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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4화 (4/124)

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4화

좋은 몸인데?

혼이 나간 채 구석에 찌그러진 베런은 내버려 두고, 칼릭스는 생도들의 교육을 재개했다.

원래도 베런 한 사람을 제외하곤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칼릭스의 실력까지 목격하고 난 뒤였기에.

생도들은 더욱더 열의 넘치는 태도로 그의 지도에 귀를 기울였다.

‘교관님의 실력이 저 정도라니.’

‘시키는 대로만 하면 실력이 크게 늘 수 있을 것 같아.’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간섭하는 지도방식이지만, 이제는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는 생도가 한 사람도 없었다.

교관과 생도의 실력 차이가 숫제 어른과 어린애의 싸움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임을 확인했기에.

검술교관이 맨손으로도 적을 제압할 정도니, 제대로 검을 들면 얼마나 대단하겠는가?

물론 칼릭스가 아닌 다른 교관이었다면 그런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겠지만 말이다.

‘기사들도 맨손격투에 대비해 레슬링 기술을 연마하긴 하지만, 손가락으로 바위도 꿰뚫는 무공에 비할 바는 아니지.’

어쨌거나 존경심이 담긴 시선을 보내며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생도들을 보니, 칼릭스 역시 더욱 진지하게 교육에 열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생도들의 검술을 손봐주며 주위를 돌아다니던 중.

‘음?’

눈길을 끄는 한 명의 생도가 있어, 칼릭스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검을 수련하는 검사라고 생각하기 어려운 깡마른 체형.

불면 날아갈 듯 보이는 가냘픈 몸의 소녀가, 옅은 분홍빛의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힘겹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호오…….”

이를 지켜보던 칼릭스의 눈빛이 진중하게 가라앉았다.

전투에서 체급이 차지하는 부분은 사실상 절대적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칼밥으로 먹고사는 사람들 중에서 덩치가 크고 근육질이 아닌 사람은 보기가 드문 편.

그렇게 힘의 우위가 중요한 투사들의 세계에서 여성이 남성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서는, 자연히 몇 배의 노력 혹은 재능이 더해져야만 한다.

한데 소녀의 몸엔 근육을 키우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오러 사용자라면 근육질이 아니어도 오러를 통해 신체 능력을 강화할 수 있지만, 마스터의 경지 정도가 아니고서야 단련된 육체가 지니는 이점을 무시할 순 없는 노릇이지.’

검의 길을 걷는 이라면 타고난 체격이 좋지 않다 해도 꾸준히 단련해 근육이 알찬 몸을 만들어야 옳다.

기사를 꿈꾸는 생도가 그런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면, 당연히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없으리라.

잔근육밖에 없어 보이는 마른 체형의 여검사라니, 아카데미 교관의 기준으로 보자면 폐급 생도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런데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교관의 기준이고. 내가 보기에 저 아이는 노력이 부족한 건 아닌 것 같군. 아무래도 조금 특이한 근골을 지닌 탓 같은데.’

자신 또한 이전까지는 전사에 어울리는 체형이라 하면, 덩치가 크고 근육이 잘 붙는 육체가 최고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중원무림의 지식을 품게 된 현재의 칼릭스는, 남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저 소녀 생도의 몸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관절의 가동 범위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넓군. 근육의 형태를 봐서는 체질적으로 발달이 더딘 몸 같지만…… 저 정도면 부족한 근력은 관절의 유연함으로 충분히 메울 수 있겠어.’

남들과 다른 지식이 있기에, 무가치해 보이는 외형 속에서 다듬어볼 만한 원석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다만 다른 생도들을 교육하듯 검술을 지도하기엔 확실히 부적합한 체형이긴 했다.

이곳 세상의 검술이란 대체로 단련된 근육의 힘으로 찍어 누르는 방식에 치중한 것들이기에.

‘우리 쪽의 검술은 파워 소드…… 무공으로 따지자면 강검(强劍) 또는 패검(覇劍)에 속한 스타일이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겠지. 저런 근골이라면 그보다는 좀 더 변화무쌍한 성질의 검법을 익히는 편이 잘 어울리겠는데.’

아마 저 생도는 이대로 시간이 지날수록 다른 경쟁자들과 실력의 격차가 점점 벌어지며, 재능이 주어지지 않은 자신의 몸뚱이에 좌절하게 되고 말 것이다.

분명 남들과는 다른 형태의 소질을 몸에 지니고 있음에도, 그걸 알지 못하고 썩히기만 하다가 도태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안타까운 일인데…… 도움을 줘야 하나?’

저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려면 남들과는 다른 종류의 검술 지도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때문에 다른 생도들이 차별대우를 받는다고 느끼게 된다면, 그건 또 그것 나름대로 귀찮은 문제가 발생하게 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고 교육이 끝난 이후에, 자신의 귀한 시간을 쪼개어 그녀만 따로 특별 수업을 하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는 일이다.

물론 다른 교관들은 실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반에서 재능 있어 보이는 생도들을 골라 따로 관리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은 이곳에 계속 머무르며 진급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흠.”

턱을 매만지며 잠시 고민하던 칼릭스는, 이내 마음을 정하고 어설픈 검술을 낑낑거리며 펼치고 있는 여생도에게로 다가갔다.

아무리 특별한 지식이 생겼다고 해도 눈대중만으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기에, 일단 가까이에서 그녀의 근골을 정확히 확인하고 난 뒤에 방침을 결정할 생각이었다.

* * *

시골이나 다름없는 어느 지방의 영지에서 올라온 아즐린은, 자신을 포기한 아버지의 말을 떠올리며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저도 커서 아버지 같은 기사가 되어, 영주님께 대를 이어 충성하겠어요.

-아즐린. 안타깝지만 너는 기사의 재목이 아니다.

-옛!? 그게 무슨…….

-그런 연약한 몸으로는 결코 기사가 될 수 없단다. 한계가 뚜렷한 체질이니 어쩔 수 없겠지.

자작의 작위를 지닌 영주를 모시는 기사였던 아비는 그녀를 어릴 때부터 단련시키고 검술을 가르쳤으나, 시간이 흘러 2차 성징이 나타날 때쯤이 되자 그 뜨거웠던 교육열은 어느새 나이 차 많은 둘째인 남동생에게로 완전히 옮겨져 있었다.

-제발! 제가 더 열심히 할게요!

-후우, 그만해라. 가뜩이나 근력이 부족한 여자의 몸이거늘, 이다지도 근육이 붙질 않는 체질이라니. 기사가 되겠다는 생각은 버리는 것이 좋겠구나.

‘웃기지 마! 분명 훌륭한 기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말했었잖아!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기사의 꿈을 심어준 장본인이면서 자신을 포기해 버린 아버지의 모습에, 아즐린은 배신감과 자괴감에 몸부림치며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왔다.

때마침 나이트 아카데미의 모집 시즌이 다가왔기에 만류하는 주변인들을 무시하며 보란 듯이 신청을 넣었고, 그래도 십 년 가까이 훈련한 세월이 있기에 심사 기준은 어떻게든 통과할 수 있었다.

‘반드시 아버지보다 뛰어난 기사가 되어서, 내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받겠어.’

“어이. 이름이 뭐지?”

상념을 방해하는 목소리에, 아즐린은 움찔하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자신들의 담임, 칼릭스라 이름을 밝힌 교관이, 언제 다가왔는지 곁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네? 아! 제 이름은 아즐린입니다!”

“그렇군. 명부는 받았지만 아직 얼굴들을 다 외우지 못해서. 이제 기억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잠깐 몸 상태를 좀 체크해 봐도 되겠나?”

“예? 네에…….”

교관의 뜬금없는 소리에 아즐린은 의문을 담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딜 다치거나 한 것도 아닌데 뭘 확인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생도들에 비해 확연히 마른 몸이 눈에 띄어서 그런 것일까?

의아해하는 그녀의 어깨 위로 교관의 손이 얹어졌다.

이윽고 팔과 등, 허리를 매만지며 교관의 손이 바쁘게 아즐린의 몸 위를 돌아다녔다.

“흐읏!?”

아즐린의 눈동자가 찢어질 듯이 커졌다.

‘서, 설마 지금, 나 추행당하고 있는 거야?’

당혹스러운 마음에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굉장히 열정적으로 돌아다니며 생도들을 가르치는 모습에 좋은 교관을 만난 것 같아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자신을 대상으로 이런 지저분한 짓을 저지를 줄이야!

“허! 이런 근골이…….”

소름 끼치는 감각에 몸을 부르르 떨고 있자니, 교관의 입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예상한 것보다 더 좋은 몸인데?”

“윽!?”

작게 중얼거리는 말이라 잘 들리진 않았지만, 알아듣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수치심과 분노로 얼굴이 달아오른다.

몸이 좋다는 말은 교관이 생도에게 하는 말로 이상하지 않은 내용이었지만, 그녀는 근육이 제대로 붙질 않아 부친마저도 훈련시키길 포기한 육체다.

그러니 칭찬이 아니라 필시 다른 뜻을 지닌, 아마도 성적인 의미의 희롱임이 분명할 터.

그리고 뒤에 이어지는 말까지도 완벽했다.

“음. 이따가 수업이 끝난 뒤에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나를 찾아오도록. 따로 가르쳐 주고 싶은 게 있다.”

‘그러시겠지! 이런 더러운 새끼!’

반 배정 첫날부터 교관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생도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어찌도 이리 비열한 인간이 있단 말인가.

아즐린은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까까지만 해도 베런이라는 생도와의 대련을 보고, 양질의 가르침을 기대할 수 있는 실력자 같다고 기뻐했었거늘.

그녀의 담임 교관은 그 실력과는 별개로, 아무래도 저질스러운 인간성을 지닌 쓰레기인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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