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81화 (81/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81화

“돌격 앞으로! 침략자들을 제압하라!”

“이야아앗!”

지휘관의 돌격명령에 창을 꼬나 쥔 병사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앞으로 달려 나간다.

투지가 느껴지기보다는 거의 비명에 가까운 형태의 고함소리였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병사들의 앞에 선 상대는 그들보다 키가 두 배 이상은 큰 육중한 몬스터였기 때문.

무어어어!

3.5미터에 달하는 신장.

높게 치솟은 머리 위의 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소처럼 생긴 몬스터 미노타우르스가, 성난 포효를 내지르며 병사들을 향해 곤봉을 넓게 휘둘렀다.

말이야 간단하게 곤봉이지 사람 몸뚱이만 한 크기의 통나무를 휘두른 것이다 보니, 용감하게 달려들었던 병사들은 타격과 동시에 우그러진 고깃덩어리가 되어 바닥을 나뒹굴어야 했다.

“미, 미친…… 저딴 괴물을 어떻게 상대하라는 거야!”

“아악! 살려줘!”

성문을 파괴하고 들이닥친 미노타우르스 한 마리에 의해, 간신히 버티고 있던 도시의 수비대 병사들은 순식간에 전의를 상실하게 되었다.

몬스터라고는 도시 주변의 작은 마을들에 가끔 출몰하곤 하는 고블린 따위나 토벌하던 게 전부인 병사들이다.

성벽이라는 방어수단이 있었기에 그나마 여태까지 도망치지 않고 싸울 수 있었을 뿐.

오우거보다는 격이 떨어진다고 평가받지만 중형급 몬스터 중에선 상위에 랭크되어 있는 미노타우르스를 상대로, 평범한 병사들이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리를 지켜라! 저 괴물들이 네 가족들을 유린하게 둘 것이냐!”

“몬스터의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어떻게든 이곳을 사수하라! 반역도들에게 도시가 함락당하면 어차피 다 죽은 목숨이야!”

쉰 목소리로 악을 지르며 돌아다니는 기사들이 병사들을 독려해 대열을 유지시켰다.

“하아압!”

미노타우르스를 처치하기 위해 달려온 기사 하나가 측면에서 뛰어오르며, 온몸을 내던지다시피 하는 큰 동작으로 놈의 목을 베기 위해 검을 휘둘렀다.

터엉!

“아, 아닛!?”

그러나 미노타우르스가 머리를 돌려 큼지막한 뿔을 들이대자, 오러가 담겨 은은하게 빛나던 검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채 허공에 멈춰 서고 말았다.

음무우우!

거칠게 고갯짓을 하며 공격을 떨쳐낸 미노타우르스가 착지하는 기사를 그대로 통나무로 내리찍어, 대지와 한 몸이 되도록 납작하게 만들어주었다.

곪아서 부풀어 오른 종기를 터뜨린 것처럼, 다량의 핏물이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으아아아!”

“기사들은 어디 있나! 빨리 저 괴물을 쓰러뜨려야 한다!”

강력한 몬스터를 앞세워 성문을 부순 적병들이, 뚫린 구멍을 넘어 꾸역꾸역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궁병들이 그쪽을 향해 집중적으로 화살을 날려 침입을 억제하고는 있지만, 안으로 들어선 미노타우르스가 계속 날뛰는 이상 결국은 입구를 내어줄 수밖에 없게 된다.

여기서 적들을 몰아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나게 되면, 결국 도시 전체가 함락되는 것도 금방이다.

그렇기에 성벽 위에서 넘어오는 적들을 베어 넘기던 기사들은 성문의 일부가 파괴되었다는 급보를 받자마자, 부대 지휘도 내팽개치고 다급히 달려와 미노타우르스를 막아서기 위해 용맹하게 몸을 던졌다.

“서둘러! 입구를 다시 막아야 한다!”

“죽어라, 이 괴물 자식아!”

움무응-!

목숨을 도외시하며 필사적으로 공격하는 기사들.

그런 기사들의 눈물겨운 투쟁에, 압도적인 신체능력으로 수비대를 몰아붙이던 미노타우르스도 결국 상처가 깊어지다가 쓰러지고 만다.

“적들을 밀어내라!”

“이야아악!”

간신히 흐트러진 진형을 다시 수습한 병사들이, 악을 쓰며 앞으로 달려 나가 창을 내질렀다.

부서진 성문의 틈을 넘어 들어오는 적병들의 몸에 날카로운 창날이 틀어박히며, 사방에서 유혈이 낭자하는 광경이 펼쳐졌다.

“제길…… 같은 왕국군끼리…….”

멍한 표정으로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적병의 모습에, 누군가가 안타까움과 죄책감, 원망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을 담아 중얼거렸다.

몬스터와 뒤섞여 도시를 침공해온 적의 병사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랑스러운 왕국군의 일원이었던 서부의 군단병들이다.

자신들이 하는 행위가 국가에 대한 반역임을 안다면, 병사들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항명하거나 탈영하는 이가 나올 법도 하지만.

일찌감치 지속적으로 식사에 약물을 섞여 먹이고 사악한 흑마법의 술법에 노출되었던 탓에, 서부군의 병사들은 이지가 흐려진 채 윗선의 뜻이 거스를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들은 그저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며, 전투에 투입되어 명령에 따라 소모품처럼 목숨을 던져갔다.

“구멍을 막아야 한다!”

“시체를 밀어! 바리케이드를 쌓아라!”

겨우 숨을 돌린 수비대가 미노타우르스와 적병들의 시체를 성문 쪽으로 밀어 넣으며,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벽을 쌓아 입구를 다시 봉쇄했다.

그러나 사태가 진정되는 것을 확인한 지휘관들이 안도할 새도 없이, 곧바로 여기저기에서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속출하기 시작했다.

미노타우르스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기사전력이 성문 쪽으로 쏠린 사이에, 신체적 특성을 활용해 성벽을 타고 넘은 몬스터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키에에엑!

츠츠츳! 크캬캭!

갈고리 같은 긴 발톱을 박아 넣으며 벽을 기어오른 도마뱀을 닮은 형태의 몬스터들이, 귀를 따갑게 만드는 괴성을 지르며 성벽 위의 병사들을 덮쳤다.

리자드맨.

2미터가량의 신장에 이족보행을 하는 몬스터로 체구는 인간과 큰 차이가 없지만, 당연히 몬스터답게 인간보다 빠르고 강인한 신체능력을 지닌 녀석들이다.

게다가 놈들은 단단한 비늘로 몸을 뒤덮고 있어, 전신에 스케일 아머를 걸친 것과 다를 바 없는 방어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망할! 저 파충류 새끼들 좀 어떻게 해봐!”

“방패 든 놈들! 뭐 하고 있어! 어서 밀어붙여!”

“어떻게든 자리를 지켜! 밀리기 시작하면 계속 놈들이 넘어오게 된다!”

창칼이 잘 박히지도 않아 병사들만으로는 상대하기 버거운 몬스터.

성벽을 넘은 리자드맨들에 의해 피해가 점점 늘어나는 모습에, 막 성문 쪽으로 내려와 미노타우르스를 처치했던 기사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다시 계단을 뛰어올랐다.

한 자리를 지키기도 힘든 마당에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계속해서 전투를 벌이려니, 아무리 단련된 기사라 해도 체력이 바닥나지 않을 수가 없다.

가뜩이나 쉽지 않은 전투는 기사들의 지쳐갈수록 점점 안 좋은 상황으로 흘러가는 형국이 되었다.

“후욱! 지원은, 지원군은 아직 인가…….”

가쁘게 호흡을 내쉬며 넘어오는 몬스터들을 몰아내던 지휘관 중 하나가, 성벽 너머를 힐끔거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분명히 남쪽에서 올라오는 어느 부대가 오늘 안으로 도착할 거란 통신이 있었는데.

이대로라면 지원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도시가 함락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엇?”

그런 열렬한 소망이 만든 환상일까.

저 멀리 지평선 부근에서부터, 무언가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날아오는 모습이 지휘관의 시야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워낙 빠른 속도 때문에 비행하는 새인 줄 착각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이 자신과 같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마스터! 지원군이다! 마스터가 온다!”

한껏 희망이 담긴 그의 외침에, 수비대 전원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지원군, 그것도 마스터라니.

전쟁터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가슴 뛰는 울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윽고 한 줄기 벼락처럼 날아와 몬스터와 적병들 사이로 파고든 마스터의 검이, 성벽 앞에 몰려 있던 적의 군세를 해일처럼 덮치며 문자 그대로 쓸어내 버렸다.

과연 자신들만으로 막아낼 수 있을까 걱정스러웠던 적들의 숫자는, 고작 몇 분 사이에 완전히 궤멸에 이르렀다.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지휘관이, 이내 화들짝 놀라며 부하들을 향해 외쳤다.

“어…… 아! 서, 성문을 열어라! 아, 아니! 먼저 앞에 쌓은 시체들부터 치우-”

“그럴 필요 없소.”

“허업!?”

바로 곁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지휘관은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돌렸다.

별로 크지도 않은 그의 눈이 찢어질 듯이 벌어진다.

방금까지만 해도 성벽 아래에 있었는데 어떻게 여기 있는 건지, 적들을 쓸어버린 마스터가 자신의 눈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설마 성벽을 뛰어넘은 건가? 아무리 마스터라 해도 이 높이를?’

당황해서 입을 뻐끔거리는 그를 보던 칼릭스가,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황이 위급할까 싶어 급하게 달려오길 다행이었군.’

기사이자 귀족으로서, 사악한 무리들과 손을 잡고 국가에 반역의 칼을 들이댄 자들을 두고 볼 수 없었기에.

칼릭스는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7군단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교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중부와 서부 사이의 지점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다만 목적지로 가는 길에 공격을 받고 있다는 도시에 대한 소식이 연락망을 통해 들어와, 다른 이들과 잠시 떨어져 신법을 활용한 최고속도로 달려온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적들의 세력이 대단치 않아, 굳이 도움을 줄 필요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지. 최근 알론드 님과 둘이서만 자주 돌아다녔다 보니, 마스터의 기준으로 생각해 버렸군. 일반적인 도시의 수비 전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만 해도 막아내기 어려운 상대였을 터.’

도시를 공격하던 적들은 위험한 대형급 몬스터도 없고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었다.

적들을 조종하는 흑마법사가 무리에 섞여 있긴 했지만 엘더로 불리는 간부는 아니었는지, 자신의 칼질 한번 막아내지 못하고 순식간에 목이 날아갔다.

하지만 그런 모든 점들을 감안해도, 작은 도시의 수비대에게는 재앙이나 마찬가지인 군세였으리라.

‘바꿔 생각해 본다면 정말로 강력한 적들의 본대는, 역시 중부 쪽에 몰려 수도를 덮치기 위해 움직이는 중이라는 거겠지.’

적들의 정확한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대형급 몬스터와 고위 흑마법사들의 위력을 직접 체험해본 적이 있기에.

칼릭스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저 멀리 왕국의 수도가 위치해 있을 방향을 응시했다.

왕국군의 전력과 왕국을 수호하는 가문의 기사들은 결코 약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공격하는 자들 역시 왕국군의 일부인 서부의 군단들이며, 나라를 대표하던 최고의 무가가 적들의 편에 서 있었다.

흑마법사들의 조직과 강력한 몬스터들로 이루어진 군세, 거기에 서부군과 하룬빌 가문이 손을 잡았으니.

그 파급력을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전선에 합류하여, 국가의 위기를 막기 위해 한 손이나마 보태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지원군이라고 해도 사실 칼릭스의 영지에서 데려올 수 있는 병력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스터 두 명이 포함된 전력은 부족한 양을 가볍게 메울 수 있는 질을 갖추고 있기에.

칼릭스의 참전은 왕실의 입장에서도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대가 이곳 수비대의 최고지휘관인가?”

“아, 그, 그렇습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백작 각하!”

칼릭스를 알아본 지휘관이 머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인사를 올렸다.

북부군에서 나온 이후로 명성이 알려질 만한 일은 그리 없었지만, 워낙 젊은 나이의 마스터다 보니 어지간한 사람들은 쉽게 그의 정체를 알아보는 편이다.

“곧 내가 이끄는 지원군의 본대가 이곳에 도착할 걸세. 지치고 힘든 와중에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하지만, 그들이 쉴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고 도시에 비축된 물자들을 내어주도록 하게.”

“무, 물론입니다.”

얼핏 들으면 강도나 마찬가지인 듯한 요구였지만 칼릭스가 무엇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일지 금방 떠올릴 수 있었던 지휘관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요구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여기서 휴식을 취한 뒤, 군수물자들을 보급해 중부로 곧장 이동해야 한다. 왕국군의 피해가 심해지기 전에 싸움에 끼어들 수 있어야 할 텐데.’

마스터라는 날카로운 칼날도 혼자서 모든 적을 베어낼 수는 없다.

아군 측의 전력이 보존되어 있어야 그와 함께하는 마스터들의 활약이 더욱 빛을 볼 수 있는 법이기에, 칼릭스는 부대의 일정을 계산하며 최대한 빠르게 전장에 합류할 수 있도록 서둘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