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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41화 (41/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41화

당초의 목적인 오우거를 제거했으니, 이제는 느긋하게 인근 구역을 조사하기만 하면 되었다.

다만 조사 일정은 오늘이 아닌 내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당장 처리할 일들도 적지 않았기 때문.

“이렇게 깔끔한 사체라면 박제로 만들어도 꽤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겠는데…….”

“그렇긴 하지만 운반은 어떻게 하려고? 뭐 자네가 들고 나를 건가?”

“하긴. 괜히 인부들을 동원했다가 여기 불그람 자생지가 노출되는 것도 곤란하겠구먼.”

“여기 뒤통수에 상처 난 곳부터 가죽을 벗기자고.”

오우거 사체는 연구용으로 쓸 만한 부분이 많진 않지만, 안구와 몇몇 장기들은 마법재료로 사용할 수 있어 제법 가치가 있는 부위다.

거기에 가죽과 뼈 그리고 힘줄은 무구를 만드는 데에 활용할 수 있어, 그냥 버려두기엔 아까운 품목들이기도 했다.

오우거의 가죽을 벗기고 쓸모 있는 부위들을 분리 및 보관하는 것은, 마법사가 세 명이 달라붙어도 제법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거기에 밤을 보낼 숙영지도 만들어야 하고, 오우거 때문에 그동안 접근하지 못했던 마법재료의 채집터가 어떤 상태인지도 체크해야 했으니.

두 번째 목적인 미확인 구역들의 탐색은 다음 날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내가 더 도울 건 없겠소?”

당장에 할 일이 없던 칼릭스가 다가와 묻자,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던 마법사들이 벌떡 일어나서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아, 아닙니다. 당연히 저희가 해야 할 일들이라.”

“어차피 마법을 써서 해체와 보존을 하는지라…… 칼릭스 님은 편히 쉬고 계시면 됩니다.”

“가만히 있자니 지루해서 그렇소만. 오우거를 이렇게 관찰하는 건 처음이라, 사체를 직접 다뤄보고 싶기도 하고.”

“아, 그러시면…… 여기부터 여기까지만 절개를 좀 부탁드려도 될지…… 그럼 작업이 한층 수월해질 것 같습니다!”

마법사들은 군기가 바짝 든 신병 같은 모습으로, 칼릭스의 눈치를 살피며 쩔쩔매는 태도를 보였다.

병사들이 작업하는데 장군님이 도와주겠다고 나선 상황처럼, 굉장히 경직되고 서먹한 분위기다.

칼릭스가 보여준 전투의 광경이 워낙 충격적으로 뇌리에 박혔던지라, 마법사들이 그가 곁에 다가오면 심리적으로 위축되어버리는 탓이었다.

‘오우거를 단칼에…… 말로만 듣던 마스터가 저리 엄청난 존재였을 줄이야.’

‘만약 저런 기사를 마법으로 상대해야 한다면…… 후우, 주문을 외울 새도 없이 순식간에 전부 목이 날아가겠군.’

존경심과 은근한 두려움이 뒤섞인 마법사들의 그런 심정을 읽어낸 칼릭스는, 쓴웃음을 지으며 오우거의 사체를 정리하는 것을 잠깐 도와주다가 뒤로 빠져나왔다.

‘괜히 껴서 어색하게 있느니, 그냥 가만히 따로 있는 게 서로 편하겠군.’

큼지막한 고목 하나에 등을 기대고 앉은 칼릭스는 일행들이 작업하는 모습을 잠깐 구경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스륵.

날이 잘 선 롱소드가 낡은 가죽 검집을 빠져나와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역시…… 뭔가 거슬린다 싶었더니, 검이 꽤 많이 상했는걸.’

칼날을 눈으로 살피다가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려본 칼릭스는, 아쉬운 마음으로 혀를 차며 검을 되돌려 넣었다.

자신의 검이 겉보기엔 크게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내구도가 다해 조만간 깨져버릴 것이란 사실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망가질 때도 되긴 했지. 오러 블레이드를 오래 버틸 만큼 명품도 아니었고.’

오러의 파괴력은 그 힘을 품고 있는 검에도 일정치의 부하를 줄 수밖에 없다.

품질이 떨어지는 검은 마스터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지 못하기에, 오러 블레이드를 몇 번만 발현하면 금방 내구도가 다해 부러지기 마련.

게다가 자신의 검은 왕국군 기사로 활동하던 현역시절부터 사용했던 오래된 중고품이니, 마스터가 된 뒤로 얼마 쓰지 않았다지만 수명이 다하는 것도 당연하긴 했다.

‘의뢰를 마치면 검부터 새로 구해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오랜 추억이 담긴 검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저, 칼릭스 님.”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와, 칼릭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일행들을 향해 다가갔다.

“무슨 일이오?”

“그게, 다름이 아니라. 대강의 정리가 끝나긴 했는데…….”

머뭇거리며 한쪽 방향을 힐끔거리는 마법사의 태도에, 칼릭스는 그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렸다.

커다란 자루에 오우거의 뼈와 힘줄을 담고, 그 위에 가죽을 말아 묶어둔 짐이 눈에 들어온다.

이미 마법사들에게 필요한 부산물은 각자 알아서 챙겨 들었다.

다만 버리기는 아까우면서 부피와 무게가 상당한 나머지 부위들은, 자기들의 힘으로 옮길 수가 없어 칼릭스를 부른 것.

거의 사람만 한 크기에 무게도 그 정도쯤 되는 초대형 배낭이 만들어졌으니, 근력이 일반인만도 못한 마법사들이 이걸 매고 돌아다니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혼자가 아니라 짐을 나눠서 든다고 해도, 아마 삼십 분 정도만 돌아다니면 지쳐서 뻗어 버릴 게 분명 했다.

‘이건 기사가 아니라면 들지도 못할 거야.’

‘우리 힘으로는 어림도 없는 짓이지.’

마법사들의 체력이 그만큼 저질이란 것은, 당연히 본인들이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차마 칼릭스에게 짐꾼 노릇을 해 달라 선뜻 말하기도 어려워, 주저하면서 서로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

“역시 덩치가 큰 놈이라 나오는 부산물도 상당하군. 이건 내가 들겠소.”

“소, 송구합니다. 칼릭스 님께 이런 수고를…….”

“불필요한 살덩어리들은 다 발라냈는데도 양이 만만치가 않아서…….”

그런 분위기를 알아챈 칼릭스가 자청하여 배낭을 집어 들었고, 마법사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칼릭스의 앞에서 연신 허리를 굽실거렸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군장을 묵직하게 한가득 채우고 산을 타곤 했었는데.’

오우거의 부산물을 수거한 일행들은 이후 야영하기 적당한 자리를 찾아 숙영지를 꾸렸다.

다음으로 마법사들이 불그람이란 이름의 식물 자생지를 살펴보고 와야 한다기에, 천막 안에 짐을 내려두고 쉬고 있던 칼릭스는 호위를 위해 그들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오우거를 제거했으니 마법사들끼리 움직이게 둬도 상관없겠지만, 그래도 맡은 일을 소홀히 할 마음은 없었다.

‘또 다른 위험요소가 나타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으니.’

일행의 안전을 위해 칼릭스는 경계심을 풀지 않고 호위에 전념했고, 다행이랄까 오우거 같은 위험한 몬스터가 또다시 나타나는 일은 없었다.

숙영지로 복귀한 마법사들이 주변으로 탐지와 알람마법을 걸어두는 것을 끝으로, 일행들의 이날 일정은 마무리가 되었다.

“조사 작업은 내일 일찍 일어나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다면 아마 이틀 안에 탐색을 끝내고 복귀할 수 있을 겁니다.”

“그 특별한 일이란 어떤 경우를 말함이오?”

“몬스터의 잦은 출몰로 조사가 지연될 가능성도 있고, 무언가 가치 있는 발견을 하게 된다면 작업시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는지라…….”

“그, 저희가 최대한 일정이 늘어지지 않도록, 아무쪼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하하!”

“음. 딱히 서두르라고 꺼낸 말은 아니니 신경 쓰지 마시오. 그럼 내일 봅시다.”

“옙! 편히 쉬십시오!”

괜히 이야기를 오래 나누면 마법사들의 주눅 든 태도가 더 심해질 것 같아, 칼릭스는 그냥 조용히 자신에게 할당된 천막 안으로 들어와 몸을 뉘었다.

마법 쪽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그래도 쉬는 동안 이런저런 주제로 잡담 정도는 해볼 생각이었는데, 다들 자신을 너무 어려워하는 모습이라 그냥 일찍 잠자리에나 들기로 했다.

마법 덕분에 딱히 불침번도 필요하지 않아 중간에 깰 필요가 없기에, 칼릭스는 최소한의 경계심만 유지한 채 가만히 눈을 붙였다.

시간이 흘러 해가 저물며 어느 순간 숲속에도 어두운 밤이 찾아왔다.

규칙적으로 울려 퍼지는 풀벌레들의 노랫소리.

거기에 멀리서 간혹 들려오는 야행성 짐승들의 울음소리와, 푸드덕거리며 다급하게 홰를 치는 소리가 가끔씩 뒤섞이곤 했다.

마냥 고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공간 속에서, 칼릭스가 눈을 번쩍 뜨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밤의 숲에서 들려오는 소음이 거슬렸기 때문은 아니었다.

‘……뭔가 있다.’

검을 챙긴 칼릭스는 천막을 열고 바깥으로 나섰다.

잠에 든 상태에서도 마스터의 예민한 감각은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희미한 살기를 놓치지 않았고, 보이지는 않지만 이곳을 노리는 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수 있었다.

사방에서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가 어느덧 사라지며 주위로 적막함이 내려앉았다.

어둠 속을 지그시 노려보던 칼릭스가 검을 뽑아드는 것과 동시에.

삐이이익-

숙영지 주변에 설치되어 있던 경계마법이 작동하며, 피리를 부는 듯한 높은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어억! 무, 뭐야?”

“끄응, 잘 자는데 알람 마법이…… 산짐승인가?”

“엇? 누구…… 칼릭스 님?”

“적이 있소! 정신들 차리시오!”

졸린 눈을 한 마법사들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천막 밖으로 나오다가, 굳은 얼굴로 경고를 발하는 칼릭스를 발견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 무슨…….”

“저기에 있다고요? 뭐가 말입니까?”

전투마법사들이 아닌데다가 잠에서 덜 깬 상태라서 그런지, 다들 반응이 답답할 정도로 느릿했다.

칼릭스가 재차 뭐라고 말을 하려는 순간.

커다란 무언가 마법사들의 머리 위를 덮쳤다.

서걱! 털썩.

“허엇!?”

“뭐, 뭐지!?”

그러나 칼릭스가 정체불명의 습격자보다 한발 빠르게 움직여 놈을 베어낸 덕분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으윽, 라이트!”

핏물을 뒤집어쓴 마법사들 중 한 사람이 광원마법을 펼쳐 주변을 밝게 비추자, 허리가 반으로 갈라져 두 동강이 난 거대한 짐승이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늑대? 아니야, 라이칸스로프로군!’

습격자의 생김새를 살펴본 칼릭스가 곧바로 놈의 정체를 파악해 냈다.

온 몸이 털로 뒤덮인 짐승의 모습이라 순간 착각했지만, 체형이 사람과 비슷한 것을 보아하니 반인반수의 몬스터인 라이칸스로프가 분명했다.

“라이칸스로프!?”

“그중에서도 웨어울프종이야!”

“늑대의 외형이라면 무리생활을 하는 습성도 가졌을 테니…….”

“주변에 적이 더 있겠군!”

늦게나마 정신을 차린 마법사들이, 얼굴을 긴장감으로 물들이며 지팡이를 들어 주변을 겨누었다.

주문을 외우는 모습과 함께 마력의 유동이 느껴지는 걸 보아하니, 무언가 마법을 준비하려는 것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이들이 스스로의 몸을 지켜내기만 하면, 내가 마음 놓고 싸울 수 있긴 한데.’

그렇게 생각하며 기감을 멀리까지 퍼트려 주변을 탐지한 칼릭스는, 감각에 걸려드는 스산한 살기의 숫자를 헤아리다가 안색을 굳혔다.

마법사들이 말하기 전부터 적이 하나가 아니란 사실쯤은 파악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감지되는 숫자가 많아 전투가 쉽게 끝나길 기대할 순 없을 듯했다.

‘삼십, 아니…… 사십? 으음, 계속 불어나는군.’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 여겨 깊게 생각하지 않았었는데, 오우거가 어째서 먹이가 부족한 이런 지형에 출몰하게 된 것인지 이제는 알 것 같았다.

필시 숲 안쪽의 영역권을 두고 저 라이칸스로프 무리와 다투다가, 결국 세력다툼에서 밀려나 이런 외진 곳으로 도망쳐오게 된 것일 터.

어떤 짐승의 형상을 하느냐에 따라 전투능력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라이칸스로프들은 중형 몬스터 중에서 위험도로만 따지면 충분히 상위권에 들어가는 것들이다.

중형급에선 패왕으로 군림하는 오우거라면, 웨어울프 1~20마리까진 충분히 찢어발길 수 있겠지만.

저렇게 큰 무리를 이룬 녀석들에게는 오우거조차도 터전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오우거의 피 냄새를 맡고 여기까지 몰려온 건가. 곤란한데…… 수가 저렇게 많으면 마법사들을 지키며 싸우기가 쉽지 않겠어.’

영약 덕분에 오러가 많이 늘긴 했지만 아직 체내에 들어찬 기운을 완전히 흡수한 것이 아니기에, 칼릭스의 오러량은 여전히 일반적인 마스터보다는 부족한 상태다.

전투가 길어지면 제 실력을 발휘하기가 어렵다는 의미.

오우거처럼 소수의 강력한 몬스터 개체라면 오러 블레이드의 파괴력에 무공의 힘을 더해 단기간 내에 처리하면 그만이지만, 이렇게 어중간하게 위협적이면서 수가 많은 놈들은 아무래도 상대하기가 껄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가 지켜줘야 할 인원들까지 달고 있어서, 몸을 피한다는 선택지도 막혀 버렸으니.

‘어쩔 수 없다. 최대한 오러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장기전에 대비하는 수밖에.’

생각은 길었지만 전투에 돌입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우오오올-!

늑대의 하울링과 흡사한 소리를 지르는 웨어울프들의 포효와 함께.

숙영지를 에워싼 근 세 자릿수에 달하는 샛노란 안광들이, 일행들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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