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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32화 (32/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32화

완치

칼릭스와 상급교관들의 결투 내용은 입에서 입을 통해 2군 학부 전체로 퍼져갔다.

당사자들이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칼릭스 역시 굳이 누군가에게 떠벌릴 생각은 없었으나.

학부생 중 누군가가 멀찍이서 결투를 구경하기라도 했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그 이야기는 생도들 사이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퍼지게 되었다.

상급교관 중 어느 누구도 패배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기에, 딱히 주변인들을 통제하거나 인적이 전혀 없는 곳에서 결투를 진행한 결과가 이리 나타나 버렸다.

“하급교관 혼자서 상급교관 아홉 명을 내리 쓰러뜨렸다고?”

“야야, 뻥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

물론 대부분의 생도들은 그 소문을 듣고도, 그저 누군가의 과장 섞인 입담일 것이라 여겼다.

심지어 칼릭스의 반 생도들마저도 ‘에이, 설마 그 정도까지?’라는 반응을 보이는 이가 대다수였다.

“우리가 상급생도들하고 싸움을 일으킨 것 때문에 뭔가 트러블이 생기신 건가?”

“아무리 그래도 과장된 이야기겠지? 뭔가 합의가 잘 안 돼서 결투를 할 수는 있어도, 아홉 명씩이나 되는 교관들하고 혼자 싸우셔야 될 상황이…… 좀 말이 되질 않잖아?”

다만 칼릭스의 개인 지도를 받고 있는 두 제자들은, 소문의 진위 여부를 떠나서 칼릭스라면 충분히 그런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교관님이라면 은퇴한 기사 몇 명 쓰러뜨리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을지도. 절대로 보통 분이 아니실 거야.”

“그치? 난 사실 교관님이 정체를 감추고 활동하는 왕실 소속의 마스터가 아닐까 의심 중이야.”

“그건 좀…… 너무 간 거 아닐까?”

“아니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니까? 왕국의 전력을 노출하지 않으려고 위장 신분으로 아카데미에서 생활하고 계신 거지.”

“……듣고 보니 조금은 그럴듯하게 여겨지네.”

“분명 위급한 사태가 발생하면 국가의 부름을 받아 비밀작전에 투입되는, 왕실의 수호자 같은 위치에 계신 걸 거야. 너무…… 멋지지 않니?”

“……?”

끝맺음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아즐린은 살짝 몽롱해진 눈빛으로 중얼거리는 베네트의 말에 굳이 반박하진 않았다.

어쨌거나 교관님이 대단하고 멋진 인물이라는 의견에는, 그녀 역시 동의하는 바였기에.

‘베네트의 말처럼 진짜 어디의 비밀요원 같은 건 아니실 테지만, 교관님이 엄청난 실력자인 건 사실이겠지. 그분께 다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

지시에 따르지 않고 무리했던 잘못 때문에 근 열흘가량을 개인 지도에서 제외당했던 자신.

그래도 다행히 최근에는 다시 특별 수업의 참여를 허락받아, 기존에 익히던 신기한 검술도 계속해서 전수받을 수 있게 되었다.

버림받는 듯한 기분에 그동안 스트레스가 심해 밥도 잘 넘어가지 않았었는데, 새로이 기회를 받았으니 이제는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교관님이 하라는 대로만 따르겠다는 마음뿐이다.

혹시나 자신이 스스로도 모르게 무리하지는 않을까 싶어, 아예 개인적인 훈련 시간도 없앴고.

일과의 대부분이 동일하게 겹치는 베네트에게 감시역할을 부탁하며, 이제는 그녀와 거의 24시간을 찰싹 붙어 다니는 중이기도 했다.

“어~이. 어린 선배님들. 칼릭스 교관은 어디 갔나?”

“앗, 안녕하세요!”

잡담을 나누던 두 사람의 뒤에서 제법 나이 들어 보이는 목소리가 장난스럽게 말을 걸어오자, 몸을 돌린 베네트가 생긋 웃으며 상대에게 인사를 건넸다.

곁에 있던 아즐린은 베네트처럼 살갑게 행동하진 못했지만, 대신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그녀 나름대로의 예의를 갖췄다.

“교관님은 아직 안 오셨는데요!”

“에이! 이 자식은 나보곤 때맞춰 오라고 해놓고서, 정작 자기는 이리 늦는다니까.”

“아앗! 아무리 상급교관이셔도 배우는 입장에서 스승에게 그리 불경한 언사라니, 제자 된 도리를 다하셔야죠!”

“어이쿠. 조심하겠습니다요, 선배님.”

과장스럽게 몸을 움츠리며 넉살을 부리는 닐슨의 모습에, 베네트가 꺄르륵 하며 경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상급학부에서의 결투 이후 칼릭스의 권유를 받게 되며, 닐슨은 정규수업이 끝나면 무공을 배우기 위해 매일 그의 반을 찾아오게 되었다.

뜬금없이 상급반 교관이 특별 수업에 참여해 자신들과 같이 훈련을 받는다는 것에, 처음에는 아즐린과 베네트가 굉장히 서먹서먹해하긴 했지만.

닐슨이나 베네트나 원래부터 서글서글하니 친화력이 좋은 성격들이라, 나이가 두 배 넘게 차이 남에도 제법 죽이 잘 맞아 이제는 이리 장난을 주고받았다.

활발하다고 하긴 어려운 성격인 아즐린만이, 그 사이에 쉽게 끼어들지 못하고 어색한 태도로 뻣뻣한 웃음을 지었다.

“어휴, 우리 애들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수업이 끝나면 삭신이 쑤시는데. 내가 이 나이에 또 뭘 배우겠다고 이러고 있는지 원.”

아무리 친분이 있다 해도 한참 어린 후배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게 쉬운 결심은 아니다.

어지간히도 사람이 좋은 닐슨이지만 그라고 해서 자존심이 없는 건 아니기에, 평상시였다면 되었다고 손사래 치며 칼릭스의 권유를 거절했을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칼릭스가 상급교관들을 문자 그대로 가지고 노는 모습을 본 직후였기에.

닐슨은 끓어오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칼릭스가 직접 개발했다는 검술과 오러운용 기술을 한번 배워보기로 했다.

‘검술을 그렇다 쳐도 오러연공법을 뜯어고치는 건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지만…… 칼릭스 녀석은 오러하트의 부상도 스스로 치료할 정도이니, 안전성은 확보되었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무언가를 새로 익히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은 자신의 나이인데.

분명히 성과가 있을 거라고 호언장담을 하는 칼릭스의 말에, 닐슨은 속는 셈 치고 가르침을 받기 위해 이렇게 매일같이 그를 찾아오는 중이었다.

“다 모였군요. 처리할 일이 있어서 조금 늦었습니다.”

장난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가볍게 몸을 풀고 있던 세 사람 곁으로.

그들이 기다리고 있던 대상인 칼릭스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저벅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보편적인 인사와 짧은 대화가 오가고, 이내 그들만의 특별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 * *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이 반복되며,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올해 입소한 생도들의 교육과정도 어느덧 반년을 넘어가게 되었고, 아즐린은 꺾이지 않는 성장세로 칼릭스 반의 최강자라는 자리를 견고히 굳혔다.

베네트 역시 꾸준히 발전을 이루었고, 가장 최근인 6개월 차의 평가에서 반 순위 3등이라는 위치에 안착하게 되었다.

생도들과는 별개지만 칼릭스가 개인적인 친분을 이유로 도움을 주고자 했던 닐슨 역시,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부터는 이제 실력이 퇴보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새로운 성장의 기반을 만들어 드리려고 저도 노력하는 중입니다만, 변화가 느껴지십니까?”

“너무 체감이 돼서 무서울 지경이다! 너 임마, 대체 뭘 만들어낸 거야!? 검술명가로 유명한 귀족가문들도 이런 수련법을 갖추고 있진 않을 것 같은데.”

41살의 퇴물기사인 그의 육신은 이미 노화 과정을 거치며 쇠퇴기에 접어들었다.

아무리 오러 브레싱을 해도 이제는 오러의 축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고, 관절은 여기저기 삐거덕거리며 감각 또한 하루가 다르게 무뎌져 갔다.

그런데 그랬던 몸이 이제는 20대로 돌아간 것처럼 가볍게 느껴지고, 등 뒤로 날아드는 화살도 쳐낼 수 있을 것처럼 감각이 예리하게 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런 게 정말 도움이 될까 싶은 이상한 지식들을 익히고, 시키는 대로 훈련에 따른 지 고작 두 달 남짓 지났을 뿐이었다.

전성기 때로 되돌아간 것처럼 빠르고 강인해진 자신의 육체를 돌아보며, 닐슨은 상식을 파괴하는 효과를 보이는 칼릭스의 가르침에 새삼스럽지만 다시 놀라움을 표현했다.

“부상을 치료해 보겠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수련을 멈추지 마십시오. 선배님은 아직 더 강해지실 수 있으십니다.”

“하, 오러하트가 망가진 상태에서 이런 것들을 만들어 내다니. 너 진짜 대단한 천재였긴 한 모양이구나.”

“……크흠. 그, 그냥 운이 좋았던 겁니다. 절박함에 남들이 하지 못하는 시도를 했을 뿐이지요.”

무공에 관한 지식의 출처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순 없으니, 부끄럽지만 모든 기술을 자신이 창안한 것처럼 꾸며 말할 수밖에 없었다.

무공을 창안한 위대한 시조들과 그것들을 다듬고 발전시켜온 무인들의 업적을 가로채는 상황이라, 칼릭스는 낯 뜨거운 기분에 시선을 피하며 살짝 말을 더듬거렸다.

“아, 그리고 오늘은 제가 할 일이 좀 있어서, 특별 수업은 하루 생략할 생각입니다.”

“그러냐? 알았다. 혼자 훈련하면 되지. 요즘은 몸이 날아갈 것 같아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막 움직이고 싶단 말이지.”

매일 빼먹지 않았던 제자들의 개인 지도조차도 오늘은 생략하고, 칼릭스는 정규수업의 일정이 끝나기 무섭게 자신의 숙소로 달려갔다.

오늘이 바로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을 맞이할 때라는 걸, 스스로가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방 안에 틀어박힌 칼릭스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조절하며 심법의 운용에 빠져들었다.

자리에 앉아서 오러의 흐름을 몸 구석구석으로 인도하길 몇 시간째.

언제부턴가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칼릭스의 코를 통해 몸 밖으로 흘러나오더니, 그가 숨을 들이쉬고 내쉼에 따라 머리 위에서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후우우-

연기처럼 생긴 그것은 점점 양이 불어나, 칼릭스를 중심으로 느릿하게 회전하며 고리 같은 형상을 만들어내더니.

별안간 칼릭스가 눈을 번쩍 뜨는 것과 동시에, 모공을 통해 빨려 들어가며 흔적도 없이 사리지게 되었다.

정광이 일렁거리는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던 칼릭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렇게 십여 초 가량을 가만히 서 있던 칼릭스는, 이내 운공을 하느라 허리에서 풀어놨던 자신의 검을 찾아 손에 들었다.

희미한 빛이 검날에 맺힌다.

내부의 오러들이 매끄럽게 움직여 어느 한 곳 막힘없이 흐르며, 자신의 의지대로 오러 소드가 만들어지는 것을 확인한 칼릭스가 씨익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드디어.’

몇 년의 세월 동안 자신을 절망으로 몰아넣었던, 지긋지긋한 오러하트의 부상이 완치되었다.

감회가 서린 눈으로 오러 소드를 바라보던 칼릭스는, 잠시 뒤 내부의 오러를 순환시키며 검에 더욱더 강한 기운을 불어넣었다.

희미하게 맺혀 있던 빛이 실처럼 늘어지며 넘실거리더니, 이내 검신 전체를 감싸며 선명한 광채를 내뿜는다.

누군가가 이 광경을 봤다면 경악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검신을 완전히 둘러싼 파괴적인 오러의 응집체.

널리 알려진 명칭으로 오러 블레이드라 불리는 형태의 그것은, 인간의 한계라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강자들만의 전유물이었기에.

“……이제 일회용은 벗어났군.”

검신 위로 찬란하게 타오르는 오러 블레이드를 바라보며, 칼릭스는 평상시의 그에게선 보기 어려운 커다란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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