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28화
파리떼
“우와…… 이게 말로만 듣던 그 마도구라는 거야?”
“신기하네. 이것만 있으면 아무리 맞아도 치명상을 피할 수 있는 건가?”
“이건 거의 일회용에 가까운 횟수제한이 있는 물품이라 그렇게는 안 되지. 그게 가능하려면 영구적인 마법이 부여된 최상급 아티팩트여야 하는데, 그런 물건은 성 하나를 팔아도 사기 힘들다더라.”
“아…… 그럼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가?”
“그래도 이런 게 있으면 여벌 목숨이나 마찬가지니까, 우리 입장에선 상당히 귀한 물품이지. 돈 주고 사려면 장교 봉급으로도 몇 년을 모아야 할걸?”
“그렇구나. 너 잘 아네.”
상인 집안 출신의 생도가 자신이 아는 지식을 뽐내며 설명을 늘어놓자, 지원품을 구경하던 다른 생도들이 순박한 표정으로 입을 헤 벌리며 감탄한다.
“이런 거 몇 개 들고 어디 멀리 달아나면, 먹고 살 걱정도 없어지는 거 아냐?”
“응, 너 잡히면 사형.”
“……에이, 설마 사형까지 가진 않겠지.”
“와! 이거 봐봐! 여기 있는 거 다 포션 아니야?”
“진짜? 나 포션은 알아. 저것도 꽤 비싸지 않냐?”
“장난 아니네…… 최우수반이면 원래 이렇게까지 지원을 해주나?”
자신들은 올해 입소한 생도들이라 아카데미의 자세한 내부 사정은 모르지만, 그래도 바깥에서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듣고 오기에 2군 학부의 현실이 어떤지는 대강 알고 들어왔다.
마도구와 포션 같은 1군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지원품들이 자신들에게 배정되었다는 사실에, 생도들은 신기함을 느끼면서 동시에 의문을 품었다.
“그럴 리가. 보아하니 중하급 품질의 포션이긴 한데, 그래도 이런 건 원래 1군에나 납품되는 고가품들이라고. 대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네.”
“가끔 큰 귀족 가문에서 아카데미로 거액의 후원을 보내기도 한다던데, 이번이 딱 그런 경우인 건 아닐까?”
“과연. 그건 있을 법 한 일이네. 우리가 최우수반으로 뽑힌 이번 시즌에, 운 좋게도 평소보다 훨씬 대단한 지원 물품을 보급하는 게 가능했다는 건가.”
“이거…… 포션을 입에 머금고 있다가 다른 곳에서 뱉어내 보관하면…… 나갔을 때 팔아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근데 저 새끼는 아까부터 생각하는 게 왜 저리 불순해?”
“내버려 둬. 집에 빚이 좀 있다나 봐.”
“아…… 그래?”
그렇게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떠들어대던 생도들의 귓가로, 그리 크지 않으면서도 묵직하게 느껴진 음성이 꽂혀 들어왔다.
“왜 이리 시끄럽나.”
“으왓! 교관님 오셨다.”
“어서 똑바로 정렬해!”
자세를 바르게 고치고 군기가 잡힌 모습으로 줄을 맞춰 꼿꼿하게 서는 생도들.
그런 생도들을 가볍게 쓱 둘러본 칼릭스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기운이 넘치는 걸 보니, 오늘 훈련일정은 좀 더 타이트하게 잡아도 되겠군.”
“히익…….”
부상 방지를 위해 오버트레이닝을 하지 않을 뿐.
거의 한계까지 몰아붙였다가 풀어주길 반복하는 형식인 칼릭스의 훈련은, 생도들에겐 상당히 하드하게 느껴지기에 충분한 일정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난이도를 높이겠다고 하니, 듣는 생도들의 입장에선 절로 소름이 돋는 상황.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빛을 마주하며, 칼릭스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윽고 생도들의 앞에 지옥이 펼쳐졌다.
“하악, 하으…… 겨, 겨간님. 나 주거여…….”
“안 죽는다.”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서 부들거리는 베네트를 한 손으로 주워든 칼릭스가, 반대편 손으로 포션병을 들어 그녀의 입에 부어 넣었다.
“끄렉!?”
“일어나라. 아직 훈련 중이다.”
몸속으로 퍼지는 치유의 힘에 찢어지는 것 같던 온몸의 통증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며, 베네트는 눈물을 머금고 비척거리는 몸짓으로 일어섰다.
그런 그녀의 곁으로 입에 거품을 물고 눈이 반쯤 뒤집힌 채, 거의 네발로 기다시피 하고 있는 베런의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게르륵…….”
다른 생도들도 자비 없이 굴리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칼릭스는 특히나 자신이 관심을 두고 있는 몇몇 제자들에겐 악마 같은 모습으로 더욱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켰다.
물론 칼릭스가 갑자기 생도들을 대상으로 한 가학적인 취향에 눈을 뜬 것은 아니다.
그저 마침 고가의 지원품들이 손에 들어왔으니, 그것들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의 커리큘럼을 약간 빡빡하게 수정했을 뿐.
‘이런 식으로 굴리면 저 포션들은 한 달 안에 다 소모할 수 있겠군.’
다른 교관이었다면 고가의 물품들을 최대한 오래 아껴가며 사용하려 하겠지만, 어차피 몇 달 뒤면 떠날 예정인 칼릭스는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학부의 보급품을 바깥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남겨봐야 남 좋은 일이나 시킬 테니, 쓸 수 있을 때 아낌없이 쏟아붓는 게 당연했다.
소비되는 속도가 상당히 빠르긴 했지만 아무렴 어떤가?
나중에 교관직을 그만두고 나면 쓸 일도 없는 것들인데.
‘이것도 다 떨어지면 우리 거물 제자님이 다시 채워줄지도 모르지. 아니면 다시 원래 방식의 훈련으로 돌아가면 되는 일이고.’
그런 마음가짐으로 지도에 임하는 칼릭스의 애정(?) 어린 손길에, 생도들은 유사 죽음을 체험하며 점점 시체 같은 얼굴로 변해갔다.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에도.
칼릭스의 반에서는 생도들의 물기 서린 비명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 *
“지루하기만 하던 교양수업이 이렇게 천국처럼 느껴질 줄이야…….”
“이거 끝나면 다시 교관님한테 돌아가야 해.”
“아, 씁. 주둥아리 안 닥칠래? 내 잠깐의 행복을 방해하지 마.”
가끔 찾아오는 필기 과목 시간으로 오전의 훈련을 생략한 생도들은, 오후부터 다시 시작될 지옥 같은 수업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실수인 척 보급품 상자 위로 넘어져서 포션들을 다 깨부술까? 그러면 이렇게까지 훈련이 빡세진 않을 것 같은데.”
“그러면 교관님이 니 대가리도 깨부술걸.”
“아아, 요즘 다른 반 애들이 너무 부러워! 나 이러다 죽을 것 같아. 죽을 것 같은데 안 죽어서 더 죽을 것 같아…….”
“뭐라는 거야, 라고 하고 싶지만 공감이 돼서 너무 슬프다.”
언제나 그렇지만 달콤한 시간은 평소보다 빠르게 지나가는 법.
오전 수업이 끝나고 이어지는 점식 식사까지 마친 생도들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돌리며 자신들의 교육장소로 돌아갔다.
그리나 이내 믿기지 않는 희소식을 전해 듣고, 벅차오르는 감정을 감추지 못하게 되었다.
“와 씨! 오후 수업은 자율훈련이란다!”
“헉? 교관님 쉬시는 거야? 왜?”
“몰라! 개인적인 일이 있으신가 보지!”
“완전 꿀이네. 오늘은 그냥 휴일인 거나 마찬가지잖아?”
“어떡해…… 나 눈물 날 거 같아.”
“야, 이 새끼 운다!”
“너도 울고 있어 병신아.”
“엇…….”
고작 하루일 뿐이지만 악마처럼 변한 교관의 통제를 잠시라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생도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 보편적인 반응과 다르게, 거의 유일하게 다른 감정을 느끼는 생도도 있기는 했다.
‘교관님이 이렇게 훈련을 넘기시는 건 처음인데…… 무슨 일이 생기신 걸까?’
매일 보던 얼굴을 보지 못해서인지 괜히 불안감이 들어 발가락을 꼼지락대던 아즐린은, 평소에는 먼저 대화를 트는 경우가 드물었던 베네트에게 다가가 머뭇거리며 말을 걸었다.
“……베네트.”
“아즐린? 왜?”
“교관님께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
“으으응, 나도 쉬신다는 건 지금 처음 알았어. 그럼 저녁의 특별 수업도 오늘은 취소되려나? 아즐린은 뭐 들은 거 있어?”
“아니, 없어.”
“흐응, 뭐 우리가 신경 쓸 일은 아니겠지. 난 교관님이 안 계셔도 적당히 훈련하고 있으려고. 혹시 모르잖아? 몰래 보고 계시다가 휙 하고 나타나실지도.”
“그래…….”
딱히 원하던 정보를 얻지 못한 아즐린은, 베네트에게서 떨어지며 슬그머니 자신의 어깨 한쪽을 어루만졌다.
바로 전날인 어제 지시받은 대로의 훈련에 열중하고 있자니, 교관님께서 잘하고 있다는 듯이 툭툭 두드려주고 가셨던 자리이다.
나름 친근감의 표시로 받아들이고 화가 가라앉으신 건가 싶어, 중지되었던 가르침도 조만간 다시 재개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아무 언질도 없이 자리를 비운 칼릭스를 떠올리며, 아즐린은 괜히 섭섭한 감정에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으면 다시 불러주시겠지. 훈련이나 하자.’
마음을 달래며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아즐린은, 이내 훈련을 시작하며 가벼운 스트레칭 동작으로 몸을 풀었다.
적당히 몸을 달궜다고 여긴 그녀가 막 강도를 높이려던 순간.
움찔하며 멈춰 선 아즐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 정도의 강도로 훈련을 해야 맞는지 조금 아리송해진 탓이었다.
‘교관님의 감독 없이는 포션도 쓸 수는 없으니까, 조절을 하긴 해야 하는데.’
크게 혼쭐을 내며 다시는 무리하지 말라고 하신 뒤로 쭉 조심하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훈련이 하드해지면서 머리와 육신이 어느 장단에 맞춰야 좋을지 헷갈려 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거의 포션으로 샤워하다시피 하며 훈련을 받았다 보니, 무리하지 않는 선이 어느 정도였는지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냥 오늘은 천천히 몸을 푸는 정도로만 움직일까.’
생각 없이 훈련에 열중하다가 괜히 또 무리한다고 혼이 나서는 안 되기에.
아즐린은 교관님이 자리를 비운 오늘은, 남들처럼 그냥 휴식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칼릭스의 반 생도들이, 평소보다 훨씬 늘어진 태도로 자율훈련에 임하고 있을 때였다.
“하, 시발.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저걸 훈련이라고 하고 있는 거야?”
“내가 하급반에 있을 때는 안 저랬는데. 저런 것들이 최우수반이랍시고 그렇게나 지원을 받는다고?”
날이 선 분위기의 낯선 목소리들이 들려와, 가볍게 훈련을 하고 있던 생도들이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머리를 움직였다.
“……누구지? 못 보던 얼굴들인데.”
“옷깃에 저 표식은…… 상급반 생도들이네?”
“상급반? 상급반이 여길 왜 와?”
험상궂은 표정으로 자신들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의 정체를 알아본 생도들이, 서로를 돌아보며 의문 섞인 시선을 교환했다.
환경은 열약해도 부지 하나는 넓은 덕분에, 반이 다른 생도끼리는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서야 서로 마주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나마 같은 하급반이면 식당에서 얼굴을 마주치기라도 하지만, 상급반은 공간이 따로 분리되어 있어서 만날 일이 없는 것이 보통이거늘.
“이 새끼들 봐라. 선배님한테 인사도 안 하냐?”
“이런 놈들이 우리는 구경도 못 해본 1군 보급품을 가져다 쓴단 말이지.”
이리저리 퍼져 훈련을 하고 있던 칼릭스의 반 생도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다가, 이내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슬금슬금 한 자리로 뭉쳤다.
난데없이 찾아와 적대적인 느낌을 풍기며 소란을 피우는 상급반 생도들의 모습에, 무언가 사고가 터질 것만 같다는 예감을 느꼈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