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6화 (6/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6화

주안이 상처를 입고 돌아오자 내부가 발칵 뒤집혔다.

아니, 그 상처도 문제였지만, 뜻하지 않은 더 큰 일이 터져 버렸다.

“시, 신관! 대신관! 대신…… 관…….”

“엄마?!”

엄마인 안젤라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지르다 쓰러져 버리자,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버렸다.

이곳 휴양지의 의사라는 의사는 모조리 다 부르고, 신관이라는 신관은 모두 데리고 오는 일까지 벌어졌다.

게다가 피터가 진짜 황도에 연락해서 대신관을 찾았다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하여튼 이상할 정도로 꽉 막힌 것도 모자라 엄마 말이라면 불구덩이라도 들어갈 아저씨라니까.’

그것을 주안이 말리긴 했지만, 오히려 매우 불만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기에 엄마뿐만이 아니라 엄마의 측근들 모두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안 도련님, 근데 진짜 괜찮으세요?”

“조금 긁힌 것뿐인데요, 뭐.”

“네? 하지만…….”

주안의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그 말에 소니아 펜이 갸웃했다.

예전에도 한 번 넘어져 무릎에 파랗게 멍이 든 일이 있었는데, 그땐 얘가 열 살이 넘은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울면서 엄마를 찾던 마마보이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냥 또래의 애들 정도로 보일 뿐이다.

조금 다친 것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침만 바르면 낫는다는 생각을 하는 그런 애들 말이다.

엄마를 방에 눕혀준 후 간호를 하던 주안이, 곁에 있던 소니아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보다 저랑 같이 온 애는 괜찮아요?”

“뭐, 걘 주안 도련님보다 심하게 긁히긴 했지만, 도련님 말대로 흉터 하나 안 남기고 제대로 치료해 놓았어요.”

신관들이 많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좀 긁힌 상처 정도는 정말 흉터 하나 남기지 않고 치료해 준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그보다 이 일로 또 그들에게 상당한 성금과 기부금을 낼 엄마를 생각하니 주안은 머리가 아파왔다.

물론 그게 자기 돈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까운 것은 아까운 것이었고, 빈민 생활을 하던 자신을 떠올리니 엄마에게 잔소리라도 해주고 싶었다.

물론 엄마 앞에서는 그런 말이 목 끝에서 다시 삼켜졌지만.

“그런데 진짜 그 애가 도련님 구해준 것 맞아요?”

소니아의 말에 주안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영 미심쩍었다.

주안의 말로는 발을 헛디뎌 연못에 빠졌는데, 그것을 지나가던 토미라는 아이가 구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마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두 사람, 아니, 토미라는 그 아이의 상태가 좀 이상했다.

딱 봐도 어리숙한 꼬맹이가, 되지도 않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게 얼굴에 다 쓰여 있었다.

무뚝뚝한 피터는 주안의 말이 설령 거짓이라 해도 그것에 대해 토를 달지 않고 그대로 따라주겠지만, 소니아는 그게 아니었다.

눈치가 빠른 것도 있지만, 안젤라의 호위를 한 지 그렇게 오래된 것도 아니고, 주안을 만난 것도 긴 시간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할 말은 오히려 하는 여성이기도 했다.

그것을 알기에 주안이 소니아에게 작게 말했다.

“그냥 그렇게 제가 말한 대로 해주세요.”

“어째서요?”

“그게 서로에게 좋잖아요. 엄마가 알면 분명 화를 내실 거고, 그 아이에게 해코지하시진 않겠지만, 간접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러면 또 엄마는 다른 사람들에게 손가락질받잖아요. 전 그런 거 싫어요. 엄마가 저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소리 듣는 것도 싫어요. 제가 조금만 참으면 엄마에 대한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있잖아요.”

확실히 주안의 말대로 주안의 상처가 자신 스스로의 실수가 아닌 타인에 의해서 난 상처라면 정말 큰 일이 날 수가 있었다.

아들에 대한 안젤라의 사랑은 제국 내에서만이 아니라 타국에서도 유명할 정도였다.

만약 이런 일로 불같이 화를 낸다면 사교계의 즐거운 가십거리가 되기 좋을 것이다.

물론 아이에게 해코지하는 그런 성격은 아니나, 이곳의 주인에게 단단히 화낼 수 있었고, 당연히 아이에게도 그 화가 미칠 것이다.

주안이 그런 부분을 생각하고 있었다는 점이 소니아에겐 내심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저나 엄마에게, 우리 가족에게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경우에도 용서할 생각은 없고, 엄마를 말릴 생각도 없어요. 하지만 이번 일은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그런 부분이니까요. 일종의, 선행이죠?”

주안은 엄마의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정리해주다, 소니아를 보며 싱긋 웃어주었다.

“선행은 언젠가 돌아온다고 엄마가 그랬어요. 그래서 저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결국, 엄마를 계속 언급하는 것을 보면 엄마만 찾는 마마보이이지만, 그렇다고 대책 없는 마마보이로는 절대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인지 소니아도 생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도련님, 조금 어른이 된 것 같네요?”

뭐라고 할까, 이곳에 와서 정말 주안에 대해 계속해서 새롭게 보는 것만 같은 소니아다.

아니, 소니아뿐만이 아닌 함께 온 호위나 하녀와 하인들 모두가 그럴 것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 걱정스럽던 공작가의 후계자인 주안이 조금씩이나마 변하고 성장했다는 것에 모두가 한 시름 덜고 조금은 안심을 할 수 있었다.

* * *

주안이 엄마를 잠시 살펴보다 토미를 보러 방을 나가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안젤라가 눈을 뜨며 침대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런 안젤라를 보며 소니아가 말했다.

“안젤라 님, 꾀병이셨어요?”

“꾀병이라니. 진짜 기절했었다니까.”

“그런 것치고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시는데…….”

소니아의 말에 안젤라가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해맑은 미소를 머금으며 베개를 꼬옥 끌어안았다.

“우리 아들이, 우리 주안이가 저런 말을 다 하다니…….”

“저도 조금 놀랐어요. 주안 도련님에게 저런 면이 있으실 줄은…….

“아앙~ 우리 주안이, 다 컸어. 정말 훌륭하게 잘 자랐어. 엄마는…… 엄마는!”

“정신 좀 차리세요, 안젤라 님.”

“하아, 하아. 우리 아들, 아들……. 사랑해, 우리 아들!”

“…….”

볼을 발갛게 붉히며 베개를 마치 아들, 주안인 것처럼 생각하며 꼬옥 끌어안고 아들의 이름을 외치며 넓은 침대 위를 굴러다니는 공작부인의 모습은 정말 섬뜩했다.

그리고 소니아는 확신했다.

주안이 마마보이기는 해도, 선을 잘 지키는 수준이지만, 안젤라의 아들 사랑은 선 따윈 저 멀리 걷어찬 집착이라는 것을.

그리고 안젤라의 호위가 된 것에 처음으로 아주 조금 후회하게 되었다.

* * *

안젤라가 정신을 차리기까진 꽤나 시간이 걸렸고, 그 때문에 늦었지만, 아직 저녁도 못한 일행들은 다시 넓은 홀에 모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불려간 토미는 잔뜩 긴장해서, 여전히 자신의 머리카락보다 더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있었다.

그런 토미에게 안젤라가 말했다.

“그래, 우리 주안이를 구해주었다 들었다. 맞느냐?”

“그, 그게…….”

안젤라의 말에 토미가 머뭇거리며 그 곁에 있는 주안을 보았지만,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보자 할 수 없다는 듯 토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젤라가 주안과 토미를 번갈아가며 흘겨보다, 귀엽고 대견한 그 거짓말에 동참해 주기로 결심한 듯 말했다.

“내 너에게 큰 보상을 해주고 싶구나. 뭐든 말하거라. 우리 아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일이라면 내 뭐든 다 들어주마. 귀족이 되고 싶다면 나의 아버님이나 남편에게 부탁하여 귀족으로 만들어줄 수도 있느니라.”

“아, 안젤라 님?!”

뜬금없는 그 발언에 함께 온 호위와 하인, 하녀들을 포함한 모두가 깜짝 놀랐다.

과해도 너무 과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진짜 해줄 수 있는 안젤라의 힘을 잘 알고 있는 사안이었다.

문제는 그 발언이 가져올 파장이다.

아들이 조금 다친 걸 구해주었다는 이유로 귀족으로 만들어준다는 그 발상 자체가 평범한 사람들과는 너무나 거리가 있었다.

안 그래도 아들과 관련된 일로 여타 사람들의 시선이 썩 좋지 않은데, 이런 상황에서 대뜸 아들을 도와준 이유만으로 귀족으로 만들어준다면 가십거리도 이런 가십거리가 없을 것이다.

공작 가문에 대한 쓴소리만이 아니라 황실에 대한 불신마저 생길 수 있는 발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걱정한 호위대의 기사들이나, 측근인 피터와 소니아 역시 이런 안젤라를 말리기 위해 나서려 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주안이 엄마에게 말했다.

“그건 너무 과하고 공정하지 못한 일이에요. 절 도와준 건 맞지만, 그렇다고 이런 이유로 저 아이에게 귀족 작위를 내려주면 여타 귀족들의 불만이 커질 거예요. 엄마에 대해서 좋지 않은 소리도 나올 거고요.”

“하지만 우리 아들을 도와준 고마운 아이인데…….”

“고마움에 대한 보상은 다른 방법도 많잖아요. 그리고 저 아이가 정말 원하는 보상은 따로 있을 수도 있고요.”

“웅…… 알았어. 우리 아들이 그렇게 말을 한다면……. 그러면 방금 했던 말은 취소.”

아들의 지적에, 생긋 웃으며 본인의 발언을 철회하는 모습도 충분히 이상했지만, 그래도 다행이었기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그러면 무슨 소원이라도 있느냐?”

“그건…….”

“아니면 정말 귀족이 되고 싶은 것이더냐.”

“아, 아닙니다. 절대 아닙니다.”

귀족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그러한 것이기에 토미가 고개를 황급히 가로저었다.

그 모습 또한 모두를 안심시키기에는 충분했다.

그리고 토미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 넙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며 안젤라에게 말했다.

“도, 동생을 살려주세요.”

“동생?”

“네, 제 동생이 매우 아픕니다. 동생을, 제발 동생을 살려주세요.”

동생이라는 말에 주안이 움찔 놀랐지만, 내색하지 않은 채 엄마인 안젤라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 듯 안젤라가 근처에 있던 소니아에게 말했다.

“신관을 데리고 저 아이와 함께 집으로 찾아가서 상태를 살펴보거라. 그 자리에서 치료할 수 있으면, 치료를 해주고, 힘들면 이곳으로 데리고 오도록 하거라.”

“네, 안젤라 님.”

그래도 나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식 석상이라 그런지 소니아에 대한 말투는 평소와는 달랐다.

이런 공과 사는 구분할 줄은 알지만, 어째서 자꾸 아들과 관련되면 사람이 이상해지는 것인지 소니아로선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우리 아들에게 하거라. 그치? 우리 아들~”

“으음…….”

안젤라는 담담하게 말을 하다 말고, 주안을 껴안고 볼을 비비며 간들거리는 목소리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주안도 이런 엄마의 모습이 참으로 오랜만이라 적응이 잘 안 됐다.

토미는 소니아와 함께 밖으로 나가면서도 연신 안젤라와 주안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런 토미의 모습을 보며 주안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런 애에게 대체 엄마와 난 무슨 짓을 저질렀던 거지.’

그때도 이렇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토미도 아픈 일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자신과 엄마 그리고 가문과 제국에도 토미라는 절대자와 척을 지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가문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제국은 살아남을 거라는 생각에, 주안 자신이 얼마나 멍청하고 생각이 없었던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자, 그러면 조금 늦었지만, 우리는 저녁을 먹을까?”

“시간은 좀 걸려도, 우리 여기서 다 같이 먹어요.”

“응? 여기서?”

“네, 어차피 여기 홀도 연회용으로 마련된 곳이잖아요. 간단하게 준비해서, 우리 다 같이 먹어요.”

“어머나?”

주안의 말에 엄마인 안젤라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있던 호위들 모두가 놀라 주안을 바라본다.

남에 대한 배려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던 공작가의 후계자.

엄마의 말 외에는 귀에 담지도 않는 마마보이.

그런데 오늘은 조금, 아니, 많이 달랐다.

특히 주변의 호위대를 배려하는 것에서 많은 이들이 주안을 달리 보기 시작했고, 그것은 매우 좋은 징조였다.

안젤라는 그런 주안의 말에 기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그러면 경비는 이곳 주인장에게 맡기고, 오늘은 호위대 전부 여기서 저녁을 먹는 거로 하지.”

안젤라의 말에 하녀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인 후 홀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고, 표정 역시 무척이나 밝았다.

단순 하녀들뿐만이 아니라 호위대 전체가 다 그랬다.

대귀족도 쉽게 방문할 수 없는 이곳에서 온천 목욕을 즐기고 마사지를 받고, 거기다 저녁 식사까지 함께하는 것은 인생에서 한 번도 겪지 않을 그러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러한 배려를 해준 것이 주안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오늘 저 마마보이 공작가의 후계자가 왜 이렇게 해주는 것인지는 몰라도, 좋은 변화라는 것 정도는 다들 잘 알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