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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80화 (80/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80화

반란

대수림의 몬스터들이 대거 몰려나와 서부군과 하룬빌가의 영토들이 궤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다는 소식이 각지에 전해졌다.

갑작스럽게 지원요청을 받은 타 지역의 군단들과 여러 귀족세력들에서는 잠시 혼란이 일었지만, 그들은 이내 병력을 추려 서부로 파견을 보내왔다.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국가적인 위기가 발생한 것이니, 다들 최대한 협조하는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수도군 2군단 소속, 매그날 도드벅이오.”

“매그날 경. 환영한다고는 못하겠군. 오자마자 미안한 말이지만 전황이 위태로운 사정이니, 바로 전선에 투입돼줘야 하겠소.”

“흠. 상황이 그렇다니 따르도록 하지.”

암울한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는 임시전선의 병사들을 둘러본 매그날은, 불평을 늘어놓는 대신 얌전히 지휘부의 지시에 따랐다.

‘피해가 크다더니 정말인가 보군.’

매그날이 동료 기사들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전열에 배치되기 무섭게, 타종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앞쪽에서 먼지구름이 넓게 피어올랐다.

“몬스터들이오. 정말이지 쉴 새 없이 몰려오는군.”

전열까지 안내를 해온 기사의 말에, 매그날은 주변을 둘러보고는 당혹스러운 감정이 실린 목소리를 내뱉었다.

병사들은 진형을 갖추고 대기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을 지휘할 기사들이 거의 보이지가 않았다.

“설마 우리만으로 여길 막으라는 거요?”

“현재 서부군 전체가 기사전력의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니 양해해주시오. 갑작스럽게 발생한 몬스터 웨이브 때문에 피해가 심각했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조금만 버티면 곧 다른 곳에서 교전을 마친 부대들이 지원을 나올 것이오. 그때까지만 부탁드리겠소.”

“끄응. 어쩔 수 없군.”

불안해하는 병사들을 다그쳐 방진을 일부 수정한 매그날은, 동료들과 함께 선두에 서서 다가오는 몬스터들을 노려보았다.

“선배님. 오크들입니다. 그리고 트롤도 몇 마리 섞여 있군요.”

“보고 있네. 다행히 위험한 몬스터는 얼마 되지 않는군. 오크는 병사들에게 맡기고 트롤부터 빠르게 처리하지.”

비록 전방 초소들을 전부 내어주고 도망쳐왔다지만 서부군 중에선 정예에 속하는 4군단과 5군단의 병사들은, 오크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탄탄한 방진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동안 기사들은 힘을 합쳐 오러가 담긴 검을 휘두르며, 병사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트롤들을 한 마리씩 제거해 나아갔다.

‘느낌이 조금 이상한데. 이 녀석들, 싸우고 싶어 하는 눈치가 아니야.’

집중공격을 당해 너덜너덜해진 트롤 한 마리의 목을 쳐서 날린 매그날이, 의아한 얼굴로 주변의 다른 몬스터들을 돌아보았다.

미친 듯이 달려든 것 치고는 몬스터 특유의 살기가 그리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자신들을 공격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그저 이곳을 지나쳐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모습이다.

‘다급해 보이는 눈빛…… 꼭 무언가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하는 듯한 느낌이군.’

몬스터들이 우르르 몰려오긴 했으나 딱히 적극적인 공세를 펼치는 태도가 아니었기에, 생각보다 상대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전투가 어렵지 않게 마무리되어 갈 때쯤.

어디선가 솜털을 바짝 서게 만드는 흉흉한 포효소리가 울려 퍼졌다.

쿠워어억!

“이런! 오우거다!”

“그냥 오우거가 아니야! 트윈헤드다!”

신장이 6미터쯤에 달하는 거구가 대지를 울리며 달려오는 모습이 기사들의 눈에 들어왔다.

트윈헤드 오우거.

이름 그대로 머리가 두 개 달려 있는 오우거의 변종으로, 일반적인 오우거보다 덩치가 크고 그만큼 더 강력한 몬스터였다.

‘트롤과 오크들이 저놈을 피해 도망쳐온 거였나?’

매그날은 앞서 달려왔던 몬스터 무리의 이상한 행동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놈들은 이곳의 인간들을 공격하려고 온 게 아니라, 강력한 포식자를 피해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서, 선배님! 어떻게 합니까!?”

“빌어먹을…….”

욕설을 중얼거린 매그날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평범한 오우거만 해도 자신과 동료 기사들이 목숨을 걸어야 처치할 수 있는 몬스터다.

한데 대형급에 해당하는 트윈헤드 오우거라니?

이곳에 있는 병력이 전부 달려들어도 퇴치하기는커녕, 발목을 붙잡아두는 것조차도 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가 어려웠다.

‘물러나야 하나? 본대의 기사들은 언제 오는 거지? 우리는 단지 지원을 위해 왔을 뿐인데, 오자마자 결사항전을 벌일 이유가 있나?’

“퇴각…… 아, 아니. 진형을 유지하라!”

머릿속이 복잡해진 매그날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갑자기 얼굴에 화색을 띠며 목소리를 높였다.

뒤편에서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달려오는 한 무리의 병력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거의 백여 명에 달하는 기사들로 이루어진 강력한 기사단이,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뭐야? 피해가 크니 어쩌니 하며 서부군에 기사가 부족하다는 식으로 말하더니, 주력은 다른 곳에 몰려가 있었던 모양이군.’

저만한 규모의 기사단이라면 대형급 몬스터라 해도 충분히 사냥할 수가 있다.

잠깐 자리를 지키고 있기만 하면 기사단이 달려와 트윈헤드 오우거를 처치할 것이란 생각에, 매그날은 병력을 대기시키고 그들의 합류를 기다렸다.

그러나 상황은 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게 되었다.

“커억!”

“끄아악!”

“이, 이런 미친! 이게 무슨 짓이냐!?”

비명과 고함 소리가 뒤섞이며 불협화음을 만들어냈다.

자신들을 지나쳐 트윈헤드 오우거에게 달려갈 거라 생각했던 서부군의 기사들이, 매그날의 동료들을 등 뒤에서 공격해왔기 때문이었다.

아군이라 생각했던 이들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지원군 기사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하나둘씩 피를 토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매그날 도드벅, 일왕자 측의 파벌은 아니군. 그쪽은 투항한다면 목숨은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당혹스러운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매그날의 귓속으로, 누군가의 차가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매그날이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외쳤다.

외부활동이 적어 명성이 많이 알려지진 않은 인물이지만, 왕국 내 몇 명 되지 않는 마스터의 얼굴을 알아보기가 어렵지는 않았다.

“마스터 테슬리? 이게 대체 뭐 하는 짓이오!”

“보고도 모르겠나? 방해꾼들을 제거하는 중이지.”

이런 짓을 벌여놓고도 오히려 당당하게 대꾸하는 테슬리 하룬빌의 모습에, 매그날은 몸을 부르르 떨며 외쳤다.

“미친 건가!? 몬스터를 앞에 두고 이 무슨……?”

매그날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흉흉한 살기를 풍기며 달려오던 트윈헤드 오우거가, 볼일이 다 끝났다는 듯 몸을 돌려 돌아가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무, 뭣…… 대체 이게……?”

“다시 묻지. 투항할 텐가?”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매그날의 어깨 위로, 테슬리가 검을 올리며 다그쳐물었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잠시 사고가 정지해 있던 매그날이, 그를 돌아보며 조금 전 들었던 말을 다시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파벌? 일왕자라고?’

매그날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실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미쳤군. 하룬빌가에서 역모를 저지르려는 것인가.”

알펜시아의 국왕은 나이가 나이이니만큼 왕위에서 물러날 때가 얼마 남지 않아, 이미 첫째인 일왕자를 후계로 정해둔 지 오래다.

아직 왕권의 정확한 계승 시기에 대해 정해진 바는 없었지만, 최근 폐하께서 병환으로 쓰러지며 왕실 내에서 왕위의 이양에 대해 말이 나오고 있다고 듣기는 했다.

‘이들 중 누군가가 몬스터를 조종하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 그럼 서부군의 피해상황 역시 거짓된 보고였겠군. 게다가 이런 짓을 벌이는 이유가... 반역을 저지르기 위해서였다고?’

일왕자를 운운하며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아하니, 적법한 왕세자에게 왕위가 이어지지 못하게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즉 일왕자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후계자가 되는 것을 지지하고 있다는 이야기.

매그날은 감정이 담기지 않은 테슬리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대체 왜? 하룬빌 가문이 뭐가 부족해서 이런 정신 나간 짓거리를 하는 거요?”

서걱.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잘려 나간 매그날의 머리가 아래로 떨어짐과 동시에, 그의 몸뚱이가 피를 쏟으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어리석긴. 살 기회를 줘도 자꾸 딴소리만 하는군.”

검을 회수한 테슬리가 죽어 널브러진 기사들을 둘러보다가, 이내 몸을 돌려 움직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그의 곁으로 따라붙은 기사 한 명이, 테슬리의 눈치를 살피며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를 올렸다.

“로크델리아 백작가의 기사들과 3군단의 부대 하나가 곧 도착할 예정입니다.”

“그런가? 시체들을 치우려면 시간이 걸릴 테니, 이쪽으로 보낼 수는 없겠군. 잠시 막사에 대기시켜뒀다가 저녁 배식 전에 손을 쓰는 걸로 하지.”

“옛. 그럼 처리는 어떻게…….”

“흠. 로크델리아…… 그쪽은 중립에 가깝지만 이플리트가와 친밀한 세력이니, 굳이 생존자를 남길 필요는 없겠지.”

“아, 알겠습니다.”

말뜻을 이해한 기사가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현장에서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테슬리는 다음 희생자들을 기다렸다.

하룬빌가의 통제를 받는 서부군단들의 칼날 아래 벌어진 살육의 시간은, 그렇게 몇 번씩이나 반복되어 수많은 시체들을 만들어냈다.

* * *

“반역…… 이라 했는가? 설마 그럴 리가?”

“저도 좀처럼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아무래도 사실인 모양입니다.”

지원 요청을 받고 부랴부랴 병력과 함께 서부로 향했던 이들과의 연락이 계속해서 두절되면서.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대귀족들과 군부의 고위관료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인 끝에, 결국 하룬빌가와 서부군이 벌이던 패악질은 발각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미 상당한 수의 귀족들과 기사전력들이 함정에 빠져 학살을 당하거나 서부군에 억류된 뒤였기에, 알펜시아의 정세는 완전히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 빠지고야 말았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이 된 알론드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스스로의 얼굴을 문질렀다.

“몬스터를 움직여 국경지대가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처럼 꾸미고, 실제로는 전력을 보존한 채 지원을 나온 다른 귀족과 군단세력들을 제압했다는 거군.”

“밝혀진 바로는 그렇습니다. 필시 저희가 상대했던 흑마법사들의 세력이, 하룬빌가와 손을 잡고 있었던 것이라 봐야겠지요.”

“미친 작자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벌인 거지?”

범인들의 속사정까지는 본인도 알 길이 없기에, 칼릭스는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어쨌거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병중인 국왕을 대신해 국정을 돌보고 있는 일왕자파와 하룬빌가를 중심으로 한 서부군 세력이 부딪치며, 곧 격렬한 내전이 벌어지게 될 거라는 점이었다.

‘반역이라니. 의심을 하긴 했지만 설마 그렇게까지 스케일이 큰 사고를 칠 줄이야.’

조국의 명운이 달린 거대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의자에 몸을 기댄 채 눈을 감으며, 칼릭스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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