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42화
“솟구쳐라, 옭아매는 뿌리여!”
“허락되지 않은 모든 움직임을 밀어내노니.”
“티클 포그!”
사방에서 몰려오는 웨어울프들의 공격에 휩쓸리기 직전.
마법사들이 간발의 차이로 주문을 완성하며, 그에 따른 현상들이 주변의 접근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배리어 계통의 마법에 의해 반투명한 막이 마법사들을 감싸며 보호했고, 꿈틀거리는 질긴 뿌리들이 빠른 속도로 지면에서 솟아나 웨어울프들의 발을 붙잡으며 이동을 방해했다.
그르르…… 깽!?
켈룩! 케엑!
거기에 간지럼증을 일으키는 안개가 퍼져 배리어에 달라붙으려는 웨어울프들의 콧속으로 스며들자, 녀석들은 콧물을 줄줄 흘리며 기겁하는 모습으로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잘하고 있군. 괜히 공격마법을 난사하는 것보단 저렇게 방어 위주의 마법으로 시간을 끌어주는 편이, 오히려 내가 움직이기에 편하다.’
마법사들이 당분간은 안전할 것이라 판단한 칼릭스는 걱정거리를 살짝 내려놓고, 덤벼드는 웨어울프들을 상대하는 것에 신경을 집중했다.
으르르…… 커흥!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들이 그의 몸을 난도질 하기 위해 다가왔지만, 칼릭스는 마스터의 초감각과 고절한 신법들을 활용하여 주위를 빼곡하게 둘러싼 웨어울프들의 공격을 절묘하게 흘려보냈다.
피하고 베어내며, 다시 피하고 찌른다.
입으로나 쉽게 말할 수 있는 전투방식을 직접 몸으로 실천해내며, 칼릭스는 파도가 덮치듯 연달아 밀려오는 웨어울프들을 베어냈다.
짧은 시간 동안 스무 구가 넘는 시체가 바닥에 깔리며, 휘날리는 털과 핏방울들이 지면을 그로테스크하게 장식했다.
그렇게 칼릭스가 웨어울프들의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적의 숫자를 착실히 줄여나가던 때였다.
크와앙!
거대한 울음소리와 함께 다른 놈들보다 머리 하나쯤 더 커 보이는 웨어울프가, 양팔을 벌리며 빠른 속도로 칼릭스에게 달려들었다.
‘이놈이 알파인가?’
집단을 이루는 짐승들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무리를 이끄는 우두머리가 생겨나게 된다.
알파는 무리 내에 가장 높은 서열과 계급을 가진 개체를 뜻하는 명칭으로, 우두머리답게 다른 동족들보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기 마련이다.
날쌘 동작으로 강력한 힘을 담아 공격을 가해오는 녀석을 마주하며, 칼릭스 역시 오러를 끌어올려 한순간에 폭발적인 검초를 펼쳐내는 것으로 대응했다.
벼락이 치듯이 번쩍이는 검광과 함께 칼릭스와 웨어울프의 사이에 파괴적인 선이 그어지며, 그를 덮치던 녀석의 손목과 머리가 동시에 붕 떠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렇게 덩치 큰 웨어울프를 처치한 칼릭스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검을 회수하던 순간이었다.
쉬익!
크어엉!
방금 쓰러뜨린 놈과 비슷한 체구의 웨어울프 세 마리가, 양옆과 후방에서 이빨을 드러내며 칼릭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저놈이 알파가 아니었나?’
단순히 덩치가 더 크고 힘이 센 개체가 몇 마리 더 있던 모양이었다.
신묘한 보법을 밟으며 놈들의 협공에서 벗어난 칼릭스가, 그럼 우두머리는 어디에 있는 건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던 바로 그때.
커다란 웨어울프들 뒤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왜소한 개체 하나가, 맹렬한 기세를 터뜨리며 엄청난 속도로 칼릭스를 향해 쏘아졌다.
‘이런!’
다른 놈들보다 체구가 작아 아성체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녀석이었으나, 칼릭스는 저것이 그가 찾던 웨어울프 무리의 알파라는 사실을 알아볼 수 있었다.
몸은 작지만 다른 웨어울프들보다 압도적으로 빠른 민첩함을 갖추고 있는 개체였다.
교활하게도 덩치 큰 부하들을 이용해 시야의 사각을 만들고 기척까지 최대한 숨기며 접근한 터라, 기감으로 적들을 모두 포착하고 있던 칼릭스도 놈이 특별한 힘을 갖춘 개체라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화살처럼 쏘아진 알파가 칼릭스의 코앞으로 다가와 예리한 발톱을 휘둘렀다.
워낙 신속한 속도였기에 피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한 칼릭스는, 오러를 담은 검을 휘두르며 놈의 공격을 맞받아쳤다.
콰드득! 케응!
발톱이 부러지며 앞발에 깊은 상처가 생긴 알파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성공적인 공방이었지만 칼릭스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손에 쥐고 있던 롱소드의 검신이, 자루만 남은 채 산산조각으로 깨져 버렸기 때문.
내구도가 다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름대로 조심해 가며 다루고 있었는데, 갑작스레 많은 적들을 상대하느라 결국 완전히 망가지고 말았다.
무기를 잃은 칼릭스를 향해 한손을 다쳤을 뿐 아직 몸이 멀쩡한 알파가, 몸을 비틀어 회전하며 뒷발로 칼릭스의 가슴을 걷어찼다.
짐승의 습성에 따라 행동하는 라이칸스로프지만 인간을 닮은 이족보행이 가능한 체형을 지녔기에, 맹수 과의 동물들에게선 볼 수 없는 이런 식의 공격을 가하기도 한다.
팔을 들어 발길질을 막아낸 칼릭스는 놈의 각력에 의해, 거의 날아가듯이 십여 미터를 뒤로 밀려났다.
우당탕!
날아간 칼릭스의 몸과 부딪힌 천막이 무너지며, 시끄러운 소음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카, 칼릭스 님!”
“이럴 수가! 설마 당한 건 아니겠지?”
방어와 견제 위주의 마법으로 웨어울프들의 접근을 차단하며 칼릭스를 힐끔거리던 마법사들이, 맥없이 나가떨어지는 그의 모습을 보고 부산을 떨었다.
동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지만, 사실 칼릭스는 겉으로 보인 것처럼 치명적인 일격을 허용한 상황은 아니었다.
‘하필 검이 이때 망가지다니. 운이 이리도 없어서야.’
상체를 세운 칼릭스가 손잡이만 남은 검을 툭 던지고, 태연스러운 기색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팔뚝이 시큰거리긴 했지만 심한 통증은 없었다.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해서 일부러 뒤로 몸을 던졌기에 이리 멀리까지 날아왔을 뿐.
딱히 부상이라고 부를 만한 데미지를 입지는 않았다.
‘무기를 잃었다는 게 문제로군. 맨손으로 싸우는 건 내키지 않는데…….’
기억 속 무인들 중에는 권법에 통달한 자도 여럿 있었기에, 무기가 없다고 해서 칼릭스의 전투력이 급감하지는 않는다.
다만 권각술이란 것은 아무래도 인간이 아닌 몬스터에게는 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고, 맨손으로 무기를 들었을 때만큼의 타격을 입히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내력의 소모를 늘려야만 한다.
오러량이 부족한 칼릭스로서는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상황.
‘……음?’
그래도 어쨌거나 싸움을 피할 수는 없었기에 다시 전투에 돌입하려던 칼릭스는, 발밑을 굴러다니던 어떤 물체를 발견하고는 걸음을 멈추었다.
정리해 두었던 오우거의 부산물이 천막을 부수고 들어온 칼릭스와 부딪치며, 바닥에 쏟아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것.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는 듯하던 칼릭스가, 이내 허리를 숙여 눈에 보인 그것을 집어 들었다.
누르스름한 빛깔의 굵고 기름한 막대기.
어느 부위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마법사들이 해체한 오우거의 뼈였다.
검을 들었을 때와 무게가 비슷하고 길이도 적당했으며, 의외로 손에 착 감기는 게 그립감도 나쁘지 않았다.
무구로 활용할 수 있는 오우거의 뼈인 만큼, 강도 역시 금속제 무기에 비해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충분히 단단했다.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야만인 놈들의 흉내를 내게 생겼군. 품위가 없어 보이겠지만 어쩔 수 없나.’
짐승이나 몬스터의 가죽과 뼈를 이용한 장비를 주로 다루는 대표적인 족속들이, 바로 척박한 북방의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야만인 부족의 전사들이다.
알펜시아 왕국군에 몸담았던 기사의 입장에서는 주적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자들.
그렇지만 거부감이 들어도 지금은 이것저것 가릴 처지가 아니었기에, 칼릭스는 손에 쥔 뼈몽둥이에 오러를 불어넣으며 호흡의 방식에 변동을 주었다.
이걸 좋다고 해야 할지 어떨지는 조금 미묘하지만, 마침 이런 상황에 써먹기 적합한 무공의 지식이 칼릭스의 머릿속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운용하던 내공심법의 종류가 다른 것으로 대체되며, 기혈을 통해 오가던 오러의 흐름이 달라진다.
‘이런 몽둥이를 쓰려면…… 생각할 것도 없이 그 무공이 가장 어울리겠지.’
칼릭스의 체내 오러가 백결연화신공이라는 이름의 심법에 따라 새롭게 움직였다.
개방이라는 이름의 세력이 있다.
무림을 대표하는 가장 유명한 세력인 구파일방이, 바로 이 개방이라는 방파로 인해 굳어진 명칭이기도 하다.
정파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열 개의 세력을 굳이 십파가 아닌 구파와 일방으로 분류하는 것은, 이 개방이란 곳이 여느 다른 문파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체제로 돌아가는 독특한 세력이었기 때문.
무림인들의 기억을 가진 칼릭스조차도 잘 이해가 되진 않지만, 개방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인 거지들이 모여 만들어낸 방파다.
소속된 사람의 머릿수로만 따지면, 무림에서 가장 거대한 세력이라고 할 수 있는 곳.
백결연화신공은 이 개방의 방주들에게만 비밀스럽게 전해지는 내공심법의 이름이었다.
‘도대체 왜 그만한 능력을 가지고 거지 두목으로 지낸다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다른 거대문파의 비전 무공들이 으레 그렇듯이, 백결연화신공 역시 신공이라는 이름에 부족하지 않은 걸출한 묘리가 담긴 내공심법이다.
그리고 이 백결연화신공으로 빚어낸 내공으로 펼쳐내는 개방의 독문무공인 타구봉법은, 무림의 모든 단봉술 중에서도 가히 일절이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 무공이었다.
한낱 거지들의 집단인 개방이 무림을 대표하는 세력으로 있을 수 있게 만들어준, 총 서른여섯 개의 초식으로 이루어진 신묘한 단봉술.
크워억!
뼈몽둥이를 들고 걸어 나오는 칼릭스를 향해, 웨어울프들이 재차 몸을 던지며 합공을 시도했다.
그러나 놈들의 발톱과 이빨은 칼릭스의 몸을 스치지도 못했다.
삼십육로타구봉법.
악견난로.
길을 가로막는 사나운 개를 몽둥이로 내쫓는다는 의미의 초식.
사방으로 빠져나갈 곳이 없어 보이는 상황 속에서 휘둘러진 뼈몽둥이가, 타구봉법 특유의 오묘한 이치에 따라 적들을 밀고 당기며 공간에 빈틈을 만들어낸다.
인력과 척력을 자유자재로 발생시켜 상대의 자세를 무너뜨리고 강제로 허점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이 백결연화신공과 타구봉법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묘미이다.
타구봉법의 강압적인 투로에 휘말려 비틀거리는 웨어울프의 머리통을, 압축된 오러가 담긴 뼈몽둥이가 박살 내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빡!
깨갱!
물어뜯는 개의 머리를 후려쳐 꾸짖는다는 초식인, 당두봉갈이다.
이어서 봉타쌍견의 초식으로 양옆에서 덮쳐오는 웨어울프의 두 마리 대가리를 연달아 후려쳐 으스러뜨린 칼릭스가, 머리 위쪽에서 덮쳐오는 웨어울프를 향해 뼈몽둥이를 쭉 내밀어 뻗었다.
켕!
오러로 충만한 뼈몽둥이가 주둥이를 파고들며, 놈의 머리통을 헤집어 곤죽으로 만들어 버렸다.
‘으음, 뭔가…… 이상할 정도로 손에 잘 맞는 느낌이군.’
순식간에 주변의 웨어울프들을 제압한 칼릭스는, 야릇한 손맛에 뭐라 형언하기 어려운 감정을 느끼며 손에 든 뼈몽둥이를 바라보았다.
타구봉법이 개를 때려잡는 봉법이란 이름을 지니긴 했지만, 정말로 이런 무공의 절초들이 고작 개나 잡자고 만들어졌을 리는 없다.
개라는 단어를 넣은 초식명도 비유하는 의미를 지녔다뿐이지, 실제로는 어디까지나 사람을 상대하기 위한 투로를 지닌 초식들.
한데 이 타구봉법으로 진짜 개를 닮은 몬스터를 수월하게 때려잡고 있으니.
이걸 이름값을 한다고 해야 맞는 건지 어떨지, 스스로가 생각해도 참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흘러나왔다.
‘오우거의…… 요골? 아니, 척골의 일부인가? 아무튼 팔 쪽의 뼈 같은데…… 굴러다니던 뼈다귀가 마침 타구봉법을 펼치기에 딱 적당한 사이즈라니, 어이가 없기는 하군.’
황당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칼릭스는, 이내 기감에 감지되는 알파 웨어울프의 기척을 쫓아 몸을 돌렸다.
그르르르…….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고 있지만, 놈의 눈동자엔 당황한 기색이 가득 엿보였다.
가장 위협적으로 날뛰던 인간의 무기를 부수고 크게 한 방 먹이기까지 해, 완벽하게 전투의 승기를 잡았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뼈다귀를 들고 돌아와 동족들을 학살하고 있으니, 우두머리의 입장에선 매우 황당할 만도 했다.
그래도 무리를 이끄는 알파답게 놈은 금방 평정심을 되찾았고, 긴 울음소리를 터뜨리며 칼릭스를 쓰러뜨리기 위해 부하들과 함께 달려들었다.
덩치 큰 부하들의 틈에 섞인 알파가 다시 한번 칼릭스의 사각을 노려 기습을 가하려 했다.
하지만 같은 수에 두 번 당할 만큼 칼릭스가 어수룩한 인물은 아니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는다.’
후우욱-
긴 들숨과 함께 오러를 한껏 끌어올린 칼릭스가 몰려오는 웨어울프들을, 마주하며 현 상황에서 어울리는 가장 강력한 절초를 펼쳐냈다.
삼십육로타구봉법.
최후초식, 천하무구.
세상의 모든 개를 때려잡아 무(無)의 상태로 만든다는 의미를 지닌, 타구봉법 최강의 절초가 웨어울프들을 향해 모습을 드러냈다.
파바바바바박-!
칼릭스를 중심으로 펼쳐진 폭풍과도 같은 몽둥이찜질이, 웨어울프들의 전신을 두들기며 맹렬한 타격음을 만들어냈다.
타구봉법의 초식들 중 위력은 단연코 최고였지만, 대량의 오러가 필요하기에 조금 전까지도 사용을 망설였던 최후초식.
그렇지만 알파를 확실하게 제거한다면 남은 웨어울프들을 훨씬 수월하게 상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기에.
칼릭스는 아낌없이 전신으로 오러를 퍼뜨리며, 적들에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선사했다.
소용돌이처럼 회전하며 주변의 적들을 빨아들이는 타구봉법 최후초식의 흐름에.
웨어울프들은 뒤로 몸을 빼지도 못하고 강력한 인력에 휘말려, 애처롭게 발버둥 치면서 뼈몽둥이의 타격에 몸을 내주어야 했다.
세차게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느껴지는 매타작이 끝난 후.
칼릭스의 근처 반경 10여 미터 이내로, 더 이상 서 있는 웨어울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온몸의 뼈가 으깨져 기형적으로 몸이 뒤틀린 시체들만이, 피비린내를 풍기며 그의 주변으로 잔뜩 널브러져 있을 뿐.
천하무구라는 이름에 진정으로 어울리는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