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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66화 (66/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66화

강병

하룬빌가 기사들과의 대련 이후로 두 달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그사이 아즐린의 뒤를 따라 나머지 아카데미 삼인방들도, 익스퍼트의 벽을 완전히 넘어서게 되며 기사가 되기 위한 자격을 갖추게 되었고.

딱히 오래 미뤄둘 이유도 없었기에, 칼릭스는 그가 가진 하이로드의 권한으로 세 사람의 기사 서임을 주관했다.

“최소한의 자격은 갖추었기에 이렇게 기회를 주었지만, 아직 많은 면에서 부족하다는 건 스스로도 다들 잘 알고 있을 테지.”

“옛! 스승님께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충심으로 보필하겠습니다!”

“음. 영지의 기사라는 책무를 어깨에 진 이상, 앞으로는 검술 외에도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선임기사인 아이반 경을 보고 많이 배우도록.”

“넵! 알겠습니다!”

이제 막 귀족사회에 발을 들인 어린 기사들에게, 공작가의 직계자손인 아이반은 훌륭한 교보재가 될 수 있었다.

그는 칼릭스와 만나기 전까지 오래도록 가문에서 눈칫밥을 먹고 지냈던 만큼, 귀족가의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행실과 예법에 통달한 수준이었다.

‘제자들의 품행관리는 아이반이 맡아주면 되겠고. 그 외에 신경 써야 할 것들은…… 후우, 엄청나게 많기도 하군.’

기사 서임 외에도 영주인 칼릭스가 직접 신경 써야 할 영지의 일들은 차고 넘쳤다.

왕실의 직할령에서 귀족가문의 영토로 소속이 바뀌면서, 적용되는 법안이나 기존의 관례 등 수정해야 되는 시스템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

이플리트 가에 부탁해 지원받은 행정관들이 관할령에 속한 도시와 마을들을 관리하며 열심히 일해주고 있긴 하지만, 업무가 안정화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도 다행히 정신없이 바쁜 나날이 계속 지속되진 않았다.

“영주님! 미천한 저를 불러주셔서 영광이옵니다!”

“선배님. 사적인 자리에선 편하게 말합시다.”

“일개 기사인 저 따위가 어찌 백작 각하께…….”

“우리 사이에 자꾸 그럴 겁니까?”

“크흠! 그래도 신분이 달라졌는데 예전처럼 반말을 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서신을 받고 합류해 온 닐슨을 보며 칼릭스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부상으로 제 몸 하나 가누기도 어려웠던 시절, 그에게는 참 많은 도움을 받았었다.

검술 실력은 그저 평범한 기사일 뿐이지만, 무력 외의 부분에 대해선 여러모로 신뢰하고 맡길 수 있는 닐슨이다.

칼릭스는 그를 단순히 자신의 휘하에 속한 여러 기사들 중 한 명으로만 대우할 생각은 없었다.

“선배…… 아니, 형님.”

“혀, 형님이라뇨?”

“다른 기사들과는 달리, 형님은 제가 유일하게 가족처럼 여길 수 있는 분입니다. 저를 가까이에서 도와주십시오.”

“어, 음…… 영주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뭐…….”

“영주대행의 권한을 드리겠습니다. 형님이라면 충분히 믿고 맡길 수 있지요.”

“으헉?”

기껏해야 백작가의 기사면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칼릭스의 부름에 찾아온 닐슨은, 생각했던 것 이상의 파격적인 대우에 땀을 뻘뻘 흘리며 곤혹스러워했다.

‘닐슨 선배보다 유능한 사람은 많겠지만, 그처럼 청렴하고 우직하게 맡은 일에 충실해 줄 사람은 드물겠지.’

닐슨의 성품에 대해선 그의 도움을 받은 본인이 잘 알고 있기에, 칼릭스는 별 고민 없이 그에게 커다란 권한을 맡기고 바쁜 영지의 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일단은 익숙한 군사 쪽 일부터 처리하죠. 영지군의 개편과 관리를 부탁드립니다.”

파견형식으로 각 도시에 주둔해 있던 왕국군 군단의 병사들이 대부분 철수했기에, 현재 영지의 치안 수준은 몇 단계나 낮아진 상태다.

급하게 용병대 몇 곳을 고용해 영지군으로 돌리고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제대로 된 사병 조직은 반드시 필요했다.

“병사라는 게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건 아니긴 한데. 용병들을 장기계약으로 더 고용해야 할까요?”

“일단은 영지민들 중에서 병사를 모집해 봅시다.”

“어…… 하지만 그렇게 신병들로만 병력을 구성하면, 없던 문제도 더 생길 겁니다만.”

“규율의 중심을 잡아줄 고참병들도 몇 명 들어올 예정이니 괜찮을 겁니다.”

군사훈련을 받은 적 없는 용병과 영지민들로 병력을 구성하면, 당연히 군대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오합지졸이 탄생하겠지만.

마침 알론드에게 서신을 보내 문의했던 북부군에서의 인력모집 건이 잘 풀렸기에, 그 문제는 금방 해결될 수 있었다.

북부군에는 칼릭스의 활약과 명성을 기억하는 병사들이 아직도 많았다.

칼릭스가 영지군을 모집한다는 이야기에 관심을 가지는 이가 적지 않다보니, 북부군에서 퇴직하고 그의 영지까지 찾아오는 이들의 수도 제법 되었다.

그렇게 고용된 이들이 병사들이 수십에 기사들도 몇 명 포함되어 있었으니, 신병들과 섞어 부대를 만들 최소한의 기틀은 갖춰진 상황이었다.

“당장에 완성된 군대가 필요한 건 아니니, 신병들을 꾸준히 훈련시키며 점차 규모를 늘려 나가는 것으로 합시다.”

“그럼 각 도시의 행정관들과 논의해 모병 계획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크고 작은 트러블들이 계속해서 발생하긴 했지만, 칼릭스는 영지의 안정화를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다했다.

능력과는 별개로 몸이 하나라서 살피는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던 업무들을, 닐슨과 분담해서 처리하니 능률도 제법 올랐다.

‘이제는 바깥을 좀 돌아다녀 봐야겠군.’

체제 변환으로 생겨난 큰 줄기의 문제들을 어느 정도 해결한 칼릭스는, 자잘한 업무들은 닐슨에게 맡기고 처음으로 영지 시찰을 위해 영주성을 나섰다.

영토 안의 도시와 마을들을 다 둘러보려면 상당한 기간의 일정을 잡아야 했지만.

자신의 영토가 어떻게 생겨 먹었고, 어떤 식으로 굴러가고 있는지,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직접 눈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군. 채비를 모두 마쳤습니다.”

“그럼 출발하도록 하지.”

혼자서 빠르게 돌아다니는 게 가장 속 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영주씩이나 되어서 시중들 사람 없이 홀로 여정을 떠나는 것도 품위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칼릭스는 가신들 중 아이반과 베네트 두 사람을 거느리고 영지의 시찰을 나섰다.

가장 먼저 그의 기사가 되었으며 스스로를 칼릭스의 오른팔처럼 여기는 아이반이 따라붙은 건 특이한 일이 아니지만, 베네트를 굳이 동행시킨 것에는 따로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돌아다니는 김에 쓸 만한 인재가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좋겠지.’

세상에는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을 제때 꽃피우지 못하고 스러지는 사람이 많았다.

아즐린 같이 보편적인 형식의 검술과 훈련법이 맞지 않는 근골을 가진 이도 있고, 아이반처럼 체질적인 문제로 특별한 공부를 익혀야만 하는 이도 있다.

영능을 지닌 베네트처럼 아예 계열이 다른 능력을 검술과 접목시킬 수 있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칼릭스는 본인의 영지를 돌아보는 것과 동시에, 겸사겸사 가르쳐 볼 만한 인재가 있는지도 함께 찾아볼 생각이었다.

베네트를 데리고 나선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근골의 형태와 체질을 살펴보는 것은 그가 할 수 있지만, 영능 같은 경우는 본인이 밝히지 않는 경우엔 칼릭스가 알아볼 방도가 없다.

다만 같은 영능을 지닌 인물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눈치챌 수 있다는 모양이기에, 그런 경우를 상정해 베네트를 여정에 동행시키기로 한 것이었다.

‘영능을 보유한 사람을 찾았다고 굳이 검사로 키워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보단 나을 테니.’

복마검법의 특수성을 활용해 보는 건에 대해선 아직 제대로 연구해 본 적이 없지만, 어차피 스스로의 능력을 통제할 수단 없이 방치된 영능 보유자는 대부분 정신질환에 걸려 사고를 일으키기 마련이니.

영지 내의 사건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발견하는 대로 거두어들이는 편이 옳을 터였다.

어디에 써먹을 일이 있기는 할지 그로서도 알 수 없지만, 그렇게 되면 복마검법을 익힌 영능 보유자들로 구성된 부대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었다.

굳이 칼릭스가 시간을 할애할 필요 없이, 베네트를 교관으로 삼아 복마검법을 전수하면 되는 일이기도 했다.

“영주님을 뵙습니다!”

“고생이 많군. 행정관.”

“아닙니다. 한데 어쩐 일로 여기까지 귀한 걸음을 하셨는지요?”

“이곳 도시의 소출 관리와 세금 내역을 정리한 장부를 가져오게. 시설물들의 현황도 살펴볼 터이니 준비하고.”

“아, 알겠습니다.”

영지를 시찰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칼릭스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행정관은 살짝 긴장했는지 말을 더듬으며 그의 눈치를 살폈다.

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눈에 띄는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관리가 있을 리도 없었지만, 말 한마디로 영지 내의 누구든지 목을 날릴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자를 앞에 두고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긴 했다.

칼릭스는 자신이 다스리는 영토의 실태를 살피고, 동시에 주민들 중 젊은이들을 모아 제자로 키울 만한 인재가 있는지 살폈다.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게 뭐하는 짓이래?”

“쉿! 영주님의 지시라니까 괜히 끌려나가기 싫으면 조용히 입 다물고 있어.”

“자자, 조용! 오래 걸리지 않는 일이니 떠들지 말고 줄을 맞춰 서시오!”

마법사나 기사들 중에 간혹 자질이 있는 후계자를 찾기 위해 이런 식으로 사람을 모으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것도 보통은 인구수가 기껏해야 백여 명에 불과한 마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거주민이 천 단위에 달하는 도시 규모에서 이런 선별 작업을 수행한다는 건 사실상 말도 안 되는 짓거리였지만, 영주인 칼릭스가 직접 나선 일이기에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아이반 같은 특이체질은 워낙 희소하기에 발견되지 않았지만, 아즐린처럼 체격은 왜소하지만 유연한 근골을 지닌 인재를 꽤 여럿 발굴할 수 있었다.

“으으. 기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으라니…… 난 고작 무두장이의 도제일 뿐이라고.”

“어쩌지? 검이라고는 한 번도 만져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기사까진 잘 모르겠지만, 영주님의 병사라도 돼서 일할 수 있다면 괜찮은 거 아닌가?”

대부분이 자신의 재능을 모르고 검과는 연관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영주가 직접 지목해서 불러내는 데에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재능이 있다고 해봐야 기사 수준으로 성장하려면 한참 걸리겠지만, 몇 년 가르치며 키워두면 밥값은 충분히 하겠지. 최소한 병사로라도 쓸 수 있을 테고.’

칼릭스는 저들을 일단 제자들에게 맡겨 기초훈련을 받도록 하고, 눈에 띄게 특출한 재능을 나타내는 이가 있을 경우 정식제자로 들이는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영주님. 저기 두 번째 줄에 있는 남자아이에게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영능 보유자 같나?”

“옛. 확실해 보입니다.”

간혹 드물게나마 베네트를 통해 영능을 가진 사람을 발견하기도 했기에, 이 역시 제자 후보들의 대열에 합류시켰다.

사실상 강제징병이나 다름없는 모양새였지만, 크게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없었다.

평민들의 삶이라고 해봐야 빈곤하고 고되기는 어딜 가도 마찬가지기에, 그래도 영주가 직접 자신들을 선별했다는 사실에 다들 지금보단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품었기 때문이다.

‘영능 보유자는 베네트에게, 변검에 적합한 이들은 아즐린에게 지도를 맡기면 되겠군. 체력 단련과 야전 수칙 교육 같은 부분을 베런이 주로 담당하면 될 테고.’

잘 배우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기 때문에, 과연 제자 삼인방이 그의 계획대로 교관 일에 적성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영주가 되며 할 일이 많아진 칼릭스가 갓난아기나 다름없는 이들을 붙잡고 하나하나 가르칠 시간은 없으니, 일단은 그렇게 진행하는 편이 옳을 것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근 한 달에 걸쳐 영지를 쭉 돌아다닌 칼릭스는, 각 도시에서 끌어모은 새싹들을 바글바글 이끌고 영주성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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