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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110화 (110/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110화

영지 내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라 할 수 있는 영주관이 무너졌으니, 사람들이 난리법석을 떠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전조 하나 없이 일어난 갑작스러운 재난에 부랴부랴 달려온 사람들은, 아직 먼지구름조차 가시지 않은 돌무더기 앞에서 황망한 심정으로 허둥거렸다.

“세상에…… 분명 적지 않은 수의 사람이 안에 있었을 텐데…….”

“이, 일단 잔해들을 치웁시다!”

“밖에 가서 사람들을 모아 오시오!”

“빨리 보고를…… 아, 이런…… 닐슨 님도 저 안에 계셨을 텐데…….”

상부에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몇몇 영지민들은, 그 상부 자체가 사라졌다는 것을 깨닫고 당혹감에 빠졌다.

하필 다른 장소도 아니고 영주관이 무너진 탓에, 영주대리를 비롯한 영지 내 고위관리들 대부분이 저 안쪽에서 매장당한 것이다.

“다들 진정하도록 하게.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소란 떨 것 없네.”

어디선가 들려온 힘 있는 목소리에,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에 그쪽으로 쏠렸다.

딱히 정식으로 마이언가에서 어떤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영지 내에서 칼릭스 다음가는 권위를 가지고 있는 알론드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백작의 작위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마이언 가문의 영주대리를 맡고 있던 닐슨 또한, 그의 곁에 함께였다.

“다들 해산하게! 따로 부르기 전에는 이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도록.”

“어…… 예, 옙! 알겠습니다.”

“영주관이 무너졌는데, 저대로 둬도 괜찮은 건가……?”

“다 이유가 있으니 어르신들이 저리 말씀하시겠지. 어서 가세.”

몇 시간 전.

심상치 않은 기운의 흐름을 느낀 알론드는 곧장 닐슨을 찾아가, 그와 함께 영주관에서 일하고 있던 이들을 전부 바깥으로 대피시켰었다.

건물 안에 있던 행정관들과 시종들을 모두 내보냈으니, 영주관이 무너졌음에도 인명피해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다만 저 안쪽에 유일하게 대피하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알론드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건물의 잔해를 바라보았다.

‘일이 어찌 될지 몰라 주변 사람들을 물러나게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큰 사고가 벌어질 줄은 몰랐거늘.’

알론드라고 해서 건물이 무너질 것을 예견했던 건 아니다.

그저 근 일 년 동안 어떠한 문제 때문에 스스로를 가둔 칼릭스에게서, 무언가 변화가 일어나는 듯하여 주위를 조용하게 비워두었을 뿐이었다.

‘문제가 해결된 것인가? 혹은... 결국 내면의 기운을 통제하지 못하고 잡아먹힌 것이라면…….’

수련실 내에 자신을 가둬두고 있던 칼릭스가 저 아래 깔려있긴 했지만, 그의 안위 자체는 전혀 걱정이 되지 않았다.

알론드가 걱정하는 것은 이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인 칼릭스가 과연 자신의 문제를 해결했을지, 아니면 기어코 더 큰 문제를 빚어내고만 만 것인지 대한 것뿐.

‘칼릭스 공. 내 항상 자네를 믿고 있네만…… 만약 경지의 상승을 이루고자 무리하다가, 스스로의 정신을 다스리지 못하고 광기에 사로잡힌 것이라면…….’

만약 칼릭스가 자기 자신조차 통제할 수 없는 이성을 잃은 괴물이 되어버렸다면, 그를 베어서라도 멈추게 하는 것이야말로 알론드의 역할이 될 터였다.

그렇게 알론드가 기감을 퍼뜨려 잔해 아래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살피며, 허리춤에 돌출되어 있는 칼자루에 손을 대고 있는 동안이었다.

넓게 쌓여있던 돌무더기의 어느 한 지점이 들썩이는가 싶더니, 그 아래에서 사람의 신형이 불쑥 솟아올랐다.

익숙한 체형과 얼굴.

알론드가 그토록 기다리던 인물, 칼릭스였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의 모습에, 알론드의 눈이 바쁘게 움직이며 그의 몸을 살폈다.

‘갓난아기처럼 잡티 하나 없는 하얀 피부. 바디 체인지 현상을 완벽하게 이루어낸 것이 분명하군. 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나이에 정말로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달성한 것인가. 허허.’

불세출의 천재가 이룬 업적에 경외감을 느끼는 것도 잠시.

“영주님!”

“닐슨 대행. 멈추게.”

“예? 아, 네…….”

칼릭스를 발견하고 달려가려는 닐슨을 제지한 알론드는, 긴장으로 살짝 갈라진 음성을 내뱉었다.

“칼릭스, 자네인가?”

마치 칼릭스가 아닌 다른 어떤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질문.

흉터 하나 없는 새하얀 몸에 묻은 먼지를 탈탈 털어내던 칼릭스가, 알론드의 목소리를 듣고 천천히 그를 향해 돌아섰다.

흠칫.

칼자루를 쥐고 있던 알론드의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끝없는 심연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을 주는 칼릭스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그랜드 마스터인 그조차 형용하기 어려운 위압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윽고 칼릭스의 입이 열렸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제는 괜찮아졌으니 그리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론드 님.”

“……정말 괜찮아진 겐가?”

악마의 심장으로 제조한 영약을 복용했던 칼릭스는 그로 인해 막대한 기운을 몸 안에 받아들였지만, 동시에 마기에 중독되어 정상적이지 못한 행태를 보이곤 했었다.

이지를 잃고 짐승처럼 울부짖거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맹렬한 분노에 휩싸여 공격성을 보이는 등.

그 탓에 스스로를 수련실 안에 가두고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이다.

지난 일 년간 칼릭스는 영약의 기운을 본인의 내공으로 소화시키는 것보다, 자신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는 마기를 제어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야만 했다.

‘소림을 비롯해 기타 여러 무가들이 지닌 심법들에 대한 기억이 없었다면, 결국 마기를 온전히 통제하지 못하고 광인이 되어버렸을 테지.’

불가와 도가의 정신을 수련하는 상승심법들에 대한 공부들이 아니었다면, 악마의 기운에 잠식되어 인간으로의 정체성을 잃고 한 마리의 괴물이 되어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위험천만한 고비를 넘기고 마기를 포함한 그 모든 기운들을 완벽하게 몸 안에 갈무리한 끝에, 칼릭스는 마스터의 벽을 넘어 온전한 초인의 경지에 발을 들일 수가 있었다.

“허허…… 다행이구먼. 돌아온 것을 환영하네.”

한참의 탐색 끝에 칼릭스의 얼굴에서 더는 광기의 흔적을 찾지 못한 알론드가, 마침내 긴장으로 굳은 몸을 풀고선 웃음을 흘리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밀어진 손을 맞잡은 칼릭스는, 알론드와 그의 옆에 서있는 닐슨을 보며 진심 어린 마음을 담아 감사의 말을 전했다.

“제가 없는 동안 두 분 다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특히 알론드 님은 닐슨 선배의 뒤를 봐주시느라 번거로움이 많으셨을 겁니다. 죄송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저야 당연히 영주님께서 정상으로 돌아오실 거라 믿고, 언제나처럼 책무를 다하고 있었습니다.”

“별말을 다 하는구먼. 그럼 자네가 그렇게 정신이 오락가락 하고 있는 동안, 내가 설마 훌쩍 떠나기라도 했겠는가? 허헛!”

왕실과 연계해 큰 사업을 벌여놓고 가주인 그가 일 년 동안이나 자취를 감춘 탓에, 마이언 가문은 그간 꽤나 여러 가지 고충에 시달렸어야 했다.

만일 가문을 지키는 든든한 장벽이 되어주는 알론드와, 자잘하지만 그만큼 다양하고 많은 업무를 처리해주던 닐슨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마이언가는 그사이에 세력 자체가 와해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뭐 내가 고생한 것은 사실이니, 그 대가는 받아야겠지.”

“아, 물론입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거라면 얼마든지.”

“끌끌. 무인이 원하는 게 한 가지밖에 더 있겠나? 어디 얼마나 달라졌는지 겨뤄 보세나.”

“그건 저 역시 바라던 바로군요.”

왕국에 유일하던 초인이 이제 둘이 되었는데, 신명 나게 부딪쳐 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리가 없다.

본래도 자주 대련을 하던 두 사람이었기에, 서로 동등한 경지가 되었다는 것을 파악하자마자 몸이 근질근질해 참기 어려웠던 차였다.

“저, 영주님? 마음은 알겠지만, 그보다 먼저 해결하셔야 하는 일들이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후끈 달아오르는 공기에 찬물을 끼얹는 듯한 말이 들려와, 칼릭스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닐슨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내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무너진 영주관의 잔해를 보고는, 조용히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영주관이 저렇게 박살이 났다는 소문이 이미 퍼졌을 테니, 주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닐 겁니다. 이참에 간만에 바깥으로 시찰이라도 돌면서 영주님의 건재함을 알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그리고 제가 가끔 간략한 보고서를 올리긴 했지만, 확인해 주셔야 할 밀린 업무 또한 한두 개가 아닙니다.”

“으음.”

마기라는 특수한 성질의 기운을 몸 안에 품어 정신이 온전하지 않았던 탓인지.

칼릭스는 기존의 벽을 부수고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에 오르는 과정에서, 본인이 의도치 않게 다량의 오러를 배출해 내며 주변에 파괴적인 힘을 행사하고 말았다.

그 탓에 건물이 무너져 내려 저 꼴이 되었으니, 복귀하자마자 큰 사고를 친 격이라 뭐라 할 말이 없기는 했다.

“커흠! 하긴 여기저기 얼굴을 비춰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긴 하겠구먼. 대련은 좀 나중으로 미루세.”

“……예. 그래야겠군요.”

일 년이나 자리를 비웠으니 왕실은 물론이고 협력관계인 도미닉 공작에게도 자신의 건재함을 알려야 할 테고, 아카데미 사업부나 대수림의 개척사업부 등 둘러봐야 할 곳이 적지 않다.

염원하던 초인이 되었지만 그 기분을 만끽할 새도 없이 바쁘게 돌아다녀야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칼릭스는 멋쩍은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 * *

오래 자리를 비운 탓에 잡음이 조금 있긴 했지만, 칼릭스가 벌인 사업들은 그간 무난하게 잘 성장하고 있었다.

애초에 큰 틀은 다 정리해놓고 칩거에 들어갔던 것이라, 천재지변처럼 전혀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하는 것만 아니라면 문제가 될 것이 없기는 했다.

‘신경 써야 하는 쪽은, 국내가 아닌 국외의 일 뿐인가.’

오래전부터 경계하고 있던 제국의 동태가, 요즘 들어서 꽤나 심상치 않다는 보고가 있었다.

“제국과 인접한 대륙 동부에 있는 국가들의 사정은 지금 완전히 난리도 아니더군요. 잦은 전쟁으로 국력이 쇠한 것은 물론이고, 시장경제가 크게 무너져 가만히 둬도 망하기 일보 직전이라는 느낌입니다.”

“제국에서 그간 은밀히 계속 수작질을 보인 결과겠지.”

“이제는 은밀하다고 할 것도 없이 대놓고 야욕을 드러낸다는 느낌입니다. 동부가 저 꼴이 나고 있으니, 다른 지역의 국가들도 슬슬 위험을 느끼고 제국을 견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견제라…… 말은 쉽지만 그게 가능합니까?”

“아르마니아와 벨루나이를 비롯한 여러 국가들이, 반제국연합을 형성해 대응을 준비 중이라 하더군요.”

“호오.”

닐슨의 말을 들은 칼릭스는, 흥미롭다는 듯이 소리를 내며 턱을 쓰다듬었다.

알펜시아와 같은 서부 지역에 위치한 벨루나이는 제국에 미치진 못하지만 제법 유서 깊은 강대국이며, 아르마니아 또한 중남부 지역의 패자라 할 수 있는 거대한 국가다.

그만한 강국들이 주변의 여러 중소국가들까지 끌어들여 연합을 맺고 대응한다면, 확실히 제국의 입장에서도 마냥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당연히 제국도 그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저런 짓을 벌이고 있는 걸 텐데. 과연 연합의 힘으로 제국의 야욕을 억제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군.’

“사실 얼마 전에 저희 알펜시아에도, 반제국연합에 참가해 힘을 보태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었습니다만.”

“그렇습니까?”

“왕실에서 저희에게 의견을 물어왔지만, 당시엔 가주께서 공석이셨던 지라 대답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알펜시아의 최강자인 알론드가 칼릭스의 세력에 속해 있으니, 마이언가의 의견을 배제하고선 국정에서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칼릭스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일단 그쪽과 자리를 한번 만들어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예. 그럼 왕실에 연락을 넣어두겠습니다.”

제국이라는 거대한 적을 상대하려면, 확실히 다른 국가들과 힘을 합칠 필요는 있었다.

제 위치로 돌아온 칼릭스가 긍정적인 의사를 밝혔기에, 알펜시아 왕실은 도미닉 공작과 칼릭스를 대표로 삼아 반제국연합과의 회동 자리를 조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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