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화
“하아…….”
허름한 움막의 안, 한 남자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옷차림도 그렇고, 가재도구도 그렇고 빈민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늙은 사내는 짚으로 만든 침대에 누워 멍하니 비가 새는 천장만 바라보았다.
“……인생 참 허무하구나.”
눈동자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은, 이미 죽어버린 눈과 다름없었고, 바싹 마른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온 목소리는 이미 다 갈라져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나름 부유한, 아니, 부유하다는 말이 초라할 정도로 대단했던 자신의 가문은 망했고, 나라마저 망해 버렸다.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탓으로 말이다.
살아남긴 했지만, 살아도 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을 뿐이니까.
“대체, 뭐가 문제였지.”
곰곰이 생각에 빠졌지만, 점차 감겨오는 눈과 흐릿해지는 시야.
그리고 몸이 나른해지며 잠에 빠져들어 간다.
하지만 그래도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래, 이 모든 건…….”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다 엄마 때문이야.”
이미 망해 버린 제국, 제노폴의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 주안.
그는 마지막의 마지막에 깨달았다.
이 모든 게 엄마 탓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 * *
“엄마, 때문이야…….”
작은 목소리를 내며 주안이 눈을 떴다.
시선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익숙해야 할 낡고 비가 새는 천장은 보이지가 않았다.
화려하다 못해 지나칠 정도로 고급스러운 문양이 새겨진 천장의 모습에 주안이 잔뜩 찌푸렸다.
게다가 낡은 짚으로 인해서 항상 습기 가득한 곰팡내가 나던 집 안의 눅눅한 공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따뜻하고 포근하며 너무나 그리운 냄새만이 코끝을 통해 전해져 온다.
“……뭐지?”
그리고 자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이불이나 자신의 얼굴을 짓누르고 있는 무언가.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커다랗고 둥근 물체가 놓여 있었다.
갸웃한 주안이 손을 뻗어 그것을 만져보았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럽고, 따뜻했다.
한 손으로는 다 만져지지도 않을 만큼 크다는 것이, 왠지 너무나 익숙하고 그리운 것이다.
“우응…….”
“응?”
계속해서 그것을 만지며 이게 대체 무엇이고,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곰곰이 생각할 때, 작은 신음과 함께 열심히 만지고 있던 커다랗고 둥근 물체가 허공에 떠오른다.
이에 주안이 놀라서 몸을 벌떡 일으키고, 눈앞의 인물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화려하다는 말로 부족할, 반짝이는 금색의 긴 머리카락이 찰랑거리며 흘러내렸다.
부스스한 얼굴임에도 미모를 가릴 수 없는 저 익숙한 얼굴.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그 누구보다 당당해질 수 있고, 항상 자랑스러워하던 크고 거대한 가슴이 얇은 잠옷 사이로 비치고 있다.
그리고 그 익숙하고 그립던 그 모습에 주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엄마?”
그렇게 원망하고, 원망하고, 원망하던 엄마였다.
“어머나? 우리 아들~ 잘 잤어?”
그리고 그런 엄마는 배시시 웃으며 손을 뻗어 주안을 껴안고는 다시 가슴 사이에 얼굴을 파묻게 만든다.
숨을 쉬기 힘들 정도의 포옹이었지만, 엄마에게 안기는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를 만큼 오래전의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운 그 느낌에 주안의 눈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엄마 탓을 하였는데 그러한 엄마가 바로 눈앞에,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껴안고 있었다.
“엄마, 엄마, 엄마……!”
“어머나? 어, 어머머?”
엄마의 그 행동에 주안은 그대로 엄마를 껴안고 얼굴을 가슴에 묻은 채 울며 엄마만을 외쳤다.
그렇게 한참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를 그리워하듯 말이다.
* * *
“…….”
익숙하다는 것은, 때론 좀 짜증이 날 때도 있는 법이다.
“대, 대신관님! 정말 저희 주안이, 멀쩡한 것 맞나요? 어디 아픈 것 아니죠?”
“물론입니다, 안젤라 님.”
허둥거리는 엄마인 안젤라와는 달리, 갑자기 불려온 대신관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주안의 이마에 다시 신성력을 한 번 부여해 준 후 손을 떼었다.
대신관의 말에 그제야 안젤라는 안심하는 듯했지만, 주안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아들이 좀 아프다고, 죽기 직전의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대신관을 부른 것도 모자라…….
“다들, 이렇게 요청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 아닙니다. 공자님이 이렇게 무탈하시니, 저희도 안심입니다.”
안젤라의 인사에 커다란 방을 꽉 채울 만큼 많은 사람이 오히려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과 함께 미소를 짓고 있다.
그들은 모두 황도에 자리를 잡은 유능한 의사들로, 안젤라의 부탁에 단번에 달려온 인물들이었다.
좀 울었던 것치고는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고, 스케일이 굉장히 크다.
‘생각해 보니 감기만 앓아도 황실에서 담당 의사를 보냈었지.’
가문이 가문이다 보니, 어느 정도 수긍이 갈 만도 하지만, 너무 지나치다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주안이 고개를 돌려 의사들을 배웅하며, 대신관에게는 나중에 따로 찾아뵙고 성금을 넉넉하게 넣어드리겠다고 말하고 있는 안젤라를 보았다.
대신관이 활짝 웃으며 방을 나서는 것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뭐, 저거 때문에 다들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신관뿐만이 아니라 황도에 거주하는 의사들도 엄마인 안젤라의 부탁이라면 한걸음에 달려오는 것도, 다 저런 기부금과 성금 덕분이었다.
스케일이 좀 많이 크신 엄마라 기부금과 성금을 내는 것도 가슴만큼이나 크게 내시는 탓에 최우수고객이라고 평가를 받는 분이기도 했다.
그보다 문제가 있었다.
주안이 손바닥을 펼쳐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나라와 가문이 망하고 난 뒤에 빈민의 생활을 이어가면서 변해 버린 거칠고 더러운 손바닥이 아니었다.
씻을 때 외에는 손을 사용도 하지 않는 듯, 핏줄이 보일 정도로 투명하고 부드러운 손바닥이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아도 그랬다.
분명 집안은 망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돌아가셨으며 그 후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는 상태로 빈민의 생활을 시작했던 주안이었다.
구걸도 제대로 못 하였기에 늘 배는 고팠고 그전에 잘 먹고 잘산 탓인지 어디 쉽게 아픈 곳도 없이 정말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낡고 허름한 움막과 어디서 주워 온 가재도구들, 바닥에 버려졌던 짚을 이용해 대충 만든 침대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곳은, 마치 예전의 자신의 집과 같다.
그립던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내던 그 집이었고 자신의 방이었다.
“대체 뭐지…….”
꿈이라도 꾸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죽어, 저승에서 엄마를 다시 만난 것일까.
그런 것치고는 너무나 생생했다.
잠시 갸웃거리던 주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왔다.
무언가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 것인지 잠시 비틀거렸지만, 침대를 붙잡고 중심을 잡다 근처 벽에 걸린 거울에 문득 시선이 갔다.
낯설지 않은 모습을 한 사람이 자신과 눈이 마주쳤다.
한 걸음, 거울로 향할 때 똑같이 다가오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거울의 앞까지 걸어와, 손을 뻗어 거울을 만져보았다.
거울 속 인물도 자신에게 손을 뻗어 자신의 손을 만진다.
엄마를 닮은 화려한 금발과 함께, 웬만한 여자들보다 가녀려 보이는 체형이나 투명한 피부…….
파란 눈동자가 점차 커지면서 그게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주안의 어렸을 때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기절을 해버렸다.
* * *
“…….”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익숙하다는 것은 정말 짜증 날 때가 있었다.
단순히 울어버린 것만으로도 대신관과 의사들을 불러 모았는데, 이번에는 기절했다 깨어나니…….
“저, 정말 괜찮은 것이냐? 아니, 왜 멀쩡한 아이가 갑자기 기절해!”
“폐,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정말 몸은 건강하옵니다.”
대신관이 다시 온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주안의 외할아버지, 정확하게는 이곳, 제노폴 제국의 황제 폐하가 직접 행차하시는 바람에 큰 소란이 일어났다.
겨우 30분 정도 기절한 주안이 깨어났을 때 보인 것은 정말 난장판 그 자체였다.
제국의 황제 폐하는 물론, 주안의 아버지이자 재상인 주레인 공작.
황태자인 샌드록.
황실 근위대 단장 바스티아노 백작.
황실 마탑의 주인 마이스터 모레노.
그 외 다수의 중신까지 자리를 잡고 있으니, 오랜만에 그들을 마주하게 된 주안은 다시 기절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들 중 대부분이 자신 때문에 죽음을 맞이했던 인물들이기도 했다.
“저…… 정말 괜찮습니다.”
“정말이더냐? 이 할애비가 황실 보고에 있는 드래곤 하트라도 가져다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더냐?”
“응! 아빠, 어차피 드래곤 하트 안 쓰잖아요. 그거 우리 주안이 먹여요.”
“…….”
이미 사라졌다고 알려진 드래곤과, 마법사라면 죽음을 불사해서라도 얻고 싶어 하는 보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 외할아버지와 엄마.
엄마의 끝 모를 황당한 스케일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대충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외할아버지는 더 심했다.
그 엄청난 발언에 중신들이 황제인 드바이스를 뜯어말렸고, 황태자까지 나섰으며, 주안의 엄마인 안젤라를 남편, 주레인 공작이 말리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호위 기사들과 마법사, 중신들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리고 주안 역시 편두통이 일어나는 것인지, 이마를 감싼 채 잔뜩 찌푸렸다.
‘그보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였고, 저승이라고 하기에는 외할아버지나 엄마의 걱정은 진실되었다.
더군다나 주변의 중신들 역시 조금 짜증이 난다는 듯했지만, 자신을 원망하는 모습은 전혀 없었다.
나라와 가문을 말아먹은 희대의 마마보이.
그것이 죽기 전까지 손가락질을 당하며 멸시당하던 자신을 지칭한 단어였고, 이들 대다수 중신은 죽기 전까지 주안을 욕하고 원망하며 눈을 감았다.
그 정도로 주안은 무능력했고,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야 할 마마보이였을 뿐이었다.
저승이었다면, 그들은 자신을 욕하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인데…….
“나, 살아 있는 거야?”
다시 손바닥을 펼쳐 바라보았다.
더 이상 상처 난 곳도, 더럽지도 않은 손바닥이었고, 허름하고 곰팡내 가득한 움막도 아니었으며, 외톨이도 아니었다.
‘나는…….’
주안이 작고 가녀린 손을 꽉 움켜쥐며 눈을 반짝였다.
‘……나는 살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