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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58화 (58/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58화

왕실의 호출도 있고 북부에선 딱히 더 이뤄야 할 것도 없기에, 칼릭스는 곧장 수도로 돌아갈 채비를 갖추었다.

그런 와중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직 제자들의 수준을 만족스러울 정도로 끌어올리진 못했다는 점.

실전을 경험할 수 있는 환경에서 굴려 가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고는 있었는데, 그렇게 훈련시킨 지도 이제 몇 개월밖에 지나지 않았기에 조금 더 훈련을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렇다고 계속 군부에 박아둘 수는 없으니, 기회는 아쉽지만 같이 데려가야겠지.’

지금까지야 위험한 상황에 몰려도 곧장 자신이 개입할 수 있으니 그런 방식의 훈련으로 일취월장한 것이지, 괜히 제자들만 따로 뒀다가는 죽거나 불구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칼릭스가 직접 관리하는 게 아니라면, 기사도 병사도 아닌 어중간한 위치에 있는 제자들의 군부 내 입장은 애매해진다.

애초에 자신을 따르겠다고 찾아온 아이들을 훈련을 이유로 남겨두고 떠났다간, 의욕이 크게 저하될 테니 제대로 성장할지도 의문이고 말이다.

‘세 녀석은 어차피 내가 계속 달고 다녀야겠고. 그럼 나머지 하나는 어떻게 되려나.’

칼릭스는 자신을 따라 북부군에 따라온 아이반을 불러, 그와 앞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경하드립니다. 스승님. 그럼 이제 한 영지의 영주가 되시는 겁니까?.”

“음. 일단은 수도로 들어가 논의를 나눠봐야 하겠지만, 왕실에서 봉토를 하사하는 건 거의 확정인 듯하더군. 아무튼, 아이반 자네는 앞으로 어찌하고 싶나?”

칼릭스가 없으면 아이반은 더 이상 특임대의 부관이 아니게 된다.

물론 기사인 아이반이라면 다른 보직을 배정받아서 평범하게 군 생활을 지속할 수 있긴 하겠지만.

애당초 그가 북부군으로 발령된 것은 칼릭스와 가까이 붙어 있으라는 도미닉 공작의 의도였으니, 그가 없으면 계속 이곳에 머무를 이유도 사라지는 것이다.

“아마 스승님께서 떠나가시면, 저는 가문에서 다시 불러들여 수도군에 배치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곳에 남고 싶다면 내가 도미닉 공작님께 이야기를 해두도록 하지. 어차피 자네에겐 이곳의 환경이 수련을 하기에 최적화된 장소이니, 굳이 북부군을 떠나 수도군으로 옮길 필요가 없지 않나?”

“그렇기는 합니다만…….”

“흠?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가?”

뒷말을 흐리면서 우물쭈물하던 아이반이, 칼릭스의 눈치를 살피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스승님께서 이제 곧 작위를 받고 영주가 되시니…… 저를 가문의 기사로 받아주실 순 없으십니까?”

“내 가문에 속한 사람이 되겠다고? 진심인가?”

약간 의외의 이야기였기에, 칼릭스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놀랍다는 듯이 되물었다.

동일하게 스승이라고 호칭하고 있지만, 아카데미 삼인방과 아이반은 사정이 많이 다르다.

종자를 자청한 세 사람은 칼릭스와 주종관계로 묶이는 것이기에, 앞으로 어떤 활동을 하든지 후견인인 그의 영향력 아래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된다.

만약 그들이 칼릭스의 허락 없이 그의 이익에 반하는 행동을 취하게 된다면, 명예와 충의를 모르는 자들이란 꼬리표가 달려 귀족사회에서 매장당할 될 각오를 해야 하는 것이다.

반면에 아이반은 칼릭스에게 가르침을 받아 그를 스승으로 섬기고는 있지만, 그 관계가 삼인방들처럼 강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진 않다.

혹시나 이플리트 가문과 칼릭스가 어떤 이해에 얽혀 충돌을 빚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면, 아이반이 가문의 편에 힘을 실어준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입장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하지만 내 가문의 기사가 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기사라면 누구나 자신의 검을 바칠 대상을 스스로 정할 수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충성서약을 통해 군신관계를 맺게 된다면, 어떤 사정이 생기든지 간에 주군을 위한 충정을 최우선순위에 올려야 한다는 강력한 제약이 생기게 된다.

이플리트가의 출신이라는 점보다, 칼릭스의 수하라는 위치가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실력을 쌓아 가문 내의 입지를 높이고 싶어 하지 않았던가? 나를 따라나선다면 더 이상 이플리트가에 영향력을 행사하긴 어려워질 텐데.”

“상관없습니다. 북부에서 지내는 동안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제가 더 이상 가문 사람들의 인정에 목을 맬 이유는 없는 것 같더군요.”

가주의 아들임에도 방계의 또래들보다 수준이 뒤떨어지는 탓에, 근 이십 년의 세월 간 수모와 멸시를 받으며 자라온 아이반이다.

그동안은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높여, 가문 내에서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자 애써왔지만.

칼릭스를 만나 완전히 새 사람이 된 아이반은, 자신이 굳이 가문 내의 지위에 얽매일 필요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25년. 아니,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26년이군요. 그 긴 시간 동안 이플리트 가문은 제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제 친부이신 가주님을 포함해, 가문의 어느 누구도 저의 체질적인 문제를 알아보지 못했지요.”

“그건 이플리트가의 잘못이라고 할 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다른 이들에 비해 조금 특별한 안목과 재주를 지녔을 뿐이지.”

“그렇다 해도 저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주신 스승님만이, 제가 충심을 다하기에 적합한 분이시라고 생각합니다.”

검을 뽑아 칼릭스의 앞에 꽂아 세운 아이반이, 심장에 손을 얹고 한쪽 무릎을 꿇으며 재차 말을 이어갔다.

“앞으로 저의 검을 통해 이루어질 명예와 영광들은, 제 가문의 명성보다는 칼릭스 님의 이름 뒤에 놓였으면 하는 것이 저의 진실한 마음입니다.”

“음…….”

칼릭스가 아이반을 제자로 들인 것은 그의 재능이 빛을 보지 못하고 썩는 게 안타까웠던 이유도 있고, 만약 그냥 내버려 둔다면 비정상적인 체질 탓에 몇 년 내로 단명하게 될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도미닉 공작의 적자인 그를 잘 키워낸다면, 왕국 내 가장 거대한 가문 중 하나인 이플리트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도 들어 있기는 했다.

한데 아이반이 그의 휘하로 들어오게 된다면, 칼릭스의 입장에선 더없이 좋은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이반의 재능은 진짜다. 아마 이대로 쭉 성장한다면, 언젠가는 마스터의 경지까지도 무난하게 도달할 수 있을 테지.’

그만한 잠재력을 가진 기사를 수하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를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의 계산과는 다르게 이플리트 가문과의 관계가 조금 어색해질 수는 있겠지만, 그쯤이야 딱히 크게 문제가 될 일도 아니었다.

“아이반, 자네의 마음은 잘 알겠다. 왕실에서 작위와 봉토를 받아 내 가문을 꾸리게 되면, 곧바로 적법한 절차에 따라 그대를 가문의 기사로 맞아들이도록 하겠다.”

“아…… 감사합니다, 스승님. 아니, 나의 주군이시여. 제 숨이 붙어 있는 날까지 충심을 다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아이반까지 더해 네 명의 제자를 완전히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 칼릭스는, 마지막으로 군부를 떠나기 전에 북부군의 우호세력인 바위사슴 부족을 찾아갔다.

바위사슴 부족이 북부군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것에는 아무래도 칼릭스의 존재가 끼친 영향이 컸기 때문에, 그가 부재하더라도 계속 깊은 교류를 이어갈 수 있도록 예의 그 주술사와 대화를 나누기 위함이었다.

[그렇군. 떠나는 것인가. 그대와 같이 강력한 전사가 자리를 비운다면, 아무래도 그 공백이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군.]

“딱히 그렇지도 않을 거다. 어차피 이 근방에는 더 이상 다른 북부인들이 세를 형성하기 어려울 테고. 상호 간에 이득이 되는 거래를 이어감에 있어, 앞으로도 별다른 문제가 발생하진 않을 것이다.”

[만약 우리와 그대들의 관계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위기가 찾아온다면. 그때는 다시 그대가 돌아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겠지?]

“그럴 일이 없길 바라지만, 혹시 문제가 발생한다면 나 역시 방관하지만은 않겠다.”

[그럼 되었다. 이후로도 지금과 같은 거래를 계속 이어가도록 하지.]

주술사는 그렇게 왕국과 부족 사이의 원만한 교류를 약속하며, 북부를 떠나는 칼릭스에게 한 가지 선물을 건네주었다.

[따로 감사의 표시를 하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마침 잘되었구나. 우리에게도 귀한 물건이라 거래품목에는 올리지 않았었지만, 그대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으니 이것들을 선물하겠다.]

별생각 없이 주술사가 챙겨준 선물꾸러미를 받아든 칼릭스는, 그것의 내용물을 확인하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프로즌 만드라고라!’

칼릭스가 오러량을 늘리기 위해 제조해 복용했던 영약의 주재료.

돈이 있어도 구하기 어려운 희귀한 약초인 프로즌 만드라고라가, 무려 두 뿌리나 들어 있었다.

‘이걸 이렇게 또 얻게 될 줄이야.’

기대도 하지 않았던 굉장한 선물에, 칼릭스는 헛웃음을 흘리며 그것들을 잘 챙겨 넣었다.

* * *

전혀 예상치 못했던 소득이 생긴 탓에, 칼릭스는 수도로 향하는 일정을 하루 미루기로 했다.

떠나기 전에 프로즌 만드라고라를 사용할 생각이기 때문이었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지는군.’

영약이란 것은 어차피 한 사람은 여러 개를 구하기도 어려운 법이지만, 설사 그런 기회를 잡았다 해도 중복해서 섭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본디 자신의 것이 아닌 기운을 다스린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진데.

영약 하나의 효능을 다 흡수하기도 힘든 마당에 두 개 이상의 영약을 섭취한다면, 날뛰는 기운들을 다스리지 못하고 통제 불능에 빠지게 될 확률이 극도로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영약을 여러 개 소지하고 있다면, 하나의 영약을 완전히 소화한 다음에야 다른 영약을 복용함이 옳았는데.

마침 칼릭스는 이전에 복용했던 영약의 기운을 완전히 소화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기에, 새로운 영약을 받아들여도 아무런 문제도 없는 상태였다.

‘동일한 영약이라는 게 좀 아쉽다고 말하면 너무 배부른 투정이려나.’

칼릭스는 이미 한번 프로즌 만드라고라를 통해 오러를 늘렸기 때문에, 같은 종류의 영약을 다시 복용해서는 이전과 같은 효과를 볼 수가 없었다.

영약으로 유입된 대량의 기운을 스스로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일종의 내성이라 할 수 있는 반응이 생겨나는 탓이다.

‘아마 반의반 정도나 몸 안에 붙잡아 둘 수 있을까. 나머지는 무의미하게 외부로 방출해야만 하겠지.’

칼릭스가 지난번처럼 프로즌 만드라고라와 다른 재료들을 섞어 환의 형태로 영약을 만들어내지 않고, 현 위치에서 원형 그대로의 섭취를 결정한 것도 이와 관련된 이유였다.

어차피 대다수의 기운이 허공으로 흩어지게 될 것인데 그나마 섭취의 효과를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영약의 성질과 비슷한 기운이 흐르는 환경에서 복용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

요컨대 프로즌 만드라고라의 두 번째로 사용하면서 낭비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한기가 가득한 설산지역에서 섭취와 운공을 마치는 것이라는 소리다.

‘최대한 알뜰하게 써먹어주지.’

두 뿌리의 프로즌 만드라고라 중 하나를 꺼내든 칼릭스는, 이내 오러를 움직여 손에 쥔 뿌리를 덮으며 압력을 가했다.

다른 마스터들은 흉내 내기도 어려운 방식이지만, 무공의 지식을 갖추며 세밀한 오러 컨트롤이 가능해진 그에겐 힘든 일도 아니었다.

팔뚝만 한 프로즌 만드라고라를 주먹보다 작게 압축시켜 먹기 좋은 형태로 만든 칼릭스가, 고개를 돌리며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걸었다.

“준비는 되었나?”

“예! ……사실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상의를 벗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아이반이, 칼릭스의 질문에 대답했다.

“최대한 정신을 집중에서 흘러들어오는 기운을 통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무래도 놓치고 빠져나가는 것이 더 많기는 하겠지만, 잘만 한다면 큰 성과를 볼 수 있을 테지.”

“노력해 보겠습니다!”

칼릭스는 자신이 완전히 흡수하지 못하고 배출하게 될 기운들까지도, 정말로 알뜰하게 활용할 생각이었다.

직접 복용하는 것에는 당연히 미치지 못하겠지만, 어차피 흩어질 영약의 기운을 아이반이 일부라도 흡수할 수 있다면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사실 칼릭스를 통해 한 차례 걸러내진 기운을, 다른 사람이 이차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원래는 거의 불가능한 시도였겠으나.

동일한 빙령심결을 익혔으며 한음지기에 민감한 극음지체를 타고난 아이반이라면 약간이라도 성취를 볼 수 있으리란 판단이 들었기에, 칼릭스는 이렇게 그를 곁으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그럼, 시작해 보지.”

“옛!”

압축시킨 프로즌 만드라고라를 입에 넣고 씹어 삼킨 칼릭스가, 아이반의 뒤에 앉으며 그의 등에 한 손을 올렸다.

이윽고 두 사람이 운공을 시작하며, 막사 안으로 서늘한 냉기가 가득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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