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122화 (122/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122화

총력전(3)

과거 칼릭스가 그랜드 마스터에 오르기 위해 영약의 재료로 사용했던 악마의 심장은, 본디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고절한 신공들의 도움을 받고도 일 년은 고생을 한 끝에 간신히 통제가 가능하게 된 원초적인 파괴의 기운.

사실 날것 그대로의 마기를 인간의 몸으로 운용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비슷한 예로 무림의 경우를 들자면, 사악한 마공을 수련하다가 마기가 골수까지 파고들어 광인이 되는 마교의 무인들을 거론할 수 있다.

인간의 몸에 담아두기엔 적합하지 않은 기운.

그렇게 마공을 익혀 몸 안에 조금씩 쌓아가는 마기조차도 부작용이 한둘이 아니거늘, 마기가 생명력의 원천인 악마의 힘을 대량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과연 얼마나 위험하겠는가.

이성을 흐리고 광기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마기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에, 칼릭스는 일 년 동안 폐관수련에 들어야 했다.

그랜드 마스터가 된 후에도 마기의 특성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의 몸에는 두 종류의 확연히 다른 기운이 자리 잡고 있었으며.

기존의 오러와 흡수한 마기를 적당히 뒤섞어 사용하는 방식으로, 칼릭스는 마기가 지닌 그 지독한 성질을 중화시켜 사용하고 있었다.

“흐으…….”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 핏발이 선 눈.

정제된 오러와 혼합시키는 대신 순수한 마기를 그대로 전신의 기혈에 퍼뜨리자, 온몸을 바늘로 쑤시는 듯한 통증과 함께 칼릭스의 머릿속에 진득한 살의가 휘몰아쳤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선 이 방법밖에 없다.’

물론 순수한 마기를 오러 대신 사용한다고 해서, 딱히 무공의 위력이 눈에 띄게 강해지거나 하진 않는다.

애초에 인간의 몸에 맞지 않는 기운이 아닌가.

그럼에도 칼릭스가 굳이 마기를 운용한 것은 한 가지 이유에서였다.

소모성 초인들이 수명을 대가로 폭발적인 오러의 증가를 보인 것처럼, 칼릭스의 기억 속에는 그와 비슷한 효과를 지닌 기술이 있었다.

마공이라 불리며 배척받는, 마교가 지닌 여러 무공과 술법들.

강자를 숭배하며 강해지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한다는 마음으로 모여든 자들이 있는 곳이기에, 이런 분야에 대해 마교가 지닌 지식은 굉장히 방대하고 체계적이다.

그리고 그중에는 마공을 익힌 마인이 몸 안에 지닌 마기를 폭주시켜, 단기간에 본인의 경지 이상의 무위를 발휘하게 만드는 기술이 포함되어 있다.

천마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칼릭스 또한, 그에 대한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목적을 달성하기로 마음먹었기에, 마기의 폭주로 일어날 부작용은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휘익!

가볍게 발을 구른 칼릭스의 신형이, 순식간에 허공으로 수십 미터를 솟구쳤다.

‘신이라도 된 것 같군.’

몸이 평소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진다.

폭주시킨 마기가 그의 온몸에 막대한 힘을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슈슈슉!

칼릭스의 팔이 움직이며 불길한 검은빛으로 타오르는 오러 블레이드가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밤하늘에 쏟아지는 유성우를 검에 담아낸, 무상검공에 있던 초식 중 하나.

빛나는 별을 떠올리기엔 펼쳐진 검초에 서린 빛깔이 너무나 어두운색이었지만, 위력만큼은 이전에 펼쳤던 무상검공보다 더 뛰어난 수준이었다.

퍼버버벙!

제국의 소모성 초인들의 머리 위로, 운석이 떨어져 내리는 것처럼 막강한 힘이 담긴 검초가 흩뿌려졌다.

“크아악!”

“이, 이런…….”

생전 처음 보는 검술에 놀란 적들이 황급히 검을 휘둘러 맞섰지만, 반쪽짜리 초인들의 능력으로는 저 무지막지한 파괴력이 담긴 검초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낭패한 모습으로 물러나는 제국의 기사들.

그래도 그들 또한 일시적이긴 하나 그랜드 마스터에 준하는 오러를 다루는 자들이기에, 이 한 번의 격돌로 사망자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칼릭스의 공격 역시도 고작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공중에 떠올랐던 칼릭스의 신형이 벼락처럼 제국 기사들의 사이를 파고들었다.

천마신공.

천마군림보.

허공에서 내리꽂히는 거인이 발길질에, 제국의 초인들은 개미가 된 듯한 기분을 느끼며 다급히 뒤로 몸을 던졌다.

콰가가강!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이게 무슨…….”

“저것이 정녕 인간의 몸으로 낼 수 있는 위력이란 말인가……?”

연합군의 결사대원들은 전투 중이란 사실조차 잊고 입을 벌린 채 칼릭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상검공을 사용할 때부터 검격을 방어하며 밀려나는 제국기사들이, 결사대의 주변에서 떨어지도록 쏟아져 내리는 검초의 위치와 각도를 조절한 덕분에.

넓은 범위에 오러의 폭발을 일으키는 천마군림보가 뒤따라 펼쳐졌음에도, 결사대가 제국 기사들과 같이 휘말려 피해를 보는 일은 없었다.

본디 마기의 폭주는 사용자가 이성을 잃고 날뛰게 만드는 광기를 어느 정도 동반하게 마련이나, 칼릭스는 아직까지 아군을 배려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을 또렷하게 유지하고 있었다.

“크윽,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위력이……!”

“컥! 그웨엑!”

제국의 초인들은 다급히 자세를 고쳐 잡고 오러를 방출하며 흙먼지를 걷어냈지만, 폭발의 중심부에 가까이 있던 몇몇은 극심한 내상을 입었는지 피를 토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게 무력화된 자들의 목을 베기 위해, 칼릭스는 검을 휘두르며 적의 진형을 파고들었다.

“이런! 막아라!”

“다른 놈들은 배제하고 일단 저놈부터 처리해!”

일 대 삼십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유리해 보이는 것은 오히려 다수가 아닌 소수쪽.

마치 사슴 떼의 사이로 뛰어든 호랑이처럼, 칼릭스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압도적인 위용으로 적들을 밀어붙였다.

“믿을 수가 없군. 저자가 사용하는 검술과 오러는 대체 무엇이지? 우리 황가의 비전에 맞먹는, 아니……. 오히려 더 뛰어나 보이는 능력이지 않은가.”

권태로운 모습으로 느긋하게 싸움을 구경하던 황제는, 칼릭스가 힘을 드러낸 뒤부터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황을 관찰하고 있었다.

“대륙이 넓다 하나 제국에 비하면 전부 하찮은 것들뿐이라 여겼거늘……. 제법 흥미로운 존재도 있었군그래.”

황제의 눈동자에 짙은 투지가 서렸다.

당장에라도 뛰어들어 직접 저 검술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오른다.

“칼릭스 공이 기회를 만들어준 지금이다!”

“황제를 죽여라!”

몸이 달아오른 황제에게 때마침 결사대의 남은 일원들이 비장한 얼굴로 달려들었다.

애초에 결사대의 목적은 아군의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황제를 살해하는 것.

칼릭스가 홀로 소모성 초인들을 붙잡아놓고 있으니, 남은 이들은 그를 돕기보다는 황제를 치는 것에 전념함이 옳았다.

수많은 병사들이 몰려 있는 적진의 한복판이지만 여러 초인들의 강대한 오러가 사방에 겹겹이 뿌려지고 있는 공간이기에, 최소 마스터급의 기사가 아니고서는 이 자리에 끼어들 수도 없다.

“폐하! 자리를 피하셔야 합니다. 친위대! 어서 이쪽을-”

소모성 초인들은 지독한 세뇌와 훈련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기에, 한번 지시가 내려지면 다음 지시가 있기 전까지 자율적인 행동을 하지 못한다.

적을 섬멸하라는 명령을 이행하려다가 칼릭스 한 사람에게 발이 묶인 지금, 우회하여 다가오는 결사대를 막기 위해 스스로의 판단으로 다시 황제의 곁에 돌아오는 친위대는 아무도 없었다.

“되었네. 대제국의 황제가 저깟 놈들을 피해 달아난다는 게 말이나 되겠나. 마냥 구경만 하는 것도 아쉽던 차였으니, 이 정도는 직접 해결하도록 하지.”

“……명에 따르겠습니다.”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으며 단상 아래로 훌쩍 뛰어내리는 황제의 모습에, 막 친위대를 불러들이려던 세이룬은 검을 뽑으며 오러를 끌어올렸다.

호위를 맡고 있는 신하로서 황제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막아야 했지만, 제국의 지배자이자 동시에 제국 최강의 무인이기도 한 자신의 주군에게 마냥 대피를 강권하기도 어려우니 어쩔 수 없긴 했다.

비무장에 가벼운 옷차림을 한 황제가 가볍게 손목을 흔들자, 아공간 아티팩트인 그의 팔찌가 빛을 내며 날카로운 예기를 흘리는 검을 토해냈다.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은 명검.

뒤이어 황제의 전신이 백금빛으로 물들며, 화려한 세공과 보석으로 장식된 갑주가 그의 몸을 뒤덮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제국의 숱한 명장들과 마도사들이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황가의 보물이라 할 수 있는 마법무구들이었다.

“흐아압-!”

칼릭스가 이탈해 있기에 자연스럽게 결사대를 이끌게 된 알론드가, 선두에 서서 커다란 기합과 함께 황제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나 알론드의 검은 황제에게 도달하기 전에 그를 지키던 세이룬에 의해 막히게 되었다.

카강!

“노인네. 우린 구면이군.”

“……그렇군. 그때의 그랜드 마스터인가.”

오러가 격돌하며 상대의 기운이 이미 전에 맞부딪힌 경험이 있는 자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과거 이웃 국가 카이문과의 전쟁에 관여했던 정체불명의 초인.

그 당시 알론드와 두 차례의 전투 끝에 그의 다리 한쪽을 절단시켰던 적이기도 했다.

지금은 그때의 전쟁이 대륙 각지에서 일어나던 제국의 수작질임을 알고 신전의 도움으로 부상도 완치되었으나, 한번 잘려 나갔다가 붙은 다리는 오러의 흐름에 살짝 반응이 늦어지는 장애가 남았다.

신경과 혈관은 이어졌지만 다리와 이어지는 경혈의 미세한 세맥들이 완벽하게 제자리를 잡지는 못했기 때문.

다행히 일 초 아래 소수점 단위의 시간에서 검초를 펼치는 그랜드 마스터의 입장에서 살펴봐도, 딱히 검술을 펼침에 있어 지장이 생길 정도의 장애는 아니었지만.

초인의 신체에 영구적인 부상을 남긴 적에 대한 원한이 가벼울 순 없었다.

“복수할 기회가 이렇게 찾아오다니. 신께서 나를 돕는구먼.”

“나이가 많으니 결국 치매가 온 건가? 당시의 나는 정체를 숨기느라 익숙하지도 않은 무기를 다루던 상황이었다. 전력을 다한다면 당신 같은 늙은이가 내 상대가 될 것 같나?”

기사들이 잘 쓰지 않는 양손 검을 들고도 알론드를 격퇴한 전적이 있으니, 세이룬의 자신감은 근거가 있는 것이었다.

“본인 역시도 그때와는 조금 다를걸세.”

하지만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 당시와 다른 것은 알론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대륙에 없던 고절한 무공들을 펼치는 칼릭스를 가장 가까이서 누구보다 자주 접해왔던 알론드다.

전성기가 지나 쇠퇴만 남은 뒤늦은 나이에 간신히 벽을 허물었다고 해서, 새로운 발전의 속도까지 느릿하기만 하란 법은 없는 것이다.

키기긱! 콰광!

퍼버버벅!

오러가 충돌하며 순식간에 십여 합을 겨룬 두 사람의 주변 지형이 울퉁불퉁하게 변해갔다.

발을 디디는 곳마다 구덩이가 파여 흙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바닥의 돌들이 박살 나며 사방으로 비산한다.

십여 합이 수십 합이 되고, 이윽고 백 단위를 넘어서는 격돌이 되어갈 때쯤.

마침내 승부가 결정지어졌다.

가슴에 길게 검상을 입은 알론드가 부러진 검을 손에 쥐고 일그러진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구겨져 있던 그의 표정엔 금방 득의의 웃음이 번졌다.

그의 상처는 크기만 컸을 뿐 깊이는 얕은 편이었기에, 피가 많이 흘러내리진 않았다.

반면 알론드가 상대에게 남긴 상처는 면적은 좁아도 확실한 치명상이었다.

“끄으…….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비틀거리다 무릎을 꿇은 세이룬이 울컥하고 핏물을 토했다.

그의 옆구리를 비스듬히 파고들어 등 뒤까지 관통된 채로 부러진 칼날이 눈에 띄었다.

빨리 치료하지 않는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백여 차례 합을 겨룬 두 사람의 실력은 거의 막상막하였으나, 마지막 승부에서 행운의 여신이 손을 들어준 것은 알론드 쪽이었다.

그러나 알론드의 웃음은 길게 가지 못했다.

저벅저벅.

“흐음. 져버린 건가. 세이룬 휴나이젠. 자네도 영 쓸모가 없군그래.”

“폐, 쿨럭, 폐하…….”

알론드를 제외한 연합군의 결사대를 홀로 상대하던 황제가, 상처 하나 없이 느긋한 모습으로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