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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1화 (11/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1화

“음…….”

뭔가, 주안은 매우 불편했다.

할아버지가 있는, 그리고 자신의 가문의 집인 마르티네스 공작령으로 향하는 길이었지만, 굉장히 불편했다.

가기 싫은 것도 아니고, 할아버지를 너무나 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불편해서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저기, 엄마? 아빠?”

“응? 왜 그러니, 주안아?”

“으응…….”

아빠는 잔뜩 움츠려 있고, 엄마는 냉랭한 공기를 뿜어내다 주안의 말에 금세 화사한 미소를 머금으며 주안을 꼬옥 끌어안았다.

평소에도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오늘은 유독 심했다.

게다가 오늘은 할아버지가 있는 마르티네스 공작령으로 가는 날이고, 거기다 오랜만에 가족끼리만 함께 마차를 이용해 가는 상황임에도 분위기는 싸늘하기만 했다.

“……두 분, 싸우셨어요?”

“싸우기는, 너희 아빠의 음흉한 짓으로부터 엄마가 우리 주안이를 지켜주려고 한 거지.”

“음흉한 짓?”

그게 무엇인지 몰라 갸웃하는 주안에게 안젤라는 그저 품에 꼬옥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대신 곁에 있던 주레인 공작이 이런 안젤라와 주안을 흘겨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다.

‘대체 이번에는 또 뭐 때문에 싸운 거람……. 뭐, 보나 마나 나 때문이겠지만.’

부모님이 싸우는 일이라고는, 결국 자신과 얽힌 일밖에 없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자신을 두고 뭐 때문에 싸운 것인지가 의문이었다.

최근 주레인 공작은 주안을 두고 잔소리도 안 하였고, 그래서인지 안젤라에게도 딱히 주안의 교육과 태도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으니 사실 싸울 일도 없었다.

게다가 주레인 공작이 정말 싫어하는 휴양지로 놀러 가는 일이라거나, 쇼핑을 하는 일도 없다 보니, 집안은 참으로 평화로웠다.

‘……나, 뭐 잘못한 거 있나.’

곰곰이 생각해 보아도 아빠인 주레인 공작에겐 이쁨받을 짓만 했는데.

도통 떠오르는 게 없다 보니, 이런 분위기가 참 가시방석 같아 불편했다.

‘나중에 소니아 누나한테 물어봐야겠다.’

엄마의 측근 중 측근이자, 집안 내의 소문에 빠삭한 소니아 펜이라면 이유 정도는 알 것이라는 생각에, 일단 이런 불편함이라도 조금은 견디자고 생각하는 주안이었다.

* * *

“허억, 헉……. 헉……!”

“완전 녹초가 됐네? 이거라도 좀 마셔, 토미.”

“가, 감사합…… 니다, 도련님.”

기사들이나 일부 병사들은 말을 타고 이동을 했고, 하녀와 하인들은 따로 마차를 이용했다.

하지만 남은 병사들, 그리고 토미는 튼튼한 두 다리를 이용해 함께 했다.

잘 훈련된 병사들이야 크게 문제가 없어 보였지만, 토미는 숨이 넘어갈 듯 헉헉거렸고, 보다 못한 주안이 쉬는 틈을 이용해서 차가운 물을 가져다주었다.

그 물을 한 번에 들이켠 토미는 겨우 숨을 좀 돌린 듯 표정이 한결 나아졌다.

“어휴, 이게 무슨 개고생이야.”

그나마 다른 훈련 때 차던 모래주머니는 없었다는 것은 다행이지만, 그래도 고생은 고생이었다.

“피터 아저씨도 진짜 너무하다니까.”

“그래도 피터 기사님도 곁에서 같이 뛰어주셨는걸요.”

“……그 아저씬 그래도 말짱하지만, 넌 솔직히 무리라고.”

인간 병기 집단인 황실 근위대 출신이다 보니 그 정도는 전혀 문제없었다.

더욱이 맨몸의 토미 따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무거운 갑옷을 걸치고, 곁에서 함께 뛰었다는 점은 정말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그래도 너무 심한데…….”

“그래도 체력이 곧 생명이라고 늘 말씀하세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래?”

“네, 피터 기사님이 말씀해 주셨거든요. 검을 열 번 휘두르고 지쳐서 쓰러질 것인지, 아니면 백 번 휘두르고 살아남을 것인지……. 체력이 그걸 결정한다고.”

“흐응…….”

체력과 근력, 근육을 중시하는 서방 대륙의 검술이고, 그러한 서방 정통 검술을 배운 피터이니, 어떻게 보면 그에게 이런 훈련은 당연하다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래의 토미가 배운 검술을 알고, 직접 보기도 했기에, 이런 식의 체력 훈련이 정말 토미에게 잘 어울릴 것인지 조금 걱정이 되었다.

괜한 짓을 해서 토미의 성장을 망쳐 버리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열 번이든, 백 번이든 그렇게 휘두를 거면, 그냥 한 번 휘두르고 마는 게 체력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더 낫지 않나.”

열 번을 휘두르든 백 번을 휘두르든, 결국 눈앞의 적을 상대할 때의 일이라는 것이다.

한 번을 휘둘러 적을 쓰러뜨린다면 체력이나 시간이나 그것을 더욱 아끼는 일이라고 주안은 생각했다.

물론 토미도 주안이 한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은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피터가 해주었다.

“그런 건 일격필살을 노리는 동방의 검술에나 해당하는 겁니다. 이 대륙의 검술은 그게 아니죠.”

피터가 손에 든 물컵을 토미에게 건네준다.

이미 주안이 준 것을 마신 토미지만, 그럼에도 피터가 전해준 물컵을 들고 한 번에 쭈욱 들이켰다.

“우리 대륙에서는 그런 검술이 없어요?”

“저희 역시 일격필살의 검을 쓰긴 합니다. 그저 동방 대륙의 검술은 상대의 빈틈을 보며 끝없이 눈치싸움을 벌이고, 최대한 힘을 아끼며 허점을 단번에 찌르는 것이지만, 저희 서방 대륙의 검술은 힘과 힘으로 서로의 검을 맞댄 후 그 힘으로 단번에 찍어 눌러 버린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한마디로 저쪽은 눈치나 보는 검술이고, 이쪽은 무식하게 힘으로 찍어버리는 검술이라는 거네요.”

“……뭐, 그런 의미라면 비슷하긴 하죠.”

잠시 헛기침하는 피터이긴 했지만, 사실 정곡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서방 대륙에서 동방 대륙의 검에 대해 말할 때 온종일 눈치 싸움만 하다 끝나는 계집애 같은 검술이라 칭하고, 동방 대륙에서 서방 대륙의 검에 대해 말할 땐 검을 든 고릴라들이 검을 들고 무식하게 휘두른다고 말한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고, 서로 검을 든 기사와 무사의 체격 차이를 봐도 서방 대륙의 기사들이 훨씬 크고, 근육질들도 많았으니까.

“동방 대륙의 검술이 보기에 화려하고 대단해 보이긴 하지만, 실속이 있는 것은 결국 우리 대륙의 검술입니다. 게다가 그들의 검은 소수의 특별한 이들을 위한 검술이라, 배우고 싶다 해서 배울 수 있는 그런 것도 아니죠.”

“뭐, 그건 알고 있어요. 범용성이나 누구든 배울 수 있다는 점은 우리 대륙 검술의 자랑이잖아요.”

주안의 말에 피터나 주변에 있던 기사, 그리고 병사들도 짐짓 놀란 듯했지만, 주안이 조금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다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주안을 본다.

“예, 정확하십니다.”

피터도 이런 주안을 따뜻하게 바라보자, 그 때문인지 머쓱하다는 듯 주안이 괜히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딴청을 피웠다.

그리고 주레인 공작과 안젤라 역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표정은 서로 대조되어 있었다.

“주안이 조금 변한 것 같구려.”

“흥!”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주레인 공작과는 달리, 안젤라는 매우 언짢다는 듯, 기사들과 병사들 틈에서 웃고 떠들고 있는 주안을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주안을 빤히 바라보다, 입술을 삐죽이고는 그대로 다시 마차 쪽으로 걸어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안젤라의 쌀쌀맞은 모습에 주레인 공작이 쓴웃음을 지으며 그 뒤를 따라 마차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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