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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23화 (23/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23화

칼릭스와의 첫 만남 이후.

혹시나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인가 싶었던 알론드는, 가진 인맥을 총동원하여 스스로의 몸에 생긴 이상을 파악하고자 온갖 검사를 다 받아보았다.

소드 마스터이자 왕국군 군단장을 지낸 알론드는, 은퇴한 지금도 당연히 아직 국내의 저명한 인사들과의 연줄이 닿아 있었다.

왕실마법여단 쪽의 소개로 만난 정신계마법에 특화된 학파의 고위마법사.

왕국에서 가장 세력이 큰 교단 소속의 대주교.

비약제조를 전문으로 한다는 연금술협회 출신의 치료사.

온갖 사람들을 만나며 정밀한 검사를 받아본 끝에 내려진 진단은, 그의 육체와 정신에 아무런 이상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 녀석을 마주하며 느꼈던 감각은 대체 뭐란 말이더냐?’

경지가 비슷한 호적수를 맞닥뜨렸을 때와 유사하면서도 무언가 다른,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기만 한 그 느낌.

노화로 자신의 감각이 망가진 것이 아니라면 대체 그건 뭐였을까.

마음속의 의문을 떨치지 못했던 알론드는, 결국 다시 2군 학부로 행차하여 칼릭스를 찾았다.

그리고 마침 기다리는 동안 2군 학부장으로부터, 칼릭스가 최근 얽히게 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알론드는 그에게 자신조차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어떤 특별한 점이 있으리라 짐작했다.

‘그놈. 분명 뭔가 있다.’

오러하트가 망가졌어도 기사 출신이라면 고블린 몇 마리 따위야 우습게 때려잡을 수 있긴 하다.

하지만 흑마법사와 연관된 사건이었다지 않은가.

그가 아무런 부상도 없이 흑마법사를 쓰러뜨렸고, 생도들 중에 사망자의 발생 없이 복귀했다는 보고는 어찌어찌 행운이 따라서 그렇다 치자.

하지만 교관인 칼릭스가 딱 생도들을 구출하려고 나타난 그 순간, 모두가 정신을 잃어서 전투 상황에 대한 어떤 증언도 확보하지 못했다는 점은 조금 수상하지 않나 싶다.

물론 운수가 좋고 우연이 겹쳐서 그런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야 하겠다만.

‘이번에 다시 자세히 확인해 보면 알 수 있겠지. 대체 무엇이 나의 감각에 혼란을 일으켰던 것인지.’

그런 생각으로 방안에 들어서는 칼릭스의 전신을 샅샅이 훑어보고 있었는데.

어째선지 지난번과는 달리 칼릭스에게서, 마스터인 그를 긴장하게 만들었던 당시의 기세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

“제게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아니, 그…… 자네, 미안하지만 잠깐 몸을 좀…… 확인해 봐도 되겠나?”

“커흠!”

옆에 앉아 있던 이 학부장이 헛기침을 하며 민망하다는 듯이 고개를 돌렸다.

치료목적을 가진 의사라면 모를까, 그것도 아닌 이가 몸을 확인하겠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

체내의 오러량과 오러하트의 상태, 오랜 시간 반복적인 오러 운용으로 내부에 남겨진 흔적들을 살피겠다는 소리이지 않나.

타인에게 쉽게 노출해선 안 되는 정보들이고, 아무리 부상으로 은퇴한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지만 굉장히 무례한 요청이었다.

막말로 거 달려 있는 것 좀 보게 속옷 한번 까보라는 말과 다름없이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요구다.

물론 계급이 깡패라고 이 학부장인 그가, 마스터 알론드에게 무례한 언사임을 지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저 부하교관인 칼릭스에게 미안함을 느끼며 조용히 시선을 피할 뿐.

‘뜬금없이 찾아와서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역시 지난번에 내게서 뭔가를 느꼈던 모양이군. 그때는 직접 몸에 손을 대서 확인하진 않더니…… 아무래도 의심을 떨치지 못했나 본데.’

당사자인 칼릭스는 가슴이 살짝 뛰었지만, 겉으로는 태연함을 가장하며 알론드의 요청을 수락했다.

“그리 하십시오.”

어차피 상대가 억지로 확인하려 든다면 거부하기도 어렵거니와, 마침 타이밍이 매우 적절한 상황이다.

생도들을 구하고자 무리하게 최상승의 절기를 펼쳤던 반작용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형편이기 때문.

칼릭스는 의식적으로 오러의 흐름이 최소한으로 보이도록 통제하며, 알론드가 자신의 몸을 체크하고자 미량의 오러를 불어넣는 것을 받아들였다.

“으음…….”

칼릭스의 어깨에 손을 대고 있던 알론드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전에도 느꼈지만 확실히 이 젊은 교관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눈대중으로 슬쩍 확인했을 때보다 자세히 살펴본 지금이, 그의 몸이 상당히 심각한 상태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아무리 봐도 무언가를 숨기고 있을 만한 모습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흔적이야. 오러 사용자의 내부가 이렇게 뒤죽박죽인 경우는 생전 처음 보는군. 허어! 무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내 착각이었단 말인가? 그럼 지난번의 그 기세는 대체…… 도무지 모르겠구나.’

만약 알론드가 평상시 칼릭스의 몸을 확인한 것이었다면, 오러하트의 부상을 회복하고 있다는 것을 들키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무림과 달리 인체의 활용에 대한 무인들의 지식이 매우 빈약한 세상이지만, 그래도 마스터쯤 되는 인물이라면 칼릭스의 특이함을 알아볼 수도 있는 것이기에.

그러나 온전하지 못한 몸으로 천하삼십육검의 오의를 펼치느라 내부의 기운이 매우 난잡하게 엉켜진 칼릭스의 현재 상태는, 마스터가 아니라 그랜드 마스터가 체크한다고 해도 실상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복잡한 표정으로 손을 거둔 알론드를 향해, 칼릭스는 담담한 태도를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

“만족하셨습니까?”

“으음, 그…… 아닐세. 미안하게 되었네. 자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해서…… 후우, 내가 뭔가 큰 착각을 했던 모양일세. 사과하겠네.”

“아닙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궁금증이 해결되셨다면 다행이군요.”

자리에서 일어난 칼릭스는 두 학부장들을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더 용무가 없으시다면 돌아가도 되겠습니까? 제가 따로 시간을 들여 가르치는 생도들이 있는지라.”

“아, 그리하게. 칼릭스 교관. 거…… 오늘 일은 나도 미안하게 되었네.”

“아닙니다. 그럼.”

알론드의 눈치를 살피며 손짓하는 이 학부장을 뒤로하며, 칼릭스는 다급해 보이지 않는 움직임으로 문을 열고 학부장실을 빠져나왔다.

“……나는 이만 가보겠네. 수고하시게.”

“옛, 사령관님. 살펴 가십시오.”

“은퇴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사령관인가?”

“윽, 죄송합니다. 예전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는 터라.”

한때 자신의 휘하에서 복무했던 기사이자 장교 출신인 이 학부장이 쩔쩔매며 굽실거리는 모습에 한숨을 지으며, 알론드는 한층 더 어지러워진 마음으로 털레털레 2군 학부를 빠져나왔다.

‘……그러고 보니 그놈은 내 앞에서 전혀 떨지도 않고 태연했었군.’

오러를 사용할 수 없는 몸이 되었으니, 은연중에 흘러나오는 자신의 기세를 감당하기 어려웠을 텐데.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던 알론드는, 이내 고개를 휘휘 내젓고 머릿속에서 이제 그만 칼릭스란 이름을 지우자고 생각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한 번쯤 뭔가 착각할 수도 있는 거겠지. 괜히 자꾸 의식하지 말고 그만 잊어버리자.’

그러나 업무를 마치고 본인의 자택으로 돌아온 후에도.

알론드는 계속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념을 도무지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정확히는 칼릭스의 육체 내부를 살피며 확인했던 오러의 흐름이, 영문을 알 수 없이 자꾸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듯했다.

‘그토록 엉망이었던 내부가 뭐라고 계속 생각이 나지? 너무 망가진 상태라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졌던 것인가? 하긴, 그런 몸으로 어쨌든 아직 검을 휘두를 수 있다는 게 대단하긴 하군.’

욕조에 물을 받아 씻고.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침대 위에 몸을 누인 뒤에도.

알론드는 칼릭스에 대한 상념을 끊어내지 못했다.

그렇게 잠에 들기 직전까지도, 그가 칼릭스의 몸에서 확인했던 오러 흐름을 반복적으로 머릿속에 그리던 어느 순간이었다.

문득 어떤 기묘한 감각이 알론드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난잡하게만 여겨지던 혼란스러운 흐름 사이에서, 알론드는 어떠한 흔적 하나가 점차 또렷하게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저것은?’

육신의 내부에 존재하는 오러가 흐르는 수많은 통로들 사이에서, 마치 오러가 아니라 불길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느껴지는 강렬한 흔적.

그 불길이 손을 지나 검을 통해서 세상을 향해 흘러넘치게 된다면, 과연 어떤 형상의 모습이 그려지게 될 것인가.

알론드는 이불을 걷어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언가 잡힐 듯 말 듯한 상상은 거기서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알론드는 자신의 몸 어딘가에서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줄로만 알았던 어떠한 감정에, 자그마한 불씨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건, 이것은…….’

초절정의 고수가 되어야 완전하게 다룰 수 있는 최상승의 절초를 펼친 반작용으로, 칼릭스의 단전에서 기혈로 이어지는 미세하게 남은 후유증의 흔적.

그것은 평생 하늘 위를 바라보았지만 결국 벽을 넘지 못하고 반쯤 포기해 버린 한 명의 마스터에게, 꿈에서나 그려볼 수 있던 경지에 대한 단초를 희미하게나마 제공해 주었다.

육신이 늙어 약해지기 직전까지나마 그랜드 마스터가 되고자 모든 것을 불살랐던 경험이 있는 그였기에, 어렴풋이나마 인지할 수 있었던 아주 작은 단서였다.

“밖에 누구 없나!”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하인들을 막 돌려보내며 휴식을 취하려던 집사장은, 잠자리에 들었다고 여겼던 주인의 부름에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 방으로 달려왔다.

“무, 무슨 일이십니까!?”

“지금부터 내가 부르기 전까지 아무도 방에 들이지 말게!”

“예?”

어차피 한밤중에 누가 들어갈 리도 없는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 싶어 어리둥절해하는 집사장을 문밖에 내버려 둔 채.

방 안에 우뚝 선 알론드는 눈을 감고, 그대로 기둥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몇 시간이 지나 하루, 그리고 이틀이 지날 때까지도.

알론드는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박혀, 조용히 느릿한 호흡만을 이어갔다.

* * *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오도록.”

반 대항전 당일.

대표로 출전할 5명의 선수를 앞에 두고, 칼릭스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덤덤히 말을 내뱉었다.

“옛!”

“넵!”

생도들이 힘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가운데.

“어이, 칼릭스 교관. 잘 부탁하네. 이번에도 작년처럼 쉬엄쉬엄하겠지?”

상대팀으로 선정된 반의 담당교관이, 피식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칼릭스에게 말을 걸어왔다.

칼릭스는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짧은 대답을 내뱉었다.

“작년하고는 조금 다를지도.”

“아, 그러신가? 하긴 실적 따윈 관심 없다는 듯이 고고하던 기사님이, 올해는 우리랑 마찬가지로 따로 개별지도를 했다지? 뭐, 실적이 아니라 다른 욕구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 던 것 같기도 한데.”

“…….”

느물거리는 태도로 대화를 이어가려는 상대에게서 눈을 돌리고, 칼릭스는 입을 다문 채 경기장으로 향하는 자신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몇 마디를 더 떠들다가 계속 무시를 당하자 제풀에 지친 상대팀 교관은, 이윽고 콧방귀를 끼며 그에게서 멀어져갔다.

“흥! 어디 얼마나 다른지 보자고.”

멀어지는 발걸음에서 귀를 거둔 칼릭스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고작 4개월 차라고는 하지만 예전에 가르친 생도들과 이번 기수의 아이들은 조금, 아니…… 아주 많이 다를 것이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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