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4화
엄마인 안젤라의 최측근인 피터 몰디나와 소니아 펜.
이 두 사람은 주안에게도 매우 특별한 사람들이었다.
피터 몰디나는 엄마인 안젤라가 공작가로 시집을 올 때, 외할아버지의 명령에 따라, 엄마의 근거리 호위를 위해 근위 기사단을 탈퇴하고 흔쾌히 공작가로 온 인물이었다.
무뚝뚝하고 말수도 적으며, 서방의 검을 다루는 기사답게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성이었다.
이제는 40대의 중년이 되었지만, 여전한 검술 솜씨는 웬만한 근위 기사단의 기사들보다 우수하다는 평을 받았다.
문제는 안젤라만을 따르며, 공작 가문의 여타 기사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하는 탓에 좀 겉돈다는 것이었다.
“피터 아저씨, 진짜 온천 안 즐겨도 되는 거예요?”
“전 괜찮습니다.”
엄마의 허락을 받고 온천을 다 같이 교대로 즐기자고 말하자, 호위 임무를 받은 기사나 마법사, 거기다 일반 병사에 하인과 하녀들까지 모두 환호의 소리를 내질렀다.
그동안 안젤라를 따라다니며 이런 휴양 시설을 수없이 다녔지만, 단 한 번도 즐겨보지 못했던 이들이었다.
그런데 웬일로 이런 최고급 휴양 시설에서 즐길 수 기회를 준다고 하니, 다들 매우 기뻐했다.
그리고 이 일을 주안이 먼저 제안했다는 말에, 그들이 주안을 조금은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환호 속에서 피터 몰디나는 그것을 거절했고, 여전히 안젤라의 뒤를 따라다니며 호위 임무를 계속했다.
그것을 보다 못한 주안이 다시 말을 꺼냈지만, 돌아온 답은 여전히 거절이었다.
그런 피터 몰디나를 보던 소니아 펜이 실실 웃으며 말했다.
“이 목석같은 아저씨는 내버려 두라니까요. 그보다 주안 도련님. 정말 고마워요. 여기 오고 싶어 하는 귀족들도 엄청 많았는데, 우리 같은 사람들은 꿈도 못 꾸는 장소라니까요.”
일반인은 말 그대로 꿈도 못 꾸고, 웬만한 귀족들은 큰 결심을 해야 하며, 유력 귀족들도 전체를 빌리는 게 아닌, 한 층을 빌리는 게 최선인 곳이다.
그런 곳을 통째로 빌린 안젤라가 모두에게 즐길 기회를 준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주안이 한 것임을 알게 된 소니아 역시 주안을 정말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동방 대륙에선 흔하지만, 이곳 서방 대륙에선 남쪽으로 내려가야 조금 보이는 까만 단발 머리카락을 한 소니아 펜은, 동방의 가문이던 펜 가문이 제노폴로 넘어와 정착하게 되면서 생긴 가문의 후손이었다.
때문에 옅지만, 아직까지 동방의 피가 흘러, 조금 작은 키와 까만 머리카락 그리고 약간 갈색빛 피부를 지닌 귀여운 여성이었다.
나이는 스물둘, 랭크 3에 위치한 마법사로 마르티네스 공작령 내에 위치한 펜 남작 가문의 여식이기도 했다.
3년 전 펜 남작 가문에 방문한 안젤라의 눈에 띄어 호위로 발탁되었다.
이 결정에 펜 가문의 대부분은 환영했지만, 부모님은 얼른 시집이나 좀 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물론 소니아 펜, 본인은 결혼 생각이 없으며 안젤라의 호위에만 충실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하다.
“그럼 전 먼저 온천을 즐기러 갑니다~ 피터 아저씨는 수고해 주세요~”
레이디 퍼스트 때문인지 소니아를 위시한 몇 명의 여 마법사와 기사들이 먼저 자리를 뜨자, 남은 것은 남자들밖에 없었다.
그래도 딱히 상관은 없었으며, 다음은 자신들 차례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주안 도련님.”
“네?”
“도련님은 마사지 받으러 들어가시지 않아도 정말 괜찮습니까?”
“이미 받고 나왔다니까요.”
“하지만…….”
안젤라와 함께 온천 목욕을 끝내고 마사지도 받았지만, 주안은 먼저 나와 다 같이 온천 목욕을 하자는 말을 전했다.
하지만 아직 안젤라는 마사지를 받는 중이었고, 피터는 이런 주안이 조금 의아했다.
엄마가 하는 것이면 뭐든 같이, 그리고 함께했던 주안이, 이렇게 엄마와 따로 떨어져 있는 모습 자체가 피터에겐 생소했다.
그리고 이런 피터의 생각을 눈치챈 듯, 주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가끔 이렇게 아저씨들이랑 있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서요. 괜찮죠?”
“흠…….”
배시시 웃는 주안의 얼굴을 보다, 피터가 작게 헛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것은 주변에 있는 다른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안이 엄마의 치마폭에 싸여 마마보이라는 좋지 못한 소리를 듣긴 하지만, 단적으로 보면 이 아이는 공작 가문의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이고, 황실의 피를 이어받은 고귀한 혈통이기도 했다.
단점이 너무 커서 그렇지, 그것을 제외하면 충분히 좋은 아이라는 점은 다들 알고 있었다.
엄마를 닮아 외모도 빼어나고, 혈통은 황제와 황태자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축에 들었으며, 재력은 황실에 버금간다는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이었고, 공작부인이 되었다지만 안젤라의 재산도 만만치 않았다.
누가 봐도 1등 신랑감이고 고귀한 혈통과 배경, 재력까지 갖춘 인물이 바로 주안이었다.
단점만, 그놈의 마마보이라는 단점만 없었다면 벌써 혼담이 줄을 잇고, 쫓아다니는 여자들도 굉장히 많았을 텐데…….
그 단점과 어머니라는 존재가 너무나 강력했기에 지금 이 꼴이지만 말이다.
“안젤라 님에게 그런 일만 없었어도…….”
“네? 피터 아저씨?”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기는 하나, 공작부인인 안젤라의 유산은 크나큰 정신적 충격으로 다가왔던 일이었기에 다들 쉬쉬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그 사실을 알기에, 안젤라의 이런 극성스러운 아들 사랑에 대해서 사람들이 심각하게 손가락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어머니기도 했으며, 누군가의 아들이자 딸이기도 했던 입장이었으니까.
공작부인의 아들에 대한 집착과 기행을 보며, 그러려니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단지, 그 아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울 따름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지금 자신들 곁에 있는 주안은, 마냥 엄마 치마폭에만 있는 아이 같지는 않았다.
적어도 지금은 조금 벗어나려는 노력은 하는 아이로 보였기에, 이곳에 남은 피터나 다른 기사들이 주안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 *
“심심하다…….”
엄마는 아직 피부 미용에 푹 빠져 있어서 그런지 이야기를 할 대상도 없어 방 안에서 뒹굴거릴 수밖에 없었던 주안은 심심함에 괴로워했다.
“그냥 마사지나 더 받을 걸 그랬나.”
그러면 적어도 이런 심심함은 좀 떨쳐낼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하녀들까지 포함해서 여성들 모두가 온천욕을 즐기고 있는 탓에 시커먼 남자들밖에 남지 않았다.
문제는 그 시커먼 남자들이 죄다 무뚝뚝한 기사들과 훈련을 잘 받은 병사들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모두 연상.
아저씨들이라는 점이 주안을 슬프게 만든다.
“지금 나이로 보나, 이전의 나이로 보나 대화 상대는 아니지만.”
지금 나이로 보면 다들 아저씨들이었고, 과거 나이로 보면 모두 아이들이었다.
농담도 안 통하는 기사와 병사들이라는 점도 한몫했다. 검을 잘 다룬다는 것을 제외하면, 참 재미없는 존재들이 기사와 병사들이었다.
그들은 술자리에서도 기사단에서 있었거나, 어디 영지에서 훈련받은 일, 군에서 있었던 일 따위나 이야기하며, 자신이 어떤 훌륭한 기사이자 병사였는지 자랑하기에 바쁜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여자들에게 가장 인기 없는 직업이 기사와 병사들이었다.
그들이 만약 휴가라도 나가서 젊은 여성들이 자주 찾는 장소로 간다면, 바로 따돌림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하여튼 참 재미없어……. 그래도 정말 든든하지만.”
그런 재미없는 부분만 제외하면 그들은 그 누구보다도 믿을 수 있는 아군이라는 점은 확실했다.
기사는 쉽게 배신하지 않는다.
병사는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강제로 모은 급조된 병사가 아닌, 충분히 훈련을 시키고 가문에서 키운 병사는 절대 등을 돌리는 일이 없다.
그들은 지휘하는 지휘관과 장군을 믿고, 가장 앞장서는 기사의 등을 보며 오직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과거…… 아니, 현재의 우리 마르티네스 가문의 병사들도 그렇겠지. 내가 가주가 되기 전의 병사들은 말이야.’
주안이 가주가 막 되었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병사들의 기강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훌륭한 지휘관과 장군, 기사들이 떠나가면서 병사들 역시 흩어지며 오합지졸로 변했다.
그만큼 상황이 심각해졌음에도 주안은 그딴 것보다 엄마와 함께 쇼핑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재정을 파탄 내기만 했으니까.
결국, 가장 중요한 순간에 병사들은 등을 돌려 버렸고 가문은 그렇게 풍비박산이 나버렸다.
그 끔찍한 기억을 떠올리자 주안의 고운 얼굴이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이제 그렇게 만들지는 않아, 절대로.”
아직 엄마의 품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다신 그런 미래를 만들지 않기로 다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 * *
“공자님?”
“어디 가시는 겁니까?”
주안이 밖으로 나오자 방 앞을 지키고 있던 두 명의 기사가 주안을 보며 물었다.
“아,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함께하겠습니다.”
“괜찮아요. 건물 안에 있는 정원까지만 갈 생각이니까요. 거기도 저희 병사분들 있잖아요.”
“하지만…….”
“에이, 괜찮다니까요. 이제 아저씨들도 목욕할 차례잖아요.”
“목욕보다 공자님의 안전이 우선입니다.”
참으로 우직하고 단순하며 외골수적인 기사들의 그 행동에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평소 엄마에게만 보이던 미소였지만, 그것을 본 기사들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순간 남자아이의 미소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면서, 스스로의 성 정체성을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그러니까 여자들에게 인기 없는 거예요. 이런 곳에 왔으면 열심히 씻고, 피로도 풀고 그러세요. 여기 온 이유도 그거잖아요.”
“그래도…….”
“핏. 그러면 엄마한테 아저씨들이 귀찮게 한다고 다 일러버릴 거예요.”
“명에 따르겠습니다.”
“……우리 엄마는 되게 무서워하시네요.”
엄마에게 이른다는 마마보이다운 그 말에 두 명의 기사가 바짝 긴장하며, 반론을 멈추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다시 한번 엄마의 무시무시함을 느끼며 주안은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밖으로 나가면서 몇 명의 기사가 다시 주안을 멈추어 세웠지만, 그럴 때마다 역시나 무적의 엄마 카드를 내미는 것으로 그들의 행동을 제지했다.
* * *
“후웁~ 하아, 좋구나.”
깨끗이 목욕도 하고, 마사지도 받아서 그런지 몸이 날아갈 만큼 가볍고, 피로도 확 풀렸다.
게다가 잘 가꾸어진 정원과 꽃과 풀의 냄새는 머리까지 맑게 만들어 준다.
단지…….
“……왜 이렇게 날 쳐다보는 거람.”
병사들뿐만이 아니라, 이 휴양 시설의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들이나 남성들도 주안을 흘깃거린다는 점이다.
병사들이야, 자신으로 인해서 오늘이든 내일이든, 이곳의 온천을 즐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 어린 시선, 주안을 새롭게 보는 시선들이 주를 이루었기에 이해가 되었지만, 직원들의 시선은 좀 의문이었다.
“이제 곧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좀 쌀쌀하네.”
제노폴 제국의 황도를 포함한 동부 지역은 사계절이 뚜렷한 지역이었다.
남부로 넘어가면 습하고 더웠으며 북부로 넘어가면 매우 추울 만큼, 제국의 땅은 넓었고 지역마다 계절이 모두 달랐다.
봄의 끝자락이긴 하지만, 저녁이 되자 점점 쌀쌀해지는 바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그때 그 시절보다는 훨씬 따뜻하고 좋아.”
정원을 거닐다 잘 조성된 연못 속에서 유유히 움직이는 잉어들의 모습에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바라보던 주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그때 그 시절이라고는 하나, 바로 하루 전의 일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안에게는 어제의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만 같은 움막과 비가 오면 새는 지붕.
곰팡내와 습기가 가득한 그곳에서, 20년 가까이 지냈다.
먹을 것이라고는 톱밥 섞인 수프와 쓰레기통을 뒤져서 얻은 채소 조각들, 버려진 빵이 전부이던 시절이었다.
지금의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했던 것인지, 과거의 자신은 몰랐고, 미래의 자신은 뼈저리게 느꼈으며, 돌아온 자신은 소중하게만 느껴졌다.
“……그때로 돌아가선 안 돼. 절대로.”
가문도, 나라도, 엄마나 아빠도…….
그리고 가족 같은 가신들과 기사와 병사들, 마법사와 하인, 하녀.
그리고 가문과 관련된 모든 사람이 지금의 이 행복을 계속 느끼게 해주고 싶다.
다 커서 겨우 깨달은 그것은, 신이 자신에게 내려준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할 거야, 그리고 지킬 거야. 반드시 모두를…… 우엑?!”
주안의 진지한 다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가 자신을 밀쳐 버리는 바람에 주안은 그대로 연못에 풍덩 하고 빠져 버렸다.
‘커읍?!’
게다가 누군가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섬뜩함을 느꼈다.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암살자?! 자객?!
하지만 이내 그 짓누르는 힘이 사라지며, 조금은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