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45화
도적떼
체계적인 시간표로 역참을 운용하며 도시와 도시 사이를 오가는 역마차는, 귀족들처럼 개인 마차를 보유하고 있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가장 대중적인 이동수단이다.
그리고 안전과 위험을 동시에 수반하는 모순적인 교통편이기도 했다.
맹수나 몬스터 혹은 강도 따위의 위협을 맞닥뜨릴 수 있는 도시 바깥에선, 도보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마차를 탑승하는 편이 더 안전한 여행을 보장해 줄 수 있다.
특히 역마차는 일반적으로 6인승 정도의 규모로 운용이 되기에, 여러 사람이 함께 움직이는 만큼 유사시 대응하기에도 좋은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안전뿐만 아니라 위험까지 함께 따라온다고 말한 것은, 규모가 큰 도적무리들의 입장에선 오히려 그래서 더 표적으로 삼기 알맞은 목표였기 때문.
두 다리로 혼자 떠돌아다니는 가난한 여행자보단 최소한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인원들이 적당히 모여 있는 역마차가, 한탕 크게 털어먹기엔 더 적합한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멈춰라!”
“킬킬! 가진 걸 다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허억!”
히히힝!
낮은 수풀 속에 몸을 낮추고 숨어 있다가 튀어나와 화살을 쏘아대는 도적 떼의 모습에, 깜짝 놀란 마부가 다급히 고삐를 당겼다.
괜히 억지로 돌파하려고 했다가 화살에 맞아 죽을까 봐, 겁을 집어먹고 반사적으로 마차를 세우고 만 것이다.
“가, 강도인가?”
“젠장! 멍청한 마부 놈…… 어떻게든 도망쳤어야 했는데!”
멈춰선 마차 안에서 창밖으로 바깥을 살핀 사람들이,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들의 미래를 상상하며 두려움에 떨었다.
무기를 들고 다가오는 도적들과 공포에 젖어 있는 마차의 이용객들.
누군가에겐 불행한 날이었고, 그 누군가가 어느 쪽인지는 명백해 보이는 상황이었다.
마차 안에 소드 마스터가 타고 있던 것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허어, 수도로 이어지는 길목에도 이딴 도적 떼가 날뛰는 건가.’
왕실 군무부와 접촉하기 위해 아르거스에서 왕국의 수도인 페트라온으로 향하던 칼릭스는, 역시 도시 바깥의 치안상태는 심각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며 혀를 찼다.
대도시와 수도를 이어주는 정비된 도로이기에 주기적으로 순찰 병력이 돌아다니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런 범죄를 완전히 예방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사실 그나마 잘 발달된 대형도시 인근이라 이 정도이지 외진 지역에 있는 소도시들은, 바깥에서 마주치는 인간의 절반 이상이 그냥 강도라고 봐도 무방했다.
‘인명피해가 발생해선 안 되니 내가 나서야겠군.’
도적 떼를 상대하기 위해 칼릭스가 막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차였다.
“아가씨. 절대 나오지 말고 가만히 안에 계셔야 합니다.”
“어, 어딜 가는 거야, 라울! 나를 지켜야지!”
“여기 가만히 있으면 더 위험해집니다. 제가 저놈들을 처리할 동안 얌전히 기다리고 계십시오.”
상하관계에 묶여 있는 것으로 보이는 소녀와 대화를 주고받던 한 남자가, 느긋하게 움직이려던 칼릭스보다 한발 앞서서 마차 문을 열고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이놈들! 죽고 싶지 않다면 썩 물러나라!”
“이건 뭐 하는 잡놈의 새끼야?”
“알게 뭐야? 저항하는 것들은 그냥 죽여 버려!”
거친 욕설과 함께 마차 앞으로 몰려든 도적들이, 흉흉한 살기를 풀풀 풍기며 남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흐음…… 익스퍼트급인가? 기사는 아닌 듯한데.’
나설 타이밍을 살짝 놓친 칼릭스가, 검을 뽑아 드는 남자의 뒷모습을 살피며 그의 실력을 가늠했다.
느껴지는 오러의 수준은 익스퍼트에 간신히 발을 들인 초급 수준.
물론 기사의 최소 조건인 익스퍼트를 달성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강자의 반열에 들었다 할 수 있기에, 아무리 본인이 마스터라고 해도 남자의 실력을 하찮게 여길 마음은 없었다.
기사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무슨 비하의 의미는 아니었다.
파지법, 걸음걸이, 검을 겨누는 자세 등에서 기사들 특유의 예식을 연습한 느낌이 전혀 없었기에 짐작했을 뿐.
귀족 출신이 아니라 해도 기사서임을 받게 되면 상류층과의 접점이 자연스레 많아지기에, 품행이 천박하단 소리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면 기사들도 기본적인 예법 정도는 다들 익히기 마련이다.
어쩌면 고루한 예법의 동작 따윈 실전이라 생략했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원래 몸에 익은 습관이란 건 감추려고 하면 그런대로 또 티가 나게 되어 있다.
‘자세에서부터 군부 특유의 딱딱함 대신 자유분방한 느낌이 드니, 아마도 용병 출신의 익스퍼트인 모양이군.’
남자의 수준을 파악한 칼릭스는, 굳이 자신이 나설 필요가 없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도적 무리의 숫자는 전부 해서 열두 명.
보아하니 집단전을 제대로 훈련받은 인력 같지는 않고, 밑바닥을 전전하는 부랑배들이 딱 한탕만 한 뒤 갈라지자고 모여든 것으로 짐작되었다.
그런 어중이떠중이들이라면 아무리 초급이라 해도, 익스퍼트 한 사람 쪽의 승산이 9할 이상이다.
아마 네다섯 명쯤 베어 넘기기만 해도, 나머지는 지레 겁에 질려 뿔뿔이 흩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봐요 당신!”
그렇게 칼릭스가 남자 쪽의 승리를 점치고 있을 때였다.
조금 앳된 여성의 목소리가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 검은 장식인가요? 제 경호원은 혼자 악적들과 싸우고 있는데 그렇게 숨어만 있다니. 부끄러운 줄 아세요!”
지금 나가서 싸우고 있는 남자가 아가씨라 불렀던 소녀였다.
역마차를 이용하는 걸 보아하니 고위귀족의 영애는 아닐 것이다.
그래도 질 좋은 의복과 깨끗한 외형 그리고 개인 호위가 붙어 있는 걸 봐서는, 그녀가 적어도 준귀족 정도는 되는 집안의 자제라는 것을 알아볼 수 있었다.
“호위분의 실력이 뛰어나니 내 도움이 필요하진 않을 것 같소만.”
졸지에 겁쟁이 취급을 받게 된 칼릭스는 황당했지만, 멋모르고 말하는 소녀에게 화를 내는 대신 점잖게 대답했다.
일반인의 입장에선 사태가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파악할 능력이 없으니, 무기를 소지하고 있음에도 나서지 않는 칼릭스가 못마땅하게 보일 수도 있긴 했다.
“당신이 제 경호원을 언제 봤다고 실력을 논하는 거죠? 물론 라울의 실력은 기사와 맞먹을 정도라고 알고 있지만…….”
칼릭스의 대답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소녀는, 이내 눈에 힘을 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아무튼 당신이 비겁한 겁쟁이가 아니라면 당장 그를 도우세요! 라울은 분명 뛰어난 검사지만, 혼자서 싸우다가 부상을 당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는 거잖아요!”
“흠. 그러지.”
남자를 돕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듯이 짐짓 인상을 쓰며 노려보는 소녀의 모습에, 칼릭스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마차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갔다.
괜한 말싸움을 하느니 그냥 나가서 한 손 보태는 편이 낫다고 여겼기 때문.
경호원이라는 남자의 승산이 압도적이지만, 소녀의 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도적 떼가 마지막 한 명까지 죽기 살기로 덤벼들 가능성이 아예 제로인 것은 아니고,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인해 남자가 조금이나마 부상을 당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의 입장에선 적이 너무 잔챙이들이라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고 여긴 것이지만, 그래도 가능하면 선량한 시민들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끝나는 것이 바람직하긴 했다.
“차압!”
“끄아악! 내 팔!”
“저 개자식!”
“고작 한 놈이잖아! 빨리 죽여!”
마차에서 내리자 라울이란 이름으로 불렸던 경호원이, 예상대로 어렵지 않게 도적들과 싸우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세 명의 도적이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나머지도 악을 지르며 대항하고는 있지만 주춤거리는 기세가 눈에 훤히 드러나 보였다.
‘포위당하지 않도록 등을 내주지 않게 잘 신경 쓰고 있군. 용병 출신이라 그런지 혼자서 다수를 상대하는 데에 익숙해 보이는데.’
군부에서 구르던 병사들도 집단전에는 능숙하겠지만, 그쪽은 대체로 아군과 호흡을 맞추며 진형을 이루어 적과 싸우는 타입이다.
기본적으로 전우를 믿고 서로 노출되는 허점을 맡겨가며 전투를 치르기 때문에, 용병들과는 스타일이 많이 다르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비하면 용병 세계는 동료조차 배신하고 칼을 꽂는 일이 비일비재하기에, 누군가 등 뒤로 다가오면 일단 적이라 간주하고 무기부터 휘두르고 보는 편.
일단 자신 외의 사람에겐 최소한 의심 정도는 품고 보는 게 용병들의 전투이기에, 일 대 다수의 싸움에서도 능숙한 대응능력을 갖추기 마련이었다.
“넌 또 뭐야!”
“죽엇!”
잠시 라울의 전투를 지켜보던 칼릭스에게로, 근처에 있던 도적 몇 놈이 핏발 선 눈알을 부라리며 달려들었다.
칼릭스는 산책이라도 나온 것처럼 여유롭게 걸음을 옮기며, 덤벼드는 도적들에게 보이지도 않는 속도의 강력한 손길을 선사해 주었다.
큰돈을 주고 새로 구입한 귀한 검을 뽑아 상대할 가치가 없는 자들이었기에, 주먹을 명치에 찔러 넣거나 손날로 목을 가격하는 정도로 가뿐하게 적들을 제압했다.
무언가 휙 하고 움직이자 픽픽 쓰러지는 동료들의 모습에, 경호원을 상대하고 있던 도적들의 주의가 칼릭스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저건 또 뭔데!?”
“쏴! 쏴버려!”
가장 후미에 서 있던 활을 든 도적 세 명이, 여유롭게 움직이고 있는 칼릭스를 조준하며 시위를 당겼다.
들고 있던 활의 품질이나 궁수로서의 실력 모두 조잡한 편이라, 아군과 뒤엉켜 싸우고 있는 라울을 노리진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표적으로 삼기 좋은 속도로 느릿하게 걸어오는 칼릭스가 나타났으니, 뒤에서 손가락만 빨고 있던 그들이 동시에 칼릭스를 노리게 된 것은 정해진 수순이나 마찬가지였다.
핑-
활줄이 튕겨지며 세 발의 화살이 칼릭스의 몸을 노리고 날아갔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그의 신체에 화살이 닿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몸과 접촉하기는 했다.
날아간 세 발의 화살 모두가 칼릭스의 손에 붙잡혔으니까.
“어억!?”
“화, 화살을 잡았어?”
입을 쩍 벌리고 스스로의 눈을 의심하는 도적들에게, 칼릭스는 손으로 잡아챈 화살들을 친절히 되돌려주었다.
그가 집어던진 화살이 날아왔을 때보다 오히려 다 빠르게 되돌아가, 도적들의 허벅지에 깊숙이 박혀 들어갔다.
“끄아악!”
“으윽!”
화살에 다리가 꿰인 도적들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져 바닥을 나뒹굴었고, 칼릭스는 그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 훈혈을 눌러 기절하도록 만들었다.
나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아 6명의 도적들이 칼릭스에게 제압당했다.
경호원 라울의 검에 쓰러진 도적도 하나가 더 늘어 총 4명.
일이 그렇게 되자 남아 있던 도적 2명은 더 이상 싸우는 것이 무의미함을 깨닫고, 서로 눈치를 살피다가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경호 대상에게서 멀리 떨어질 생각이 없던 라울은, 도주하는 도적들을 따라가지 않고 그대로 보내주었다.
하지만 칼릭스는 대낮에 시민들을 습격한 도적들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었고, 도망치는 놈들을 신법을 펼치며 쫓아가 제압했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던 두 녀석은 그리 오래 도망치지도 못하고, 칼릭스의 손에 붙잡혀 질질 끌려오게 되었다.
‘엄청난 속도…… 나보다 훨씬 윗줄의 오러 유저다. 기사인가?’
호흡을 정돈하던 라울이 다가오는 칼릭스를 감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전투 중이라 제대로 전부 보지는 못했지만 다른 도적들도 굉장히 손쉽게 쓰러뜨린 것 같던데, 여유 넘치는 분위기도 그렇고 실력이 상당한 기사일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런 그도 설마 칼릭스가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고수일 것이라고 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라울! 무사한 거지?”
싸우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아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살핀 소녀가, 도적들이 전부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마차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자신의 용맹한 경호원이 추악한 도적놈들을 물리쳤으니, 주인인 자신에겐 그를 치하해 줄 의무가 있었다.
대단한 실력자를 호위로 두었다는 감탄을, 다른 이들에게 듣고 싶은 앙큼한 생각도 조금 더해지기는 했다.
“아가씨! 나오시면 안 된다니까요!”
다만 아직 전투현장이 완전히 수습된 것은 아니었기에, 그런 소녀의 행동은 조금 성급했다고 볼 수가 있었다.
라울의 검에 허리가 베여 쓰러져 신음하고 있던 도적 하나가, 도망칠 기회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 벌떡 일어나 소녀를 향해 달려들었다.
피가 질질 새어 나오긴 하지만 누워 있는 동안 상처 부위를 옷으로 묶어 지혈하기도 했고, 아예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깊게 베인 것은 아니라 그는 무사히 인질을 잡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꺄악!?”
“가까이 오지 마! 이년이 죽는 꼴을 보고 싶나!”
“이런 빌어먹을…….”
단검을 소녀의 목에 들이대며 외치는 도적의 모습에, 황급히 다가오려던 라울이 욕설을 중얼거리며 멈춰섰다.
“마, 말! 거기 너! 말을 이쪽으로 가져와!”
“히익.”
싸움이 벌어지자 자리에서 내려 상황을 보고 있던 마부가, 본인을 지적하는 도적의 손가락질에 깜짝 놀라며 몸을 움츠렸다.
겁먹은 표정이 된 마부는 반사적으로 라울의 눈치를 살폈고, 라울은 이를 갈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망할! 저 철부지가 일을 다 망치는구만. 이래서 아무리 돈을 많이 줘도, 말 안 듣는 귀족 놈들을 돌보는 일은 맡고 싶지 않았는데!’
호위를 맡은 입장에서 경호대상의 안전은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기에, 라울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으음…… 난데없이 인질극이 되어버렸군.’
달아나던 도적들을 붙잡아와 한쪽에 집어 던진 칼릭스가, 분위기가 이상해진 현장을 마주하고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