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82화
“모, 몬스터…… 진짜로 몬스터들이잖아.”
“저런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 거야…….”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으르렁거리며 다가오는 몬스터들과 눈을 마주친 병사들이, 후들거리는 다리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며 속마음을 입으로 표출했다.
전투경험이라고 해봐야 도시의 치안을 어지럽히는 떠돌이 부랑자들이나 뒷골목 건달패들을 상대해본 정도가 대부분인 일반병사들에게, 몬스터의 존재는 기본적으로 공포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싸우기 위한 훈련을 받아온 자들이라 해도 자주 경험하며 익숙해지기 전에는, 혐오스러운 생김새의 몬스터들을 상대로 발생하는 원초적인 두려움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오러를 다루는 기사조차도 몬스터전의 경험이 부족하다면 긴장으로 몸이 굳어 실수를 하곤 하는데, 일반병사들의 경우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거, 겁먹을 필요 없다! 저것들도 창에 찔리면 피를 흘리며 죽기는 마찬가지야!”
“훈련받은 대로만 하면 된다! 그냥 조금 더 징그럽게 생긴 들짐승이라고 생각해라!”
지휘관들이 목소리를 높이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정작 본인들조차도 무섭기는 마찬가지였는지 목소리에서 떨림이 느껴지는 것을 감추지는 못했다.
사실 말이야 훈련받은 대로 하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병력들이 몬스터전에 대해서는, 기초적인 대처법 정도만 교육받은 게 전부이기에.
지휘관들은 적들과의 교전에서 얼마나 올바르고 정확한 지시를 내릴 수 있을지, 스스로조차도 속으로 의문을 떠올리고 있었다.
크워어억!
“아아악!”
“주, 죽어! 망할 괴물들!”
“끄윽! 사, 살려 줘!”
몬스터들의 포효와 뒤섞인 고통에 찬 신음과 비명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전황은 왕국군 측이 불리하게만 흘러갔다.
본래는 단독 활동을 하는 강력한 중, 대형급 몬스터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드니, 인간의 힘으로는 녀석들의 돌진을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특히나 대형급 몬스터를 상대로는 함정이나 장애물이 거의 무용지물이었기에, 정면승부로는 애초에 승산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멈춰라! 더러운 괴물아!”
“몬스터와 반역도들을 섬멸하라!!”
그나마 오러를 통해 체급의 차이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는 기사들이 나서며, 몬스터들을 앞세운 적군의 발걸음이 늦춰지긴 했으나.
적측에도 기사가 있기는 마찬가지였기에, 불리함이 그다지 완화되지는 못했다.
“개 같은 놈들!”
“조국을 배신하고 이따위 짓을 벌이다니! 부끄럽지도 않더냐!”
얼마 전까지 같은 왕국군 소속이었던 서부군 기사들과 검을 부딪치며, 분노한 아군 측 기사들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욕설이 섞인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적군의 기사들은 묵묵히 오러가 담긴 검을 휘두르며, 몬스터들을 막아서는 왕국군 기사들의 분투를 방해했다.
중부의 수도군과 각지에서 몰려온 지원 병력으로 인해, 전체적인 기사의 수는 그래도 아군 쪽이 크게 우세했지만.
몬스터전에 특화된 스페셜리스트라 할 수 있는 서부군 기사들은 역으로 놈들의 패턴을 능숙하게 이용할 줄도 알다 보니, 마치 미리 합을 맞춘 것처럼 녀석들을 사이에 끼고 이리저리 치고 빠지며, 수적인 열세를 몬스터를 활용한 움직임으로 메우고 있었다.
[플레임 버스터]
[체인 라이트닝]
퍼엉! 파지직-
왕국군 마법전단에 소속된 마법사들이 주문을 영창하며 기사들을 도와 몬스터들을 요격하려 했으나.
[다크니스 실드]
[본 익스플로전]
몬스터 군단의 뒤에는 대수림의 지하에 숨어들어 있던 원 아이드 캣의 엘더들이 있었기에, 마법전단에 대항하는 적들의 마법전력도 꽤나 만만치가 않았다.
“지저분한 어둠의 마력에 영혼까지 잠식된 추악한 흑마법사놈들이…….”
“큭큭큭! 진정으로 위대한 지식은 심연 속에 잠들어 있는 법이거늘. 흑마법을 금기시하는 너희들은 진짜 마법사가 아니라 학자 나부랭이일 뿐이다.”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거리이지만 서로를 노려보며 혐오감을 드러낸 양 진영의 마법사들이, 각자 상대를 향해 마법을 퍼부으며 증오심을 폭발시켰다.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치열한 전투가 몇 시간이고 계속되었다.
밀리는 듯하다가도 다시 힘을 내어 적들을 몰아내길 반복하며, 왕국군은 쭉 힘겨운 분전을 이어갔다.
“끝이다. 역겨운 괴물아.”
화르륵!
키에엑-! 쿠웅.
불꽃이 일렁이는 듯한 오러를 내뿜으며 대형급 몬스터 하나의 두개골 안쪽을 바짝 익혀 버린 도미닉 이플리트가, 쓰러진 녀석의 시체에서 뛰어내리며 부리부리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플리트 가문의 기사들은 뛰어난 명성답게 전선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었고, 특히나 가주인 마스터 도미닉은 왕국군의 중심이 되어 대형급 몬스터들을 순차적으로 격파해가고 있었다.
다만 그가 그렇게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음에도, 전황은 좀처럼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하, 징그러운 것들.”
도미닉의 눈에 저 멀리에서 커다란 살덩어리가 뒤뚱거리며 움직여, 주변의 아군 병사들을 육중한 거구를 이용해 짓뭉개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것은 두 번째였는지 세 번째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확실히 도미닉이 직접 처치했던 대형급 몬스터의 사체였다.
시체와 영혼을 다루는 사령술.
흑마법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으며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계통의 술법인 네크로맨시의 일종이었다.
‘저렇게 죽어서 움직이는 놈들은 별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서지 않을 수도 없으니 문제군.’
공을 들인 흑마법을 통해 강력한 언데드로 재탄생시킨 게 아니라, 단순히 죽은 시체를 임시로 움직이게 만드는 수준.
그렇기에 생전에 비해 위험도는 떨어지긴 하다.
하지만 대형급 몬스터의 거체는 그 질량만으로도 평범한 이들에겐 압도적인 폭력이 되기에, 마스터인 그가 직접 나서서 다시 녀석을 잠재워야만 했다.
도미닉의 얼굴에 숨기기 힘든 피로감이 서렸다.
죽여도 되살아나 움직이는 적과 계속해서 싸우는 것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피곤해지는 일이다.
마스터도 사람인 이상 강대한 몬스터들과의 반복적인 전투에 지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도미닉 이플리트. 지쳐 보이는구려.”
자신을 부르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막 숨을 잠시 돌리려던 도미닉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하룬빌의 잡놈들이 왜 안 나타나나 했더니, 쥐새끼처럼 숨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나 보군?”
“굳이 목숨을 걸고 어려운 길을 가야 할 필요는 없으니, 유리한 상황을 기다리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소?”
능청스러운 태도로 웃음을 지으며 걸어오는 테슬리 하룬빌의 모습에, 도미닉은 콧김을 훅하고 내뿜으며 그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전투 내내 하룬빌 가문의 마스터가 보이지 않아, 계속 마음 한구석에 불안감을 품고 있었거늘.
결국 우려하던 대로 자신이 지쳐서 휴식을 해야 할 때쯤이 되자, 상대측의 마스터가 모습을 드러내며 하이에나처럼 슬금슬금 다가오고야 말았다.
“데이먼은 어디 있지?”
“가주는 지금 이곳에 없소.”
주위를 둘러보며 말하는 도미닉과 마주선 채, 테슬리는 느긋한 기색으로 천천히 검을 뽑으며 대답을 내뱉었다.
정말로 가까이에서 다른 마스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도미닉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테슬리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웃기는군. 네놈 따위가 혼자 나를 상대하겠다는 거냐?”
“후후! 한참을 날뛴 탓에 오러하트가 삐걱대는 소리가 여기서도 들리는 것 같은데. 잘도 태연한 척 허세를 부리는구려.”
“마스터라 해도 다 같은 급인 건 아니지. 날 상대하려면 늙은 뱀 한 마리뿐 아니라 너희 그 잘난 가주 녀석도 데려와야 수준이 맞을 텐데.”
계속해서 빈정거리는 도미닉의 태도에, 테슬리는 웃음기를 지우고 싸늘한 어조로 그의 말을 받았다.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지 않기 위해 기다렸을 뿐. 그대의 목숨을 앗아가는 일은, 설령 만전의 상태라 해도 나 혼자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잘도 개소리를 지껄이는군. 하긴 우리가 경쟁가문이라고 말들은 많았어도, 마스터들끼리 본격적으로 대결을 해본 적은 별로 없긴 했지. 좀 처맞아봤으면 그런 소리를 하지 못했을 텐데 말이야.”
빠드득.
비아냥거리는 도미닉의 모습에 소리가 나도록 이를 악문 테슬리는, 더는 대화를 하지 않겠다는 듯이 검에 오러를 불어넣으며 그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갔다.
도미닉 역시 이플리트 가문 특유의 화염이 일렁이는 듯한 오러 블레이드를 형성한 채, 거리를 좁혀오는 상대를 맞이하기 위해 자세를 고쳐 섰다.
파박! 카가강!
챙! 까강, 끼기긱!
땅을 박차며 일반인의 눈으로는 쫓기도 어려운 속도로 움직인 두 마스터가, 서로 검초를 부딪치며 상대의 몸에 상처를 입히기 위해 치열하게 공격을 교환했다.
‘쯧! 분명히 힘이 많이 빠졌을 텐데도 만만치가 않아. 역시 곧 죽어도 이플리트가의 가주란 건가.’
‘하룬빌의 폭발적인 검세는 알고 있어도 막아내기 버겁군. 잘못하다간 이 자리에서 뼈를 묻을 수도 있겠어.’
마스터 간의 전투는 종이 한 장의 차이로도 목숨이 오가는 승부가 벌어질 수 있다.
입으로는 이러쿵저러쿵 말다툼을 벌였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실력을 인정하고 싸움이 쉽지 않으리란 것을 직감하며, 신중하게 상대의 생명을 빼앗기 위한 투로를 펼쳐갔다.
그렇게 어느 한 사람이 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을 사투가 이어지던 중.
팽팽하게 유지되던 양측의 검세가, 천천히 한쪽으로 기울어져 가기 시작했다.
‘제길…… 오러가 조금이라도 더 남아 있었다면!’
지속적인 전투로 이미 많은 기력을 소모한 도미닉이, 집중력을 잃고 결국 점점 뒤로 밀려나고야 말았다.
같은 마스터라 해도 검사로서의 실력은 도미닉 쪽이 반수 정도 위였으나, 이미 지쳐 있던 탓에 제 실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가 없었다.
‘흐흐, 이플리트가의 가주를 내 손으로 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오다니. 내 평생 최고로 짜릿한 순간이로군.’
승기를 잡은 테슬리는 흥분한 기색으로 평상시 사람들 앞에서 내보이는 근엄한 표정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뱀처럼 혀를 날름거리며 살심으로 반들거리는 눈초리로 도미닉을 노려보았다.
결국 계속된 접전 속에서 결정적인 찬스를 먼저 잡아낸 테슬 리가, 도미닉의 목에 검을 박아 넣기 직전의 시점까지 오게 되었다.
‘아…….’
죽음을 직감한 도미닉이 속으로 탄식을 터뜨리면서도, 적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눈을 부릅뜨는 순간.
섬전처럼 쏘아져 날아든 무언가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며, 테슬리의 검과 부딪쳐 검로를 틀어지게 만들었다.
“어엇!?”
“이노옴!”
검이 목을 스쳐 지나가는 감각에 움찔한 도미닉이, 당황한 테슬리를 향해 노호성을 내지르며 검을 휘둘러 반격했다.
기회가 갑작스럽게 위기로 뒤바뀌는 사태에 기겁한 테슬리가, 다급하게 옆으로 몸을 던지며 바닥을 뒹굴다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으윽, 대체 뭐가……?”
절호의 기회를 놓친 테슬리가 분노로 치를 떨며 주변을 살폈으나, 방해물의 모습은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분명 오러가 담긴 무언가였는데?’
흔적이 남지 않는 것도 당연했다.
그것은 화살이나 암기 같은 것이 아니라, 권을 내질러 날려 보낸 무형의 경력(勁力)이었기에.
“후욱, 늦지 않아서, 후우…… 다행이군요.”
영지에서부터 최대한의 속도로 이동하여 국가의 명운이 달린 거대한 전장에 합류한 칼릭스가, 싸우고 있던 두 사람을 멀리서 발견하고 달려와 전투에 개입했던 것이었다.
그가 방금 펼친 것은 소림이 자랑하는 칠십이종절예 중의 하나인 백보신권이었다.
허공을 격하고 멀리 떨어진 상대를 타격하는 기상천외한 권법.
다만 거리가 멀어질수록 소모되는 내공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에.
도미닉의 곁으로 달려와 선 칼릭스는 잠시 숨을 고르며, 날뛰는 오러를 진정시키기 위해 잠깐의 시간을 소비해야만 했다.
“칼릭스 마이언! 네놈이 여기 왔다는 건…….”
자세를 추스른 테슬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칼릭스의 뒤를 살폈다.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 저 멀리 전장 한쪽에서부터, 시시각각 가까워지고 있는 마스터의 오러가 느껴졌다.
‘알론드 그 노인네도 따라왔군. 마스터 셋이 한자리에 모이다니.’
이를 갈던 테슬리가 이윽고 인상을 피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당장 자신의 손으로 도미닉을 끝장내지 못한 것은 아쉬웠지만, 이런 상황은 자신들 하룬빌가의 입장에선 또 다른 훌륭한 기회이기도 했다.
‘성가신 방해물들이 딱 좋게 한곳에 모였군. 그럼 이제 그걸 쓰기만 한다면…….’
다수의 마스터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된 비장의 한 수에 대해 떠올린 테슬리는, 허리춤에 달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웃음을 지었다.
흑마법사들과 손을 잡은 하룬빌 가문이, 그들에게 대량의 제물을 구해다 주며 만들어낸 필살의 병기.
두 번 이상은 사용할 수 없는 물건이고 하룬빌가조차도 딱 하나밖에 보유하지 못했지만, 저들이 상대라면 이 자리에서 그 기회를 소모하는 것도 전혀 아까운 일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