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16화
“악명 높은 대수림으로 나간다기에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온줄 알고 기대했는데. 이거 몬스터는 코빼기도 안 보이고 영 지루하기만 하잖아. 안 그러냐?”
“괜히 위험해지는 것보다는 낫지 않아? 우린 아카데미에 입소한 지 겨우 두 달이 조금 넘었을 뿐인데.”
“겨우 두 달이 아니지! 지금의 난 입소 전의 그때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고.”
“으응. 그야 뭐, 들어오기 전에 기대했던 것보다 더 우리 교관님께서 잘 가르쳐주시고 계시긴 해. 그래도 몬스터는 위험하니까…….”
“사내자식이 패기가 이리 없냐. 플람 네가 그러니까 반 순위도 20등밖에 안 되는 거야.”
“아하하…….”
3명 단위로 전우조를 구성해 숙영지 주변을 살피는 순찰 임무 도중.
같은 조의 두 생도가 하는 이야기를 한 귀로 흘려 넘기고 있던 베네트는, 점점 크기가 커지는 음성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한마디를 쏘아붙였다.
“조용히 좀 해. 언제까지 떠들 셈이야?”
“하? 지금 조장인 내게 대드는 거냐?”
“조장이면 조장답게 모범을 보이든지. 순찰 중에 잡담은 금지인 거 몰라?”
옳은 소리였지만 본인의 잘못을 지적당했을 때 곧장 수긍하고 바로잡으려 행동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평가 순위를 2등으로 마감하며 2조의 조장을 담당하게 된 베런 레오날드는,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들지 않던 생도가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는 상황을 참고 넘기지 못했다.
“계집애가 얻다 대고 눈을 부라려? 하 참 어이가 없어서.”
“뭐? 순찰 임무에 마땅한 행동을 하라는 지적을 하는데, 거기서 내가 여자인 걸 왜 들먹이니?”
“하. 여기가 무슨 적지 한복판인 것도 아니고, 소리를 내면 얼마나 큰 소리를 냈다고 혼자 모범생인 척 굴어?”
“저, 조장. 화내지 말고 참아.”
“…….”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대의 모습에 더 말해봤자 무의미하다고 여긴 베네트는, 속으로 짜증을 삼키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리고 그걸 항복의 표시로 받아들인 베런은, 우쭐한 기색으로 굳이 더할 필요도 없는 사족을 붙여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여자애들은 항상 쓸데없이 트집이나 잡고 말이야. 힘도 없으면서 꼭 이기지도 못할 싸움에 머리를 들이민다니까.”
그냥 조용히 넘어가려던 베네트는 이죽거리는 베런의 태도를 참지 못했고, 결국 속에서 꺼내지 않으려던 말을 바깥으로 내뱉었다.
“남자니 여자니 하는 소리는 집어치우지그래? 그리 잘나신 남자라서 아즐린에게 추월당하고 질질 짰었니?”
밉살스럽게 웃던 베런의 얼굴이 순식간에 딱딱하게 굳었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역린을 얻어맞은 탓이었다.
베런은 우습게만 보던 아즐린에게 첫 평가에서 패배했었고, 이후 두 번째 평가에서 결선까지 진출했지만 또다시 아즐린에게 패하며 1등의 자리를 그녀에게 내줘야만 했다.
그 탓에 질질 짰다는 말은 크게 과장이 되긴 했지만, 당시 억울함과 치욕스러움을 느끼고 다른 생도들 앞에서 조금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다.
그 역시도 하나의 수치스러운 기억인지라, 최대한 잊으려고 그날의 일을 마음속 깊숙이 묻어두고 있었거늘.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일을 끄집어낸 베네트에게, 베런은 큰 분노를 느끼며 흥분으로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너, 이, 개…….”
베런의 손이 검자루에 얹어졌다.
사나운 기세를 흘리며 눈이 뒤집히려는 그의 모습에, 베네트 역시 안색을 굳히고 전투에 대비하는 자세를 잡았다.
중간에 끼인 나머지 생도 플람이, 크게 당황하며 손을 흔들었다.
“뭐, 뭐 하는 거야? 둘 다 진정해!”
현장실습에 나온 생도들은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연습용 철검 대신, 품질은 그리 좋진 않지만 제대로 날을 세운 롱소드를 지급받아 소지한 상태다.
칼부림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몸에 멍이 드는 정도로 끝나지 않는 상황.
일촉즉발의 상태로 서늘한 살기를 흘리던 두 사람은, 이내 약속이라도 한 듯 검에서 손을 떼고 서로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쯧.”
“흥.”
아무리 열이 올랐다고 해도 이런 곳에서 다툼을 벌였다가는, 상당한 징계를 받을 거란 걸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베런은 돌아가면 저년에게 반드시 응징을 가하겠다고 생각하며 화를 억눌렀고, 베네트 역시 굳이 더 상대를 자극할 마음은 없기에 사태가 악화되지 않도록 행동했다.
‘정말로 싸우면 피해를 입는 건 내게 될 테고…… 하아! 그냥 참을 걸 괜히 발끈한 걸까.’
살얼음이 생길 듯이 냉랭한 공기 속에서 순찰을 계속 진행하면서, 베네트는 아즐린을 언급했던 자신의 말을 되돌아보며 울적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베런의 속을 뒤집으려고 꺼낸 말이긴 하지만, 반대로 스스로에게 데미지를 입히는 말이기도 했다.
한순간에 저 위로 날아오르게 된 아즐린과 달리, 똑같이 교관의 특별 수업을 받는 자신은 실력에 큰 변화를 못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아즐린처럼 1등이 되는 정도까진 바라지도 않지만…… 나는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 걸까? 그냥 나도 아즐린과 똑같은 검술을 배울 수는 없었던 거야?’
이런저런 교관의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을 완전히 납득하기는 어려웠다.
대인전과는 다른 상황에서 특별한 효력을 낼 수 있을 것이라 듣긴 했지만, 기왕이면 순위를 나누는 아카데미의 평가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아아- 나도 빠르게 강해지고 싶은데.’
“어? 조장. 그쪽은 우리 순찰 구역이 아닌데?”
“시끄러. 어차피 이제 곧 교대시간이니까, 마지막으로 넓게 한번 돌아보려는 거다.”
“으응. 그렇구나.”
앞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살짝 멍해져 있었던 베네트는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살폈다.
교관님이 지정해 준 2조 인원들의 순찰범위에서 조금 벗어난 구역.
당황한 베네트는 곧바로 조장인 베런을 바라보았고, 마침 옆으로 고개를 돌리던 베런은 그녀와 눈을 마주치고는 삐딱한 태도로 입을 열었다.
“왜? 또 불만이냐?”
“……딱히.”
할당된 구역을 벗어나긴 했지만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조의 구역과 살짝 겹치는 방향이다.
이 정도는 특이사항이 발생할 경우 조장의 재량껏 순찰범위를 임시로 확장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세세히 따지자면 규율을 어기는 짓은 아니었다.
괜히 또다시 말싸움을 하다가 감정이 상하는 순간을 마주하고 싶진 않다는 생각이 들어, 베네트는 이번에는 굳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그냥 얌전히 베런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몇 분을 움직였을 때였다.
“아앗?”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무언가를 발견한 베네트가, 자신도 모르게 입으로 소리를 내뱉었다.
“뭐야!?”
“뭐가 있어?”
흠칫하며 놀란 베런과 플람이 경계태세를 취하며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저쪽의 둔덕진 곳에…….”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입을 열던 베네트는, 이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말꼬리를 흐렸다.
자신이 가리키는 그것이,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임을 자각했기 때문이었다.
‘뭐가 움직인다 싶었더니 영체였잖아. 이런 숲속에도 저게 있구나…….’
여태까지 사람들이 생활하는 공간 안에서만 눈에 띄곤 했었는데.
이런 외지로 나온 경험이 애초에 드물기도 했지만, 아무튼 도시 바깥에서 영체를 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뭔데?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저쪽에 뭐가 있었어? 베네트?”
베네트는 재차 질문을 던지는 조원들에게 뭐라고 말해야 좋을지 고민했다.
그냥 잘못 본 것 같다고 말해도 상관없겠지만, 저 짜증 나는 조장 베런이 또 뭐라고 비꼴 것 같아서 바로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러던 도중.
‘앗? 안으로 들어갔어?’
꾸무럭거리며 움직이던 영체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움직이더니, 덩굴로 무성하게 뒤덮인 흙더미 속을 파고들어 사라졌다.
영체가 저렇게 이동하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이었기에, 베네트는 깜짝 놀라서 눈을 크게 치켜떴다.
“그, 잠시만.”
흙과 잡초들만 무성한 특별할 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자리였지만, 베네트는 문득 저 안쪽에 무언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럽게 그쪽을 향해 다가갔다.
다른 두 생도가 그런 베네트의 행동에 의문을 품고 지켜보던 가운데.
영체가 스며든 경사진 땅을 살펴보던 베네트는, 검을 뽑아 흙 위를 뒤덮고 있던 덩굴들을 베어냈다.
“엇!?”
“뭐야? 짐승굴인가?”
덩굴을 잘라내자 사람 하나쯤은 들어갈 수 있어 보이는 구덩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베런과 플람이 놀란 표정을 숨김없이 드러내며 곁으로 달려왔고, 베네트 역시 자신의 발견물에 놀라서 입을 살짝 벌렸다.
“비켜 봐!”
가까이 다가온 베런이 베네트를 슬쩍 밀치며 구덩이 안쪽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윽? 이게 무슨 냄새야?”
탁한 공기와 함께 영 좋지 못한 악취가 흘러나왔다.
야생동물이 생활하는 공간이라면 특유의 누린내가 나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만, 안에서 나는 악취는 단순히 짐승에게서 맡을 수 있는 그런 냄새가 아닌 것으로 느껴졌다.
“야! 랜턴 줘봐.”
“어, 응.”
플람에게서 순찰 임무의 지급품 중 하나인 랜턴을 넘겨받은 베런은, 등 안에 담긴 양초에 불을 붙이고 구덩이 안쪽을 향해 불빛을 비추어 보았다.
이윽고 생도들은 이 굴이 어디까지 이어진 것인지 바깥에선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깊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거…… 혹시 그건가? 고블린 소굴?”
“오! 맞아. 고블린들은 땅굴을 파고 살기도 한다고 배웠었지. 몬스터의 둥지는 냄새가 지독하다고 했으니, 확실히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
“대단해 베네트. 이걸 어떻게 찾은 거야?”
“아…… 그냥 뭐…….”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었던 베네트는 대충 얼버무리며 자세한 설명을 삼갔다.
“와! 아무튼 대박인데? 우리가 돌아보는 구역은 다 교관님께서 사전에 먼저 정찰을 마친 장소들이잖아.”
“어, 그렇지.”
“교관님도 발견하지 못한 걸 찾아내다니. 이 정도면 이번 실습평가에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거 아닐까? 조장이 보고할 때 잘 말해봐.”
“흠. 그야 뭐.”
“잘됐네, 베네트! 최고 공로자니까 교관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겠다.”
“아, 응.”
“…….”
안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순찰 임무 중에 이런 특이점을 발견한 것만으로도 확실히 공적을 세웠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최초 발견자인 베네트의 공을 인정하고 추켜세워 주기엔 아까의 일로 사이가 크게 틀어진 탓에, 베런은 떨떠름한 얼굴로 그냥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럼 돌아가서 보고를-”
“응? 뭐야 너흰? 2조 아냐?”
“어라, 이쪽에서 뭘 하는 거야?”
후방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2조의 인원들이 거의 동시에 몸을 돌렸다.
수풀을 헤치며 다가오는 인원들이 눈에 보인다.
자신들과 같은 순찰 임무 중인 다른 조의 생도들.
문득 이곳이 본래 2조가 담당하는 구역이 아니라는 사실이 베런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런 젠장.”
게다가 하필이면 상황이 얄궂게도 나타난 인원들은 1조의 생도들로, 아까 전 베런과 베네트가 다투며 언급했던 아즐린이 포함된 순찰조였다.
“여긴 우리 구역인데.”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아즐린을 눈에 힘을 주고 쳐다보며, 베런은 씹어뱉듯이 거친 어투로 그녀의 말에 대꾸했다.
“어차피 곧 복귀할 거라 그냥 좀 넓게 살펴봤다. 뭐 불만 있어?”
“굳이 남의 구역으로 넘어온 의도가 궁금할 뿐이야. 그리고 그건 뭐지?”
“큭. 이건…….”
뒤편에 있는 땅굴을 가리키는 아즐린의 손짓에 인상을 구기며 입을 다문 베런은, 잠시 고민하다가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발을 들였다.
“베런? 어이 잠깐!”
“조장!? 특이사항이 발생하면 따로 조치하려 하지 말고 곧바로 복귀해서 보고를 하라고-”
“시끄러워! 자세한 보고를 위해 안쪽을 조금만 살펴보려는 거야!”
뭐가 있을지 모르는 동굴에 깊숙하게 들어갈 생각까진 아니었다.
그저 자신들의 공을 다른 조와, 특히 반에서 가장 싫어하는 상대인 아즐린과 나누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베런은 랜턴을 들고 충동적으로 구덩이 안쪽을 향해 뛰어들어 갔다.
‘원래 우리가 담당하는 구역이 아니니까, 자칫하면 1조 녀석들이 숟가락을 걸치려고 들지도 모르잖아. 그렇게는 안 되지, 암!’
단순히 수상한 장소를 발견했다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좀 더 명확한 정보를 가지고 보고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베런은 뒤에서 자신을 만류하는 음성들을 무시하고, 동굴 안으로 성큼성큼 진입했다.
그리고 그렇게 막 베런이 몇 걸음을 들이민 것과 동시에.
쿠구구궁!
“잠깐, 바닥이-”
“어엇!?”
“피해!”
흙먼지가 피어오르며 갑작스레 지면이 흔들리는가 싶더니, 생도들이 서 있던 구덩이의 입구 주변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