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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5화 (5/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5화

‘우브브븝?! 으븝…… 읍?’

주안은 잠시 연못에서 버둥거리다, 문득 손이 바닥에 닿는 것을 느끼고는 갸웃하며 조심스레 바닥을 짚고 일어났다.

“후읍, 하아…….”

얕다. 작은 키를 가진 자신의 무릎에도 겨우 닿는 깊이의 연못이라는 점을 왜 깨닫지 못했을까.

그렇게 연못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보다…… 얜 뭐야?”

연못에서 일어난 자신과는 달리 연못 속에서 누군가가 버둥거리며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흐릿하지만, 연못 너머에서 얼굴도 보이는데, 매우 절박해 보인다.

주안은 그런 그를 보며, 자신도 저런 망측한 모습이었나 하는 생각에 부끄러워졌다.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도 보고 있는 사람은 없었다.

주안은 그 사실에에 안심하며 손을 뻗어 연못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었다.

“웃챠!”

“케헥?! 콜록! 콜록!”

건져내고 보니 자신의 또래로 보이는 아이였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이라는 게,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물에 푹 젖은 채 밖으로 나와 먹은 물을 토해내고 있는 아이.

그 모습이 참 딱해 보였기에 주안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등을 토닥여주었다.

“가, 감사합…… 니다.”

“감사 이전에, 날 떠민 게 너야?”

“죄송합니다……. 너무 급하게 달려가다……. 앞이 안 보여서…….”

“흠…….”

앞이 안 보였다는 말이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연못에 둥둥 떠다니는 짚단과 주변에 제멋대로 굴러다니는 것들을 보자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말 먹이인지, 아니면 마구간에 깔아줄 것인지 바싹 마른 짚은 질이 무척 좋아 보였다.

그래도 한때, 짚을 깔아 침대로 만들어서 지냈기에 좋은 짚과 나쁜 짚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았다.

“어디 다친 곳은 없고.”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등을 토닥여 주며 물었지만 그 아이는 계속 죄송하다는 말만 내뱉었다.

아무래도 이곳은 고급 휴양지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죄다 귀족이라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실수에 대해 그저 사과를 할 수밖에 없는 평범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게 마냥 유쾌한 모습이 아니었기에 주안이 아이를 똑바로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괜찮다니까. 그보다 너 진짜 괜찮은 거 맞아?”

“네, 네. 괜찮…… 히익?!”

“응? 왜?”

“파, 파, 팔에…….”

새파랗게 질린 아이의 얼굴을 보기 참 재미있었지만, 왜 그렇게 당황하는지 몰라 주안이 갸웃했다.

그것보다 아이의 모습은 꽤나 특이했다.

뭐, 이곳에서 가장 좋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사정이 딱한 아이로 보였지만, 그 외모가 범상치 않았다.

새하얀 머리카락도 특이했지만, 피처럼 빨간 눈은 보는 사람을 꺼림칙하게 만드는 그런 게 있었다.

무엇보다, 이런 얼굴을 언젠가 한번 봤던 기억이 있다는 게 문제다.

정확히 무언가 떠오른다기보단, 매우 불쾌한 기억이었다.

그보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아이가 더듬거리며 자신의 팔을 가리키자, 주안은 대체 왜 그러는가 싶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오른쪽 팔을 바라보았다.

“……피네?”

버둥거리다 긁혀서 그런지 작은 상처에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그 아이를 보니, 그 아이 역시 마찬가지로 팔꿈치와 팔에 긁힌 자국이 잔뜩 있었다.

오히려 주안 자신보다 더 심하게 버둥거린 탓에 잔뜩 긁힌 듯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냅다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는 아이의 행동은 재빨랐고, 너무나 절박해 보였다.

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이해가 되었지만, 또래 아이가 이렇게 사과를 하는 것이 편치는 않았다.

힘이 없었을 때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괜찮으니까, 그만 일어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

“우, 으…….”

주안이 그 아이를 토닥이며 억지로 몸을 일으켜 세우다 흠칫 놀랐다.

얼굴이 완전 눈물범벅이 되어, 두려움에 벌벌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을 본 주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재차 아이를 다독였다.

“그보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마, 말들한테 쓸 건초가 부족하다고 해서……. 주문이 들어와서, 옮겨주려고…….”

“으음……. 하긴, 병사들도 말을 이용해서 마구간이 미어터지긴 할 테니까.”

인원에 대해선 대략 전달받았겠지만, 이 온천의 주인장이나 지배인은 설마 함께 온 병사들도 전부 말을 타고 올 거라는 상상은 못 했을 것이다.

마구간에 말을 모두 넣을 수도 없었는지 정원 한쪽에 임시로 만든 마구간에 말들을 집어넣고 건초를 잔뜩 옮기고 있는 중인 듯했다.

예전에 더 많은 인원을 데리고 왔던 일이 있었지만, 그땐 병사들에게 말이 지급되진 않았었다.

이번에는 별다른 준비도, 계획도 없이 즉흥적으로 오는 것이 결정되는 바람에 빠른 이동을 위해서 모두 말을 이용한 것이니까.

“넌 여기 일꾼이 아니구나.”

“예, 예. 그냥, 불러주는 곳에서 심부름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잡일을 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가 없는 탓에 스스로 무언가를 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렇게 이곳저곳에서 불러서 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일을 가릴 수도 없고, 가릴 처지도 아니었다.

주안이 과거로 돌아오기 전, 나이만 먹지 않았다면 똑같은 일을 했을 수도 있었다.

그만큼 당시의 주안은 절박했었다.

“그래, 대단하네. 나랑 나이도 비슷해 보이는데.”

“…….”

주안의 말에 아이가 눈물을 그치고 멍하니 주안을 바라보았다.

그 말이 정말 진심인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다정하고 따스하게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자신처럼 이런 일을 하는 아이들은 귀족들에게 제대로 다가갈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다가가면 잔뜩 찌푸린 채 한 소리를 들을 때도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자신의 등을 토닥여 주고 안심시켜 주는 말을 하는 귀족은 처음이었다.

“그런데 너 이름은 뭐니? 나이는?”

“아, 저, 저는…….”

잠시 머뭇거리던 그 아이가 옷소매로 대충 눈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토미라고 해요. 올해 열다섯 살이에요.”

“나랑 동갑이구나. 그런데 이름이 토미라고? 좋은 이름…… 이네?”

안심을 시켜주기 위해 웃던 주안의 표정이 순간 잔뜩 굳어졌다.

하얀 머리카락, 빨간 눈.

그리고 토미라는 이름과 나이.

이곳에 있는 것을 보면 제국 출신의 아이로 보였다.

그리고 종합한 정보와 미래의 어떤 한 인물을 대조해 본 주안이 경악하여 소리쳤다.

“거, 거거거거거거거…… 거!”

“예?”

갑작스러운 주안의 행동에 토미가 갸웃했지만, 주안은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말을 삼켰다.

토미.

아니, 그 이름보다 더 유명한 아명이 있었다.

서방 대륙 제일 검.

검성, 토미.

* * *

동방에 패검 귀왕무가 있다면 서방에는 검성 토미가 있었다.

두 대륙 최강의 검사들이었고, 누가 우위에 있는지는 제대로 된 결투를 벌인 적이 없어서 알 수가 없었지만, 각 대륙 최고의 검을 가진 자라면 저 둘만이 언급된다.

서방 대륙에 단 셋만 등장했다는 랭크 8의 검사.

서방 대륙에 존재하던 모든 랭크 7의 기사와 검사를 꺾은 자.

제국 제노폴의 심장에 마지막 칼을 찔러 버린 자.

그가 검을 휘두르면 아무리 단단한 성문이라고 단번에 갈라졌고, 멀리 떨어져 있다 해도 그의 시야 내라면 그의 검을 피할 수 없었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제노폴 제국의 랭크 7의 기사이자 황실 근위대 단장 바스티아노 백작을 죽임으로써 당대에 남아 있던 모든 랭크 7의 기사는 그의 손에 의해 쓰러졌다.

그리고 그는 공식적으로 랭크 8이라는 새로운 절대자가 되었다.

“저기……?”

경악에 빠진 채 말을 잇지 못하는 주안의 모습에 토미가 이상하다는 듯 갸웃한다.

설마 하는 생각이 교차하다, 문득 아득히 오래된 기억이 점차 떠오르기 시작했다.

주안은 확실히 멍청하다 할 정도로 공부를 안 했고, 그만큼 학식도 없었고 기억력도 좋지 않았다.

때문에 자신의 가문과 제노폴 제국 자체에 반기를 들었던 여러 영주와 타 왕국의 편에 섰던 검성 토미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저 그가 왜 자신의 가문과 제국에 검을 들이댄 것인지, 죽는 그 날까지도 전혀 몰랐었다.

그만큼 주안 자신은 멍청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서, 토미를 만나고 지금의 상황이 일어나자, 한쪽에서 잠자고 있던 기억의 파편을 겨우 살펴볼 수가 있었다.

‘……여기에 오는 것은 이미 예정된 일이었어. 엄마가 결정했던 일이었으니까.’

갑작스럽고 즉흥적이긴 하지만, 그날도 이렇게 이곳을 찾았을 것이다.

지금과는 달리 엄마인 안젤라와 자신만 즐기는 휴양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때도 똑같이 병사들도 말을 타고 오는 바람에 마구간은 미어터졌고, 정원 한쪽에 마련된 마구간에 잡부들이 마른 짚을 가지고 갔었다.

시간은 달랐지만, 산책하던 중에 밤늦게까지 일하던 아이와 부딪쳐 넘어지는 바람에 지금과 비슷한 상처를 입었었다.

그 일 때문에 엄마인 안젤라가 크게 화를 내며 이곳의 주인과 지배인을 나무랐었다.

‘그때 난 뭘 했지……?’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토미가 어떻게 됐는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당연했다.

‘내겐 별로 의미 없는 인물이었으니까.’

그 당시에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라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할아버지와 삼촌 등의 가족뿐.

그 외에는 신경을 쓸 필요가 없는 존재들일 뿐이었다.

자신의 세상은 딱 그 정도였고, 그 이상은 다른 사람들의 삶이었을 뿐이었다.

‘……분명 검성은 가족 때문에 검을 들었다고 했어.’

그 가족과 자신이, 제국과 무슨 관계가 있었던 것인지는 생각을 못 했지만 말이다.

주안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호, 혹시 너…… 가족은, 있어?”

“네? 여동생이 한 명…….”

“…….”

확실했다.

토미는 그 일로 쫓겨나게 되었을 것이다.

단순히 쫓겨나기만 했을까? 이 휴양지, 이 도시에 발도 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그만큼 엄마의 힘은 막강했고, 엄마의 눈치를 봐야만 하는 사람들, 이 도시의 사람들은 토미에게 좋지 않은 대우를 했을 게 분명했다.

그 때문에 여동생에게도 무슨 일이 있었을 것이고, 그 원인을 제공한 자신과 자신의 가문, 어머니와 어머니의 가문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주안의 엄마인 안젤라는 단지 이 일에 대해서 따졌을 뿐이지만, 그 결과까지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

당시 자신에게는 그만한 힘이 있었고, 책임 따윈 생각지 않아도 될 신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책임을 져야만 하는 토미에겐 그런 신분은 전혀 없었다.

“너, 이거 절대 누구한테 말하지 마.”

“예?”

“내가 실수로 넘어졌고, 연못에 빠졌어. 그러다 지나가던 네가 날 구해준 거야. 이 상처나, 네 상처는 모두 그거 때문에 생긴 거야. 알겠어?”

“하지만…….”

“하지만이고 뭐고, 그냥 그렇게 해. 우리 엄마가 누군지 알아?”

대뜸 엄마가 누군지 물어보면 그걸 어떻게 알겠냐고 따져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그러기에는 이곳에 머물고 있는 인물에 대한 소문이 심상치 않았다.

그렇기에 토미도 대충이나마 알 수가 있었다.

이곳에 온 공작부인, 안젤라와 그의 아들인 주안.

비슷한 또래의 남자아이. 거기다 대뜸 엄마까지 언급하는 것을 보면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제국 제일의 마마보이.

주안 마르티네스였다.

토미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는 척을 하자 주안이 말했다.

“그래, 그럼 우리 엄마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알지?”

“그, 그야…….”

“만약 내가 다쳤다는 걸 알면, 그리고 그게 너 때문이라는 걸 알면 분명 엄청 화내실 거야.”

“히익?!”

황제와 황태자를 제외하면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공작가의 안주인, 그것도 현 황제의 딸인 공작부인이 화를 낸다.

자신 같은 아이는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토미의 얼굴이 머리카락 색만큼이나 창백해졌다.

그런 토미의 모습에 엄마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이 되고 있는지 깨달은 주안이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난 그렇게 되는 거 바라지 않아. 우리 엄마가 화를 내고, 너처럼 어린아이가 다치면 또 우리 엄마는 욕만 먹을 테니까.”

“하, 하지만…….”

“내가 괜찮다니까. 그리고 이건 널 위한 게 아니라 우리 엄마를 위한 거니까.”

“아, 네…….”

마마보이라 불리는 주안이 그렇게 말을 하자, 조금 찜찜하긴 해도 엄마를 위한다는 말이 묘하게 신용이 갔기에 토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음, 일단 그러면 너도 좀 치료나 받자.”

“네?! 저, 저는 괜찮습니다. 정말 괜찮아요.”

“내가 안 괜찮다고.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다친 애를 내버려 두고 갈 정도로 난 매정하지 않거든?”

“이런 건 침만 발라도 낫는 건데……!”

“침 바르면 상처 덧나거든. 그런 것도 모르…… 겠구나.”

마땅한 치료법도 모르고, 그렇다고 약을 살 돈이 있지도 않은, 사정이 어려운 토미 같은 시민들은 민간요법에 많이 의지한다는 것 정도는 주안도 잘 알았다.

빈민이 되었을 때의 주안도 그 민간요법에 의지했으니까.

하지만 침을 바르면 낫기는커녕 상처만 덧난다는 상식은 있었다.

“어쨌든 내 탓도 있으니까, 상처 정도는 내가 치료해 줄게.”

“공자님…….”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짐을 잔뜩 들고 달려온 토미의 잘못도 있었지만, 그런 토미를 보지 못하고 멍하니 있던 자신의 잘못 역시 어느 정도 있었다.

그렇기에 신경을 써주는 것도 있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더 컸다.

‘……원수가 되지 말자, 절대로!’

그리고 적당한 호감도를 쌓아서, 가문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유도하자.

주안이 토미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은 계산된 일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래에선 원수가 되어 가문과 제국을 망하게 하는 데 일조한 토미인데, 그런 토미에게 호감을 사놓는다면?

가문이 위험해졌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지금 당장이야 제대로 먹지도 못해 잔뜩 마른 꼬맹이일지라도 서대륙 최강의 검사인 검성이 되었을 정도로 재능은 빼어났다는 의미다.

결국, 언제가 되었건 토미는 두각을 드러낼 것이고, 자신의 힘으로 정점에 설 녀석이었다.

“자, 가자.”

“고, 공자님…….”

거의 반쯤 울상이 되었지만, 지금의 토미는 주안이 손을 잡고 이끌면 이끄는 대로 따라올 수밖에 없는 연약한 아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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