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3화
늦은 아침 식사 후 주안의 일정은 여전히 엄마와 함께였다.
저택에 마련된 정원을 거닐며 산책을 하고 차양이 쳐진 테이블과 의자에 앉아 티타임을 가진다.
그 후 짧게나마 공부를 하지만, 낮잠 자는 시간이 대부분이며 점심을 먹고 외출을 하여 쇼핑을 하고, 황도를 벗어나 휴양지에 놀러 가기도 하는 게 주안의 일상이었다.
미래에, 빈민으로 살며 구걸을 하던 그러한 일상에서 벗어난, 너무나 여유롭고 행복한 일상이었지만, 지금의 주안은 마냥 행복하지 못했다.
엄마와 함께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산책하는 지금도, 엄마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이 순간에도 주안은 잔뜩 긴장한 채 생각에 빠졌다.
‘생각해 보자…….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을, 떠올려야 해.’
이미 미래에 망해 버린 가문과 제국을 겪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다.
바로 주안, 자신과 엄마 때문이다.
망한 이유도 너무나 간단했다.
하는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녀석이 제국에서 가장 넓은 땅을 가진 가문의 주인인 공작이었고, 엄마의 치마폭에 싸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작령의 재정은 날이 갈수록 악화되었고, 민심은 나빠졌다. 기사들은 등을 돌렸으며, 중신들은 떠나고 간신들만 남았다.
지금은 아버지인 주레인 공작이나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도 있었기에 집안은 탄탄했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주안이 공작가를 물려받는 순간, 끝장나는 것이다.
황제의 오른팔이자, 가장 믿을 수 있던 공작 가문이 망가지자 제국은 반쪽짜리가 되어버렸다.
이후 이어진 외세의 침략과 내란.
게다가 공작 가문, 특히 엄마인 안젤라와 자신의 실수로 얻은 원한의 결과물들이 되돌아오면서 가문과 나라가 급속도로 무너지는 결과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이미 그것을 겪었고,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었기에, 그렇게 되지 않도록 만들 것이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도 안다.
‘엄마!’
주안이 옆을 돌아보자, 뭐가 그리 즐거운지 주안의 손을 꼬옥 잡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그 모습에, 자꾸 엄마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
재차 마음을 다잡으며 주안이 생각했다.
그래, 이제부터라도 엄마에게서 떨어지자. 엄마의 말을 듣지 말고, 그 반대로만 행동해도 가문과 나라를 지킬 수 있을 거야.
“주안아, 산책 끝나고 엄마랑 같이 온천이라도 갈까? 우리 온천은 오랜만이지?”
“저, 정말요?! 엄마 최고!”
“아앙~ 우리 아들도 최고!”
주안이 안젤라를 껴안자, 그 행동에 안젤라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주안을 큰 가슴 사이에 얼굴이 파묻힐 정도로 꼬옥 껴안아 주었다.
두 모자의 이런 행동이 익숙한 듯, 주변을 지키는 기사들은 그러려니 했지만, 주안은 아니었다.
‘핫?! 이, 이게 아닌데……!’
분명 엄마의 말을 따라서도 안 되고, 반대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다짐도 했지만, 몸은 전혀 다르게 움직였다.
엄마의 그 달콤한 속삭임 한마디에 몸이 제멋대로 반응을 했다.
말년에 엄마의 잘못에 대해 깨닫고 자신에 대해 반성했지만, 인생의 절반이 훌쩍 넘도록 엄마 치마폭에 싸여 있던 마마보이의 영혼은 여전히 엄마를 원하고 있었다.
‘그, 그래. 지금은 그냥 쉬면서 노는 것뿐이야. 무언가 잘못된 것도 아니잖아. 이건 엄마 말을 따라도 되는 거야. ……아마도.’
스스로 합리화해 봤지만, 한심하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 하는 주안이었다.
* * *
황도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파멜라 시는 온천으로 매우 유명한 휴양지였다.
몸에 좋고, 피부에도 좋은 온천의 성분 탓에 황도에 거주하는 다수의 귀족이 즐겨 찾는 장소로, 가끔 황제도 이곳을 방문할 정도로 유명했다.
때문에 타국에서는 물론, 머나먼 동방의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서방으로 놀러 올 때도 반드시 한 번은 들리는 장소이기도 했다.
도시 자체가 온천이라는 휴양 시설에 맞추어져 개발된 장소라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잘 닦인 도로는 넓고 깨끗했으며, 좌우로 가로수와 함께 선 마법 가로등들이 벌써 불을 반짝이고 있다.
건물들도 크고 화려했지만, 무엇보다 매우 높아 고개를 들고 올려다봐야 할 정도였다.
놀라운 것은 저게 다 숙박 시설과 편의 시설, 그리고 온천이 혼합된 휴양 시설이라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크고 화려한 건물 앞으로 마차가 섰고, 하녀가 직접 문을 열어준 후 바닥에 붉은 양탄자를 깔아 입구까지 쫙 펼쳐주었다.
그리고 하녀의 손을 잡고 마차에서 내린 안젤라는 이내 자신이 직접 주안의 손을 잡아주고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도왔다.
공작부인이자 이전에는 황녀의 신분을 가졌던 인물이 하는 행동이라고 보기 힘든 모습이었지만, 그녀가 주안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끼는지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
게다가 거대하고 화려한 마차와 함께 내린 안젤라와 주안 모자의 모습에 주변의 여타 귀족들이 놀라며 시선을 떼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런 주변 귀족들의 모습을 신경 쓰지 않는 안젤라와 신경 쓸 틈이 없는 주안은 마차에서 내린 후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우와~”
내부도 외부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화려함을 보여주었다.
흔치 않은 동방의 도자기에서부터 먼 북쪽 지역의 크리스탈 장식, 남쪽 지역의 카페트에 유명 조각가의 조각품과 천장과 벽면을 그대로 그려낸 벽화까지.
눈을 휘둥그레 뜨게 만드는 것이었기에 주안이 매우 크게 놀랐다.
“응? 왜 그러니, 주안아?”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곳에 방문한 것이 너무 오래전이라서 그런지 적응이 잘되지 않았다.
이곳의 주인으로 보이는 인물이 엄마인 안젤라를 극진히 모셨고, 기사들과 병사들은 건물 주변과 내부 전체에 경계를 나서는 듯 이동을 하였다.
이곳에 있는 손님은 이들 모자뿐이었으며, 그냥 건물 전체를 당일에 빌려 버린 것이었다.
“그런데 아빠는 같이 안 와도 괜찮은 거예요?”
이곳의 주인과 지배인 그리고 직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특실로 향하던 주안이 안젤라에게 물었다.
그러자 안젤라가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어머, 지금 엄마랑 있는데 아빠 생각을 하는 거니?”
“그, 그게…….
“괜찮아. 어차피 네 아빠는 퇴근도 늦고, 이런 곳에 같이 와봐야 얼굴만 잔뜩 찌푸리고 있어서 제대로 쉴 수도 없잖니.”
“그야…….”
여기가 더럽게 비싸서 아빠가 화를 꾹꾹 참아내니까 그렇죠, 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다.
그제야 떠오른 과거의 기억, 가족들이 함께 이곳을 찾았을 때 아빠가 계속 찌푸리고 있던 것을 떠올렸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 보니, 아빠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었다.
‘엄마는 너무 과소비가 심해. 특히 나와 관련되면 그 정도가 심각해진다니까.’
어렸을 때는 그게 당연하다 생각했고, 아무리 써도 돈은 모자라지 않았기에 심각함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게 커서도 이어졌고 공작가의 재정에도 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전까지는 그래도 아빠나 할아버지, 두 분이 공작령 운영을 잘했고 너무 심하다 싶으면 어느 정도 제지를 했었기에 큰 문제까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말려주던 사람이 사라지니 씀씀이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자, 들어가자. 주안아.”
안젤라의 말에 주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곳의 주인과 지배인이 안내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명의 기사는 다시 방 밖의 경비에 나섰고, 여기사 두 명과 마법사 한 명이 함께 안으로 들어와 경비를 섰다.
또한, 따로 선발된 하녀들이 방 안을 직접 점검하였으며, 가지고 온 짐들을 풀어 방 안에 정리해 놓기 시작했다.
겨우 하루 지내다 갈 곳인데, 들고 온 짐들이, 특히 옷이 너무나 많았다.
게다가 집처럼 꾸밀 생각인 듯,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화장대라거나, 의자, 테이블, 거울, 커튼이나 베개와 이불까지 다양하게 가져와 다시 정리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저것은 집에서 사용하던 것도 아니었으며, 이곳으로 오기 전에 구입한 새 물건들이었다.
정말 사치의 극을 보여주는 엄마의 모습에 다시 한번 주안이 놀라게 되었다.
과거의 자신이, 이런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보며 지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이런 현재의 모습이 혼란스러운 주안을 뒤로한 채 이곳으로 안내한 이곳의 주인이 엄마인 안젤라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안젤라 님, 온천물을 새로 준비해 놓았습니다. 지금 들어가시겠습니까?”
“우음……. 우리 아들~ 지금 들어갈까?”
“아, 응.”
주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젤라가 미소를 지어주었다.
“물은 너무 뜨겁지 않겠지?”
“물론입니다. 여기, 마법사분께서 온도를 맞추는 것을 도와주셨습니다.
‘마법사를 물 온도 맞추는 데 쓰지 마세요!’
그 말에 주안의 표정이 어두워지며 마음속으로만 외쳤다.
아니, 대체 저 고급 인력이라는 마법사를 왜 온천물 온도 맞추는 것에 쓰는 것일까.
엄마의 생각을 도저히 이해가 안 되었고, 그럼에도 불만 없이 행동으로 옮기는 마법사도 이해가 안 되었다.
다른 나라, 다른 가문이었으면 짐 싸서 나가도 마법사를 욕하지 못할 그런 상황이었다.
“온천을 즐기고 난 뒤에 마사지를 받고 싶은데, 그것도 준비는?”
“최상의 실력자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피부 미용을 위해 엘프들이 사용했다는 밤피노 꽃의 새벽 이슬을 따로 모은 영약까지 준비하였습니다.”
“호오…….”
밤피노 꽃의 새벽이슬이라고 하면, 서대륙 최대의 산맥이라는 오라디안 산맥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장소에서만 피는 꽃이, 보름달이 뜰 때만 머금는다는 수분이었다.
마치 이슬처럼 꽃에 맺혔다가 새벽이면 그대로 시들어 버리기에, 구하기는 하늘의 별을 따기보다도 힘들다는 영약 중의 영약이었다.
한 모금만 섭취해도 피부 노화가 멈춘다고 알려져 있으며, 망가진 피부를 원래대로 회복시키는 놀라운 효능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피부에 트러블이 있거나 나이 지긋하고 돈은 더럽게 많은 인물들이 찾으려고 혈안이 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걸…….
‘지금 피부에 바른다고? 마시는 것도 아니라, 마사지 때문에 몸에 발라?’
그제야 주안도 깨달았다.
손바닥과 몇 부분을 제외한 자신의 피부가 왜 그렇게 탱탱했는지.
빈민의 삶을 살아갔기에 제대로 씻지도 못해서 꾀죄죄했는데, 어째서 그냥 물에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몸의 때가 다 벗겨지고, 탱탱한 피부가 드러났는지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차라리 마시는 게 낫겠네.’
그러면 손바닥도 탱탱해질 텐데, 라는 생각까지 해버린 주안이었다.
이내 이곳의 주인과 안젤라의 이야기가 끝난 듯, 안젤라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안도 함께 일어나 방을 나섰다.
* * *
건물 내부에 마련된 온천은 매우 넓고 화려했다. 역시나 비싼 값을 한달까.
바닥은 대리석이었는데, 마법적 처리가 된 것인지 물이 묻었음에도 전혀 미끄럽지 않았고, 벽과 천장은 어느 조각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든 것인지 모든 면을 다 세세하게 조각을 해놓은 모습이었다.
온천물이 뿜어져 나오는 사자 조각상이라거나, 주변에 자리 잡은 여타 다른 조각상들도 모두 값비싼 대리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화려한 온천에 들어온 것은 단 두 사람으로, 비효율의 끝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아~ 역시 여기 온천은 정말 좋다니까. 그렇지? 주안아.”
“으음…….”
엄마인 안젤라와는 달리 주안은 물속에 몸을 푹 담근 채 있었다.
안젤라는 편안하게 있었지만, 아무리 가렸고, 물이 우유색이라 해도, 커다란 가슴이 둥둥 떠다니는 것을 보기는 좀 힘들었다.
아무리 아들이라 해도 곤란한 건 곤란한 것이었다.
“응? 왜 그러니, 주안아.”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안젤라가 갸웃하며 물었다.
수건으로 충분히 가렸지만, 조금 부끄러운 듯 주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보다 엄마.”
“응? 왜 그러니?”
안젤라는 온천 목욕이 정말 기분 좋은 듯, 행복해 보였고 그 곁에 주안이 있었기에 더욱 그런 기분을 만끽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주안은 이런 엄마의 씀씀이에 대해서 한마디를 해주고 싶었지만, 엄마의 저 모습을 보니 망설여졌다.
“여기 우리만 쓰기에는 너무 비싸고 그러지 않아요?”
“후훗. 걱정 말렴. 너희 아버지가 아니라도, 엄마 용돈으로도 충분하거든.”
“그야…….”
당연하겠죠, 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황실에서는 품위 유지 비용이라며, 엄마 앞으로 여전히 막대한 돈을 보내주고 있었다.
게다가 외할아버지가 개인적으로 엄마의 앞으로 황실 직할령 중 하나를 내어주었기에, 그곳에서 나오는 세금은 그대로 엄마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다.
돈이 들어오는 곳이 있다고는 해도, 너무 큰 씀씀이가 자꾸 맘에 걸렸다.
이 씀씀이로 인해 미래에 어떻게 되는지 잘 알았고, 그 씀씀이가 오직 안젤라와 주안, 두 사람에게만 한정되어 있었기에 큰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알았다.
주안은 이 부분을 지적하고 싶었지만, 차마 말이 안 나왔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대한 주의보다는 다른 의미의 배려로 생각을 바꾸어 엄마에게 말했다.
“우리만 즐기지 말고, 피터 아저씨나 소니아 누나, 아니, 같이 온 아저씨 누나들 모두 온천을 즐기게 하면 어때요?”
“응? 하지만 모두 우리 호위로 온 건데…….”
“호위이긴 하지만, 항상 저희 때문에 고생하잖아요. 한 번에 즐기는 건 무리라도 서로 돌아가면서 즐기는 건 괜찮지 않아요? 어차피 오늘이랑 내일은 우리가 이곳을 다 빌렸는데.”
“어머나, 우리 주안이……. 마음 씀씀이도 좋아. 응, 그러면 그렇게 할까?”
다른 사람도 아닌 사랑하는 아들 주안의 부탁이라 그런지 안젤라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안의 말에 동의를 해주었다.
엄마의 허락이 떨어지자, 그제야 경직되어 있던 주안의 몸도 조금은 풀리고, 표정도 밝아졌다.
앞으로도 이렇게 둘만의 행복함을 느끼면서도, 주변 사람에 대한 배려는 하려고 하는 주안이었다.
특히 목숨을 바칠 기사와 병사들에 대한 배려는 나중에 어떤 형태로든 돌아오게 되어 있었다.
적어도 가문이 망할 때, 끝까지 지켜준 사람들에 대한 은혜는 갚고 싶은 주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