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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93화 (93/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93화

초인의 전투

전투에 돌입한 후의 진격범위와 퇴각 시기에 대해서 잠깐의 의견충돌이 있긴 했으나, 결국 마스터 전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점에선 반대가 있을 수 없기에.

사령관의 허가를 받은 칼릭스와 알론드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영지군 병력들을 이끌고 전열로 뛰어들었다.

“이랴앗!”

“헤이- 야아!”

백여 기에 달하는 기사 전력이 적을 섬멸하기 위해 돌진한다.

효과는 말할 것도 없이 탁월했다.

전장에 합류한 마이언가의 전력은 비록 다른 부대에 비해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이 익스퍼트에 도달한 고급인력으로 이루어져 있다.

영토 내 각 도시에서 모집한 인재들에게 성향에 적합한 무공을 아낌없이 가르쳤고, 대수림에서 수집한 재료들로 저품질이긴 하나 영약에 준하는 물품들을 만들어 복용시킨 덕분에.

일가를 이룬지 겨우 일 년 남짓한 시간이 지났을 뿐임에도, 칼릭스의 영지에는 기사급의 전력이 다른 귀족가에 비해 과할 정도로 많은 편이었다.

물론 아무리 기사 지망생들의 재능이 뛰어나고 칼릭스만이 지닌 특별한 지원들을 해줬다고 해도, 젊다 못해 어린 친구들이 전부 그 짧은 시간 만에 결실을 맺었던 것은 아니다.

아직 여물지 못한 생도들의 대부분이, 이번 전쟁에 참가하지 못하고 영지에 남겨져 있었다.

그럼에도 마이언가가 기사 전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던 것은, 고쳐 쓸 수만 있다면 바로 현역으로 복귀할 수 있는 은퇴기사들을 백작위에 올랐던 시기부터 꾸준히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저, 정말 오러하트의 부상을 고칠 수 있는 겁니까?

-오러가, 오러가 돌아왔다! 크흐흑!

-영주님께서 명령만 내리신다면, 제 심장이라도 꺼내 바치겠나이다.

부상으로 은퇴해야 했던 예전의 칼릭스와 같은 상황에 처한 이들이, 왕국을 뒤져보면 고작 한두 명 정도일 리가 없다.

이전에는 운기요상의 비법을 탐내는 자들이 나타날까 염려해 주의했었지만, 마스터가 되며 귀족가문을 일군 그가 더는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칼릭스는 각지의 퇴물 기사들 중 인성에 문제가 없는 이들을 선별해 자신의 영지로 끌어들였고, 그들에게 심법을 가르쳐 회복할 수 있는 수단을 주는 것으로 자발적인 충성을 이끌어냈다.

마스터라는 것만으로도 이미 존경의 대상이 될 진데, 고칠 수 없다고 알려진 오러하트의 부상을 치료해 주기까지 하니.

그렇게 영입한 기사들이 칼릭스를 신처럼 떠받들지 않을 리가 없었다.

“으럇! 뒤처지지 마라!”

“뭣들하고 있나! 어서 영주님을 보필하라!”

충성도가 하늘을 찌르는 기사들은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칼릭스를 따라 적진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백여 기의 기사들이라는 것이 귀족영지의 기준으로 보면 엄청난 전력이긴 하지만, 수만 단위의 군대가 부딪히는 전장에서는 위력을 발휘하는 데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침략군의 중앙부를 돌파하던 칼릭스와 기사들은, 이내 사방에서 밀려오는 병사들에 의해 포위된 채 기동력을 점차 상실해 갔다.

그나마 마스터인 칼릭스가 앞장서서 길을 뚫고 있어서 금방 발이 묶이진 않았으나, 곧 카이문군에서도 그를 상대하기 위해 마스터급을 포함한 기사들이 나서기 시작했다.

“보병들로 퇴로를 확보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이렇게 적진 한복판까지 깊숙하게 들어오다니. 무모한 기사여. 부하들을 죽음으로 이끈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칼릭스 마이언이오.”

“헛! 알펜시아의 신성이라 알려진 젊은 마스터가 바로 그대였군. 검술의 천재라는 소문을 들었는데, 역시 아직은 전쟁의 경험이 미숙했던 모양이지.”

스스로의 무위에 취한 젊은 마스터가 앞뒤 재지 못하고 무리한 부대 운용을 벌였다고 여긴 카이문의 마스터는, 진한 비웃음을 입가에 그리며 손에 쥔 검에 오러를 한껏 주입했다.

“본인은 새벽녘의 기사라고도 불리는 카이문 왕국의 명예로운 귀족, 아키드 베르만이라 한다. 이 몸이 직접 그대의 수급을 취해, 알펜시아 정벌의 자랑스러운 첫 전공으로 삼겠노라!”

오러 블레이드를 형성한 적국의 마스터 아키드가, 말을 몰아 칼릭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이제 슬슬 내가 제대로 나서는 편이 좋을 것 같네만.”

“예. 여기서부터 시작하도록 하지요.”

칼릭스의 옆에 있던 알론드가 전마에서 뛰어내리더니, 두어 걸음 남짓 앞으로 나섰다.

포위된 상태에서 눈앞에 적군의 마스터가 기사들과 함께 강렬한 오러를 흩뿌리며 다가오고 있음에도, 두 사람은 봄바람을 즐기며 산책이라도 나온 듯이 태연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이런 제길! 어서 빠져나오지 않고 뭘 하고 있는 거야!”

멀리서 전황을 지켜보던 남부군 사령관이 칼릭스를 구출하기 위해 다급히 주변의 병력을 움직였으나, 적진으로 깊숙하게 파고든 마이언가의 기사단을 단시간 내 따라잡을 만큼 인접해 있는 부대는 없었다.

‘단독행동을 허가했다지만 무리는 하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부탁했거늘! 끄응, 마스터 두 사람만이라도 무사히 돌아와야 할 텐데.’

마스터가 둘이나 포함된 기사단 전력이니 적들에게 쉽게 당하진 않겠지만, 저렇게 포위된 상태에선 운이 없으면 빠져나오는 과정에서 큰 부상을 입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마에 한가득 주름을 잡으며, 사령관 제로스는 애타는 마음으로 두 사람의 무사복귀를 기원했다.

그리고 잠시 뒤.

제로스는 자신의 기도가 상당히 소박한 것이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벼락처럼 뻗어 나온 오러 블레이드가 굵직한 줄기들을 이루며, 주변을 에워싸던 카이문군의 기사들을 강타했다.

오러로 보호받는 단련된 기사의 육신조차도 간단히 찢어발길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이 담긴 광범위한 폭력이 사방으로 펼쳐졌다.

하늘에서 붉은 비가 쏟아져 내린다.

머리나 팔 혹은 몸통 전체가 조각조각 갈라진 인간의 신체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뿜어져 나온 피가, 머리 위로 잔뜩 뿌려지는 모습이었다.

너무도 비현실적인 광경에 적아를 가리지 않고, 주변에 있던 모두가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딱딱하게 얼어붙는다.

“자네의 검술을 보며 얻었던 영감을, 이제야 겨우 내 검에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다네. 어떠한가?”

“……대단합니다. 굉장히 빠르고, 강력하군요.”

천하삼십육검의 오의인 천하무궁과 비슷한 검식으로 달려들던 기사들을 모조리 도륙해 버린 알론드의 무용에, 칼릭스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눈을 크게 치켜떴다.

‘이게 알론드 님이 새로 발을 들인 경지의 검술인가. 내가 심상세계에서 전력으로 펼쳤던 천하무궁 원본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초식이로군.’

엄밀히 따지면 빈틈없이 빼곡하게 전 방위를 베어내는 천하무궁과 비교했을 때, 알론드의 검술은 정교한 맛이 조금 부족했다.

대신 속도와 위력에서만큼은 오히려 원본보다 더 뛰어난 부분이 있었다.

이윽고 주변을 둘러보는 칼릭스의 시야에, 알론드의 검술이 만들어낸 결과의 유일한 생존자의 모습이 담겨 들어왔다.

“끄으윽…….”

허리와 다리 한편에 기다란 검상을 입고 쓰러진 마스터 아키드가, 바닥을 기며 어떻게든 일어서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알론드의 검술이 워낙에 위력적인 공격이었던지라, 중상을 면치 못하고 완전히 무력화된 모습이었다.

“그, 그랜드…… 어찌, 어떻게……?”

마스터의 단계에서도 분명히 수준의 차이는 있는 법이지만, 이렇게 압도적인 격차를 보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더 상위의 경지만이 가능하다.

알려져 있지 않은 그랜드 마스터의 출현에 큰 충격을 받은 아키드는, 부릅뜬 눈으로 알론드를 바라보며 제대로 말조차 잇지 못했다.

“너무 억울해하진 마시게. 자네가 허무하게 죽는 것은, 자네의 조국이 그리 급작스럽게 전쟁을 일으킨 탓 아닌가.”

“비러…… 머그…….”

욕설을 중얼거리는 아키드의 목으로, 무정한 칼날이 떨어져 내렸다.

핏물을 흘리며 잘려나간 머리를 바라보며, 칼릭스가 아쉽다는 듯이 탄식을 뱉으며 입을 열었다.

“이런! 새벽녘의 기사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 했는데, 듣지 못했군요.”

“허어? 그게 왜 궁금한가?”

“제법 있어 보이는 칭호가 아닙니까. 어디서 어떤 활약을 보였기에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거참…… 자네도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성격이 꽤 달라졌구먼. 이런 상황에 별 시답잖은 농담을 다 하고.”

“하하! 그랜드 마스터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싸운다고 생각하니, 저도 평소보다 조금 흥분한 모양입니다.”

“뭐 정 궁금하면 응징을 끝낸 뒤에, 저쪽 사람들을 잡아다가 물어보면 되지 않겠는가.”

이미 승리는 정해졌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전후의 일을 말하는 알론드의 모습에, 칼릭스 역시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시지요. 선두를 부탁드립니다.”

“그러세. 폐관수련 동안 거의 종일을 명상만 하며 지냈다 보니, 그렇지 않아도 좀이 쑤셔 날뛰고 싶던 차였다네.”

가공한 무위를 드러낸 알론드의 주변에는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부대가 싸움을 멈추고 공포에 젖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겉보기엔 평범한 중년인처럼 보이는 부드러운 외형으로 변한 알론드였으나, 그가 진심으로 살의를 드러내며 오러를 휘두르자.

일반인은 결코 버틸 수 없는 두려운 기운이, 장내를 짓누르며 적들의 정신을 압박했다.

그들이 있는 장소는 조금만 시선을 올리면 어디를 둘러보아도, 창칼을 휘두르며 악을 지르는 병사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엎치락뒤치락하는 전장의 한복판이었지만.

이곳만은 마치 전장이 아닌 격리된 어떠한 다른 공간인 것처럼 보였다.

이윽고 알론드가 대지를 박차고 앞으로 달려 나가며, 정지되어 있던 풍경이 정상으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고상하게 표현하긴 했지만, 그냥 피와 비명이 난무하는 전장에 어울리는 모습이 되었다는 의미다.

“아악!”

“사, 살려줘!”

찬란하게 빛나는 오러 블레이드가 허공에 선을 그으며 지나갈 때마다, 농부가 수확을 위해 베어낸 곡식에서 떨어진 알갱이처럼 사람의 머리들이 우수수 바닥으로 쏟아진다.

적들의 입장에선 끔찍하고 참혹한 현장이었으나, 아군에게는 수세에 몰려 꺾여가던 기세에 불을 지피는 연료와도 같은 광경이었다.

눈 한번 깜박일 때마다 수십의 시체가 땅바닥을 뒹군다.

진심을 다해 적들을 유린하는 그랜드 마스터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이 전장 내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강대한 오러를 운용하며 맨몸으로 우수한 품종의 전마보다도 뛰어난 신체능력을 발휘하게 된 알론드는, 뒤따르는 기사들이 온 힘을 다해 말을 몰아야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는 경이로운 속도로 적진을 파고들었다.

전황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챈 카이문군의 지휘관들이, 마법병단을 통해 그의 앞길에 온갖 마법을 난사하며 방해하려 했으나.

넘실거리는 오러로 전신을 갑옷처럼 뒤덮은 알론드를 막아 세울 순 없었다.

그랜드 마스터가 괜히 무적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다.

수십 명의 마법사가 미리 대규모의 합동마법을 준비하고 함정을 짜두지 않는 이상, 어지간한 주문들로는 초인의 발을 붙잡기가 불가능하다.

‘이게 그랜드 마스터…… 가히 전장의 지배자라 할 수 있는 존재인가. 후우, 빨리 전쟁을 종결시키고 알론드 님이 얻은 심득에 대해 검을 맞대며 탐구해보고 싶군.’

반쯤은 이미 그랜드 마스터에 발을 걸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칼릭스조차, 파죽지세로 날뛰는 알론드의 무위에 깊은 전율을 느꼈다.

“고위 장교로 보이는 이들이 저기 있군. 아무래도 우리가 찾던 지휘부가 저쪽인 모양일세.”

“엇? 허…… 예상보다 더 빠르게 돌파했군요.”

소름이 돋은 팔뚝을 문지르며 알론드의 뒤를 쫓던 칼릭스는, 속도를 늦추며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는 그의 말에 시선을 옮겼다.

과연 알론드의 말대로 지휘관들이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수준 높은 기사들이 주변을 탄탄하게 둘러싸고 있지만, 그래 봐야 그랜드 마스터의 앞에선 허수아비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적의 사령관을 생포하면 종전협상을 유리하게 이끌 수 있을 테지?”

“하핫! 지당하신 말씀이십니다.”

산책을 나온 김에 물건 하나 들고 가자는 듯이 여유로운 태도로 말을 건네 오는 알론드를 보며, 칼릭스는 도무지 전쟁 중이라는 실감이 나질 않아 실소를 흘리며 대답해 주었다.

이어서 그랜드 마스터라는 무적의 검이자 방패를 필두로 한 마이언가의 기사단이, 필사적으로 앞을 막아서는 적들을 관통하며 카이문군의 지휘사령부를 향해 돌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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