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60화 (60/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60화

“칼릭스 백작. 다시 보니 반갑군.”

“아직 백작은 아닙니다만.”

“어차피 이미 내정된 사항이지 않나. 아마 이번 달 안에는 작위를 받게 될 텐데. 아무튼…… 지난번보다 더 강해진 것 같군.”

자신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하는 도미닉 공작의 태도에, 칼릭스는 가볍게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약간의 진보가 있긴 했습니다.”

“위쪽에서 상당한 활약을 보였다는 소문은 들었네만. 짧은 시간 동안 잘도 그만한 발전을 이루었군. 뭐 좋은 거라도 먹었나?”

실제로 좋은 걸 먹긴 했지.

칼릭스는 어깨를 살짝 으쓱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 영약을 섭취했을 당시, 칼릭스의 오러량은 기존대비 약 50퍼센트쯤에 달하는 증가를 이루었었다.

이후 영약의 잔여 기운들을 흡수하고 개인적으로 수련을 거쳐 쌓게 된 성취까지 더하면, 칼릭스가 지닌 오러량은 갓 마스터가 되었을 당시와 비교하면 거의 두 배가량 늘었다고 볼 수 있었다.

‘거기에 또 다시 프로즌 만드라고라를 복용하면서 10퍼센트 가량의 증진이 있었으니.’

동일한 성질의 영약을 두 번째 섭취한 것이기에 효과가 확 떨어지긴 했지만, 익스퍼트급 이하의 오러 유저와 달리 마스터급에서 10퍼센트의 증가라는 건 상당한 발전이다.

아무리 같은 마스터라 해도 도미닉 공작이 칼릭스의 상태를 정확히 꿰뚫어볼 수는 없는 노릇인데, 그럼에도 이전보다 향상된 무언가를 느꼈을 정도이니.

기억 속의 무림인들이 괜히 영약을 찾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험지를 돌아다니는 게 아니긴 했다.

“어쨌거나 이렇게 다시 만났으니 또 한판 어우러져야 하지 않겠나? 자네가 떠난 뒤로 마땅히 놀아줄 상대가 없어, 쭉 몸이 근질근질했단 말일세.”

“하하, 왕국에 다른 마스터가 저뿐인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알론드 님이야 북부에 계셨으니 제외해야겠지만, 가까운 데서 찾자면 하룬빌 가문도 있고…….”

“하! 알면서 모른 척하는 건가? 하룬빌과 우리 이플리트가 어떤 관계인지?”

코웃음을 치는 도미닉 공작의 모습에, 칼릭스는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왕국 무가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만큼, 두 가문은 서로 치열한 경쟁 관계를 이루고 있다.

게다가 양측 모두 공작가와 후작가에 해당하는 대귀족 가문이기에, 가주인 도미닉이 그쪽과 마찰을 빚게 되면 왕국 내 정치구도에 큰 소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각자 사회적인 위치가 무겁다 보니, 단순히 가벼운 마음으로 대련 한번 하기도 어렵다는 이야기.

“아, 그렇군. 이야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네만, 하룬빌가에서 자네를 찾았던 적이 있었다네. 우리 가문을 방문한 기사에 대해 묻는 서신이 왔었지.”

“음?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자네가 북부로 떠나고 얼마 되지 않아서의 일이지. 정확히는 꼭 칼릭스 백작 자네를 지목해서 찾았다고 하기보단, 누군가의 행적을 쫓다가 여기까지 도달했던 모양이네만.”

도미닉의 이야기에 칼릭스는 문득 아르거스의 무기점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하룬빌가의 인물들과 직접적으로 만난 적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접촉을 했다고 표현할만한 일이 그 당시에 있기는 했었다.

‘무기점 주인이 경고를 해주긴 했었는데. 설마 정말로 내가 검을 선점한 것에 불만을 품고, 사람을 풀어 나를 찾아다녔던 건가?’

정말 그렇다면 너무 속이 좁은 게 아닌가 싶지만, 원래 세상에는 이해가 어려운 성향을 포함한 온갖 군상들이 있는 것이다.

대귀족이라 해서 도량이 넓으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아, 어쩌면 단지 검 때문은 아닐지도 모르겠군. 내가 무기점에 남긴 흔적을 알아보고, 그쪽에서 관심을 가진 걸 수도 있으니.’

자신이 방패에 남겨진 흔적으로 하룬빌가의 검술을 유추해냈듯이, 반대의 경우 역시 충분히 생길 수 있는 일이었다.

무가로 유명한 하룬빌가라면 그가 방패에 펼친 무공의 흔적을 알아보고, 큰 관심을 보였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긴 했다.

“커흠! 하룬빌이야 어쨌든 그게 당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 일단은 우리끼리의 이야기나 계속해 보세. 어떻게, 바로 자리를 마련할까?”

칼릭스가 잠깐 생각에 잠기느라 말이 없자, 도미닉 공작은 괜히 헛기침을 내뱉으며 그의 주의를 자신에게로 돌렸다.

어지간히도 대련이 하고 싶어 애가 타는 모양이었다.

“대련이야 저 역시 언제든 환영입니다만, 그보다 먼저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저도 용건이 있어서 공작 각하를 찾아온 것이라 말이지요.”

“흠? 따로 무슨 용무가 있을 줄은 미처 몰랐군. 그래 말해보시게.”

검을 섞는 것도 좋지만 일단은 할 말이 있어서 찾아온 것이기에, 칼릭스는 도미닉 공작에게 자신의 용건에 대해 밝혔다.

“아이반 경이 제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왕실에서 내려줄 봉토가 확정되고 나면, 그를 제 영지로 데려가 가문의 기사로 삼을 예정입니다.”

“……아이반을? 허헛.”

도미닉 공작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생각지도 못한 엉뚱한 이야기였기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녀석도 일단은 기사이니 써먹을 데가 없진 않겠지. 하지만 꽤나 예상 밖의 이야기로군. 어차피 가문에서 자리를 잡긴 그른 녀석이니 상관은 없긴 한데…… 작위를 받고 나면 자네 밑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기사들이 적잖이 모여들 텐데, 굳이 그런 모자란 녀석을 데려가려는 저의가 뭔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말하는 도미닉을 보며, 칼릭스는 덤덤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직접 보시면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으음? 직접 보다니, 설마 그 놈도 함께 데려온 건가? 내 아직 따로 복귀를 지시한 적이 없거늘…….”

인상을 살짝 찌푸린 도미닉 공작이, 칼릭스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며 입을 열었다.

“뭐 좋네. 약간 불쾌하긴 하지만, 그 정도 반항은 있을 수 있지.”

“허가 없이 움직인 것에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아니야. 패배의식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직계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그놈이라면 가문을 벗어나고 싶어 할 만도 하지. 한심한 녀석.”

아이반이 이플리트가를 빠져나가 칼릭스를 따르려는 것은, 도미닉 공작의 생각과는 달리 무능력함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의 이유였지만.

어차피 직접 보면 달라질 생각이기에, 칼릭스는 굳이 그 부분에 대해서 지적하진 않았다.

“참, 그러고 보니 자네가 아이반을 바꿔보겠다는 이야기를 했었지. 분명 내기까지 거론하며 장담을 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런 일이 있었지요.”

“흠. 표정을 보아하니 여전히 자신이 있나 보군. 고작 반년 사이에 뭐가 얼마나 달라졌겠느냐마는, 그래도 진전이 있긴 한 모양이지?”

“보시면 바로 알 수 있을 겁니다.”

“흥. 내 짧은 기간임을 감안해 주긴 하겠지만, 어지간한 수준으로는 날 놀라게 만들 수 없을 걸세. 그 녀석은 애초부터 재능이 없어. 어쩌다 내 밑에서 그런 비실한 놈이 나온 건지 원.”

코웃음을 치며 아이반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유지한 도미닉 공작이, 칼릭스와 함께 응접실을 나서며 재차 말을 이었다.

“내기란 말이 나왔으니 이렇게 하지. 아이반의 실력을 확인하고 자네의 말이 옳다면, 내 무엇이든 자네의 부탁 하나를 들어주도록 하겠네.”

“오호.”

“반대로 녀석의 실력이 성에 차지 않는다면, 자네는 앞으로 내 사위가 되는 걸세.”

“……예?”

머리가 인식하기를 거부한 탓에, 칼릭스의 대답은 한참 뒤에야 흘러나왔다.

발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칼릭스에게, 도미닉 공작은 뭘 그리 놀라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이제 한 영지의 주인이 될 테니, 가정을 꾸리고 후계자를 만들 준비도 해야 하지 않겠나?”

“글쎄요. 당장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그런 생각을 해야겠지요.”

“아직은 어디 따로 혼담이 오가는 곳도 없을 텐데, 우리 가문만큼 괜찮은 선택지도 드물 걸세. 나 역시도 창창한 미래가 보장된 자네와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다면, 이플리트가의 가주로서 만족스러운 이야기이고 말이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귀족들 간의 혼인은 본래 다분히 정치적인 손익을 계산하며 이루어지기 마련이고, 이플리트 공작가문과 혈연으로 맺어지게 된다는 것은 다른 이었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만한 제안이다.

그러나 칼릭스는 그 의견에 동의하기 힘들었다.

‘이플리트가의 사람은 좀…….’

가문 자체는 왕국 내에 견줄 곳이 몇 없을 만큼 강맹한 세력이지만, 어지간한 남성기사들보다 우람하고 강인한 외형을 지닌 이플리트 가문의 여성들을 떠올리면 마음이 차게 식을 수밖에 없다.

어차피 손익을 따지며 맺는 관계가 대부분인 귀족들의 혼사에, 이런 말을 꺼내는 것도 우습기는 하지만.

칼릭스는 인간은 외모보다는 내면이 더 중요하다는 격언에 공감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후계까지 생각하며 누군가와 부부로서 맺어지려고 한다면, 아무리 얼굴을 따지지 않는다 해도 심리적인 저항의 한계선이라는 건 분명히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왜 대답이 없는가? 그때의 자신감은 그냥 허세였나 보지?”

사실 아이반의 변화를 누구보다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칼릭스로서는, 절대로 질 리가 없는 내기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만에 하나의 경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이플리트 가문 여성들의 매우 공격적인 외형은 칼릭스의 입이 쉬이 떨어지지 않게 만들었다.

“……조, 좋습니다.”

분명 절대적인 자신이 있는 내기였음에도 괜히 불안감을 느끼며, 칼릭스는 침묵 끝에 도미닉 공작의 제안에 긍정을 표했다.

그의 인생에서 가장 확실하면서도 묘하게 어려웠던 선택이 아니었나 싶었다.

* * *

“아이반? 북부군에 들어갔다더니, 벌써 다시 돌아온 건가?”

도미닉 공작을 만나기 위해 저택 안으로 들어간 칼릭스를 따라가지 않고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반은, 자신을 아는 체하는 목소리에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얼굴들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아이반과 비슷한 또래의 기사들.

가문의 영토에서 보낸 평생의 시간 동안, 숱하게 비교의 대상이 되었던 친척들이었다.

“어떤 마스터를 따라 북부로 갔다더니, 복귀하기엔 너무 이른 기간 아닌가? 여기 있는 걸 보니 몰래 도망쳐 나오기라도 한 모양이지?”

“푸하핫! 그럴지도 모르겠네. 그 실력에 하필 북부로 발령이라니,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겠지.”

대답 없이 가만히 있던 아이반은 이내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가주의 입김으로 북부군에 배속되었다가 허락 없이 돌아온 것은 사실이니, 도망친 게 아니냐고 물어도 솔직히 할 말이 없기는 했다.

굳이 구구절절 자신의 사정에 대해 늘어놓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아이반의 무심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상대들은 그대로 지나가지 않고 그의 곁으로 모여들어 신경을 툭툭 건드리는 말들을 내뱉었다.

“그래, 잘 돌아온 거지. 어차피 바깥에 나가봐야 이플리트가의 명성에 흠집만 새길 텐데.”

“괜히 다른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들지 말고, 그냥 쭉 여기 눌러 지내라고. 네 실력이라면 그래도 이 저택의 문지기 정도 쯤은 해먹을 수 있을 거 아니겠냐.”

“큭큭! 그래도 명색이 기사인데 문지기나 하라는 건 좀 심하지 않아?”

“그럼 뭐 어쩌겠어? 실력이 안 되는데. 작년에 익스퍼트가 된 너희 셋째 동생도 아이반보단 강할걸? 걔가 지금 19살이던가?”

“피터? 걔를 저 녀석하고 비교하긴 아깝지. 재능의 차이가 얼마나 큰데 말이야.”

낄낄거리며 웃어대는 방계의 친척들을 보며, 아이반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다른 직계 형제들이 지나갈 땐 숨소리도 제대로 못내는 녀석들이, 그의 앞에서는 항상 이리 빈정거리며 자존심을 긁어대곤 한다.

힘이 없으면 대접을 못 받는 곳이니 당연한 모습이긴 했지만, 지금의 자신이 저런 행동들을 참아 넘길 필요가 과연 있을까?

아니라고 생각한 아이반이, 싸늘한 눈초리로 그들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시끄럽게 굴지 말고 가던 길이나 가라.”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에, 약을 올리던 친척들이 일순간 입을 다물고 그를 쳐다보았다.

“……허! 몇 달 못 봤다고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네?”

“북부에서 야만인들을 베어 넘기며 제법 자신감이 생겼나보지?”

“어이 아이반. 눈에 힘 좀 풀지 그래? 이거 쪼금 기분이 상하려고 하네?”

주변의 공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건방지게 느껴지는 아이반을 압박하기 위해, 기사들이 오러를 운용하며 기세를 흘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갑작스레 뒤섞인 서늘한 냉기가 훅하고 주변을 뒤덮으며, 후끈거리던 열기를 단번에 가라앉게 만들었다.

“어엇?”

“이게 뭐지?”

알 수 없는 기운이 자신들의 오러를 억제하며 내리누르는 현상에, 이플리트가의 기사들이 당황한 기색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런 친척들의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며, 빙령심결을 운용해 오러를 끌어올린 아이반이 칼자루에 천천히 손을 올렸다.

‘주군의 은혜로 거듭난 내 모습을 아버지에게 먼저 보여줄 생각이었는데. 그 전에 잠깐 몸을 푸는 것 정도는 괜찮겠지.’

이어서 차가운 미소를 입가에 그리며, 아이반이 기사들을 향해 말을 꺼냈다.

“궁금하면 덤벼 봐. 달라진 게 분위기만은 아닐 거다.”

“……뭐라고?”

“이 자식이 미쳤나?”

항상 다른 기사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며 주눅 들어만 있던 아이반이 역으로 도발하는 모습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던 기사들의 표정이 금방 험상궂게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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