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12화
유령을 보는 소녀
“그게 무슨 말이지?”
묘한 말을 꺼내는 생도를 보며, 칼릭스는 이야기나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그러니까 일반적인 생물체는 아닌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혹시 요정 같은 건가 싶어 어릴 때 어머니께 말하고 나서, 크게 혼이 나는 바람에 그 뒤로는 봐도 모른 척 지내오긴 했습니다만…….”
잠깐의 질의응답이 이어진 후.
칼릭스는 굳은 얼굴이 되어 심각한 기색으로 생각에 잠겼다.
‘영능이로군.’
그쪽으로는 그다지 견문이 없지만, 어찌어찌 주워들어서 아는 지식이 약간 정도는 있다.
영능, 영적인 존재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
그다지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영능은 일반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삶에 불편함과 여러 가지 지장을 줄 뿐인 능력이기에.
‘영능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라고 해봐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네크로맨서 정도인가.’
영혼과 시체를 다루는 사령술사.
알펜시아에서는 그런 흑마법 관련 단체의 활동을 일단은 공인해 주고 있지만, 몇몇 국가에서는 네크로맨서를 범법자로 취급하며 기피하곤 한다.
워낙에 범죄와 자주 연루되는 직업군이라 이해하지 못할 일도 아니었다.
아무튼 기사 아카데미의 생도가 영능을 재능으로서 써먹을 만한 일은, 사실상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오히려 해가 되면 되었지. 후우…… 곤란하군.’
영능을 지닌 자는 관련된 교육을 받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어떠한 문제들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흑마법사가 된 사람들은 대부분 처음부터 그쪽 일이 좋아서 진로를 정하는 게 아니다.
영적인 존재와 잘못 얽히게 되면 미치광이가 되거나 주변인들과 심각한 마찰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기에,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관련 직종에 투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무림의 기억에도…… 주화입마란 것이 있지.’
흔히들 심마에 빠진다고 말하는데, 영능이 발달된 사람은 아무래도 그런 쪽의 문제와 연관이 되기 쉽다.
사람이 갑자기 성격이 이상해지고, 평소라면 있을 리가 없는 문제들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여태까지는 자아조차 없는 잡귀나 몇 번 발견한 모양인데. 혹시 나중에 위험한 영체형 몬스터와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커다란 사고를 치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이 아카데미에 남아 있는 동안 그런 트러블이 발생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자신이 가르치는 생도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뭔가 조치를 취하긴 해야 할 텐데.
“저, 제가 본 것들이 동화에 나오는 요정이나 정령 같은 존재였을까요? 사실 여기 오기 전에 정령사를 만나 제가 그쪽 재능이 있는지 확인해 보려고 했는데, 워낙 희귀한 사람들이라 그런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본인이 어떤 문제를 품고 있는지도 모르고, 칼릭스의 눈치를 살피며 재잘재잘 떠들어대는 베네트.
칼릭스는 지끈거려오는 미간을 꾹꾹 누르며 대답했다.
“아니, 정령은 무슨. 굳이 따지자면 유령이겠지.”
“헉!?”
“흣!”
유령이라는 소리에 베네트는 물론이고 곁에서 듣고 있던 아즐린도 흠칫하며 놀란다.
본디 귀신같은 존재를 두려워하지 않는 대담한 인간은 드물기 마련이니, 이해할 수 있는 반응이었다.
어쨌거나 베네트의 이야기에 칼릭스로서는 꽤나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정을 말해주고 알아서 해결하라며 모른 척하기엔 꽤나 찜찜한 문제로군.’
그래도 자신에게 검술을 배우고 있는 생도인데, 영능이 있으니 가서 흑마법이나 배워보는 건 어떠냐고 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니면 아예 신을 모시는 종교에 귀의하여 평생 신성력을 통해 영능을 봉인한 채 살아야 하는데, 그것 또한 가볍게 추천하기에 좋은 방법은 아니었다.
‘현실적으로는 결국 두 번째 방법을 선택하는 게 정상이겠지만…… 마침 내게 세 번째 방법이 있긴 하단 말이지.’
기억 속 무공 중에 정신을 굳건히 하며 마음을 다스리는데 특화된, 도가나 불가 쪽의 심법이 존재하긴 했다.
그런 심법을 익힌다면 영능이라는 검사에겐 하등 쓸모없는 능력을,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억누르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 그러고 보니 그게 전부가 아니군. 영능을 마냥 억누를 게 아니라, 활용하는 방법이 딱 하나 있었어.’
베네트를 어찌 처리하면 좋을까 생각하며 잠시 무림의 기억들을 살피던 칼릭스는, 어떠한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 헛웃음을 흘렸다.
영능을 활용할 수 있는 무공이 있긴 했다.
구파일방이라고 칭하는 명문정파의 대표격인 문파들.
그중 맏형의 위치에 해당하며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이나 여승들로만 이루어진 아미는, 불교라는 종교에 뿌리를 둔 문파이다.
그 외에도 무당이나 곤륜, 공동과 종남 등등.
불교와는 또 다른 종교인 도교의 가르침을 따르는 문파만 해도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승려와 도사들은 우리 세상의 신관들과는 여러모로 다른 존재이긴 하지만, 그곳에도 구마나 축귀에 관한 비술들이 엄연히 다뤄지니까.’
그리고 마침 재미있게도 칼릭스의 머릿속에는, 그쪽 방면으로 정점에 도달했다 해도 과언이 아닌 누군가의 기억이 존재하고 있었다.
정각이라는 법명을 지녔지만, 그보다는 괴승이라는 별호로 자주 불리던 소림의 한 승려.
‘영능을 지닌 존재나 다룰 수 있는 도술이나 주술 같은 것을, 무공과 접목시켜 완전히 새로운 성질의 무공을 창안한 인물. 그 무공이 전투술로서의 가치가 뛰어나다고 하긴 어렵지만…….’
베네트와 마찬가지로 영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부모의 버림을 받아 어려서부터 절에 맡겨져 자라난 괴승.
그는 그런 자신의 타고난 능력 때문인지, 요괴나 귀신의 존재에 대해 다른 이들보다 유달리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젊은 시절부터 여러 가지 기행을 일삼다가 나름대로 불법에 통달한 고명한 스님으로 자라난 괴승은, 불가의 술법 외에도 여러 도가 문파들을 돌아다니며 사이한 존재들을 퇴치하는 도술에 대한 공부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말년에는 결국 그런 학문들과 소림에서의 배움을 종합하여, 하나의 무공을 창안하기에 이르렀다.
특이하게도 소림에서는 그다지 잘 다루지 않는 무기인, 검으로 펼쳐내는 무공이었다.
이름은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복마검법.
마를 굴복시킨다는 의미의 복마검법은 이미 같은 이름을 지닌 무공이 다른 문파에도 존재하긴 했지만, 그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일은 없었다.
인간이 아닌 존재를 상대하는 괴승의 복마검법은 그저 기록으로만 남겨지고, 아무에게도 전수되지 않은 채 사장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이 세상에서…… 아니, 어쩌면 무림을 포함해도 오직 나만이 그 무공의 모든 것을 알고 있겠군.’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지.
영능을 타고난 검사가 익히기에 적합한 유일한 검술을 알고 있는 자신 앞에, 마침 그 무공을 배울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생도가 나타났다.
이 정도면 운명이라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베네트.”
“으으…… 내가 본 것들이 정령이 아니라 유령이었다니…….”
“이봐.”
“헙! 예, 교관님!”
큰 충격을 받았는지 눈이 맛이 가버린 베네트가, 칼릭스의 부름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뭐라도 특이한 점을 내세워 흥미를 끌 수 있을까 싶었는데. 유령 보는 여자라니, 재수 없으니 꺼지라는 소리나 듣겠구나.’
그렇게 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던 베네트는, 교관에게서 의외의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예?”
“앞으로 아즐린과 함께 추가 수업에 참석하라고 했다.”
“저, 정말입니까?”
“그래. 다만 아즐린과는 다른 종류의 검술을 배우게 될 거다.”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 베네트의 모습에, 칼릭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의사를 표했다.
‘괴승의 복마검법이 과연 우리 세계에서는 어떤 효능을 보일 수 있을지 궁금하군.’
귀신과 요괴, 온갖 이매망량들을 제압하기 위해 창안된 괴승의 복마검법.
그게 과연 이곳의 몬스터들에게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겼다.
다만 괴승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요체를 전부 파악하고 있음에도, 복마검법은 칼릭스가 직접 완벽하게 재현해 낼 수는 없는 무공이다.
기본적으로 영능의 각성을 필요조건으로 삼는 무공이었기에.
여러 조건이 겹치며 결국 이것도 인연이겠다 싶었던 칼릭스는, 베네트를 아즐린과 마찬가지로 특별 지도 대상으로 삼아보기로 결정했다.
“감사합니다! 뭐든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폴짝거리며 기쁨을 표하는 베네트.
그리고 그런 베네트를 바라보며, 곁에 있던 아즐린은 살짝 못마땅한 기분이 들었다.
‘뭐야. 몰래 따라와서 이상한 소리나 하다가 교관님의 선택을 받게 되다니. ……설마 내가 익히는 것보다 더 대단한 검술을 배우게 되는 건 아니겠지?’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이 칼릭스에게 개인 지도를 받는 유일한 제자였는데.
칭찬을 받으며 들떴던 감정이 점점 차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철이 들고 나서 처음으로 받아본 인정을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게 될 것 같아, 괜히 마음속이 어두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기분을 겉으로 내색했다가 교관을 언짢게 만들기라도 하면 본인만 손해라 여겼기에.
‘더 열심히 해서 배운 것들을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해. 교관님이 만족하며 내게 더 신경을 쓰시도록…….’
대신 아즐린은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몰아붙여야 한다는 다짐을 속으로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