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35화 (35/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35화

암습

본디 내공심법이란 같은 문파 내의 호환이 되는 동일한 성질을 지닌 무공이 아니고서야, 새로운 심법을 익히려면 기존의 내공을 포기해야 앞서 말한 부작용을 피할 수 있는 법이다.

단 예외가 되는 특수한 심법들이 존재하긴 하는데, 가장 대표적으로는 무당파의 전설적인 심법인 양의신공이 이에 해당했다.

부작용이 없이 성질이 전혀 다른 기공조차도 동시에 다룰 수 있게 해준다는 무공.

굳이 이런 이야기를 거론하는 이유는 그런 양의신공처럼 선도무극심공 또한, 여러 종류의 심법들을 익혀도 이상이 발생하지 않게 만드는 효력을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설적인 무공이라는 양의신공조차도 최대로 익힐 수 있는 심법의 숫자가 한정되어 있는데, 선도무극심공은 아예 그런 제한조차도 없는 무공이었다.

‘선도무극심공을 메인으로 두고 기억 속에 있는 다른 뛰어난 신공들을 서브로 그때그때 바꿔가며, 필요에 따라 전부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지.’

내력이 터무니없이 느리게 쌓인다는 단점이 크긴 하지만, 그 또한 칼릭스에겐 큰 문제가 되질 않는다.

그가 알고 있는 무공들은 전부 무인들의 기억을 통해, 이미 한 차례 높은 성취를 이뤘던 경험을 공유하는 것들이니.

전혀 모르는 무공을 처음부터 새로 익히는 것과, 이미 완숙한 상태에서 다시 돌아보는 것은 천지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선도무극심공이 과할 정도로 느릿느릿한 심법이긴 해도, 높은 성취도를 지닌 다른 신공들과 함께 운용한다면 약점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었다.

‘신공으로 분류될 정도의 뛰어난 심법들. 거기에 그에 어울리는 여러 종류의 상승무학들을 전부 다룰 수 있는 이가 아니라면, 굳이 그런 복잡한 길을 가야 할 이유가 전혀 없겠지만.’

그런 전제조건들을 만족시키는 이가 원래라면 있을 리 없어야 정상이지만, 재미있게도 자신은 그 불가능한 조건에 부합되는 인물이다.

무림이었다면 그런 식으로 여러 무공을 익혔다간 거대세력들의 공적으로 몰릴 수도 있었겠으나, 여기는 그곳과는 아예 완전히 다른 세상이기에 걱정할 문제가 전혀 없었다.

그렇기에 칼릭스는 각 대형문파의 장문제자에게나 비밀리에 전수되는 심법들을 마음대로 골라서 맛보며, 자신에게 어울리는 주력으로 쓸 만한 무공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느긋하게 탐색했다.

‘오러를 빠르게 축적하려면 이쪽 심법이…… 음, 힘을 아껴가며 싸워야 하는 경우엔 이것도 꽤 효율적이겠군.’

북명신공, 혼원일기공, 대정신공, 태천강기, 대승반야선공 등등.

무림이었다면 외부에 풀리는 순간 엄청난 소란이 일어날 만한 거대문파들의 비전을, 칼릭스는 길거리 노점에서 액세서리를 쇼핑하듯이 자신의 몸에 대어보며 가벼운 마음으로 비교를 이어갔다.

‘아차, 슬슬 아카데미에 들어가 봐야겠는데.’

여유를 부리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이제는 그만둘 때가 왔다지만 그래도 끝맺음을 어설프게 하는 것은 본인의 성격에 맞지 않기에, 칼릭스는 학부에 들러 퇴직 의사를 밝히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좋은 아침일세, 칼릭스 공. 안색을 보아하니 잘 쉬었나 보구먼?”

“예. 덕분에 편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자네가 부탁한 건에 대해선 내 금방 알아보고 연락을 주도록 하겠네. 아, 그렇지. 따로 거처는 있는 겐가?”

“일단 아카데미에 가서 인계할 사항도 있고 이런저런 뒷정리는 하고 나와야 하니, 아마 며칠쯤은 더 그쪽에 머무르게 될 겁니다.”

“그런가? 하긴 그만둔다고 해서 대충 내팽개치고 떠나는 건 그리 좋은 행동은 아니지. 사람 일이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고, 결국 평소에 뿌린 만큼 거두고 사는 거니 말일세.”

“그렇지요.”

“흠. 자네 사정이야 이제 나도 뻔히 알고 있으니. 괜히 싸구려 여관이나 기웃거리지 말고, 볼일을 다 처리하고 나면 다시 여기로 오시게나.”

“그건…… 으음, 그럼 염치없지만 배려에 따르겠습니다.”

“그래. 가서 일 보시게.”

교관직을 관두고 나면 그의 말대로 여관에 방을 잡는 것 말고는 어디 갈 데도 없는 처지다.

어차피 영약 건으로 인맥에다가 자금까지 빌려야 할 판인데 이제 와서 점잔을 빼는 것도 우스운 일이기에, 칼릭스는 알론드의 말을 거절하지 않고 호의를 받아들였다.

알론드와 인사 및 가벼운 잡담을 나누고 저택을 나선 칼릭스는, 마차를 대기시켜 놨다는 집사의 안내에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올 때처럼 다시 경공을 펼쳐 달려가면 되는 일이기에, 굳이 마차를 이용할 필요도 없었지만.

이쪽에선 손님을 그렇게 돌려보내는 것도 체면이 깎이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기에, 그냥 별말 않고 마차에 올라 좌석에 앉았다.

“편히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음. 부탁하지.”

마부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자니, 이내 말들이 천천히 움직이며 마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그렇게 칼릭스가 마차에 몸을 싣고, 작은 창으로 보이는 바깥의 광경에 가만히 시선을 두고 있던 때였다.

‘……흐음?’

등줄기를 할퀴는 듯한 어떤 이질적인 느낌이 칼릭스의 감각을 자극해왔다.

이게 뭐지 싶었던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기감을 확장하는 순간.

마차의 지붕이 산산이 부서지며, 칼릭스의 머리 위로 날카로운 칼날이 내리꽂혔다.

* * *

악명 높은 범죄자들의 소굴인 원 아이드 캣에는, 조직의 활동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처리하는 속칭 ‘청소부’들이 다수 존재한다.

대륙 곳곳에 지부를 두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사회에 스며들어 있는 이 청소부들은, 조직에서 위험도를 판별하여 등급을 매기는 방해요소들의 처리 목록이 갱신될 때면 이들을 제거하는 임무에 은밀히 나서곤 했다.

알론드의 저택에서 아카데미로 향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지나가야만 하는 어느 좁은 길목에서.

건물의 지붕 위에 올라 다가오는 마차를 주시하고 있던 한 명의 남성 또한, 바로 그런 청소부들 중 하나였다.

‘지긋지긋한 놈. 고작 3급 대상 따위에게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잖아.’

이름을 사용할 일 없이 그저 27호라는 코드네임으로만 불리는 그는, 칼릭스가 타고 있는 마차를 보며 손에 들고 질겅질겅 씹고 있던 육포 쪼가리를 바닥으로 집어 던졌다.

3급 처리 대상은 조직에 해악은 끼쳤지만 딱히 위험도가 높진 않은 이들에게나 부여되는 등급.

지부와 가까운 곳에 타깃이 있다면 나서서 제거하고 아니면 그냥 다른 임무와 동선이 겹칠 때나 겸사겸사 처리해도 되는, 조직에서도 그에 관한 문제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진 않는 인물이란 소리다.

그런 대상을 처리하기 위해 이미 몇 달 전부터 아카데미 주변을 지나다닐 때마다 기회를 살폈던 27호는, 별거 아닌 놈 하나 때문에 예정보다 허비된 시간이 많아졌다는 사실에 짜증이 치미는 중이었다.

‘다른 교관 녀석들은 틈만 나면 바깥을 쏘다니더니만, 이건 대체 뭐 하는 놈이기에 안에서 기어 나올 생각을 안 했던 거야?’

아무리 기사 출신이라 해도 익스퍼트급 검사 하나 제거하는 것쯤은 그에게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그런 인물들이 수십 명씩 돌아다니는 아카데미 내부로 잠입해 암살을 시도하는 것은 또 별개의 이야기다.

고작 3급 대상 하나를 처리하자고 그렇게까지 위험부담을 감수할 생각은 없었기에, 어차피 달에 몇 번쯤은 시내로 나오겠지 싶어 틈틈이 기회만 엿보고 있었는데.

예상과는 다르게 칼릭스가 도무지 교내를 벗어날 낌새도 보이지 않아, 적지 않은 시간적인 손해를 봐야만 했다.

그러다가 오늘에 와서야 간신히 그를 처리할 기회가 생겼다.

3급 대상 따위를 24시간 계속 잠복해서 감시하지는 않기에, 칼릭스의 종적이 갑작스레 사라진 것을 알고 꽤나 당황하긴 했었지만.

어찌어찌 주변을 추적한 끝에, 그가 1군 학부장인 알론드의 저택에 머무르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물론 그가 아무리 뛰어난 암살자라 해도 마스터의 거처에 숨어들 자신까진 없었기에, 27호는 대상이 밖으로 나오는 때를 기다리며 암습을 위한 계획과 경로를 구상했고.

결국, 마침내 기다리던 때가 찾아왔다.

‘이딴 잔챙이는 후딱 처리하고, 다음에는 1급 대상의 임무나 한번 시도해봐야겠어. 나 정도면 슬슬 윗줄로 승격신청을 할 때도 되었으니 말이야.’

타이밍에 맞춰 마차를 향해 뛰어내리며, 27호는 본인의 기습이 결코 실패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마스터급 기사가 아니라면 결코 대응하지 못할 거라 자신할 수 있을 만큼, 그가 새벽 내내 머릿속으로 그렸던 그대로의 완벽한 일격이었다.

우지끈.

지붕을 박살 내며 떨어진 27호의 칼이, 처리 대상인 칼릭스의 정수리 중앙을 정확히 노리고 파고들었다.

‘피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런 생각과는 다르게, 단단한 두개골을 꿰뚫으며 생겨야 마땅한 손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사라졌어!?’

순간 당황한 27호는 시야에서 없어진 칼릭스를 찾기 위해 눈을 부릅뜨고 고개를 들었다.

일반적인 마차보다 크고 고급스러운 마차였기에 제법 널찍하긴 했지만, 그래도 결국은 한정된 공간 안이었기에 금방 대상을 발견할 수 있었다.

“퉷!”

대체 언제 움직인 것인지 한쪽 벽면으로 몸을 붙이고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칼릭스의 모습에.

마차 바닥 깊숙이 박혀 버린 칼을 곧바로 포기한 27호는, 입으로 무언가를 뱉어내며 넓적다리 쪽으로 손을 가져갔다.

기습이 실패할 거라고 의심하진 않았었지만, 설령 문제가 발생했다 해도 빠르게 다음 수를 시도할 수 있을 만큼.

그는 철저히 준비가 되어 있는 프로페셔널한 암살자였다.

입안에서 뱉어진 작고 뾰족한 암기가 칼릭스를 향해 날아가는 것과 동시에.

가늘어서 부러지기 쉬워 보이지만 그만큼 관통력은 뛰어난 날붙이를 꺼내든 27호가, 칼릭스를 향해 몸을 던지며 신속하게 공격을 찔러 넣었다.

‘이번에야말로 피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나 그런 회심의 공격 역시도, 상대의 손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날아가던 암기는 언제 쳐낸 것인지 온데간데없이 보이지도 않았고, 송곳을 닮은 그의 무기는 손아귀째로 칼릭스에게 붙잡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이, 이럴 수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경악을 드러내던 27호는, 그 말을 끝으로 강렬한 충격과 동시에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커억! 꺽…….”

통증으로 숨이 턱 막혀오며 몸에 힘이 쭉 빠진다.

잠시 동안 숨을 헐떡이던 27호는 가까스로 시야를 회복하고 나서야, 자신이 무언가에 맞아 마차의 벽면을 뚫고 튀어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가슴께가 함몰되어 안쪽이 완전히 으스러진 27호가, 입으로 핏물을 쏟아냈다.

‘사, 삼급 대상이라며!’

27호는 그제야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긴 했다.

부서진 마차의 벽면을 통해 뛰어내린 칼릭스가 저벅저벅 걸어오는 모습을 보며, 27호는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조직 내 정보원들을 향한 원망을 말을 내뱉었다.

“쒸이잇, 파알…….”

거기까지가 그가 멀쩡히 정신을 유지하고 있었던 마지막 기억이었다.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군.”

출근길에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칼릭스는, 자신이 기절시킨 의문의 습격자를 내려다보며 검집을 툭툭 두드렸다.

누군가에게 암살 시도를 당할 만큼 원한을 산 기억은 없는데,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꼭 나를 목표로 한 게 아니라, 알론드 님에게 간접적인 위해를 가하려고 한 걸지도 모르겠는걸.’

“나, 나리. 괜찮으십니까요?”

“괜찮네.”

벌벌 떨며 다가오는 마부를 힐끔 쳐다본 칼릭스는, 이내 쓰러진 습격자에게로 다시 눈을 돌렸다.

반격 한 번에 숨이 끊어져 버린 상대를 보자니, 좀 더 힘 조절을 해서 제압한 뒤 심문을 했어야 하는 후회가 일어났다.

사실 그럴 마음으로 일부러 검이 아닌 주먹을 사용했던 것이지만, 그도 살짝 당황했던 터라 생각보다 더 힘이 들어갔던 모양이다.

‘……뭐 상관없나.’

칼릭스는 곁에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마부를 향해 입을 열었다.

“자네는 여기 있다가 병사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저택으로 돌아가 알론드 님께 방금 있었던 사실을 알려드리게.”

“예? 아…… 그, 혹시 저자가 깨어나 난동을 부리기라도 하면…….”

“이미 죽었으니 그럴 일은 없지.”

“허업! 아, 알겠습니다.”

겁먹은 표정으로 몸서리치는 마부를 뒤로하고, 칼릭스는 옷매무새를 다듬은 뒤에 길을 따라 재빨리 발길을 옮겼다.

이런 소란이 발생했으니 곧 도시의 치안대가 나타날 테고, 거기서 괜히 조사에 응한다고 번거로운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알론드 님이 알아서 해결하시겠지.’

어차피 원인 자체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유 때문일 것이라 생각되었기에, 문제 해결은 그쪽이 알아서 하도록 넘기고.

칼릭스는 자신의 본래 목적대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아카데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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