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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6화 (6/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6화

“아즐린!”

“으, 응?”

오늘도 칼릭스의 특별 지도를 받고자 교관들의 생활 구역을 향해 움직이던 아즐린은, 자신을 향한 호명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 목소리의 주인을 확인했다.

길고 무성하게 말린 은색 머리카락이 가슴께 너머까지 내려오는 장발의 소녀.

상대가 기숙사에서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룸메이트임을 확인하고, 아즐린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입을 열었다.

“베네트.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이라기보단…… 우리 같은 방 친구끼리 너무 대화를 안 해본 게 아닐까 해서.”

“아…….”

“아카데미에 입소하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매번 일어날 때랑 자기 전에 인사하는 걸 빼고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거의 없잖아?”

“그…… 렇긴 했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오전에는 수업 일과에 집중해야 하니 잡담할 여유가 없고, 오후의 자율시간에는 칼릭스의 특별 교육을 받고 있으니.

기진맥진한 상태로 통금시간에 맞춰 돌아와 씻고 잠드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기에, 가장 가까운 룸메이트와도 제대로 교류하질 못하고 있는 마당이었다.

“우리 담임 교관, 장난 아니지 않아? 다른 반 애들한테 물어보니 우리처럼 빡빡하게 훈련 일정을 잡는 반은 없는 것 같더라.”

“아, 그건 몰랐네.”

“근데 수업이 끝날 때쯤엔 다들 지쳐 있지만, 부상을 입는 것도 아니고 적당히 쉬고 나면 또 컨디션은 회복이 되니. 정확하게 한계 직전까지 몰아붙이다가 풀어주는 느낌이랄까? 신기하지?”

“교관이니까, 그런 부분은 잘 관리할 줄 알겠지.”

“다른 반에 있는 친구 이야기를 들어보면, 수업 중에 자잘하게 다치는 경우가 꽤 많이 발생하는 모양이던데? 역시 기사 출신이라서 다른 걸까? 수업방식도 굉장히 세밀하게 관리받는다는 느낌이고.”

“으응, 그렇긴 하네.”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화를 이어가던 아즐린은, 베네트의 다음 말에 움찔하며 몸을 떨어야 했다.

“아즐린은 개인 시간에 항상 교관님을 만나고 있는 거지? 그 때문에 매번 저녁 늦게 방으로 돌아오는 거잖아.”

“으, 읏?”

교관과 따로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생도들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아즐린은, 팩트를 찌르는 베네트의 발언에 당황하며 이리저리 눈을 굴렸다.

다른 반에서도 은근히 교관의 편애를 받는 생도들이 따로 있는 모양이니, 개인 지도에 관한 사실이 남들에게 알려진다고 해서 딱히 문제가 될 건 아니긴 하다.

다만 처음에 교관이 불순한 관계를 원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그녀로서는, 괜히 찔리는 구석이 있어 이 만남을 비밀로 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무런 요구도 없던 걸 보면 내가 뭔가 오해한 걸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그렇고 그런 요구가 아니라면 왜 나한테……?’

자신의 육체가 남들보다 모자란 점이 있다는 건 잘 알고 있다.

한데 자신에게 어째서 교관이 특별대우를 해주는지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런 쪽의 이야기가 아니고서는 말이 되지 않기에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불건전한 욕망을 방출하기 위함이 아니었다면, 도대체 왜 매일 자신을 불러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 것일까?

“다른 반도 교관이 우등생들을 가려 뽑아서 추가로 특별 교육을 한다고 하던데, 아즐린도 그런 경우인 거지? 알아보니까 칼릭스 교관님과 일과 후에 따로 만나는 생도는 아즐린 한 명뿐인 것 같던데?”

잠시 칼릭스를 떠올리며 딴생각에 빠졌었던 아즐린은, 계속해서 이어지는 베네트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녀의 말에 집중했다.

“아…… 뭔가를 배우고 있긴 한데, 우등생이라니? 그럴 리가.”

교관에게 추가로 지도를 받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우등생이라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내가 남들보다 재능이 없다는 건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는걸.’

처음에는 교관과 생도간의 부적절한 남녀관계를 의심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오해였던 것이라 생각된다.

‘그럼 역시 답은 그것뿐이려나?’

교관이 자신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새로운 방식의 훈련법을 개발하기 위해, 딱 봐도 남들보다 빈약한 육체를 지닌 자신을 선택해 이것저것 시험해 보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어차피 이대로는 기사가 되기 어렵다는 걸 알기에, 자신 역시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교관의 손길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고 말이다.

‘솔직히 제대로 된 훈련이 맞는지도 의심스럽지만…….’

전투가 아니라 서커스에나 어울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기괴한 동작들.

거기에 왜 그리 강조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지만, 영 불편하기만 한 요상한 발놀림까지.

자신이 배우고 있는 게 과연 검술이 맞긴 한 건지도 의문인 것이 아즐린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에이, 남들보다 뛰어난 재능을 발견한 게 아니라면, 교관이 시간을 써가며 따로 무언가를 가르칠 리가 없잖아?”

그런 그녀의 속도 모르고, 베네트는 은근한 눈빛으로 부러움을 드러내며 손가락을 세워 아즐린의 옆구리를 콕콕 찔러댔다.

“도대체 어떤 걸 배우고 있는 거야? 조금만 보여주면 안 돼?”

“으읏, 보여 달라고 해봤자 딱히…….”

“하! 웃기지도 않네.”

“어?”

베네트의 손가락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비틀던 아즐린은, 갑작스레 대화에 끼어드는 냉소 섞인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못마땅한 기색이 드러나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남생도 한 명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너는…….”

“아, 칼 뺏긴 애?”

“맞네. 칼 뺏긴 애.”

첫 수업에서 교관의 지도에 불만을 품고 반항하다가, 반론의 여지도 없는 압도적인 차이로 털려버린 생도.

“베런 레오날드다!”

얼굴을 붉히며 버럭 소리를 지른 베런은, 손을 들어 아즐린을 지목하며 말을 이었다.

“네가 우리 반에서 제일 뛰어난 우등생이라고? 도저히 그냥 흘려 넘길 수 없는 소리를 하는군.”

“아니, 나는...”

“뭐래. 너 무슨 스토커니? 남의 이야기는 왜 엿듣고 난리야?”

“길바닥에서 뻔히 다 들리게 떠들어댄 건 너희들이잖아!”

“그래서 뭐 어쩌라고? 우리 반에서 교관님께 따로 교육을 받는 사람은 아즐린이 유일한데. 그럼 아즐린이 우리 중 가장 유망한 인재라고 볼 수 있는 거 아냐?”

“그게 아니라…….”

“저런 비리비리한 몸으로 뭐, 유망? 나하고 붙으면 검을 몇 번 받아내지도 못하고 바닥을 뒹굴게 될걸!”

“그건! 어…… 음…… 겉보기와는 다른 특출한 실력이 있는 거겠지!”

본인을 사이에 두고 시끄럽게 목청을 높이는 두 생도의 모습에, 아즐린은 난처한 얼굴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발을 빼려 했다.

“어딜 도망가! 너, 아즐린이라고 했지? 어디 얼마나 대단한지 나하고 대련해 보자!”

“아니, 나는 별로…….”

“흥, 자신 없는 거냐? 뭐 도망치겠다면 붙잡진 않겠다만.”

괜한 소란으로 힘을 빼고 싶지 않아 거절하려던 아즐린은, 도발적인 베런의 발언에 눈썹을 찌푸리며 입매를 비틀었다.

스스로 재능이 없다 생각하고 있다지만 성깔조차 없는 건 아니다.

근성과 독기를 따지자면 결코 남들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한다.

“……좋아.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한 판 붙어 보자.”

“흐흐! 생긴 것과 다르게 겁쟁이는 아닌 모양이군. 그럼 여기서?”

“그래. 굳이 멀리 갈 필요 있겠어?”

허리춤에 매단 검집에 손을 가져가 검을 뽑아 쥐며, 아즐린은 베런을 노려보았다.

사고 예방의 차원에서 생도들끼리의 결투는 교관의 입회 없이는 치를 수 없다는 교칙이 있지만, 훈련 목적의 가벼운 대련까지 전부 제지하진 않는 편이었다.

물론 그 둘의 차이를 정확히 명시해놓은 규정이 없기에 사실상 말장난에 가까운 룰이지만.

대충 서로에게 심한 부상을 입히지만 않는다면 생도들끼리의 분쟁을 무력으로 해결해도, 아카데미 측에서 크게 문제 삼지는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즐린! 본때를 보여줘!”

주먹을 휘두르며 소리치는 룸메이트를 뒤로하고, 아즐린은 훈련용 롱소드로 베런을 겨누며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정면에서 힘으로 붙으면 당연히 밀릴 거야.’

머릿속으로 상대와의 싸움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그려본다.

썩 좋은 그림은 아니었다.

수업 도중 모두의 앞에서 꼴사나운 모습을 보이긴 했어도, 베런은 아즐린이 만만히 여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대놓고 서열이 정해져 있진 않지만 ‘쟤는 나보다 강해 보이는데? 또는 쟤랑은 붙어도 이길 것 같은데?’처럼, 눈대중으로 재보는 행동쯤은 다들 하기 마련.

그런 평가에서 베런은 반의 상위권에 드는 실력자로 구분되는 생도였다.

아마 첫날의 망가진 이미지만 아니었다면 반에서 가장 강할 것 같은 생도를 뽑으라 했을 경우, 가장 많은 표를 받는 생도가 바로 베런이지 않았을까.

“흐야압!”

기합을 넣으며 달려드는 베런을 마주하며, 아즐린은 교관의 지도내용을 떠올렸다.

검에 힘을 싣는 것을 오히려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은 이상한 발놀림.

허리를 중심으로 어깨와 손목 그리고 무릎과 발목까지, 그야말로 전신의 관절을 과도하게 비틀어 대는 기묘한 동작들을.

‘차라리 잘되었어. 이참에 교관에게 배운 것들이 정말로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건지 시험해 보자.’

어깨를 노리고 휘둘러지는 상대의 검을 보며 타이밍을 재던 아즐린은, 발을 굴러 칼릭스가 가르친 ‘보법’이란 것을 사용하며 몸을 움직였다.

아슬아슬하게 옷자락을 스치고 지나가는 검.

그렇게 일격을 피한 아즐린을 쫓아, 베런이 귀에 거슬리는 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재차 검격을 이어갔다.

“히얏! 츠악!”

‘……이 인간은 무슨 기합성이 저래? 날 놀리는 건가?’

절로 인상이 찌푸려지지만 괜히 말려들지 않도록 무시하고 넘기며, 아즐린은 상대의 공격에 신경을 집중했다.

이격 그리고 삼격에 이어 사격까지.

강하게 압박해 오는 베런의 저돌적인 공격을, 아즐린은 모조리 회피하는 것에 성공했다.

‘뭐야. 정말로 이 요상한 발놀림이 먹히는 거야?’

그렇게 네 번째의 검격을 피해내면서 양쪽 모두 자세가 흐트러진 순간.

평범한 검사라면 시도하지 않았을 빈틈을 노리고, 아즐린이 베런을 향해 검을 찔렀다.

요사이 칼릭스에게 배운 동작들 중 마침 지금이 딱 상황에 맞지 않나 싶은 자세가 있었기에, 반사적으로 훈련한 대로의 움직임을 취한 것이었다.

“헛!?”

생각지도 못한 각도에서 날아드는 검격에, 베런은 기겁하며 급히 허리를 뒤틀었다.

심장을 노리고 쏘아 보낸 찌르기였으나, 베런의 대응에 칼끝은 단단하게 힘이 들어간 어깨의 삼각근에 틀어박힌다.

노렸던 급소에 닿지 못해 잠시 아쉬움이 치밀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된다! 내가 배운 동작들이 효과를 보고 있어!’

자신의 검술이 상대에게 유효한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아즐린은, 희열을 느끼며 재차 다리와 손목을 움직였다.

그러나 아즐린의 공세는 딱 거기까지였다.

날을 세우지 않았다 해도 칼끝에 찔려 데미지를 입었으니 어깨가 굳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베런은 곧바로 팔을 움직여 아즐린의 후속타를 튕겨냈다.

퍽!

“흐윽!”

그리고 이어지는 발길질에 복부를 걷어차인 아즐린은, 고통에 이를 악문 채 신음을 흘리며 바닥을 뒹굴어야만 했다.

‘어째서…… 공격이 제대로 들어갔으니 다음 반응이 늦을 거라 생각했는데.’

빨리 다시 일어서려고 했으나 다리가 후들거려 바닥을 짚고도 바로 몸을 세울 수가 없었다.

그런 아즐린의 위편에서, 비웃음 섞인 베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간지럽긴. 그렇게 약해빠진 찌르기로 피해를 줄 수나 있겠어?”

“읏……!”

아즐린의 생각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힘이 부족했던 것이 문제였다.

가뜩이나 근력이 약한 그녀가 평소보다 힘을 싣기 어려운 자세로 공격을 가했으니, 찌르기가 적중했음에도 상대에게 제대로 피해를 입히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게 뭐야…… 교관이 가르쳐 준 기술들도 결국 근력이 모자라면 아무 소용 없는 짓거리일 뿐인 거야?’

만약 이게 실전이라 훈련용 검이 아닌 진검이었다면.

날을 세운 검이라면 힘이 약하다 해도 방금의 공격이 어깨 근육을 꿰뚫어, 저리 빠르게 반격하는 대응을 하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실전이라면 상대 역시 견갑을 착용했을 경우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기에, 결국 장비를 탓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담임에게 따로 배운다더니 별것도 아니었네. 무슨 원숭이마냥 괴상하게 폴짝거리기나 하고.”

베런은 교관의 눈에 들어 따로 지도를 받는 아즐린을 꺾는 것으로, 다른 생도들 앞에서 구겨졌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회복했다고 여길 수 있었다.

더는 아즐린에게 볼일이 없었기에, 그는 검을 거둬들이고 실소를 흘리며 그 자리를 떠나갔다.

“아…… 으음. 아즐린, 미안. 내가 괜히…… 어…… 그럼 이따가 봐.”

일어나지도 못한 채로 죽은 생선의 그것과도 같은 눈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는 아즐린.

그런 아즐린의 옆에서 어쩔 줄 몰라 하던 룸메이트는, 결국 분위기를 바꾸길 포기하고 도망치듯 그녀의 곁을 벗어났다.

홀로 남은 채 가만히 굳어 있던 아즐린은, 꽤 긴 시간이 흐른 뒤에야 엎드린 자세를 풀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윽고 그녀의 다리가 움직였다.

당장 교관을 만나 속에 담긴 것들을 쏟아내지 않으면, 도저히 참지 못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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