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13화 (13/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3화

공작성의 성문 앞에는 수많은 기사와 병사가 도열해 있었다.

그들 사이로 공작령의 가신들이 나와 멀지 않은 곳에서 점차 다가오고 있는 마르티네스 공작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가장 앞에서 거구의 노인, 전대 마르티네스 공작이자 현 공작령을 아들을 대신해 다스리고 있는 벡브란이 서 있었다.

그는 멀지 않은 곳에서 점차 가까워져 오는 크고 화려한 마차와 호위들이 못마땅한 듯, 뒷짐을 진 채 불만을 토로했다.

“허례허식이 심해. 심해도 너무 심해.”

“작년보다 마차가 더 크고 화려해졌군요.”

“저딴 것에 공작령 세금을 처바른다 생각하니, 다시 작위와 가문을 빼앗아 버리고 싶군.”

“……작위만 없으실 뿐이지 실제로 가문과 공작령의 주인이시지 않습니까.”

사실 이름만 전대 공작이지, 실질적인 공작령의 지배자가 주레인 마르티네스 공작이 아닌 벡브란 마르티네스 전대 공작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공작령을 찾지도 않는 주레인 공작은, 황도에서 황제의 곁을 지키는 재상인 탓에 공작령을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그렇기에 주레인 공작은 재상이 되어 황도에 머물게 되었을 때 은퇴한 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 다시 가문과 공작령을 부탁했다.

어쩔 수 없이 일선에 복귀한 벡브란 전대 공작은, 십 년이 넘는 시간을 공작가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지내왔다.

그렇기에 작위만 없을 뿐 공작가를 모시는 휘하의 귀족들은 주레인 현 공작보다 벡브란 전대 공작을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래도 아들로 인한 좋지 않은 소문과 함께, 오랜 시간을 황도에만 머무는 탓에 휘하 가신들과의 접점이 거의 사라져 버린 탓이 컸다.

이처럼 공작령 내의 지배력이 약화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주레인 공작은 재상직을 놓고 물러날 수가 없었다.

황권을 둘러싼 황태자와 황자들의 기 싸움은 없었지만, 아직 지지기반이 약한 황태자가 보위에 올라 그 기반 세력이 확고해질 때까지는 물러날 수가 없던 것이다.

“그냥 멍청한 아들 내외에게 아무것도 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야.”

“그러게 왜 은퇴를 하셔서.”

“쯧.”

가론 자작의 말에 벡브란 전대 공작도 그게 후회가 되는 듯 작게 혀를 찼다.

* * *

마차가 멈춰 서고 기사들이 물러났다.

그리고 하녀와 하인들이 마차의 문을 조심스레 열어 주레인 공작과 안젤라 공작부인을 내려주었다.

마차에서 내린 안젤라는 당연하다는 듯 손을 뻗어 주안을 안아 마차에서 내려주었다.

그 모습을 보던 공작령의 기사들과 병사들, 더 나아가 가신들과 벡브란 전대 공작은 눈살을 찌푸렸다.

알고 있었고, 이전에도 본 모습이었지만, 아직도 여전하다는 사실에 적잖은 실망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엄마인 안젤라의 손을 잡고 오는 손자의 모습에 안 그래도 험악한 벡브란 전대 공작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곁에 있던 가론 자작이 긴장한 채 전대 공작의 눈치를 살폈다.

분명 작년에도 저 가족의, 공작부인과 아들이 눈살 찌푸려지는 모습을 보였고, 그때도 벡브란은 험악하게 인상을 잔뜩 구겼다.

그리고 그대로 소리를 버럭 지르며, 후계자인 주안 공자에게 험한 말을 쏟아냈다.

얼마나 심했는지, 당시 주안 공자가 길바닥에 실례까지 해버리는 것을 모두가 다 봐버렸다.

그런데 올해도, 또 저런 꼴을 보이고 있으니, 얼굴의 혈관이 터지지나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벡브란 전대 공작의 얼굴은 새빨개졌고, 가론 자작은 걱정이 되었다.

가까이 다가오는 망할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손자의 모습에 더 이상은 화를 참지 못하겠다는 듯 벡브란 전대 공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이놈의 자식! 당장 안 떨어……!”

“할아버지~!”

“……져?!”

하지만 채 말이 끝나기도 전.

엄마의 손을 벗어나 달려온 손자가 냅다 자신을 끌어안는 것에, 벡브란 전대 공작은 황당함을 넘어 자신도 모르게 몸이 잔뜩 굳어버렸다.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우는 아이를 뚝 그치게 만든다는 외모의 늙은이가 바로 자신이었고, 실제로 영지 시찰을 나가면 다들 피하기 일쑤였다.

단지 높은 귀족이라는 이유 때문만이 아니라, 그 외모는 전쟁터에서 굴러먹던 것답게 매우 험악했다.

그나마 아들인 주레인 공작이 엄마를 닮아 나름 얌전하게 생겼다는 게 다행스러웠고, 손자 역시 엄마를 닮아 예쁘장하게 생긴 게 그나마 마음에 드는 부분 중 하나였을 정도였다.

그런데, 길 한가운데에서 오줌을 싸게 만들었던 그 무시무시한 할아버지에게 오히려 반갑다는 듯 달려와 안는 손자의 행동은 벡브란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아니, 그뿐만이 아닌 공작령의 기사들과 병사들, 가신들과 가론 자작마저 충격에 휩싸이게 만들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당황한 벡브란 전대 공작은 아들 내외를 바라보았지만, 며느리는 이런 자신을 심통 난 얼굴로 지켜보고, 아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손자를 바라보았을 때, 벡브란 전대 공작은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품에 안고 있던 손자가…… 울고 있었다.

* * *

“크흠. 그래, 오는 데 힘들진 않았고?”

“전혀요!”

“흠흠……. 불편하진 않고?”

“하나도 안 불편해요!”

“으음…….”

응접실로 와서 아들 내외와 마주 앉았지만, 울음을 그친 뒤 뭐가 그리 좋은지 손자인 주안이 자신의 곁에 앉아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너무나 어색했다.

하지만, 그게 싫지만은 않은 듯 벡브란 전대 공작은 은근슬쩍 커다랗고 거친 손으로 주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게 또 기분 좋은 것인지 오히려 쓰다듬는 자신의 손을, 손자가 자신의 손으로 만져주며 할아버지를 즐겁게 만든다.

문제라면 며느리가 노려보는 것 정도였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노려보던 녀석들 수십과도 눈싸움을 벌였던 벡브란 전대 공작이 겨우 며느리의 질투 어린 눈빛에 움찔 놀랄 인물은 아니었다.

“공자님이 많이 변하신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가론 자작이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주레인 공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춘기라도 온 것인지, 요 몇 달 참 많이도 성장했더군요, 가론 공.”

“하하……. 사춘기라. 공자님도 벌써 그런 시기가 되었었군요.”

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의 최측근이자 어렸을 때부터 봐온 가론 자작이라 그런지, 주레인 공작은 그에게 하대하지 않았다.

비록 공작령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가신들과의 접점도 점점 흐려졌지만, 그래도 그를 따르는 가신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론 노밀 자작의 가문인 노밀가는 대대로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을 따르던 가장 가까운 가문이었다.

그만큼 함께해 온 세월이 길어 아무리 주레인 공작이 가주가 되었다 해도 노밀 자작 가문의 어른에겐 하대하지 않는 것이 오랜 전통처럼 전해져 내려왔다.

그것은 벡브란 전대 공작 시절에도 그랬고, 주레인 현 공작 시절에도 그랬으며, 다음 가주가 될 주안 역시 그래야 할 것이다.

현 노밀 자작가의 가주인 가론 노밀 자작은 주레인 공작보다 나이가 열 살 이상은 많았다.

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이 남부군 총사령관으로 있을 당시 그와 함께 아스란 왕국 정벌군의 돌격대를 이끌었던 젊은 맹장이기도 했다.

비록 작위가 자작이지만, 웬만한 백작 가문도 노밀가문에게 제멋대로 굴 수는 없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최측근이라는 이름도 있지만, 노밀가문의 기병은 제국 최강이라고 불릴 정도로 대단했고, 그런 노밀가문에서 키우는 말은 대륙에서 유명한 명마들이었기 때문이다.

괜히 가문의 문장이 내달리는 말이 아니었다.

“공작님의 그렇게 밝은 표정을 보는 건 참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요즘은 아들 때문에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하더군요.”

그 말이 진심인 듯 주레인 공작의 표정은 매우 밝았고,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그래서인지 매번 올 때마다 찌푸리고, 소리를 지르던 벡브란 전대 공작의 표정도 한결 가벼워졌다.

그는 손자의 재롱에 처음으로 기뻐하는 듯했다. 단지, 공작부인은 매우 불편해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것을 느낀 듯 주레인 공작이 아버지인 벡브란에게 말했다.

“참, 주안이 아버님 생신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스스로 선물을 고르고, 포장까지 했더군요.”

“아?! 그거 말하면 어떻게 해요! 내일 할아버지 생신 파티 때 드리려 했는데!”

깜짝 놀라 소리치는 주안의 모습에 공작은 작게 웃음을 터뜨렸지만, 벡브란 전대 공작과 가론 자작은 놀란 눈으로 주안을 바라보았다.

아빠의 그 발언에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는 모습이 귀엽기 그지없었지만, 작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거리감이 너무 심했다.

“그게 사실이냐? 이 할애비에게 줄 선물을, 네가 직접 골랐다고?”

“네……. 아, 그리고 엄마랑 같이 준비한 선물도 있어요. 엄마가 할아버지 생각, 엄청 하시면서 골랐어요.”

“흐음……. 그렇구나.”

주안은 엄마를 생각해서 한 말이었지만, 여전히 며느리를 못마땅해하는 벡브란 전대 공작은 심드렁했다.

“내일 생신 파티 기대해 주세요. 엄마랑 준비한 선물이랑, 제 선물이랑 그리고 아빠랑 준비한 선물도 잔뜩 있으니까요.”

“으으음……. 가, 가론.”

“파티 준비는 예정대로 잘 진행하도록 해놓았으니 걱정 마십시오.”

“흠흠. 그래, 차질 없이 잘 준비하도록 해.”

사실 준비 따윈 하나도 안 했지만 척하면 척이라는 듯, 가론 자작은 적당히 말을 꾸며주었고, 벡브란 전대 공작 역시 얼굴에 철판을 깐 듯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조금 빠듯하지만, 지금 당장 준비한다 해서 문제가 생기진 않는다.

이곳은 동방 대륙과 서방 대륙의 물류가 만나 이동하는 중심 도시였고, 그만큼 물자는 넘쳐나는 곳이었으니까.

평소 사치라고는 담배 정도뿐일 정도로 검소한 벡브란 전대 공작이지만, 지금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가 아니라 아주 돈을 발라 버린 파티를 준비해도 욕을 먹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파티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미 파티를 하지 않는다고 말을 해버린 탓에, 가신들이 선물 따위는 준비하지 않았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그런 말을 했음에도 선물을 준비하면 오히려 벡브란의 불호령이 떨어진다는 것을 잘 알기에, 평소처럼 그 말을 그대로 따랐을 뿐인데 말이다.

‘뭐, 알아서 잘하겠지.’

그 역시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앞서 설명했듯이, 이곳은 동과 서의 만남의 장소.

돈만 있다면 뭐든 구할 수 있는 그런 도시였고, 그 부분은 다른 가신들이 알아서 잘 준비할 것이다.

알아서 잘 구하지 못하면 그들 탓이지, 절대 가론 자작 자신의 탓이 아니다. 전혀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기에 부담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영지에 내려가 있는 영주들은 시간이 빠듯하기에 참석을 못 하겠지만, 그 정도는 벡브란도 충분히 눈감아 줄 터이니, 오히려 참석하지 않는 게 다행일 수도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