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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9화 (9/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9화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길이고 하니 여기가 딱 적당하겠지. 괜히 생도들 눈에 띄기라도 하면 자네도 체면이 상하지 않겠나? 푸하핫!”

이미 자신의 승리를 확정 지어 말하는 에드거의 태도에, 칼릭스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얼굴로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알았으니 그만 떠들고 시작합시다.”

“……흐음. 그럼 바로 시작하지.”

이상할 정도로 담담한 칼릭스의 표정에, 기분이 상한 에드거는 콧잔등을 씰룩거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폐품 주제에 꼴에 자존심은 있다고 여유로운 척하는군. 하지만 과연 땅바닥을 뒹굴면서도 그런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까?’

기사들이 결투를 벌이기 전에 행하는 예식을 간략하게 치르고, 에드거는 곧바로 칼릭스를 향해 걸음을 내디디며 힘차게 검을 휘둘렀다.

부웅!

쇠붙이가 공기를 가르며 강맹한 위력이 담겼음을 짐작하게 만드는 소리가 발생한다.

전신으로 오러를 퍼뜨려 운용하며 휘두르는 일격이었다.

교내에서는 교관들도 생도들처럼 날을 세우지 않은 훈련용 검을 사용하지만, 기사 출신인 에드거의 검격은 예리함이 없어도 사람을 때려죽이기에 충분한 파괴력이 깃들어 있다.

위협적인 소리와 함께 얼굴을 향해 날아드는 검에, 칼릭스의 눈살이 살짝 찌푸려졌다.

‘일부러 눈에 띄는 상처를 만들 속셈이군.’

맞추기 쉬운 몸통 대신 굳이 얼굴을 노리는 것만 봐도 의도가 뻔했다.

옷에 가려지는 몸통이 아니라 노출되는 부위에 부상을 입혀, 다른 사람의 앞에 설 때마다 수치심을 느끼게 할 생각일터.

머리는 중요한 급소인 만큼 어떤 검술이든 기본적으로 머리의 가드를 단단히 하기 마련이지만, 상대는 자신이 오러를 사용할 수 없다고 알고 있으니 힘으로 방어를 뚫고 상처를 입힐 생각일 것이다.

물론 상대의 꿍꿍이대로 당해줄 생각 따윈 전혀 없었다.

에드거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호흡을 가다듬던 칼릭스는, 타이밍에 맞춰 검을 움직여 다가오는 공격을 튕겨냈다.

오러를 사용하지 않아 비교적 느리고 약한 검격.

그렇지만 상대방의 동작을 읽고 정확한 순간에 검로의 결을 찌를 수 있다면, 부족한 힘으로도 충분히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

“엇?”

별것도 없어 보이는 칼질에 자신의 공격이 맥없이 흘려 나가자, 놀란 표정으로 움찔하며 잠시 멈춰선 에드거가 눈을 부릅뜨며 재차 연격을 가해왔다.

그러나 결과나 달라지지 않는다.

캉. 카각. 까가강.

검과 검이 서로를 긁고 긁히며 주변으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칼릭스는 하품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너무 수준이 떨어져서 상대해 주기도 힘들군. 에드거, 이렇게나 시시한 남자였었나.’

오러로 신체를 강화하지 않았음에도, 오로지 검술의 테크닉 하나로 오러 익스퍼트와 대등한 싸움이 가능했다.

에드거가 비록 은퇴한 기사로 전성기가 지난 실력이라곤 하지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무림의 기억으로 인한 간접경험 때문에, 검술에 대한 내 이해의 폭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발전한 탓이겠지.’

솔직히 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아즐린에게 검법 시연을 했을 때처럼, 일시적으로 오러를 운용하여 무공을 펼쳐서 에드거를 제압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예상했었다.

한데 이제 보니까 오러를 아예 활용하지 않아도, 자신의 실력은 순수한 검술만으로 익스퍼트를 상대함에 있어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어째서 내 공격이 전부 막히는 거야!?’

에드거의 입장에선 미쳐 버릴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그가 구상했던 그림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카강! 끼기긱!

검이 부딪히는 소리가 점점 거세져 간다.

그러나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격렬하게 검을 휘두르며 달라붙는 에드거와 달리, 칼릭스는 그와의 간격을 여유롭게 밀고 당기며 평온한 모습으로 검격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쨍!

상대의 검격을 받아내던 칼릭스의 검 윗부분.

약 삼 분의 일에 달하는 검신이 깨져 나가며, 교착된 전투에 변수가 생겨났다.

실전이 아닌 대련이기에 사고가 생겼다면 멈춰야 정상이지만, 에드거의 검은 그대로 칼릭스의 눈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한줄기 핏물이 칼릭스의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위협을 느낀 칼릭스가 재빨리 몸을 꺾으며, 칼날이 뺨을 스치고 지나간 것.

자세가 흐트러진 칼릭스를 보며 에드거의 눈에 스산한 살기가 서렸다.

이대로 한 번 더 검을 움직여 놈을 베어버린다면 어떨까.

하지만 찰나의 고민은 실행될 수 없었다.

부러진 탓에 짧아졌지만 대신 뾰족하게 각이 생긴 칼릭스의 검 끝이, 그의 턱 밑에 닿아 목을 겨누고 있었기에.

“에드거 교관. 오러 소드는 사용하지 않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질책의 의미를 담아 들려오는 말에, 에드거는 애써 표정을 풀며 자신의 검을 되돌렸다.

“아, 이것 참. 내가 실수를 했군. 미안하네. 대련은 무승부로 치고 여기까지 하세.”

“……무승부라.”

검을 내리며 물러서는 에드거의 말에, 칼릭스는 헛웃음을 흘리며 자세를 풀었다.

그가 처음의 규칙을 어기고 검에 오러를 불어넣은 탓에, 자신의 검이 충돌을 견디지 못하고 깨져 버렸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살초나 다름없는 공격까지 가한 주제에, 패배를 인정하지도 않고 무승부를 운운하다니.

능청스러운 것도 이쯤 되면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온다.

‘쯧. 이쪽에서 목숨을 살려준 것도 모르고.’

사실 위험을 느꼈을 때 거의 반사적으로, 오러를 사용해 반격하는 검초를 펼칠 뻔했었다.

평소에는 방대한 무림의 기억에 잠식되어 혹시라도 스스로를 잃게 될까봐 의식적으로 구분을 두고 있지만, 목숨이 위험한 순간에 동화가 깊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만일 칼릭스가 가까스로 본인의 몸을 통제를 하지 않았다면, 눈 한번 깜박할 사이에 에드거의 머리는 바닥으로 떨어졌을 것이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이른 존재들의 검식이란 것은, 그렇게 찰나의 순간 생사를 가르는 것이기에.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저런 별것 아닌 인간에게 심력을 낭비하는 건 이쯤 하도록 할까.’

아직 오러하트의 부상이 완치되려면 시간이 필요하기에, 변화한 자신의 진면목을 가능한 한 타인 앞에서 드러내지 않는 편이 좋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사실 에드거와의 대련도 피하는 편이 좋았겠지만.

그래도 이번 일로 괜히 이상한 소문이 퍼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차피 오러도 사용하지 못하는 내게 순수한 검술로 밀렸다는 사실을, 본인 입으로 남들에게 떠들고 다니진 못할 테고.’

잠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본 칼릭스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에드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굳이 가치도 없는 싸움의 결과에 연연할 마음은 없으니, 승리를 주장하며 에드거와 더 말을 섞고 있을 필요가 없었다.

“좋습니다. 무승부로 하지요.”

“……으음. 그, 그래. 그런데 자네, 뭔가 많이 변했군. 혹시 오러하트의 부상을 회복한 건가?”

그래도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긴 하는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질문하는 에드거를 보며, 칼릭스는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듯 뚱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제가 오러를 쓰지 않았다는 건, 직접 검을 맞댄 본인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혹시 벌써 오러에 대한 감응력이 무뎌지신 겁니까?”

“그…… 크흠, 그냥 해본 말이었네. 실력이 전보다 좋아졌던데, 그래도 아직 젊어서 그런지 그런 몸으로도-”

“그럼, 볼일도 끝났으니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보기만 해도 이가 갈리는 인간이었으나, 격차를 직접 확인하고 나니 그를 마음에 담아두는 일조차 아주 하찮게 느껴졌다.

주절거리는 에드거의 말을 자르고, 칼릭스는 가볍게 목례한 뒤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렇게 칼릭스가 떠나간 자리를 노려보며.

“빌어먹을…… 내가 저따위 퇴물을 이기지 못했다고?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지…….”

상급교관 에드거는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치욕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했다.”

“하으…… 가, 감사합니다.”

평소와 같은 특별 수업이 끝난 후.

기진맥진하여 바닥에 주저앉아 숨을 몰아쉬던 아즐린이, 애써 호흡을 정리하며 칼릭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 교, 교관님.”

“말해라.”

“혹시 제가…… 이번 월말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요?”

“흐음.”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에, 칼릭스는 팔짱을 끼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이제 곧 월말평가였군. 벌써 아이들을 가르친 지 한 달이 다되어가나.’

각 반의 담임 교관은 달마다 생도들의 수준을 평가하고 기록해야 하는 일정이 있다.

이 평가에서의 성적으로 각 반의 생도들에겐 공개적인 순위가 매겨지기에, 대부분의 생도들은 말일이 다가오면 하나같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예민한 성격이 되어버린다.

‘아즐린이라면…… 흐음. 뭐라 장담하기 어렵군.’

원래대로라면 칼릭스의 반에 있는 24명의 생도들 중에서 꼴찌를 다툴만한 수준.

그리고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배운다고 해도, 고작 한 달의 기간으로는 눈에 띄는 발전을 이루기 어려운 법이다.

‘그래야 정상인데, 이 녀석의 발전 속도가 상상 이상이란 말이지.’

체질자체가 변화를 중시한 검법과 잘 맞아떨어진다고는 생각했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가르침을 흡수하는 속도가 심상치 않았다.

‘검선의 무공. 정확히는 그 문파의 무공과 성향 자체가 딱 맞는 모양이야. 내가 선택을 잘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이대로라면 월말평가에서 중간 정도의 성적은 충분히 받을만했다.

그리고 혹시나 남은 며칠 동안 뭔가 더 성취가 생긴다면, 상위권을 노려보는 것도 마냥 불가능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너무 기대하는 것도 곤란하지만,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줘도 나쁘지 않겠지.’

잠시 고민하던 칼릭스는 아즐린을 향해 생각한 그대로의 말을 전해주었다.

“아즐린. 내가 가르치는 검술은 이런 단기간에 큰 성취를 볼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게 아니다.”

“아앗! 죄, 죄송합니다. 그냥 혹시나 해서…….”

“다만. 네가 이대로만 한다면 최소 중간 이상, 혹시 운이 따라준다면 상위권에 속하는 제법 높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눈을 내리깔고 괜한 말을 했다며 스스로를 자책하던 아즐린은, 의외로 긍정적인 칼릭스의 말을 듣고 고개를 휙 들어 올렸다.

“저, 정말인가요?”

“그래. 어느 정도의 순위를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열심히 해봐라.”

“아…… 감사합니다!”

자신의 머리색처럼 볼을 분홍빛으로 물들인 채 기뻐하는 아즐린을 보며, 칼릭스는 희미한 미소를 짓고 고개를 끄덕였다.

‘재능과 노력이 부족하지 않은 아이이니, 합당한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군.’

본인이 집중적으로 지도하는 제자가 과연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낼 수 있을지, 칼릭스는 며칠 내로 행해질 월말평가에 제법 기대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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