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8화
어느새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에 들어섰지만, 다들 전혀 피곤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매우 즐거워했다.
그 모습에 저택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과 하인, 하녀들이 매우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주안아, 엄마랑 같이 쇼핑갈까? 우리 주안이 새로 옷도 사고, 공연도 보고 오면 좋겠는데.”
집에 오자마자 또 쇼핑과 공연을 보며 놀고 싶어 하는 엄마의 모습에 주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온천에서 피로를 풀었다 해도, 이렇게 돌아오자마자 또 어딘가로 가고 싶어 하는 엄마의 모습은 참 대단했다.
그런 엄마에게 주안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조금 피곤해서 오늘은 그만 쉬고 싶어요. 대신 내일 같이 가요.”
“우웅…… 응. 그러면 할 수 없지.”
아쉽다는 듯 안젤라가 시무룩해졌지만, 그래도 내일 같이 가준다는 그 말에는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리는 듯했다.
주안은 그런 안젤라의 등을 떠밀어 먼저 저택 안으로 들어가게 한 뒤, 걸음을 옮겨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토미에게 향했다.
“방은 세라타가 지낼 방 바로 옆이면 되지?”
“아, 아뇨. 전 어디든 상관없어요. 공자님.”
“그래도 그게 편할 거잖아. 너도 안심일 거고.”
“그…… 가, 감사합니다.”
다시 넙죽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토미의 모습에 주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 무시무시한 토미가, 이렇게 순둥이일 줄은 몰랐다.
그래도 이번에는 좋은 인연을 가지게 되어 주안도 안심이었고, 토미도 불행한 일을 겪지 않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호위대는 각자의 할 일을 하러 흩어졌고 소니아는 안젤라와 함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 입구 근처에 남은 인원이라고는 저택 경비병과 피터 정도뿐이었다.
“저기, 공자님.”
“응?”
주안이 피터에게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 그를 빤히 바라보며, 잠시 고민하고 있던 찰나 토미가 말했다.
“괜찮다면 공자님 하인이 되고 싶어요. 안 될까요?”
“하인? 그것도 내 하인?”
“그, 그게, 제가 많이 부족하고 배워야 할 것도 많고 염치도 없긴 하지만…… 그, 그래도 공자님 곁에서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고 싶어서…….”
갸웃하는 주안의 모습에 토미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한 것인지, 화들짝 놀라며 말까지 더듬었지만, 그 말의 뜻은 주안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사실 주안이 한 행동은 토미와의 악연이자, 불행의 원인이 되었던 일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의 토미는 오히려 주안을 은인으로서 모시고 싶어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주안은 토미와 그런 관계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과거의 잘못을 갚아나가고 싶었기에 여동생을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나게 해주고 싶었고, 그 후 토미가 성년이 될 때까지 돌봐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 이후의 삶은 전적으로 토미가 정해야겠지만, 사실 주안은 피터에게 토미의 검술 지도를 부탁하고 싶었다.
그렇기에 토미가 꺼낸 하인이라는 말에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토미. 난 괜찮으니까, 그냥 네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도움을 줄 수 있는 거라면 내가 얼마든지 도와줄 수 있으니까.”
“아뇨.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공자님을 곁에서 모시는 거예요. 저뿐만이 아니라, 제 동생까지 살려주신 공자님이시잖아요.”
“그거야…….”
원수가 되기 싫어서 한 행동이라는 말은 절대 할 수가 없었다.
“꼭 그렇게 해야겠어?”
주안이 재차 물었지만 토미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고, 올곧았다.
그런 토미의 모습에 주안이 할 수 없다는 듯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럼 그 부탁, 들어줄 테니까 너도 내 부탁 한 가지만 들어줘.”
“네? 부탁이요?”
명령을 내린다고 해도 그대로 따르고 싶은 토미였기에, 부탁이라는 말에 갸웃했다.
주안이 저택 입구 근처에서 병사들에게 무언가 명령을 내리고 있던 피터에게 다가갔다.
“피터 아저씨.”
주안이 피터를 부르자, 피터가 하던 일을 멈추고는 주안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명령을 내리던 병사들을 물린 후 주안을 맞이했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아, 다른 게 아니라……. 부탁 하나만 해도 돼요?”
“……부탁이요?”
피터도 토미와 마찬가지로 주안의 부탁이라는 말에 갸웃했다.
주안은 늘 안젤라에게 부탁하지만, 엄마인 안젤라를 통해서 내려온 주안의 부탁은 명령으로 바뀌는 것이 당연했었다.
주안이 이렇게 엄마가 아닌 타인에게 직접 부탁이라는 것을 하는 모습이 너무나 낯설고 생소했지만, 어제 온천에서 이미 이러한 모습을 몇 번이나 겪어서 그런지 조금은 익숙해진 듯 피터가 태연히 주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허락에 주안이 싱긋 웃으며 쫄래쫄래 따라온 토미의 팔을 붙잡고 끌어당겨 자신의 앞에 세우고는, 피터에게 말했다.
“토미한테 검술 좀 가르쳐 주세요.”
“예?!”
화들짝 놀란 토미가 주안을 돌아보았지만, 주안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놀란 것은 피터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내 주안에게 물었다.
“이 아이에게 검을 말입니까?”
“네, 검술이요.”
주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피터는 조금 곤란해했다.
아무리 주안의 부탁이라 해도, 아무나 가르칠 수 있는 입장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안젤라를 모시는 입장이라 시간을 내는 것도 힘들었다.
그것을 다 안다는 듯 주안이 피터에게 말했다.
“그냥 가끔 시간 있을 때 봐주기만 해주셔도 돼요. 검에 별다른 재능이 없다면 그만두셔도 괜찮고요.”
“흠…….”
그 정도라면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어 보였다.
선택권은 온전히 자신에게 준 주안의 행동으로 보아, 정말 토미라는 아이에게 실력과 재능이 없다면,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으리라고 생각되었다.
또한, 주안이 곧바로 엄마인 안젤라에게 이런 부탁을 해서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것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평소 같았으면 가장 먼저 엄마에게 말하고, 떼를 써서 억지로라도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실행에 옮겼을 아이였으니까.
“사실 얘가 제 하인이 되고 싶다고 하는데, 이왕이면 검도 쓸 줄 알아서 절 지켜주고 그러면 좋잖아요.”
“흐음…….”
그건 이미 하인이라 보기 힘들지만, 이 나이의 귀족들이라면 으레 그런 호위 기사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특히 동방에선 그 곁을 지키는 호위 무사라는 것이 있었고, 모습을 숨기고 비밀리에 호위하는 자들도 있다 들었다.
오히려 이제야 이런 호위에 대한 것을 생각한 주안이 조금 늦었다고 봐도 되었다.
당연하지만, 엄마와 늘 함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엄마인 안젤라의 호위들이 늘 주안의 곁을 지켜주었으니까.
그리고 피터는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진지하게 생각했고, 오히려 이렇게 하인이자 호위를 들이겠다는 주안의 생각에 찬성이었다.
자신의 사람을 들인다는 것은, 엄마의 품에서 조금씩이나마 벗어난다는 의미였다.
아무리 안젤라를 따르는 피터라지만, 공작가를 위해서는 주안이 마냥 엄마만을 따라다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조금 고민되던 부분도, 이내 허락이라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피터가 주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시간이 날 때, 가끔 봐주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재능이 없다면…….”
“저도 재능이 없는 애를 계속 봐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염치가 없진 않거든요, 그쵸?”
“흠흠…….”
피터는 다른 말은 하지 않은 채 그저 헛기침을 내뱉었지만, 주안의 장난스러운 저 미소를 계속 보기는 힘들었다.
순간 아이가 변해도 이렇게 변할 수 있나,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생각해 보면 주안은 벌써 열다섯이다.
성격이 하루에도 열두 번은 바뀔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라는 점이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받아들게 만든다.
“그런고로, 열심히 해야 해. 하인의 일도, 검술을 배우는 일도, 둘 다 말이야.”
“하, 한 가지만 하면 안 될까요? 전 그냥 공자님 하인의 일만 해도…….”
“안 돼, 이번에는 부탁이 아니라 명령이야.”
“너, 너무하세요. 전 검 같은 거 무섭단 말이에요…….”
울상이 되어 주안에게 칭얼거리는 토미의 모습에 주안이 풋,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과거이자 미래의 검성이, 검 하나로 서방 대륙의 정점에 섰다는 인물이 검이 무섭다고 울먹이고 있다니.
이 사실을 과연 사람들은 알고나 있을까.
“그리고 딱딱하게 공자님 같은 말 하지 말고 그냥 주안 도련님이라고 불러. 검술 제대로 안 배우면 내 하인에서도 잘라 버릴 거니까.”
“으…….”
거의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은 토미를 지나쳐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주안의 얼굴에는 즐거운 미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저택 내의 하인과 하녀들이 깜짝 놀라긴 했지만 말이다.
“……재능 없으면 자를 거다.”
“아?! 아, 안 돼요!”
피터 역시 토미에게 그런 말을 하며, 저택 외부 경비를 점검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토미의 울먹이는 비명이 들려왔지만,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그의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 * *
최근 안젤라는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항상 함께하던 아들이, 최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티타임 시간도 줄었고.
공부에 힘쓰는 모습은 대견했지만, 그럴수록 엄마인 자신과 있는 시간이 줄어드니……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남편인 주레인 공작은 오히려 주안의 이런 변화를 굉장히 반기는 터라, 더욱 심통이 났다.
그날 온천에 갔다 온 후로, 안젤라와 주안의 일상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그 변화 중 가장 큰 것은 바로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이 조금씩 줄어만 간다는 것이었다.
“오늘도 그래. 티타임을 왜 다섯 번밖에 안 가지는 거야.”
“……세 시간에 다섯 번이면 그래도 충분히 많지 않나요, 안젤라 님. 그러다 배탈 나세요.”
공부 시간에는 10분마다 티타임을 가지던 때와 비교하면 충분히 줄었지만, 타인이 보기엔 여전히 지나치게 많은 티타임이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이 줄자, 자연스럽게 안젤라와 주안이 함께 있는 시간도 줄어들었고, 그러다 보니 안젤라의 허전한 마음이 채워지질 않았다.
“오늘은 또 방에서 책을 읽고 있다며?”
“공작님 서재에 있던 책들을 몇 권인가 가져갔다고 들었어요.”
“공부는 그냥 유능한 학자들 데려와서 곁에 두고 알아서 척척 해나가게 하면 되는데.”
“그래도 조금은 공부를 하는 게 좋잖아요. 나중에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는데,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야~’라는 소리를 들을 순 없잖아요.”
“흥, 난 우리 애랑 계속 같이 살 거거든? 며느리라니, 소름 끼쳐. 농담으로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
“…….”
절대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안젤라의 말에 소니아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이랑 쇼핑 가고 싶어, 우리 애랑 바다에 놀러 가고 싶어, 주안이랑 아빠 집에 놀러 가고 싶어…….”
아빠 집이라는 말에 소니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따지고 보면 아빠 집이 맞긴 했다.
……아빠 집이 황성이라는 엄청난 곳이라는 것만 제외한다면, 딱히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최근에는 거의 하지 못 했었다.
쇼핑이나 공연, 귀족들의 연회에는 가끔 참석했지만, 어디 멀리 놀러 가는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안젤라는 더더욱 침울해졌고, 그런 안젤라를 보다 소니아가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그거 아닐까요?”
“그거라니.”
잠시 말을 머뭇거리던 소니아가 안젤라의 눈을 슬쩍 피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사춘기요. 딱 사춘기 아이들이 하는 행동이잖아요. 혼자 있고 싶고, 무언가를 숨기고, 몰래 야한 책을 보고…….”
“안 돼! 우리 애가 사춘기라니?! 우리, 우리 애가…… 내 아들이, 주안이가…….”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바들바들 몸을 떨던 안젤라가 그대로 픽 하고 쓰러져 버렸다.
그렇게 될 것을 마치 예상이라도 한 듯, 곁에 있던 소니아가 그녀의 몸이 바닥에 쓰러지기 전 마법으로 폭신한 공기층을 형성해 부드럽게 받아내었다.
“……대신관님 좀 불러줘요.”
그리고 조용히 곁에 있던 하녀에게 부탁하였고, 하녀 역시 익숙하다는 듯 놀람 없이 조용히 방을 나서, 대신관을 부르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