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34화
계획
자신은 분명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뿐만 아니라 무공으로 일가를 이루기에 충분한 뛰어난 무인들의 기억을 품고 있는 덕분에, 마스터의 경지에서도 거의 끝자락에 위치한 알론드를 상대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몸 안에 지닌 오러의 총량과 신체의 적응상태.
“아무래도 이전의 부상 때문에 그리도 불균형한 상태가 된 모양이구먼.”
“바로 보셨습니다.”
무인들의 깨달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상승의 경지를 이루었지만, 길었던 부상 기간 동안 오러 축적을 하지 못했던 그의 몸은 일반적인 마스터에 비하면 체내의 오러량이 너무도 미약한 수준이었던 것.
정신적인 깨달음은 한순간일 수 있지만, 육신이라는 토양은 꾸준히 지속적으로 가꾸어야만 결과가 따라오는 법이다.
‘너무 급격한 변화였으니 육체의 수준이 쫓아오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아무튼 그 때문에 전투능력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도 짧다는 문제가 생겼다.
씁쓸한 얼굴로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칼릭스를 향해, 알론드가 아쉽지만 어쩌겠냐는 투로 말을 건넸다.
“그래도 조바심 낼 필요는 없어 보이네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이지 않은가.”
“그렇기는 하지요. 그래도 가능하다면 그 시간을 최대한 단축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을 쉽네만…… 그게 어찌 가능하겠나?”
허구로 가득한 소설 속에서는 신의 축복을 받았다느니 용의 심장을 먹었다느니 하며, 평범한 오러 유저가 한순간에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는 이야기도 있지만 현실을 그렇지 않다.
물론 마나결집을 유도하는 마법진이라든가, 오러 축적의 효율을 높이는 비약 같은, 돈을 쏟아붓는다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안 한 것보다는 도움이 되는 방법들이 있긴 하다.
그래도 어쨌거나 체내에 충분한 양의 오러를 쌓기 위해선, 그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열심히 오러연공법을 수련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가능합니다. 알론드 님이 도움을 조금 주신다면 말이지요.”
“으잉?”
하지만 칼릭스는 고개를 저으며, 일반론을 들먹이는 알론드의 말에 반박했다.
본인의 경지와 육신의 괴리를 해결할 수 있는 특별한 방안이, 그의 머릿속에는 담겨져 있었다.
“왕국 전반에 여러 인맥을 갖추신 알론드 님이시라면, 마탑의 마도학파들이나 연금술협회 쪽과도 연락이 가능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치들과 사적으로 깊게 관여한 적은 없었네만, 뭐 만나려고 한다면야 못할 거야 없지.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왜 꺼내나?”
“그쪽 사람들과 저를 연결시켜 주시겠습니까? 기왕이면 단체 내의 영향력이 큰 인물이면 더 좋겠습니다만.”
“자네 설마…… 마법이나 뭐 그런 것들의 도움을 받아 오러를 늘릴 생각을 하는 겐가? 그만두게나. 그런 시도들이 여태까지 제대로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텐데.”
멋모르고 허튼짓에 시간을 낭비하려 드는 철부지를 타이르듯이, 알론드는 걱정스러운 기색을 드러내며 칼릭스를 만류했다.
이미 여러 국가에서 마스터, 하다못해 익스퍼트급이라도 빠르게 육성해 보겠다는 프로젝트를 수차례 시도한 적이 있었으나.
괜히 재능 있는 젊은이들만 각종 부작용에 시달리거나 폐인이 되는 등, 억울하게 잔뜩 희생되기만 하고 제대로 성과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알려져 있었다.
“같은 자연의 마나를 흡수해 축적한다고 해도, 마법사들의 마력과 기사들의 오러는 성질이 다르다는 걸 자네도 잘 알지 않나? 오러의 증가에 도움이 된다는 연금술사들의 비약 역시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 뿐, 남용하게 되면 오히려 부작용이 더 커지는 법이고…….”
“어떤 걱정을 하시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염려하지 마시고 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허어, 그 참…… 끄응, 알겠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네라면…… 내가 괜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겠지.”
아리송한 표정으로 갸우뚱하면서도 결국, 알론드는 칼릭스의 부탁에 따라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원하는 대상을 연결해 주기로 약속했다.
“그럼 그에 대해서는 내일 바로 알아볼 테니, 시간도 늦었는데 슬슬 씻고 잠자리에 들도록 하세나. 사람을 시켜 물을 데우라고 해야겠구먼.”
“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으음? 설마 아카데미로 돌아가려는 겐가? 빈방도 많은데 그냥 자고 가시게.”
“하하, 그건 또 너무 실례가 아닐지…….”
“에잉! 무슨 그런 소리를 하고 그러나? 괜히 밤이슬 맞으며 돌아다니지 말고, 편히 쉰 다음에 들어가게나.”
“음……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알론드와의 연이은 대련으로 마침 피곤하기도 한 상태였기에, 칼릭스는 두 번은 거절하지 않고 그의 제안을 따르기로 했다.
지금 돌아간다고 해봐야 2군 학부의 좁고 냄새나는 교관 숙소에서 잠을 청해야 하는데, 그럴 바에야 알론드의 대저택에서 눈을 붙였다 가는 편이 훨씬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시종의 안내에 따라 손님방으로 자리를 옮긴 칼릭스는, 이어서 미지근하니 적당하게 데운 물을 채운 욕조에 몸을 담그고 눈을 감았다.
‘따스한 물에 들어와 누우니 피로가 풀리는 느낌이군. 자고 일어나면 아카데미로 돌아가 퇴직 의사를 밝히고, 알론드 님의 소개를 받아 필요한 것들을 구해보도록 해야지.’
알론드와의 방금 전의 대화를 떠올려본 칼릭스는, 머릿속의 계획을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았다.
이곳의 기사들이 오러를 쌓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림의 무인들 역시, 심법을 수련해 내공을 키우는 것이 보편적인 성장의 과정에 속해 있다.
다만 인체와 기에 대한 연구가 심도 깊게 발달되어 있는 무림에서는, 이곳과 다르게 단기간에 대량의 내공을 몸에 품을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
‘영약의 섭취. 올바른 방식에 따라 그 안에 담긴 기운을 소화시킬 수만 있다면, 삼류 무인이 한순간에 내공의 고수로 올라서는 것도 가능하다지.’
칼릭스는 이곳에서 바로 그 영약이란 것들을 제작해 볼 생각이었다.
영약의 종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로 자연의 기운이 오랜 세월 한곳에 응축되어 만들어지는 막대한 힘을 품은 영약.
무인들의 기억에 따르자면 산삼이니 하수오니 하는 이름을 가진 풀뿌리나, 혹은 오래된 짐승의 몸에서 발견된다는 내단이란 것들이 이에 해당된다고 한다.
최소 수백 년에서 어떤 것은 천 년 이상도 묵었다는, 인간에게는 영겁과도 같게 느껴지는 시간을 보내온 기물들.
다만 이와 같은 영약들은 무림인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녀도, 천운이 따르지 않으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고 했다.
‘우리 세계에서는 마법사들이 혈육을 팔아서라도 구하고 싶어 한다는, 전설 속의 드래곤 하트 같은 게 이에 해당하려나.’
두 번째로는 그런 대단한 정도까진 아니지만 일정 수준의 기운을 품고 있는, 나름대로 진귀하다고 할 수 있는 여러 재료를 사람이 직접 조합하여 약으로 만들어내는 경우다.
칼릭스가 주목하는 것이 바로 이 부분이기도 했다.
그가 지닌 무인들의 기억에는 각 거대문파들의 비전에 해당하는 영약 제조법들도 포함되어 있었기에, 재료만 구할 수 있다면 부족한 자신의 오러량을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영약들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
‘문제는 세상이 다르니 내가 아는 것과 완전히 동일한 재료를 구할 수는 없을 거란 점인데.’
그렇지만 그 부분도 해결책이 있긴 하다.
마법사나 연금술사들이 취급하는 몬스터의 부산물, 신비한 약초, 특수한 광물 등.
자연적으로 마나를 품고 있는 재료 자체는 구하려고 한다면 방법이 없지는 않다.
결국 영약을 만들기 위한 재료란 것은 서로가 가진 기운이 상성에 맞게 잘 섞여들어, 섭취한 이의 내공과 상충되지 않고 체내의 기운을 증진시킨다는 목적만 이룰 수 있으면 되는 게 아닌가.
음양오행의 이치에 어긋나지만 않게 원재료와 비슷한 기운을 품은 재료들을 적절히 배합시킨다면, 종류가 다르더라도 영약을 만드는 데에 크게 문제는 없을 거라 여겨졌다.
본래의 효능보다는 품질이 떨어지는 영약이 될 수는 있겠지만, 효과가 아예 없진 않을 것이다.
‘마침 그런 쪽에 특화된 이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구파일방이니 오대세가니 하는 대형세력의 규모에 미치진 못하지만, 칼릭스의 머릿속에는 약왕문이라는 문파의 문주라는 이의 기억이 존재하고 있었다.
약왕이라는 하나의 별호를 당대의 문주가 대물림하여 사용하는, 무림에서도 꽤나 특별한 대접을 받는 위치에 있는 문파.
그런 약왕의 무공 수준은 기억 속에 있는 다른 무인들에 비해 한참 뒤떨어지지만, 온갖 종류의 약재를 다루며 약을 조제하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인물이었다.
‘이 사람의 경험을 살린다면 재료들을 감별하고 그걸로 영약을 제조하겠다는 것도 헛된 생각은 아니겠지.’
오히려 걱정이 되는 것은 영약 제조의 가능성보다, 재료를 구입하기 위해 필요할 금전적인 문제다.
그나마 마스터 알론드가 자신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으니, 그가 어느 정도쯤은 자금을 융통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긴 했다.
‘어쨌든 마스터가 되긴 했으니, 필요하면 돈을 구할 방도가 없지는 않겠다만. 쯧, 아무튼 간에 어디서 뭘 하든지 항상 돈 문제는 따라오는군.’
자신의 계획을 점검하던 칼릭스는 짧게 혀를 차고는, 슬슬 잠자리에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욕조에서 몸을 일으켰다.
젖은 몸을 부드러운 수건으로 닦아내고 푹신한 침대에 몸을 파묻자, 버티기 힘든 수마가 금방 그의 곁에 내려앉았다.
이런 좋은 환경에서 편하게 쉬는 것도 상당히 오래간만이라고 생각하며, 칼릭스는 기분 좋게 단잠에 빠져들었다.
* * *
‘아, 이젠 이걸 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깜박했군.’
동이 막 터오를 무렵에 습관적으로 눈을 뜬 칼릭스는, 매일같이 하던 대로 심법을 운용하려다 말고 실소를 흘렸다.
더 이상 내부의 정상화를 위해 운기요상에 집중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이에 특화된 심법을 계속 사용할 필요성도 사라졌다.
‘이제 다른 심법들을 골고루 다뤄 봐도 되겠어.’
사정을 모르는 무인이 들었다면 기겁할만한 생각을 떠올리며, 칼릭스는 머릿속에 담긴 기억들을 뒤적거렸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는 심법들에는 하나같이 그 무공이 추구하는 일정한 방향성이 묘리에 담겨 있기에.
성질이 다른 심법을 동시에 여러 가지 익힌다는 것은, 스스로의 몸을 통제할 수 없는 폭발물로 만들겠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대상이 칼릭스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그가 무림의 기억을 손에 넣고 날뛰는 몸의 기운을 통제하기 위해 가장 먼저 익혀야 했던 무공은, 선도무극심공이란 이름의 심법이었다.
이 심법은 진기를 다스리고 내부를 보호하는데 있어서는 아주 뛰어난 효력을 지녔기에, 운기요상으로 부상을 회복해야 했던 칼릭스의 선택을 받기에 알맞은 무공이기도 했다.
다만 이 선도무극심공은 무림에선 신선들이 익힐만한 무공이라는 평가를 받는 무공으로, 이는 칭찬이 아니라 조롱의 의미가 담긴 비평이었다.
무슨무슨 신공입네 하는 거대문파들의 비전 심법들과 비교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정순한 내공을 갖게 해주지만, 그런 신공들이 1년이면 쌓을 수 있는 내력을 선도무극심공으로는 거의 10년은 수련해야 얻을 수 있기 때문.
내력을 축적하는 효율만 놓고 보면 저잣거리에서 파는 삼류 무공만도 못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유한한 인간의 생에선 다루지 못하고, 선계의 신선들이나 익힐 만한 심법이라는 비웃음 섞인 평을 받을 수밖에.
‘나 같은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에겐 그리 여겨지는 게 당연하겠지.’
그렇지만 이 선도무극심공에는, 사용자가 바로 칼릭스이기에 선택할 수밖에 없던 특별한 효능이 담겨져 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