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5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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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련이 끝나고 나니 슬슬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이플리트가의 사람들은 가주인 도미닉 공작이 직접 데려온 손님을 위해 정성껏 만찬을 준비했고, 힘을 쓰고 난 직후였기에 출출해진 칼릭스 또한 그들의 대접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래. 그 검술은 자네가 직접 창안한 것이라고?”
“……그렇습니다.”
“대단하군. 정말 대단해. 이제 머지않아 왕국을 대표하는 검술의 명가라는 칭호는, 자네의 가문이 차지하게 되겠군.”
“으음. 과찬이십니다.”
“괜한 소리가 아닐세. 이미 실력은 능히 일가를 이루기에 부족함이 없고. 벌써 서른의 나이에 그런 수준에 도달했으니, 자네의 대에서 또 얼마나 더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겠느냔 말인가.”
“하, 하하…… 운이 많이 따라주었을 뿐입니다.”
식사 자리에서 끊임없이 쏟아지는 도미닉 공작의 격찬에, 칼릭스는 겉으로 드러나려 하는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써야 했다.
매번 모든 기술들을 스스로 개발했다고 말하고 다니려니, 양심이 쿡쿡 쑤시는 기분이다.
‘그렇다고 무림과 무공의 존재에 대해서 밝힐 수도 없으니…….’
도미닉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칼릭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에게서 눈을 돌려도 얼굴이 따갑기는 마찬가지였다.
이플리트가의 기사들이 본인들의 우상인 도미닉 공작과 동등한 열전을 벌인 칼릭스에게, 말 한마디라도 걸어보고 싶다는 표정으로 끊임없이 주위를 서성거리고 있었기 때문.
“우리 가문의 젊은이들이 자네에게 아주 관심이 많은 모양이로군!”
이에 주변의 분위기를 살핀 도미닉이, 은근한 목소리로 칼릭스에게 말을 건네 왔다.
“혹시 마음에 드는 녀석이 있다면 이따가 데려가서 품어도 좋네. 물론 서로 눈이 맞아야 하겠지만, 보아하니 자네를 싫다고 거부할 녀석은 없을 것 같군.”
“쿨럭! 으음…… 무슨 그런 말씀을.”
“껄껄껄! 한창때의 친구들끼리 마음이 동하면 하룻밤 즐길 수도 있는 게지, 뭘 또 정색을 하고 그러나?”
도미닉 공작이 괜한 말을 하는 건 또 아닌 것이.
현재 칼릭스와 가까운 자리에 모여 식사를 하고 있는 젊은 기사들은, 여성의 비율이 거의 절반에 다다를 정도로 기이한 성비를 이루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이플리트 가문의 핏줄이 대단하긴 하군.’
폭력으로 점칠 된 기사의 세계에 여성이 발을 들인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이플리트가는 다른 가문과는 비교하기도 우스울 정도로, 상당한 수의 여성 기사들을 배출하여 거느리고 있었다.
어쩌면 대륙 전체를 뒤져 봐도, 이플리트 가문만큼 여기사를 많이 양성해내는 곳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룬빌과 더불어 왕국 최고의 검술명가라 불리는 환경도 환경이지만, 애초에 타고나는 체격조건 자체가 남다르기 때문이었다.
이플리트 가문의 피가 섞인 사람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 기골이 장대하지 않은 인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남성들은 대부분 신장이 2미터가 넘는 엄청난 장신이었고, 여성들도 그보다 한 뼘 정도 모자란 정도가 대부분이니.
칼릭스도 일반적인 기사들 중에선 큰 체격에 속하는 인물이지만, 이플리트가의 사람들은 아예 종족 자체가 다른 무언가로 의심해도 될 지경이었다.
‘……술은 그만 마셔야겠어. 공작 전하의 농을 듣고 나니 괜히 마음이 불안해지는군.’
이플리트 가문의 여기사들 보내오는 묘한 열기가 담긴 눈빛을 애써 무시하면서, 칼릭스는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오러를 운용해 체내에 들어온 술기운을 모공으로 깡그리 방출해 냈다.
그도 신체 건강한 젊은 남성이기에, 본인을 향한 여성들의 관심을 싫어할 수는 없었다.
다만 이플리트가의 여기사들을 상대로는, 아무래도 그런 마음이 동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기사가 되기 위한 천부적인 무골을 타고나는 것이 이플리트 가문의 사람들이다.
떡 벌어진 어깨.
통나무처럼 굵직한 팔과 다리.
자신과 비슷한 키에 우람한 근육질의 외형을 지닌 그들에게서, 일반적인 취향에 맞는 여성의 매력을 찾아보기란 제법 난이도가 높은 조건이었다.
근골이 뛰어난 2세를 얻고 싶은 게 목적이라면 또 모르겠다만.
“자자, 마음껏 들게나. 북부로 넘어가면 이렇게 술과 음식을 풍족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도 전혀 없을 테니 말이야.”
도미닉의 말에 칼릭스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앞에 놓인 고기 요리를 썰어 입에 넣었다.
척박한 환경인 북부의 땅에서는 현지조달이라는 개념이 농담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북부군 병력들은 오로지 후방에서 보내오는 군수물자에 기대어 부대 운영을 해나가야 한다.
특히 남들보다 더 깊숙하게 적지를 돌아다녀야 하는 특임대는, 따뜻한 식사로 배를 채우는 기쁨도 당분간 잊은 채로 살아야 할 가능성이 높기에.
칼릭스는 한동안은 맛보지 못할 음식들을 열심히 쓸어 담으며, 스스로의 배를 든든하게 채우는 행위에 열중했다.
“아, 그렇지. 북부에 대한 말이 나왔으니 하는 이야기이네만.”
“예.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면 편히 해주십시오.”
“최근 북부가 불어난 야만인들 때문에 많이 소란스럽다고 하니, 우리 가문에서도 문제 해결을 위해 기사 한 명쯤 올려보낼까 싶었는데 말일세. 마침 자네가 그쪽으로 가야 한다니, 함께 딸려 보내면 되겠지 싶군.”
도미닉의 말에 주변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던 기사들이,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이플리트가 출신의 기사들은 대부분 수도군에서 복무하는 것을 목표로 삼기 마련이며, 사정이 생겨 다른 부대에 지원을 할지라도 절대로 북부군에는 눈길도 주지 않기 마련이다.
언제나 설원 속을 돌아다녀야 하는 북부군의 생활은, 플레임 오러를 다루는 이플리트 가문의 기사들에게 완전히 상극이라 할 수 있는 환경이었기 때문.
사시사철 혹한기인 장소이기에 자연적인 마나 자체가 냉기의 속성에 치우쳐 있어, 이플리트가의 일원들은 북부에 발을 들이기를 꺼려할 수밖에 없었다.
오러의 성장과 회복이 둔화되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자랑인 볼케닉 소드의 위력까지 현저히 떨어지게 되니, 미친 게 아니고서야 그런 환경에서 복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리가 있겠는가.
“왕국군에 입대하는 이플리트가의 기사들은, 기본적으로 자대배치 과정에서부터 북부군 쪽 편성에서 제외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왕국군 복무경험이 있기에 그런 사정에 대해서도 알고 있던 칼릭스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도미닉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과거 이플리트 가문의 선조 중에 누군가가 군무대신쯤 되는 관료와 밥 한 끼 먹으면서, 우리 애들은 윗동네로 가서 엄한 고생 안 하게 잘 좀 빼달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어차피 왕국군의 편제가 북부의 군단에만 자리가 생기는 것도 아니니, 이플리트 가문 기사들의 특수성을 생각하면 왕실에서도 그쯤은 배려해줄 수 있었으리라.
“내가 지목해서 전출을 보내겠다고 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나? 고생이야 조금 하겠지만, 그렇기에 배울 수 있는 것도 있는 법이겠지.”
물론 그런 관례는 이플리트가의 가주인 도미닉이 관련 부서에 언질 한 마디 넣어두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사실 도미닉은 최근까지 북부가 시끄럽니 어쩌니 하며 인력이 부족하다는 말이 나왔어도, 그쪽으로 가문의 사람들을 보내겠다는 생각은 손톱만큼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 이렇게 칼릭스와 만나게 되며 두려울 정도의 천재성을 목도하고 나자.
칼릭스와 어떤 식으로든 인연을 맺어두고 가까이서 그의 행보를 지켜보며 동향을 파악할 수 있도록, 급하게 조치를 취해야 하겠다는 결심을 떠올리게 된 것이었다.
“우리 가문의 검술이 북부의 설원에서는 위력이 크게 저하되는 것은 사실이네만. 그래도 기본기가 있는 기사들이라 다른 동료들의 발목을 잡진 않을 걸세.”
“그야 뭐, 저도 이플리트 가문 기사들의 실력을 의심하진 않습니다만.”
“그럼 이참에 자네가 여기 있는 이들 중에서 한 사람 뽑아 보게나. 단순히 북부까지의 길동무에 그치지 않고, 부관으로 데리고 다닐 녀석으로 말일세.”
“제 밑에 두고 부릴 사람을 뽑으란 말씀이십니까?”
“그렇다네. 인사 조치는 내가 알아서 해결하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속 편히 말하는 도미닉 공작의 발언에, 칼릭스의 주변에 모여 서성거리던 기사들의 낯빛이 굉장히 나쁘게 변해갔다.
북부의 한파를 직접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그런 극한지에서의 활동이, 자신들의 오러운용에 악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칼릭스와 눈을 마주치려 애쓰며 스스로를 어필하고자 했던 기사들이, 공작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고개를 돌리며 은근슬쩍 얼굴을 가리기 시작했다.
‘으윽! 마스터급의 강자와 안면을 틀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미친, 북부군이라니! 가주님의 지시라면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데. 절대로 걸려선 안 될 일이야!’
그런 이플리트가의 사람들을 돌아보며, 칼릭스는 고민하는 기색으로 본인의 턱을 매만졌다.
‘도미닉 공작이 왜 뜬금없는 이런 소리를 하는지 알겠군. 뭐, 내게도 딱히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만.’
순수하게 친분을 맺고자 함인지 아니면 경계심이 들기 때문인지 까진 알 수 없지만, 자신과 뭐라도 인연의 끈을 이어두고자 하는 도미닉의 의도를 칼릭스 역시 눈치채고 있었다.
어쨌거나 딱히 거절할 필요는 없는 제안이다.
자신이 아무리 마스터라고 해도 홀로 모든 전투를 수행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아래에 두고 써먹을 수 있는 익스퍼트급 전력 하나를 공으로 보내준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가기 싫은 티를 팍팍 내고 있는 기사들이 약간 불쌍하긴 하지만, 윗선에서 그리 결정을 내리면 자기들이 따라야지 뭐 어쩌겠는가?
‘재미있군. 전입신고도 하기 전에 부하 대원이 먼저 생길 줄이야.’
칼릭스는 천천히 고개를 움직이며 상점에서 물건을 고르듯 기사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자신보다 어린 20대의 기사부터, 연배가 40대쯤 되어 보이는 연륜 있는 기사들까지.
그의 시선에 닿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움찔거리며, 제발 자신을 지목하지 말아달라는 기도를 속으로 올리고 있을 때였다.
칼릭스의 시야에 굉장히 이질적으로 보이는 기사 한 명이 걸려 들어왔다.
“저 사람도 이플리트 가문의 기사입니까?”
그가 칼릭스의 눈길을 끌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우람한 떡대들 사이에서 혼자 호리호리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바깥에서 만났다면 전혀 이상하지 않았겠지만, 이플리트가의 일원들은 여성 기사도 키가 거의 180에 달할 정도이니.
살짝 마른 몸집에 키도 170에 조금 못 미쳐 보이는 남자 기사란, 오히려 역으로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누구? 아, 으음. 그러고 보니 저 녀석도 여기에 머물러 있었던가.”
이곳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한 사람을 칼릭스가 지목하자, 그의 얼굴을 살펴본 도미닉 공작이 눈살을 찌푸리며 언짢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무리 가문의 구성원이고 친인척이라 해도, 공작가의 가주인 그가 방계의 사람들의 얼굴을 일일이 다 알고 있지는 못할 터인데.
그럼에도 도미닉 공작이 그를 알아보는 기색이었기에, 칼릭스는 저 아담한(?) 기사에 대한 호기심이 조금 더 커지는 것을 느꼈다.
‘잠깐, 저 사람…… 품고 있는 오러의 느낌이 굉장히 이상한데?’
그리고 그런 칼릭스의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던 관찰은, 이윽고 어떤 특이한 발견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기감을 최대로 확장한 칼릭스가 자신에게 의문을 품게 만든 기사를 향해 정신을 집중하며,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을 샅샅이 파헤쳤다.
그렇게 사내의 몸 상태를 자세히 살펴본 칼릭스는, 이내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며 헛웃음을 흘렸다.
‘하! 저 사람, 아무래도 내가 데려가야만 하겠군. 이런 기묘한 인연이 다 있다니.’
자신이 손을 대지 않고 모른 척 지나치기엔, 그는 너무도 안타까운 상황에 놓여 있는 인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