 티가 조금은 남아 있었다.

그와는 반대로 쥬도의 호위 총책임자인 도리안은 서른쯤 된 기사였지만, 험한 생활을 한 탓인지 오히려 원래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런 쥬도에게 도리안이 말했다.

“좋게 생각하십시오. 따지고 보면 마르티네스 공작령, 마를렌 덕분에 상단이 크게 된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긴 하지만……. 짜증 나잖아. 하는 것도 없이 우리 상인들이 열심히 벌어온 물건에 세금만 매겨서 강제로 돈을 빼앗아가는 행태가 눈꼴 시리다고.”

“그런 말씀 마십시오. 귀족이 있기에 지금의 쥬도 도련님과 상단주님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니라면 그 비싼 물건들을 대체 누가 구입하겠습니까?”

“뭐,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그들이 있었기에 지역이 안정되고 도적은 사라지고, 길을 잘 닦아 놓았기에 물류의 운송도 그만큼 빨라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쥬도도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이 상황이 너무나 짜증 났기에 한 소리를 한 것이고, 그것을 도리안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굼뜬 거야? 이러다 파티 다 끝나겠어.”

“어차피 생신 파티는 내일이지 않습니까?”

“조금이라도 일찍 눈도장 찍으라는 아버지 명령이야.”

“으음,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제가 나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아니, 나도 나갈래. 속이 울렁거려서 마차에 계속 있기 힘들어.”

아직도 뱃멀미가 남은 것인지 쥬도의 안색은 썩 좋지 못했다.

오면서 계속 마법사에게 치료를 받았음에도 여전했다.

생각 같아서는 교단에 찾아가 신관에게 치료를 받고 싶었지만, 시간이 없었다.

두 사람이 마차에서 내리자 주변에 있던 호위들이 두 사람을 보호하듯 곁으로 다가왔다.

“……저긴 왜 저래? 왜 길을 안 열고 저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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