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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61화 (61/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61화

“이게 무슨 소란이지?”

칼릭스와 함께 바깥으로 나온 도미닉 공작은, 가문의 기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 웅성거리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나 중얼거림과 함께 그의 찡그려졌던 표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크나큰 놀라움으로 변하게 되었다.

“……아이반?”

“대련 중인 모양이군요.”

그야 눈이 있으면 당연히 몰라볼 리 없는 상황이지만, 그 대상들이 너무 의외였기에 도미닉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갓 익스퍼트에 오른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매번 동문 기사들과의 대련에서 절절매기만 하던 자신의 아들이.

가문 내에서 평균 이상은 가는 실력을 지닌 제 또래들을 상대로, 누가 봐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저 검술은? 아니, 검술보다 아예 오러 자체가…… 허, 어찌 이런…….”

냉기를 흩뿌리는 검으로 이플리트 가문 기사가 발하는 플레임 오러를 억눌러 제압하는 아이반의 모습에, 도미닉 공작은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며 침음을 흘렸다.

가문의 오러 기술과는 완전히 상반된 능력.

물론 대륙을 뒤져보면 플레임 오러 같은 특수한 성질을 다루는 오러연공법이, 이플리트 가문 하나밖에 없는 것은 아니기에 그것 자체는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문제는 아이반이 저 새로운 오러 기술을 익힌 지가 고작해야 반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점.

자랑스러운 가문의 힘을 포기하고 다른 기술에 손을 댔다는 것도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에 대해서는 화를 낼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보다는 이 짧은 기간에 아이반이 기존의 경지를 훨씬 뛰어넘는 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아이반을 불량품이라고 칭하셨지요. 이플리트가 안에서는 그 말이 틀리진 않았을 겁니다. 타고난 몸의 성질 자체가 가문의 오러연공법과는 완전히 상극이었으니.”

곁에서 들려오는 칼릭스의 목소리에, 도미닉 공작은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칼릭스는 그에게 아이반의 체질인 극음지체에 관해 설명했다.

아이반이 그간 어떤 상태로 지내왔는지, 그리고 만약 자신의 가르침을 받지 못했다면 어찌 되었을지에 대해서도.

“재능이 없던 게 아니라 분야가 달랐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실제로 보시다시피 아이반의 성장세는 가르치는 저도 두려울 정도군요.”

뭐 정말로 칼릭스가 두려워할 정도까진 아니고, 지금의 성장은 어디까지나 영약의 효능이 더해졌기에 이룰 수 있던 거지만.

자식에 대한 칭찬을 부모에게 말하는데, 약간 과장을 보탤 수도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흐…… 허헛! 너무 당황스러워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

도미닉 공작은 복잡한 심경이 담긴 시선으로, 몰라보게 달라진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았다.

마침 상대에게 항복을 받아낸 아이반이,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이윽고 본인이 흘리는 차가운 성질의 오러와는 다르게, 이글거리는 열기가 느껴지는 눈빛을 한 아이반이 힘찬 걸음으로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가주님.”

“……아이반. 몰라보게 달라졌구나.”

“예. 스승이시며 이제는 제 주군이신 칼릭스 님 덕분이지요.”

“그래, 이야기는 들었다. 칼릭스 백작의 기사가 되겠다고. 가문의, 그리고 나에 대한 원망 때문이더냐?”

“전혀 아니라고는 말한다면 거짓이겠죠. 하지만 그게 아니어도 어차피 떠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이제 와서 저를 가문의 후계자로 임명할 수도 없을 텐데요.”

“…….”

아이반의 말이 사실이기에 도미닉 공작은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도, 아이반의 실력은 가문의 또래들을 압도하는 수준이었다.

겨우 반년 만에 이리 변했을 진데 이대로 몇 년이 더 지나서 가주인 자신이 은퇴를 생각할 때쯤에는, 과연 그가 어느 정도로 성장해 있을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실력을 가장 우선시하는 이플리트 가문이라 해도, 가문의 정통성을 무시하고 다른 검술을 익힌 아이반에게 가주의 자리를 물려 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가 가문에 남는다면 이전처럼 능력이 부족하다며 핍박당하지는 않겠지만,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권력의 중심에 설 수는 없을 터였다.

“평생을 자괴감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벗어날 수 없던 절망의 구덩이 속에서 저를 구원해 주신 분이 계시니, 어찌 그분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냐. 네 뜻은 잘 알겠다.”

도미닉 공작은 착잡함에 얼굴을 쓸어내리고 싶은 기분을 억지로 참으며, 옆에 선 칼릭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기는 더 따질 것도 없이 자네의 승리라고 말하기 위함이었다.

조금 애매한 정도라면 어떻게 억지라도 부리겠지만, 이건 그가 생각했던 것을 아득히 초월한 파격적인 상황이었으니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도미닉이 입을 떼기도 전에, 아이반이 한발 앞으로 다가서며 재차 말을 이어갔다.

“가주님. 제가 여기 돌아온 것은 앞으로 서 있을 자리에 대해 알리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주군의 안목과 저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였기도 합니다. 한데 이대로 끝내기에는 살짝 아쉬움이 남는군요.”

도미닉 공작의 시선이 다시 아이반에게 머물렀다가, 그의 뒤편에 쓰러져 다른 이들의 부축을 받고 있는 기사들에게로 향했다.

아이반은 홀로 세 명의 기사에게 승리를 쟁취했다.

비록 삼 대 일로 싸운 것은 아니었지만, 가문의 기사 세 명을 연달아 쓰러뜨린 것만으로도 실력을 입증하기엔 충분하다.

그럼에도 그가 저런 소리를 한다는 것은.

“나와 겨뤄보고 싶다는 소리더냐.”

“허락해 주신다면, 그러고 싶군요.”

“으음…….”

‘아이반이 꽤 흥분한 기색이군. 뭐 상관은 없으려나.’

아무리 그래도 마스터인 도미닉 공작에게 도전하겠다는 건 너무 건방진 소리였지만, 칼릭스는 굳이 아이반을 제지하기 위해 나서진 않았다.

도미닉 공작이 전력을 다해 그를 찍어 눌러 망가뜨릴 리는 없거니와, 아이반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알겠다. 내 직접 너의 변화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알아봐 주마.”

이내 도미닉 공작이 승낙의 의사를 표하며, 두 부자가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었다.

슬쩍 뒤로 물러나며 거리를 둔 칼릭스는 두 사람에게서 흘러나오는 기세를 가늠하며, 어떤 식의 대결구도가 나올지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당연히 승산은 아이반 쪽이 제로이긴 하다.

다만 도미닉 공작이 오러의 수준을 아이반과 비슷하게 맞춰주려는 심산으로 보이니, 대련이 한순간에 싱겁게 끝나진 않을 것으로 보였다.

화르륵.

불길이 치솟는 듯한 오러가 일렁이며, 도미닉의 검이 아이반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이에 맞서는 아이반이 혹한의 매서움을 담은 검으로 도미닉의 검격을 받아쳐 내었다.

이어서 열기와 냉기가 연달아 충돌하며, 뒤죽박죽으로 뒤섞인 주변의 공기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호오.’

대련을 지켜보던 칼릭스가 속으로 작게 감탄을 터뜨렸다.

도미닉 공작이 봐주고 있다고는 하지만, 두 사람의 싸움은 미세하게 아이반 쪽이 유리함을 가져가고 있었다.

‘역시 효율이 다르긴 하군.’

칼릭스는 아이반에게 북해빙궁의 무공인 빙령심결과 더불어, 그와 짝이 되는 검법인 빙백신검을 전수해 주었었다.

이플리트 가문의 플레임 오러 및 볼케닉 소드와는 완전히 상극이라 할 수 있는 특성의 무공.

다만 다루는 기운의 속성이 상극이라 해서, 그게 반드시 절대적인 우위를 가질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작은 빛이 어둠 속에서도 멀리까지 퍼지는 것처럼, 어느 한쪽이 약간의 힘으로 큰 우세를 점할 수 있는 속성의 상극도 있지만.

열양공과 한음공은 누가 더 유리하다 할 것 없이, 서로를 잡아먹으며 각자 반반이라 할 수 있는 영향을 끼치는 속성이다.

그럼에도 아무리 사정을 봐준다지만, 경지의 깊이가 다른 도미닉 공작이 약간이나마 아이반에게 밀리고 있는 것은.

그의 극음지체와 한음지기를 다루는 무공들이, 아주 절묘하게 시너지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타인의 기억을 통해서긴 하지만 북해빙궁의 무공들을 통달한 나로서도, 저렇게 작은 힘으로 효율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는 없는데 말이지.’

칼릭스가 처음 도미닉 공작과 만나 대련을 했을 당시.

빙령심결로 플레임 오러의 열기를 억제했으면서, 같은 계열의 검법인 빙백신검을 사용하지 않고 다른 문파의 무공을 사용했던 이유도 그런 탓이었다.

영능을 지니지 못했기에 베네트에게 복마검법을 가르쳤음에도, 정작 본인은 그 효과와 성능을 확인해볼 수 없던 것처럼.

극음지체를 타고난 아이반이기에 북해빙궁의 무공들이 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지, 특이체질이 아닌 칼릭스로서는 차라리 다른 무공을 사용하는 게 더 나았기 때문이다.

반면 아이반은 그 특유의 체질 덕분에, 본인이 익힌 무공의 위력을 100퍼센트 이상으로 발휘하고 있었다.

‘육신과 기술이 더할 나위 없이 어울리는 것도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경험의 차이로 이득을 보는 부분도 있군.’

대련을 계속 지켜보던 칼릭스는, 아이반이 우세를 보일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도 파악할 수 있었다.

본디 마스터급의 검객이자 나이가 50을 넘어선 도미닉 공작이, 그 절반밖에 되질 않는 아이반보다 경험이 부족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빙령심결과 조화를 이룬 빙백신검의 검세는, 그런 도미닉 공작에게도 생소한 상대였으며.

비록 지금은 포기했다지만 이십여 년 간 가문의 기술들을 수련한 아이반은, 부친인 도미닉 공작의 검술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아이반의 볼케닉 소드와 도미닉 공작의 볼케닉 소드는, 성취를 비교하는 게 우스울 정도의 격차를 지녔긴 하지만.

그래도 상대의 수를 알고 싸우는 것과 모르고 싸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는 게 당연했다.

“흐앗!”

카가강!

몇 분가량의 공방이 오간 끝에.

상대의 빈틈을 포착했다고 여긴 아이반이, 기합과 함께 도미닉 공작을 향해 날카로운 검격을 찔러 넣었다.

아이반의 그 일격은 지금까지처럼 동등한 수준에 맞춰서는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기에.

도미닉 공작은 스스로에게 가하고 있던 제한을 풀고, 오러를 끌어올리며 아이반의 검식을 받아쳐 내야 했다.

강맹한 위력에 밀려 비척거리며 뒤로 물러나다가 결국엔 주저앉고만 아이반이, 볼품없는 행태를 보였음에도 불과하고 입가에 확연히 드러나는 미소를 그렸다.

기어코 그가 원하던 증명을 해낸 것이니, 기뻐하는 기색을 감출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장내에 모여 사태를 구경하던 이플리트가의 사람들은, 극심한 충격에 빠져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한 채 두 부자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침묵으로 가득 찬 공간 속에서 복잡한 심정을 담은 눈으로 넘어진 아이반을 바라보던 도미닉이, 손을 들어 방금 전의 격돌로 뺨에 생겨난 흠집을 어루만졌다.

칼날에 베인 상처였지만 피가 묻어 나오진 않았다.

부상이라 치기도 어려운 아주 얕은 상처이기도 했으며, 아이반의 오러에 실린 냉기 때문에 베인 부위가 오그라든 탓도 있었다.

“흐허헛…….”

속내를 짐작하기 어려운 표정으로 실소를 흘리는 그에게, 자리에서 일어난 아이반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어떻습니까? 가주님께서 판단하신 제 실력은.”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들썩이던 도미닉이, 이윽고 갈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주, 훌륭하다.”

“그런데 어째서 그런 얼굴을 하고 계십니까? 기뻐하셔야지요. 항상 그토록 바라셨던 대로, 당신의 아들이 이리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

감정이 격해진 듯 목소리를 높이는 아이반과, 그와는 대조되게 가라앉은 눈으로 입을 다무는 도미닉 공작.

상황을 주시하고 있던 칼릭스가 슬그머니 두 사람의 사이에 끼어들며, 아이반의 어깨를 붙잡고 그를 진정시켰다.

“그만. 마음을 다스려라 아이반. 이 무슨 무례한 행동인가.”

“……후우, 죄송합니다.”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는지 어깨를 크게 들썩이던 아이반이, 이내 머리를 숙여 보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칼릭스 백작.”

“예. 공작 각하.”

자신을 부르는 도미닉 공작의 목소리에, 칼릭스는 고개를 돌려 그와 눈을 마주쳤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감정 탓인지 흔들리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던 도미닉 공작이, 이내 기운이 빠진 음성으로 칼릭스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우리의 대련은 나중으로 미루지. 지금은…… 그럴 기분이 들질 않는군.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시게.”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잠깐 사이에 몇 년은 더 늙어버린 것 같은 얼굴을 한 도미닉이, 칼릭스의 인사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자리를 떴다.

부친이나 자식이나 심경이 복잡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알기에, 칼릭스는 별말 없이 아이반을 데리고 이플리트가의 영지를 빠져나와 수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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