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17화 (17/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17화

“으윽…….”

“제길, 갑자기 무슨…….”

낙하의 충격으로 끙끙 앓던 생도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이, 다들 괜찮은 거냐?”

“끄응…… 팔이 살짝 꺾이긴 했는데, 못 움직일 정돈 아니야.”

“퉷! 으윽. 물을 좀 삼켰는데 배탈 나는 건 아닌가 모르겠네.”

떨어진 곳이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였고 아래 깔린 흙이 부드러워서 그런지, 다행히 큰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어 보였다.

찰박.

무릎 밑을 적시는 물웅덩이를 벗어나 한자리에 뭉친 생도들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고는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지하에 이런 공간이 있었다니…….”

“상당한 넓이 같은데.”

굵직한 종유석들이 여기저기에 기둥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동굴.

랜턴의 불빛만으로는 끝이 어딘지도 찾아볼 수 없는 굉장히 넓은 공간이었다.

“지반이 무너지며 굴러떨어진 건가.”

“위로 올라갈 수 있겠어?”

누군가의 질문에 생도들은 고개를 들어 자신들이 내려온 천장을 바라보았다.

“저기에서 빛이 들어온다.”

“이쪽 절벽을 어떻게든 올라간 다음에 저쪽으로 기어가야 나갈 수 있겠는데?”

“그것참 구조가…… 지랄 맞게 생겼잖아.”

경사가 가파른 비탈을 꽤나 굴러 내려오다가 마지막에 수직으로 뚝 떨어지며 바닥과 충돌했었다.

되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주변을 살펴보던 생도들의 표정이 나빠졌다.

“이거…… 올라가는 건 무리 같아 보이네.”

빛이 들어오고 있는 구멍 쪽의 경사면을 오를 수 있을지는 둘째 치고, 그전에 넘어야 할 낭떠러지의 높이만 해도 7~8미터는 족히 되어 보인다.

벽면에 돌출부가 거의 없이 매끄러웠고 축축하게 물기까지 맺혀 있어, 전문적인 장비 없이 맨몸으로 붙잡고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아래에서 몸으로 계단을 만들면 어떻게 한 사람 정도는 올려보낼 수 있지 않을까?”

아무런 시도 없이 손을 놓고 있을 순 없기에 그 의견은 곧장 채택되었고, 자연스럽게 주자는 아즐린으로 정해졌다.

이곳에 모인 6명 중 상대적으로 무게가 가장 가벼운 게 아즐린이기도 했고, 평가에서 보여준 모습으로 다른 이들보다 몸놀림이 날래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뒤 역할이 정해지며 세 명의 생도가 맨 아래에서 다리를 만들었고, 그 위로 다시 두 명의 생도가 올라서서 떨어지지 않도록 무게중심을 잡았다.

“으으, 너무 흔들거리는데. 가만히 좀 있어 봐!”

“젠장. 어쩔 수 없다고!”

“바닥이 단단하지도 않고 미묘하게 수류까지 있어서 살짝살짝 밀리는 느낌이야.”

“어서 빨리 시도나 해봐!”

위태롭지만 어떻게든 층을 형성한 생도들이 마지막으로 남은 아즐린을 주시했고, 모두의 기대를 받으며 맨 꼭대기로 올라선 아즐린은 인간 계단을 박차며 위쪽으로 점프를 시도했다.

“으아앗!”

“으윽!”

와르르 무너진 생도들이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물길에 몸을 처박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물보라와 함께 한 번 더 동일한 소음이 발생했다.

몸을 일으켜 세운 아즐린이 위를 노려보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안 되겠어. 닿질 않아.”

닿을락 말락 아슬아슬하게 손이 닿지 않는 높이.

두어 차례 시도를 더 해본 생도들은 결국 자력으로는 탈출이 어렵다는 것을 깨닫고 물구덩이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큰 부상은 없다지만 다들 여기저기 까지고 멍이 든 상태였는데, 추가로 온몸이 잔뜩 젖기까지 해 꼬락서니가 영 말이 아니었다.

“이제…… 어쩌지?”

“빌어먹을. 베런 이게 더 너 때문이잖아!”

“뭐 이 자식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나름대로 침착하게 행동하려고 했지만 사방을 뒤덮은 캄캄한 어둠을 마주하며 불안감을 느낀 생도들 사이에서, 결국 책임 소재를 따지는 규탄이 발생했다.

1조에 속한 생도의 지적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베런이,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발작적으로 검을 움켜쥐었다.

본인의 잘못임은 알고 있지만 남이 손가락질하는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기엔, 태생적으로 편협하고 다혈질인 성격인 데다가 마음에 여유가 없는 상황이기도 한 탓.

생도들 사이의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으며, 당장에라도 칼부림이 벌어질 것처럼 분위기가 나빠졌다.

“잠깐만! 지금은 우리끼리 힘을 뺄 때가 아니잖아!”

베런을 편들 생각은 없지만 이대로 싸움이라도 발생하면 쓸데없이 문제가 커질 뿐이라 판단한 베네트는, 씩씩거리는 남자들 사이에 끼어들어 중재를 시도했다.

“우리가 복귀하지 않으면 당연히 교관님이 나서서 수색을 진행하실 거야. 순찰 구역 내에서 벌어진 일이니 결국 어렵지 않게 발견될 거라고.”

“……확실히 그렇긴 하겠지.”

“어차피 조금만 기다리면 구조될 수 있는데, 괜히 문제를 더해서 안 좋은 소리가 나오게 만들 거야?”

“크흠.”

“좋아. 내가 조금 흥분했던 것 같군. 잘잘못을 가리는 건 본대로 돌아가서 하자고.”

“……헹! 뭐 그러시던지.”

어찌어찌 사태가 진정되는 듯해지자.

일행들 중 누군가가 주위를 둘러보며 질문을 던졌다.

“그럼 이대로 사람들이 올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되나?”

“이 안의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는데, 괜히 돌아다녀 봤자 좋을 건 없겠지.”

“그래도 일단 근처 정도는 둘러보는 게 어때? 뭐라도 태울 게 있나 찾아보는 것도 좋을 테고.”

실종자들을 찾기 위해 수색대가 반드시 오겠지만, 재수가 없으면 몇 시간씩 이곳에서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이렇게 젖은 상태로 계속 있는 것은 컨디션에 상당한 악영향을 줄 것이기에, 생도들은 모닥불이라도 피워서 몸을 말리자는 의견에 동의하고 주변을 탐색했다.

웅덩이 주변을 벗어나면 천장에서 스며들어오는 빛이 비치지 않기에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깜깜했지만, 순찰조 두 팀 모두 각자 랜턴을 가지고 있었기에 별문제는 없었다.

동굴 안쪽에서 나무가 자라고 있진 않을 것이기에 땔감을 얻긴 어려우리라 여기긴 했는데.

의외로 마른 이끼 뭉치나 뭔지 모를 식물 더미 같은 것들이 제법 눈에 보여, 생도들은 큰 어려움 없이 불을 피울 수 있었다.

“켁! 쿨럭! 으, 연기가 너무 독한데…….”

“젖은 옷을 말리고 체온을 유지해야 하니 참으라고.”

“위쪽 구멍으로 바깥 공기와 연결되어 있으니 질식할 염려는 없어.”

“연기가 위로 빠져나가면 본대에서 우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할 테고.”

“오! 거기까진 생각 못 했는데, 일리 있는 말이야.”

모닥불을 중심으로 둘러앉은 생도들은 몸의 물기를 말리면서 구조를 기다렸다.

멍하니 불길을 바라보며 가끔 땔감을 던져 넣는 생도들의 얼굴 위로, 그럴 리는 없지만 혹시라도 본대가 이곳을 발견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초조한 감정이 서렸다.

부스럭.

“앗?”

잡담할 기분도 들지 않아 다들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던 시간 속에서, 무언가 소리를 들은 아즐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방금 무슨 소리가 들렸어.”

“어? 혹시 위에 누가 지나가고 있는 거 아냐? 어이이-! 우린 이 아래 있어어어-!”

자신들을 찾는 수색조가 온 것인가 싶어 화색을 띤 생도 하나가, 벌떡 일어나며 큰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귀가 따가워지는 고함 소리에 미간을 찌푸리며 슬쩍 고개를 돌렸던 아즐린은, 이내 무언가를 깨닫고 깜짝 놀라 눈썹을 크게 치켜세웠다.

그녀가 감지한 소음은 아무래도 위쪽에서 들려온 게 아닌 것 같았다.

“잠깐! 뭔가 다가오고 있어!”

아즐린의 경고에 무슨 소리냐는 듯이 돌아보던 생도들이, 잠시 뒤 안색을 굳히며 다급히 무기를 빼 들었다.

타다닷!

여러 개의 가벼운 발소리가 생도들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몬스터다!”

1미터 남짓한 어린아이 같은 체구에, 쭈글쭈글한 녹색 피부로 뒤덮인 이족보행형 몬스터.

사람들에게 알려진 몬스터들 중에서 가장 흔한 종이라 할 수 있는 고블린들이, 뾰족하게 갈린 돌칼을 휘두르며 생도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쫄지 마! 고작해야 고블린일 뿐이라고!”

숫자는 다섯.

침착하게 맞서기만 한다면 생도들의 전력으로 그리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알아서 하나씩 맡아!”

“으아아!”

경험이 부족할지언정 나름대로 긴 시간 검술을 단련해 온 생도들은, 다들 혼자서 고블린 한 마리씩 쯤은 어렵지 않게 해치울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체급으로 보나, 숫자로 보나 이쪽이 우위.

갑작스레 튀어나온 몬스터에 당황했던 생도들은 곧 마음을 다잡으며 전투에 임했다.

“꺼져!”

콰드득!

베런의 칼이 달려드는 고블린을 향해 휘둘러지며, 놈의 머리를 반으로 갈라놓았다.

핏물이 솟구치며 으스러진 두개골 아래로 뽑혀 나온 눈알이 바닥을 뒹굴었다.

“죽엇!”

“이야앗!”

다른 생도들 역시 각각 검을 휘둘러, 곁으로 접근한 고블린들을 어렵지 않게 베어 넘겼다.

이윽고 몇 초 사이에 싱겁게 전투가 끝나버렸다.

“후우, 뭐야? 진짜 별거 없잖아. 하핫!”

“고블린이라…… 아무래도 불빛을 보고 다가온 것 같은데?”

“어쩌지? 불을 꺼야 하나?”

“뭔 소리야? 이깟 놈들이 무서워서 그럴 필요가 있겠어?”

자신감에 찬 생도들은 이런 고블린 정도야 몇 마리쯤 더 나타나도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했고, 굳이 불을 끄고 몸을 숨길 필요까지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칭찬할 만한 행동은 아니었다.

어둠 속에 몇 마리나 되는 고블린이 더 있을지 알지도 못하면서, 처음으로 무찌른 몬스터의 존재에 과하게 텐션이 올라 버렸다.

냉철하게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약간의 시간이 지나자 다시 한번 고블린들의 습격이 이어졌다.

이번에는 총 아홉 마리.

처음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불어난 숫자에 생도들은 잠시 움찔했지만, 여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며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별거 아니야! 뒤에서 공격당하지 않게 조원들끼리 사각을 커버하기만 하면 돼!”

“해치워 버려!”

소규모의 집단전.

수는 고블린 쪽이 많았지만, 종합적인 전투력으로 판단하자면 여전히 생도들이 우세한 상황.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는 조건만 두고 따졌을 때의 이야기였다.

‘으응? 저건…….’

피를 본 탓에 조금 흥분하여 가쁜 호흡을 내쉬던 베네트는, 고블린들 주위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결과적으로 따지자면 이 사단이 발생하게 만든 바로 그 원흉.

허공에서 벌레처럼 꿈틀대며 이동하는 영체를 발견한 것이었다.

다만 그 숫자가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하나는 아니었다.

‘으윽!? 징그러워. 왜 영체가 저렇게 많이 모여든 거야?’

수십 마리의 희뿌연 영체가 꼬물거리며, 전투가 벌어지는 이곳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일행들에게 경고를 할까 했지만.

어차피 저것을 볼 수 있는 건 자신 하나뿐이라 사정을 설명하기도 애매해서, 베네트는 입술을 달싹이기만 할 뿐 뭐라고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렇게 베네트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서걱!

“흐핫! 더러운 몬스터놈들. 생각보다 별것도 아니었잖아!”

“나 제법 강할지도? 흐흐.”

아즐린과 팀을 이루고 있던 1조의 생도 마이클과 조셉이, 아군의 진형 전면에서 고블린들을 베어 넘기며 앞쪽을 향해 나아갔다.

“아앗! 위험해!”

“앙? 무슨 소리야?”

“우릴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만약 그들이 베네트와 같은 장면을 보고 있었다면, 그녀의 경고를 우습게 들어 넘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능이 없는 두 사람의 눈에는 덤벼드는 고블린들이 그저 손쉬운 사냥감으로 보일 뿐이었고.

그들은 방금 막 본인들이 해치운 고블린과 눈앞의 고블린들이, 전혀 다를 것 없는 동일한 수준의 상대일 거란 오판을 내렸다.

덥석.

“어억!?”

덩치가 자신의 반 토막만 한 고블린이 맨손으로 검격을 잡아내는 모습에, 단칼에 적을 베어내려 했던 마이클은 순간 당황하여 멍하니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어서 마이클의 팔을 잡아당기며 달라붙은 고블린이, 그의 목을 거칠게 물어뜯었다.

“끄아악!”

“마, 마이클!”

가까이 있던 조셉이 깜짝 놀라며 마이클을 돕기 위해 다가왔지만, 그 역시 옆에서 폴짝 뛰어올라 얼굴에 매달리는 다른 고블린에 의해 발을 헛디디며 바닥을 뒹굴어야 했다.

급작스럽게 바뀐 전황에 생도들은 다들 당혹스러운 표정을 한 채 몸이 굳어졌다.

생도들 중에 유일하게 베네트 한 사람만이, 상황이 이리 돌아가게 된 연유를 알아볼 수 있었다.

‘영체들이 고블린의 몸속에 들어갔어……?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물론 그녀 역시도 눈으로 본 장면을 받아들였을 뿐, 그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된 건지는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키야아악!

케에엑!

문제가 발생했다면 빠르게 태세를 정비하고 전술적인 행동을 고려해야 옳았지만, 적들은 발이 멈춰선 생도들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귀를 따갑게 만드는 함성과 함께, 남아 있는 고블린들이 생도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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