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4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근거지인 마를렌은 서대륙 최대의 항구도시인 만큼 거주 인구는 황도보다 적어도 오가는 인구는 황도, 그 이상을 자랑했다.
다양한 인종과 직업, 다양한 물류가 한꺼번에 몰리고 뒤섞이며 이동하는 것은 마를렌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거대 상선들이 정박하고 또 출항하는 모습은 장관이나 다름없었다.
밤이 되어도 불이 꺼지지 않았으며,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근거지답게 치안도 매우 좋아, 밤늦게 안심하고 돌아다닐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것은 도시와 한데 어우러져 있는 거대한 공작성이었다.
“……이렇게 튼튼하고 컸는데,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 줄이야.”
작게 한숨을 내쉬며 성 내의 벽을 쓰다듬는 주안.
과거로 돌아오기 전, 할아버지인 벡브란이 돌아가신 뒤 황도에서 어쩔 수 없이 공작령으로 복귀한 가족이었지만, 그럼에도 주안과 엄마인 안젤라의 기행은 변하지 않았다.
공작령에서 직접 그 모습을 보고 실망한 가신들은 오히려 주레인 공작을 중심으로 다시 뭉쳤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레인 공작 역시 갑작스레 세상을 뜨며 그것도 의미 없는 일이 되었다.
그나마 가론 자작이 어떻게든 공작령 내의 귀족들을 단합시키고 공작가를 지키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가신들은 공작가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을 만들고, 타 지역의 대영주 아래에 들어가며 점차 분열했다.
결국 공작가가 흔들리자, 제국도 흔들렸고, 외세의 침략을 틈타 일어난 반란에 의해 공작가는 순식간에 무너졌다.
가론 자작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마를렌을 중심으로 공작가를 지키려 했다.
그 결과 마를렌은 괴멸 직전까지 내몰리고, 공작성은 폐허가 되었음에도 가론 자작은 목숨을 걸고 주안을 탈출시킨 후 공작성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난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그렇게 허무하게 공작가가 망해 버린 걸까.”
오면서 본 공작령 내의 가신들과 영지의 모습은, 대단히 부유했고 안정적이었으며 강성했다.
그뿐만 아니라 마를렌에 도착 후 본 도시의 모습과 치안을 담당하는 병사들, 기사들…… 그리고 공작성을 지키는 군사와 가신들의 모습은, 정말 어지간히 정신 나간 짓을 하지 않는다면 외세의 침략에 무너질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그만큼 미친 짓을 한 건가.”
결정적으로 그들이 등을 돌린 게 가장 컸고, 그 이유가 자신과 엄마에 있었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차릴 수 있고, 고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아직 주안에 대한 가신들이나 기사들, 병사들의 믿음이 그다지 크지 않은 것은 주안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그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해. 공작가 혼자만의 힘으로는 절대 안심할 수 없어.’
혈족이 마땅히 없는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휘하 가신들의 영지와 그 힘을 통해 가문을 지켜 나갔었다.
당연히 공작령 내의 영주들의 힘이 줄어들고, 등을 돌린다면 중심이 되는 마르티네스 공작가라 해도 팔다리가 잘려 나간 것과 마찬가지의 처지가 되는 것이었다.
물론 웬만한 단일 가문보다야 강성하겠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수 있다고 보긴 어려웠다.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은 충성을 대가로 공작령 내의 영지를 하사하고, 그들은 그것을 통해 세금과 충성을 바쳤으며, 공작가 역시 그들의 세금과 충성을 통해 강성한 군사를 육성하여 그들의 방패가 되어주었다.
가신들 영지의 군사들은 하나로 보면 적을 수 있지만, 아래의 영지만 해도 20여 개 가까이 되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중심에서 군사를 모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황실을 제외한 단일 가문으로는 가장 강대한 군사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가신들과의 유대 관계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최우선이 되어야 할 필수적인 항목이었다.
‘내 대에선 그게 박살 나버렸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을 모으지 못하고 불신만 쌓게 하며 등을 돌리게 만든 원인이 주안, 자신이었으니…….
웬만해선 등을 돌리지 않을 깊은 유대 관계를 유지하던 가신들이 떠난 것을 생각하면 정말 멍청해도 너무 멍청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이야 벡브란이 정정하여 주레인 공작과 가신들의 관계가 조금 소원하다 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겠지만 말이다.
‘그들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 믿음을 줄 수 있는 그런 게 필요해.’
주안은 다시 황도로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안다.
자신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을 다수 접했을 가신들은 주안이 떠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주안으로서는 떠나기 전에, 그리고 떠난 후라도, 소문으로라도, 그들에게 실망을 안겨주는 일보다 믿음을 줄 수 있는 그런 걸 전해 주어야만 했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고민이 거듭된다는 게 문제였다.
‘과거로 돌아왔어도, 무언가 이득을 취할 미래의 일이 기억이 나야 뭘 하지…….’
주안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성의 복도를 걸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미래의 검성이라 불린 토미와 함께하게 된 것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지금 당장에 무언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토미의 실력은 피터의 아래에서 제대로 지도를 받으며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은 어린 소년일 뿐이었다.
“끄응……. 게다가 이 시기에 뭔 일이 있었어야지.”
큰 사건이라면 그래도 대충이나마 기억하는 주안이지만, 이 시기에는 그런 큰 사건은 없었다.
기껏해야 동방 대륙에서 은을 수송하던 상선이 침몰해서 난리가 났다는 것과 20년 뒤, 그 은 수송선이 침몰선 헌터들에게 발견되어, 상선의 주인이던 상단과 소유권을 놓고 다투었다는 것 정도뿐이다.
당장 올해 굵직한 사건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쩝……. 그냥 눈살 찌푸리는 일만 저지르지 말고 조용히 있다가 가자.”
결국, 가신들이 싫어하는 짓을 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고, 그것만 해도 충분한 소득이라 판단한 주안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엄마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기 전까지 엄마랑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에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발걸음을 옮겼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주변의 가신들이 싫어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주안이었다.
* * *
주레인 공작은 오랜만에 자신의 집무실에 앉아 있을 수 있었지만, 소파의 상석에는 당연하다는 듯 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이 앉았고, 자신은 그 아래 그리고 맞은편에는 가론 자작이 앉았다.
“황제 폐하는 무탈하시고?”
“건강에는 큰 문제는 없으십니다. 여전히 정정하시죠.”
“후우……. 그건 참 다행인 일이다만, 여전히 소문은 좋지 않아.”
이쪽 집안도 좀 문제가 있지만, 황실도 사실 썩 나은 편은 아니었다.
며느리와 손자 문제로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골머리를 썩이는 만큼, 황실 역시 그 권위가 상당히 떨어져 있었다.
전 황녀이자 황제의 딸인 안젤라와 외손자인 주안의 문제로 나라 안팎에서 좋지 않은 소문이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그것을 말리지 않고, 주의도 주지 않는 현 황제에 대한 조롱이 심심찮게 나오는 수준이었으며, 그것을 알고 있어도 뭐라 말하지 못하는 게 현재의 황실과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이었다.
“그래도 오늘 공자님의 모습을 보면 곧 그런 소문이 사라질 것 같아서 안심이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아들 내외가 오면 늘 찌푸리고만 있던 벡브란 전대 공작도 오늘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주안이 하는 그 행동과 무시무시한 자신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살갑게 대하는 태도를 보니, 엄마에게서 어느 정도 벗어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엄마 곁을 지키고는 있었지만, 예전의 말도 섞기 싫을 정도의 마마보이와 지금의 생각은 조금 할 줄 아는 마마보이는 차이가 심했다.
그렇기에 벡브란 전대 공작은 작은 희망을 보았고, 주레인 공작 역시 안심하였으며, 가론 자작도 꽤나 만족하는 듯했다.
나름 분위기가 좋게 흐르는 듯했지만, 이내 벡브란 전대 공작이 곰방대를 입에 물고 뻐끔뻐끔 피우다 주레인 공작에게 말했다.
“그래, 그보다 이상한 소문을 하나 들었다만.”
“소문이라 하시면?”
“아스란 왕국과의 외교 사절. 사실이냐?”
벡브란 전대 공작의 말에 주레인 공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벡브란 전대 공작이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당시 전쟁을 주도했던 가문이 중심이 되어서, 그 혈족을 사절로 보낸다는 것도?”
“예, 남부와 저희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중심으로 외교 사절을 꾸리기로 결정되었습니다.”
“……그딴 멍청한 짓을 꾸민 자식이 누구냐?”
곰방대를 입에서 떼며 하얀 연기를 토해내는 벡브란 전대 공작의 표정은 썩 좋지 못했다.
분위기가 조금 풀어지나 했지만, 담배의 독한 연기만큼 날카로운 공기가 집무실 내를 가득 채워 나갔다.
은퇴를 하고 검을 거의 잡지 않았다 해도, 벡브란 전대 공작은 한때 남부군 총사령관이자 아스란 정벌군을 이끌었던 인물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는 주레인 공작과는 달리 무를 숭상하던 기사였고, 한때 랭크 6의 끝에 위치해 있던 강자 중의 강자였다.
그런 벡브란 전대 공작의 살벌한 모습에 주레인 공작뿐만이 아니라 가론 자작 역시 움찔 놀라며 몸을 움츠릴 정도였다.
그래도 나름 황실에서 여러 중신을 조율하며 재상의 업무를 보던 주레인 공작이기에 금세 침착함을 유지하며 말했다.
“하스웰 맥도넬 후작입니다.”
“그 빌어먹을 여우가?”
하스웰 맥도넬 후작.
남부 귀족의 대표이자 현 남부군 총사령관으로 있는 인물이었다.
벡브란이 남부군 총사령관으로 있을 당시 부사령관으로 있던 인물이었으며, 아스란 왕국과의 전쟁을 주도한 인물 중 하나였다.
벡브란이 총사령관직을 내려놓은 후 그 후임으로 총사령관이 되었으며, 현재 20년 가까이 그 직책을 맡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다.
풍요로운 남부의 땅에 영지가 있어서 그런지 영지는 매우 부유한 편이었다.
게다가 아스란 왕국과의 전쟁에서 큰 공을 세워 남부와 중부 사이를 잇는 가도의 중심이 되는 황실 직할령에 대한 소유권을 30년간 부여받았다.
그 덕분에 그의 세는 나날이 커져갔고 현재는 남부의 거두이자, 남부 영주들의 대표 격인 가문으로 급부상했다.
벡브란 전대 공작이 그를 여우라 표현한 이유는, 눈치가 빠르고 얍삽한 것도 있었지만, 가문의 문장이 여우인 이유도 있었다.
한마디로, 가문 자체가 그런 성향이 강했기에 우직한 외골수인 벡브란과는 잘 맞는 인물이 아니었고, 남부군에서 함께 있을 당시에도 종종 의견 충돌을 일으켰던 자였다.
“대체 무슨 이유로? 남부라면 아스란 왕국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자들이야. 아직도 이를 갈고 있는 녀석들이 많을 텐데,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외교를…… 그것도 남부 귀족들이 한다는 거야?”
“아스란 왕국의 상권에 대한 장악과 남부 밀림 지대 개척과 관련된 이득을 위해서라고 하였습니다.”
“미친놈들. 이미 아스란 왕국의 상권을 다 잡아먹고 있으면서, 거기에 뭘 더 얻겠다고…….”
제국과의 전쟁 이후 아스란 왕국은 거의 속국이나 다름없이 변했다.
제국에서의 원조가 없으면 자생이 불가능할 정도였고, 상권은 이미 제국의 상인들에게 모조리 먹힌 상태였다.
그들에게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미개척지대인 남부의 대밀림과 역사학자들이나 좋아할 고대의 유적들뿐, 그 외에는 빈 껍데기나 다름없었다.
“그 외에도 이전의 전쟁에 대해서 반성하고 서로 평화를 지켜내자는 의미도 있고, 젊은 인재들과의 교류를 통해 서로의 문화를 배우자는 의미도 있습니다.”
“참 좋은 말이긴 하지. 서로 죽고 죽이던 사이가 아니었다면 말이야.”
대륙에 알려지기로는 제노폴 제국의 일방적인 승리라고들 하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아스란 왕국은 아이들까지 내세워 자살 공격을 감행했을 정도로 악질 중의 악질이었다.
아이들에게 검을 들이밀기 힘든 기사들이나 병사들은 이런 자살 공격과 기습에 수없이 희생을 당했다.
그에 분노해, 제국은 방어에서 침공으로 태도를 바꾸었고, 아스란 왕국의 수도까지 한 번에 밀고 들어가 전쟁을 끝낸 것이니까.
희생자의 비율로 따지면 제노폴 제국이나 아스란 왕국이나 서로 비슷했을 정도였다.
그때의 전쟁을 겪은 벡브란 전대 공작이나 가론 자작은 조금 언짢아하는 듯했다.
주레인 공작은 이 두 사람이 이러는 것을 이해는 했지만, 전쟁을 겪지 못했던 입장에서 화평 쪽으로 마음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미 결정된 사항이고, 황제가 허락했다면 벡브란 전대 공작이 뭐라 떠들든 바뀌는 것은 없다.
벡브란 전대 공작도 그것을 알기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주레인 공작에게 말했다.
“남부 놈들을 믿지 마라. 그놈들은 기본적으로 기회주의자들이다. 빈틈을 보이면 언제든지 물어뜯을 준비가 되어 있는 여우나 하이에나들과 마찬가지야.”
“알고 있습니다. 남부를 신뢰하는 제국민은 남부의 영지민들 외에는 없을 것입니다.”
제국이 약해질 때 반역이 일어나면, 그것은 어김없이 남부의 영지에서 일어나는 반역이었다.
제노폴 제국이 왕국이던 시절, 가장 많은 전쟁을 벌이고 병합한 지역이 바로 남부였다.
남부는 기본적으로, 누군가가 자신들 민족의 머리 위에 선다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족속들이었으며, 민족주의가 매우 강한 자들이기도 했다.
타민족에 대한 배척도 심했다.
그들은 제국에 편입된 후로도 종종 독립을 꿈꿨고, 실제로 실행에까지 옮기던 자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자신들이 약하고 상대가 강한 것을 알고 나면 질 싸움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남부군의 총사령관은 대부분 다른 지역을 지배하는 강대한 세력의 수장이 맡아왔었다.
전대 남부군 총사령관인 벡브란 역시 이를 이유로 남부군의 총사령관이 되었지만, 갑작스러운 은퇴로 인해 그 공백을 어쩔 수 없이 당시의 부사령관이던 하스웰 맥도넬 후작이 이어받은 것이었다.
“그럼 그 외교 사절에 우리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주안을 보낼 생각인 것이냐?”
“일단 그럴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단지…….”
주레인 공작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과연 안젤라가 허락할지…….”
“…….”
아무리 주안이 정신을 좀 차렸다 해도 안젤라는 그게 아니었고, 여러 번 설득시켜 보려 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이런 주레인 공작의 모습에 벡브란이 잔뜩 찌푸렸다.
그래도 공작이고, 나라의 재상씩이나 된 아들 녀석이 마누라에게 잡혀 사는 모습은 썩 보기 좋지 않았다.
며느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멍청한 아들도 문제가 있었고, 그 결과가 주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 마냥 주안만 탓할 것은 아니라고 벡브란은 생각했다.
그리고 못마땅한 듯, 벡브란이 말했다.
“안 되면 그냥 욕 좀 먹는다 생각하고 빠지도록 해.”
“예? 하지만 그러면 또 가문이 비웃음을 당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비웃음을 좀 더 당한다 해서 더 떨어질 명예라도 있더냐?”
“그게…….”
그 말에 주레인 공작이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더 떨어질 명예라는 것은 없었다.
그만큼 주안과 안젤라에 대한 소문은 좋지 않았고, 그보다 더 안 좋은 소문이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괜히 억지로 보내려다 며느리, 그 아이에게 미움받지 말거라. 그리고 나도 웬만해선 주안을 그곳에 보내고 싶지는 않으니.”
“예?”
가문의 명예를 그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던 벡브란 전대 공작의 말에 주레인 공작이 적잖아 놀랐다.
“남부 놈들 틈에 끼여서 좋지 않은 것만 배워 올 수도 있어. 그럴 거라면 차라리 보내지 않는 편이 나아. 심하면 따돌림이든 뭐든, 안 좋은 일이 일어날 수도 있고.”
남부의 기질이 좋지 않다고는 해도 벡브란 전대 공작은 남부와 함께 아스란 왕국과 싸운 전우들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이토록 평가가 좋지 않은 것에 주레인 공작은 조금 의아했다.
“아버님이 정정하시고 우리 가문은 여전히 강성합니다. 저 역시 제국의 재상이지 않습니까? 남부의 귀족들은 절대 우리 주안에게 그러지 못할 겁니다.”
“쯧. 대놓고 그런다는 게 아니야. 뒤로도 얼마든지 음흉한 짓을 저지를 게 바로 그놈들이란 말이다.”
“그들을 너무 좋지 않게만 보시는 듯합니다. 아버님 말씀대로 남부 귀족은 저희가 강성할 땐 절대로 무슨 일을 꾸미거나 하진 않을 것이니 안심하십시오.”
“후우……. 그래. 네 일이니 네가 알아서 하거라.”
주레인 공작은 아버지인 벡브란이 왜 이렇게 남부 귀족들을 불신하고 믿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그들이 지금의 제국과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아스란 왕국 침공 당시 남부와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연합군의 숫자는 30만에 달했다.
문제는 남부 영주들이 모은 군사는 10만에도 미치지 못했으며, 남부군이 약 5만.
남은 15만이 넘는 군사는 모두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그 휘하 가문의 군사들이었다.
현재 남부의 거두 하스웰 맥도넬 후작이 강성해져 그들이 딴생각을 품는다 해도, 아직 그 몸집은 코끼리와 작은 여우의 차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