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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51화 (51/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51화

“왜 하필 저놈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모르겠군. 혹시 이미 알고 그러는 겐가?”

불편한 기색이 느껴지는 공작의 말에, 칼릭스는 사내에게서 눈을 떼고 도미닉과 눈을 마주쳤다.

“끄응, 자네가 귀족가의 추문을 파헤치고 다닐 친구 같지는 않다만…… 저 녀석이 내 아들이라는 사실을 정말 모르고 지목했는가?”

“예?”

눈을 크게 뜬 칼릭스가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도미닉과 그의 아들이라는 기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두 사람은 닮은 구석이 없었다.

다른 혈족들과도 외모가 전혀 다르기에, 방계 쪽의 외척 가문에서 방문한 인물인 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공작의 아들이라니?

직계 중에서도 가장 짙은 피를 물려받았을 인물이, 어찌 저렇게까지 전혀 닮지 않은 외형일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놀라는 모습을 보니 진짜로 몰랐나 보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네. 솔직히 나도 정말 내 씨가 맞나 의심이 가기에, 마법사들에게 의뢰해서 친자 확인까지 거쳤었지.”

“아, 아뇨. 그런 무례한 생각을 하진 않았습니다.”

“그런가? 허헛. 뭐 아무튼 결과는 내 친자식이 맞다 하더군. 그렇지만 생긴 게 저래서 그런지, 영 써먹지 못할 불량품이더란 말이지.”

친아들을 호칭하는 말로는 너무 가혹한 단어 선정에, 칼릭스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공작과 시선을 마주쳤다.

“왜? 듣기 별로인 말인가? 하지만 어쩌겠나. 무가의 자식으로 태어난 녀석이 형편없는 무재를 지녔다면, 사람다운 대접을 못 받아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니겠나.”

“으음.”

“내 친아들인 놈이 괜히 이곳에서 방계의 기사들과 같은 대우를 받고 있는 게 아닐세.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재능이 없다면, 내 핏줄이라고 해봐야 아무런 의미가 없지.”

실력 지상주의가 절대적인 이플리트가는, 다른 대다수의 귀족가문들처럼 장자승계의 원칙에 따라 후계자를 선정하지 않는다.

오로지 재능과 실력만 보고 서열을 따져 가주의 자리를 물려주기에, 무재가 뒤떨어지는 이라면 직계라 해도 방계의 말석만도 못한 취급을 받기 마련.

‘불량품이라…… 그래. 당신들의 입장에선 그럴 수도 있겠지.’

그러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기에 내릴 수밖에 없었을 그런 평가에, 칼릭스는 속으로 혀를 차며 공작의 아들에게로 다가갔다.

다른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북부군 편입은 미친 짓이라는 생각에 칼릭스의 시선을 피하고자 애쓰던 공작의 아들은, 이내 자신을 향해 똑바로 다가오는 그의 모습에 반쯤 체념한 표정이 되었다.

“칼릭스 마이언이오.”

“아이반이라 합니다.”

“나이가 어떻게 되는지?”

“……올해로 스물여섯이 되었습니다.”

부끄럽다는 듯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는 아이반.

그도 그럴 만한 게 아이반에게서 느껴지는 오러의 수준을 가늠하자니, 익스퍼트 초급에 간신히 턱걸이하고 있는 정도로 보였다.

바깥의 다른 이들이었다면 26세에 익스퍼트 초급의 기사라는 건, 그래도 충분히 젊고 유능한 축에 속한다는 평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왕국을 대표하는 명가의 직계후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현재의 경지는 아무래도 부족함이 느껴지는 수준이기는 했다.

일반적으로 무재가 제법 괜찮다 싶은 귀족가의 자제들이면, 이십 대 중후반의 나이에는 익스퍼트 중급 정도의 실력은 갖추고 있기 때문.

그러나 칼릭스는 아이반의 현재 수준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그가 자신의 도움을 받아들인다면, 지금까지 이룬 경지는 어차피 아무 의미가 없게 될 것이었기에.

“공작 전하께서 하신 말씀은 들었을 테고. 나를 따라 북부군으로 떠날 의향이 있소?”

“이보게, 칼릭스 경.”

칼릭스의 말에 아이반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도미닉 공작이 나서서 그의 제안을 만류했다.

“내가 아무나 데려가라고 말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녀석은 조금 그렇군. 실력이 뛰어난 다른 기사들도 많은데 왜 굳이 하자가 있는 물건을 고르려고 하는가?”

욕설이나 다름없는 부친의 신랄한 평가에, 아이반은 치욕스럽다는 듯이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한 사람 몫도 제대로 하기 어려운 녀석을 북부로 보냈다간, 괜히 이플리트가의 이름에 흠집이나 내고 다닐 것이 분명하거늘. 그놈은 신경 끄고 다른 사람으로 골라보시게.”

칼릭스는 그런 도미닉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아이반의 얼굴을 가만히 살피다가 입을 열었다.

“딱히 무리한 활동을 한 적이 없는데도, 주기적으로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지 않소? 오한이 들고 시력은 떨어지고, 기침이 자주 나고 배앓이까지 했을 텐데.”

“헛? 그걸 어찌…….”

뜬금없는 소리였지만 하나같이 맞는 말이었다.

움찔하며 고개를 든 아이반이 칼릭스와 시선을 마주쳤다.

스스로의 병약함을 남들에게 알리기 싫어 입 밖으로 내본 적도 없거늘, 오늘 처음 만난 저 사람이 어찌 자신의 몸 상태에 대해 저리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일까?

“내 말을 믿을지 말지는 그대의 선택에 달렸소만. 이거 하나는 확실히 말해줄 수 있소. 이플리트 가문은 당신이 가진 재능과 가능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고, 그걸 끌어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선 나 한 사람뿐일 테지.”

“뭐? 자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겐가?”

도미닉 공작의 목소리에 살짝 불쾌한 감정이 담겼다.

이제껏 누가 감히 가주인 그의 앞에서, 이플리트 가문은 보는 눈이 없다는 식의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칼릭스와 좋은 관계를 만들어보고자 나섰던 도미닉이었지만, 저런 말을 옆에서 듣고도 가볍게 웃어넘기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도미닉 공작에게로 시선을 옮긴 칼릭스가,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공작 전하. 자제분을 제게 맡겨보시지요. 아마 내년쯤에는 놀라운 결과를 볼 수 있게 되실 겁니다.”

언행을 조심하라고 칼릭스에게 주의를 주려던 도미닉이, 굵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그와 아이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코웃음을 쳤겠지만 저 가공할 만한 천재 기사가 이리 자신 있게 말을 하니, 폐품이란 판정을 내렸던 아들에게 정말로 어떤 남모를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닌지 반신반의하게 되었다.

“크흠! 그것참. 터무니없는 말인데도 마냥 무시하기는 또 어렵군. 나와 우리 가문 사람들의 눈이 옹이구멍도 아닐 진데, 정말로 저 녀석에게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재능이 있다고 여기는 건가?”

“그렇습니다. 뭣하면 내기라도 하시겠습니까?”

“허허.”

당당하게 나오는 칼릭스의 태도에, 도미닉은 할 말을 잃고 헛웃음을 흘렸다.

“좋네. 그렇게까지 나온다면 내 더 말리진 않도록 하지.”

“실망하진 않으실 겁니다. 그럼 대답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서 있던 아이반은, 칼릭스의 마지막 말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깨닫고 당황하며 눈을 굴렸다.

“아, 그게…….”

가주인 도미닉 공작의 직계로서 원래는 후계자리를 놓고 다퉈야 마땅한 신분임에도, 방계만도 못한 재능을 보인 탓에 20여 년간 손가락질을 받아온 그였다.

가문의 냉대 속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을 했음에도 좀처럼 늘지 않는 실력에 깊은 좌절감을 갖고 있던 아이반은, 난데없는 칼릭스의 말에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내가 재능이 있다고? 지금 무슨 질 나쁜 장난을 당하고 있는 건가?’

그렇지만 이내 가주와 동수를 이룰 정도로 대단한 실력을 지닌 마스터가, 무엇하러 자신 같은 인간에게 괜한 시간을 낭비하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매번 괜히 바깥에 나가 가문의 명예를 더럽히지 말라는 소리만 들으며, 멸시의 눈초리와 비웃음 속에서 살아온 아이반이다.

처음으로 누군가가 네게도 가능성이 있다며 내밀어준 손이었기에, 아이반은 오래지 않아 결심을 내릴 수가 있었다.

“칼릭스 님을…… 따르겠습니다.”

결연한 얼굴로 대답하는 그의 모습에, 칼릭스는 희미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오지랖을 부리는 게 아닌가 싶기는 했지만, 칼릭스가 보기에 아이반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었다.

‘잘하면 이플리트 공작가문을 든든한 우방으로 삼을 수도 있겠는데.’

만약 자신의 생각대로 상황이 흘러간다면, 아이반은 본인의 가문에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실력자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 * *

아이반을 부하 겸 제자로 받아들인 칼릭스는, 날이 바뀌자 곧장 북부로 향하는 여정에 올라섰다.

도미닉 공작이 그를 며칠 더 붙잡아두고 싶어 하는 눈치였긴 했지만, 칼릭스는 이를 단호하게 끊어내고 이플리트가의 영지를 떠나왔다.

칼릭스도 천성이 무인이기에 도미닉 공작과 몇 번 더 검을 나눠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계속 그곳에 머무르기에는 뭐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쪽 가문의 여성들이 칼릭스를 향해, 점점 적극적이고 대담하게 달라붙으려 하는 기색을 보인 탓이 매우 컸을 것이다.

‘이플리트 가문. 여러 의미에서 굉장한 곳이야.’

더는 다른 볼일이 없기에 마차를 타고 북쪽을 향해 쭉 올라간 칼릭스 일행은, 어느덧 군부에서 출입을 통제하는 황량한 북부지대로 진입할 수 있었다.

“여기가 북부…… 확실히 대기에 섞인 마나가 내부까지 얼어붙게 만드는 느낌이군요. 결코 올 일이 없다고 생각한 곳에 이리 발을 들이니, 기분이 묘합니다.”

곁에서 중얼거리는 아이반의 목소리에, 칼릭스는 그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

“예. 북부에 들어서면 가문에서 익힌 것들을 모조리 잊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볼케닉 소드와 플레임 오러.

칼릭스가 그를 따라나선 아이반에게 가장 먼저 지시한 것은, 이플리트 가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들을 전부 버리고 자신이 가르치는 것들을 익히라는 말이었다.

평생을 수련해온 것들을 무로 돌리라는 이야기에 아이반은 기겁하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이어지는 설명에 상황을 납득하고 결국 칼릭스의 지시를 따르게 되었다.

“제가 그런 괴상한 체질을 타고났다니…….”

“억울해할 필요는 없네. 그 체질이 앞으로 자네의 강력한 무기가 되어 줄 테니.”

아이반이 다른 이플리트 가문의 혈족들에 비해 몸집이 왜소하고 자주 잔병치레에 시달렸던 것은, 그가 정상인과는 다른 특이한 체질을 타고났기 때문이었다.

선천적으로 강하게 타고난 음기가 기혈을 틀어막아, 주요 경락을 타고 순환해야할 오러의 흐름 자체가 정상 위치에서 벗어나게 되는 체질.

무림에서는 이런 현상을 절맥증이라 칭하며, 아이반과 같은 체질의 신체를 극음지체라고 불렀다.

음양이 균형을 이루어야 할 신체의 기운이 한쪽으로 과하게 쏠리니, 건강에 커다란 악영향을 끼치는 것도 당연했다.

‘그나마 태어난 곳이 이플리트 가문이라서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지.’

열양공의 일종인 플레임 오러를 다루는 데에 특화된 혈통을 타고나는 이플리트 가문에서, 극음지체로 태어난 아이반은 그야말로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반이 지금까지 그저 건강이 안 좋은 정도의 상태를 유지하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플리트 가문의 비전을 수련한 검사였기 때문이기도 했다.

절맥증을 타고난 인간은 보통 스물을 넘기 전에 몸이 망가져 수명이 다하기 마련이다.

조화를 이루지 못한 육신이 아무런 조치 없이 버틸 수 있는 한계가 딱 그 정도라는 의미.

그럼에도 아이반은 스물여섯인 지금까지, 겉보기엔 별 이상이 없어 보일 만큼 멀쩡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수련한 플레임 오러에 담긴 양기가, 극음지체의 선천적인 음기를 억누르며 미묘하게 균형을 맞춰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버티는 것도 결국엔 한계가 있으니, 아마 그냥 내버려 뒀다면 마흔이 되기 전에 병사할 운명이었겠다만.’

극음지체로 태어난 아이반이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바로 본인의 체질과 부합되는 오러연공법을 익히는 것.

그리고 이 부분은 칼릭스가 쉽게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였다.

‘빙령심결을 전수해 주면 되겠지.’

그가 알고 있는 무공 중 한음지기를 다루는 데에 가장 뛰어난 심법인 빙령심결이라면, 극음지체와의 상성도 최상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결과를 만들어내 줄 것이 분명했다.

‘체질과는 상극인 오러연공법을 수련했음에도 익스퍼트에 오를 정도였으니, 내가 옆에서 조금만 도와준다면 실력이 순식간에 일취월장할 것이 분명하다.’

주어진 조건 자체가 그를 힘들게 몰아갔을 뿐이지, 따지고 보면 아이반의 재능은 매우 비범한 수준이었다.

그런 비운의 천재를 거둬들여 은혜를 베풀어준다면,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보답이 돌아올 것이라는 것이 칼릭스의 계산이었다.

“칼릭스 님. 저기 막사 같은 것들이 보입니다.”

“음. 우리가 앞으로 몸담게 될 군영이 저쪽인 모양이군.”

머릿속으로 아이반을 어떻게 키워서 써먹을지에 대해 계획을 떠올리던 칼릭스는, 목적지인 그들의 군부대를 발견하고 속도를 높였다.

휘잉.

눈 덮인 언덕 지대에서 불어오는 칼바람이, 다가오는 두 사람을 반기듯 강하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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