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13화
마스터
“교관들 사이에서 요즘 별로 좋지 않은 소문이 돌더라.”
식사 자리에서 함께 점심을 먹던 닐슨이 내뱉은 말에, 칼릭스는 수저를 내려놓고 표정으로 의문을 드러내 보였다.
“그 뭐랄까, 네가 여성 생도들에게 음흉한 짓을 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던데.”
“제가요? 별 시답잖은 소문이 다 도는군요. 애당초 교관들 중에 저와 교류하는 사람이라곤 선배님이 전부인데, 제 이야기가 언급된다는 것부터 이상하네요.”
“교류라고 하긴 그렇지만 너한테 신경 쓰는 녀석이 나 말고 한 놈 더 있긴 하잖냐.”
“아.”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얼굴에 칼릭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다물었다.
‘에드거 교관인가. 그러고 보니 저번에도 비슷한 소리를 듣긴 했었지.’
아즐린을 지도하는 일로 트집을 잡으며 시비를 걸어왔던 에드거.
무승부라 말은 했지만 사실상 패배를 안겨주며, 알아서 찌그러질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런 이야기가 다시 나오는 걸 보아하니, 아무래도 다른 교관들 사이에서 입을 지저분하게 놀리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아즐린에 이어 베네트를 가르치게 된 것이 알려졌나 본데, 그걸 가지고 또 엄한 소리를 떠들어대다니. 한심한 인간. 대체 어디까지 치졸해지려는 건지.’
“나야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이들은 마냥 헛소문이라 여기기도 어려운 게, 네가 ‘특별관리’를 하는 생도는 전부 여자애들인 것 같던데 말이지.”
“제가 따로 지도하는 애들이라고 해봐야 두 명이 전부입니다만.”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이야기를 늘어놓는 닐슨을 향해, 칼릭스는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특별히 가르쳐 볼 만한 생도 두 명이 마침 여성이었을 뿐인데, 그런 소문이 돈다니 조금 억울하군요.
“그렇게 말해도…… 애초에 여자애들은 수가 많은 편도 아니고, 남자애들보다 우수한 성적을 내기도 어려운 게 이 바닥 아니냐.”
전투와 관련된 직종은 아무래도 평균적으로 따졌을 때 여성보단 남성이 유리하다 보니, 당연하게도 생도들의 남녀 성비 역시 고르지가 않았다.
한 반에서 여성 생도의 수는 많아 봐야 5명 정도.
그들 중에서 교관의 눈에 들 만큼 성적이 우수한 생도가 나올 확률은 더더욱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런 와중에 칼릭스는 두 명의 여성 생도들만 데리고 개인 지도를 시행하고 있으니, 아니라고 말해도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나올 법하기는 했다.
‘쯧. 이곳에서의 평판 따위는 딱히 어찌 되어도 상관없지만, 그래도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긴 하군.’
표정이 썩어 있는 칼릭스를 보며, 닐슨은 뒤통수를 벅벅 긁고는 마저 말을 이어갔다.
“혹시 에드거 그 인간하고 무슨 일 있었냐? 대놓고 네 평판을 깎아내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느낌이던데.”
“뭐…… 저를 못마땅해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지 않습니까. 사실 얼마 전에 시비를 걸어오기에, 살짝 손을 봐주긴 했었습니다만.”
“네가 에드거를? 어떻게…… 설마 전에 이야기한 오러하트의 부상을 벌써?”
눈을 크게 뜨며 묻는 닐슨에게, 칼릭스는 가볍게 손사래를 치며 대답해주었다.
“아뇨. 아직 완치되려면 몇 개월은 더 걸릴 것 같습니다만, 상대의 방심을 틈타 한 방 먹일 수는 있었지요. 그때 망신을 조금 줬더니 이를 갈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 일이 있었나. 그렇다면 이해가 가긴 하네. 그럼 역시 이건 에드거 놈이 퍼뜨린 헛소문이겠군.”
“……아까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한다더니, 설마 선배님도 제 행실을 의심하고 있었던 겁니까?”
눈을 가늘게 뜨며 차가운 어조로 내뱉는 말에, 닐슨은 살짝 당황하며 칼릭스의 눈을 피했다.
“아니 뭐, 나 같은 아저씨들에 비하면 너는 아직 젊은 나이이고…… 생도들이 아직 어설프긴 해도 성인식은 치른 녀석들이니, 뭔가 뜨겁고 거시기한 반응이 일어날 수도 있는 게…… 꼭 의심했다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그렇잖냐.”
“후우. 실망입니다 선배님.”
“뭘 또 실망까지…… 그래, 내가 미안하다…….”
자신의 눈치를 보며 쩔쩔매는 닐슨에게서 눈을 돌리고, 칼릭스는 조금 전의 이야기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불쾌한 소문이긴 한데, 거기에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당장 무슨 움직임을 보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본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사라질 소문일 뿐이다.
‘4개월 차에 행해지는 중간평가 시기가 오면, 내 교육의 우수성이 알려질 테니.’
매달 치르는 월말평가도 생도들에게 큰 관심사이긴 하지만, 아카데미의 학과일정에는 그보다 더 중요한 이벤트가 몇 가지 존재했다.
그중 가장 가까운 시기의 일정이 바로 입소 4개월 차에 치러지는 중간평가.
생도들끼리의 대전을 통해 성적 순위를 정하는 방식은 월말평가와 동일하지만, 중간평가는 기존의 월말평가와 다르게 각 반에서 대표들을 선출해 시합을 하는 반대항전의 형식이다.
무공의 지식 덕분에 교육의 질이 다른 반보다 월등히 올라간 자신의 반이라면, 학부 차원에서 상당한 지원을 받게 되는 최우수반에 선정되는 것도 기대해 볼 만했다.
그렇게 되면 그와 생도들을 둘러싼 이런 추문 따위는 순식간에 사라지게 될 터.
그리고 혹시나 중간평가 이전에 지금의 추문을 문제 삼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해도, 크게 상관은 없었다.
‘만약 학부장이 나를 호출해서 해명을 요구한다면, 아즐린의 실력을 직접 보여주는 걸로 해결할 수 있을 테니.’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여 우수생도라는 말에 어울리는 실력을 갖추게 된 아즐린이라면, 부적절한 남녀관계의 논란을 잠재우기에 충분한 증거가 될 테니 문제는 없으리라 본다.
다른 한 명인 베네트는 아즐린과 달리 우수생도라 하긴 어렵지만, 특별 수업에 참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적당히 넘어갈 수 있을 테고.
“어엇? 학부장님?”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앞에 있던 닐슨이 놀란 목소리로 커다란 기척을 낸 탓에, 칼릭스는 상념에서 깨어나 눈을 깜박거렸다.
‘학부장?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더니.’
에드거가 퍼뜨렸다는 소문의 대응으로 학부장과 면담 자리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었는데.
설마 진짜로 학부장이 직접 자신을 찾아오기라도 한 걸까 싶어, 칼릭스는 닐슨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데 시야에 들어온 인물의 얼굴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엇? 저분은……?’
학부장은 학부장인데, 2군 학부장이 아닌 1군 학부장이었다.
주변의 공기가 적막하게 가라앉았다.
같은 아카데미라는 틀에 묶여 있긴 하지만, 1군과 2군 사이에는 쉬이 바라보기도 힘든 격차의 벽이 놓여 있다.
이는 단순히 생도들뿐 아니라, 교관들 사이에도 통용되는 이야기다.
단적인 예로 2군에서는 상급교관들 사이에서나 기사 출신들을 찾아볼 수 있지만, 1군은 하급교관들조차도 전원 기사 출신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신분과 실력 어느 쪽으로 보아도, 1군의 생도와 교관들 쪽이 2군보다 월등히 높은 이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다.
그런 1군 학부를 총괄하는 책임자인 학부장의 등장에, 2군 학부의 교관들은 긴장감을 드러내며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1군 학부장이 왜 2군 학부에 온 거지?’
애초에 1군과 2군은 공간이 나뉘어져 있기에 서로 마주칠 일도 드문 편이다.
2군의 교관들이 이용하는 간부식당에 1군 학부장이 무슨 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인지 다들 의아해하는 가운데.
모두의 주목을 받고 있던 그가, 천천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칼릭스와 닐슨이 있는 방향 쪽이었다.
“뭐, 뭐야. 저 양반이 왜 이리로 오지? 칼릭스? 너 혹시 진짜 무슨 사고를 친 거 아냐?”
“……글쎄요. 짐작 가는 구석이 없습니다만.”
다가오는 1군 학부장에게로 시선을 고정한 채, 칼릭스는 소름이 돋아난 팔뚝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칼릭스 또한 1군 학부장을 보며 긴장감을 감추지 못했다.
다만 그가 긴장하는 이유는 남들과는 확연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기억들이 멋대로 뛰쳐나와 몸을 움직일 것만 같군. 이건…… 호승심이라고 해야 하나.’
1군 학부장 알론드 프리즈먼.
60을 넘어 70의 나이를 바라보는 고령의 노인.
하지만 그의 앞에서 노쇠를 언급할 수 있는 인물은, 적어도 아카데미 안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왕국 전체를 통틀어도 열 명을 넘지 않는,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기에.
인간의 한계에 도달했다고 말해지는 소드 마스터의 칭호를 가진 노검사를 마주하며, 칼릭스는 긴장과 흥분으로 몸이 떨려오는 것을 느꼈다.
‘내가 가진 무공으로 마스터와 실력을 겨룬다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절로 떠오르는 상상.
아직은 오러하트의 손상을 회복하지 못한 몸이기에, 결과는 당연히 필패일 것이다.
하지만 딱 한 수의 교환이라면 어떨까.
찰나의 순간에 수백 가지의 검식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저분과 내가 뜬금없이 검을 섞게 될 일이 발생할 리야 있겠느냐마는.’
그래도 혹시나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가정한다 치면.
첫수를 교환하는 단 한 순간뿐일지라도, 지금의 자신이라면 마스터를 상대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지 않을까?
목구멍을 간질이는 갈증과도 같은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칼릭스는 복잡한 심경 속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1군 학부장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