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아카데미의 무공교관 1화
무공을 접하다
“으웨엑!”
눈을 뜨자마자 한 바가지는 될 법한 양의 피를 입으로 토해냈다.
흐릿한 시야의 초점을 간신히 맞추며 몸을 일으켜 세우자, 지저분하고 비좁은 방 안의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끄으으…….”
몸속 구석구석을 칼날로 헤집는 듯한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다리에 힘이 풀린 칼릭스는 바닥에 주저앉아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방금까지 굉장히 기이한 꿈을 꾸고 있었다.
이곳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수십 번의 삶을 지내온 듯한 꿈을.
길바닥에서 노숙하는 거지, 군부의 장군, 높은 산 속 사원의 승려, 어느 비밀단체의 수장까지.
그 때문에 기억이 뒤죽박죽으로 엉켜, 본인의 이름마저도 어색하게 느껴진다.
‘칼릭스…… 그래, 나는 칼릭스 마이언…….’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막대한 정보의 폭풍 속에서, 칼릭스는 가까스로 스스로의 이름을 떠올렸다.
기사 칼릭스.
누군가 그에 대해 물어볼 때, 가장 무난하게 본인을 설명할 수 있는 정체성이다.
다만 방금까지 꿈속에서 굉장히 긴 세월을 보낸 듯한 기분인지라, 기사라는 호칭이 조금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니…… 그것들이 정말 꿈이었을까? 그리 단순하게 여길 일이 아닌 것 같은데.’
국가와 언어, 문화 자체가 완전히 다른 차원.
무림(武林)이라는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여겨지는 명칭이 번뜩이며 떠올랐다가 사라진다.
‘중원…… 무림? 으음. 이게 대체…… 마치 다른 세계를 경험하다 온 것 같지 않나. 설마 무슨 전생의 기억 같은 것이라도 되는 건가?’
욱씬.
“으윽!”
현실인지 허상인지 알 수 없는 막대한 양의 정보들을 더듬던 칼릭스는, 참기 어려운 통증을 느끼고 신음을 흘렸다.
신비하고 기묘한 경험이지만 지금은 생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었다.
‘몸 상태가 왜 이리 엉망이지. 아, 그러고 보니…….’
문득 기억의 한 자락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자신의 과거와 이렇게 만신창이가 되어 쓰러져 있게 된 이유에 대해서.
기사를 상징하는 힘이라 할 수 있는 오러.
그리고 그 오러를 육체에 담아두는 기관인 오러하트에, 영구적인 손상을 입고 퇴물이 되어버린 자신.
‘망가진 오러하트를 어떻게든 써먹어 보겠다고 발버둥 치다가, 몸 안의 오러가 폭주해 기절했었구나.’
오러를 억지로 무리하게 운용한 반발로 인해 발생한 사고였다.
고작 기절이 아니라 그대로 즉사에 이를 수도 있는 행동이었다.
실제로도 현재 칼릭스의 육신은 내부가 엉망이 되어, 점점 죽음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상태였다.
이대로 두어 시간만 지나도 몸 안의 장기들이 곤죽처럼 변해, 썩어가는 한 구의 시체가 될 것이 분명했다.
“후우우-”
상황을 파악한 칼릭스는 곧바로 자리에 앉아 길게 호흡하고는 오러의 운용에 정신을 집중했다.
‘기혈이 잔뜩 꼬였군. 막혀 있는 경락이 한두 군데가 아니야. 내가 익힌 오러브레싱은 수준 낮은 토납공에 불과하니, 제대로 된 심법으로 내상을 다스려야…… 으응?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본래의 자신에겐 존재하지 않았던 지식들.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정체불명의 정보에 흠칫하며 잠시 생각을 멈춘 칼릭스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떠오르는 기억들을 받아들였다.
어차피 원래의 자신이라면 이대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꿈인지 현실인지 아니면 그냥 자신이 미쳐 버린 것인지 모르겠으나, 뭐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시도해 봐야만 했다.
‘단전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서 진기의 흐름도 제멋대로군. 게다가 경맥들이 제대로 뚫려 있지도 않은 상태. 현 상황에 가장 적합한 심법이라면…….’
판단을 마친 칼릭스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선택지 중 하나의 심법을 정해 운용하며, 제멋대로 날뛰고 있는 오러의 통제를 시도했다.
오러브레싱.
대기에 퍼져 있는 마나를 체내로 흡수해 사용자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는 오러로 치환해 내는, 또는 그렇게 쌓은 내부의 오러를 다루는 기술의 총칭이다.
하지만 지금 칼릭스가 운용하는 오러브레싱은, 그가 여태까지 해온 수련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내공심법.
무림이라는 세상의 기억에서 쓰이는 명칭으로 오러브레싱과 동일한 효과이긴 했으나, 그 성능은 스스로가 익히고 있던 공부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효율과 안정성을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워낙 현실감이 없어, 자신이 미쳐서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했으나.
‘정말 되는구나!’
꿈속의 기억을 따라 익힌 내공심법의 운용을 지속하자, 불안정하게 요동치던 오러가 점차 그의 통제에 따라 잔잔하게 가라앉는다.
내공과 오러 그리고 내공심법과 오러브레싱.
세상이 다르기에 표현도 다르지만 일맥상통하는 방식이었다.
‘이 무림이란 곳의 기억은 가짜가 아니었어! 이런 대단한 기술이라니…… 이름난 명가의 귀족들만 보유한다는 비전이 이런 수준일까? 아니, 어쩌면 이쪽이 더 뛰어난 기술일지도 몰라.’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희열이 차올랐다.
뛰어난 가치를 지닌 지식을 손에 넣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운의 천재 칼릭스.
사실 그는 한때 희대의 재능을 지녔다 평가받던 기사였으나, 오러하트에 손상을 입는 사고로 인해 퇴물이 되어버리고 말았었다.
그 이후로부터 몇 년 동안.
전 재산을 들여 부상을 회복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마법사나 신관의 능력으로도 치료가 되지 않아 얼마나 절망감에 빠졌었던가.
‘이 방식이라면 다시 자유자재로 오러를 사용할 수 있게 될 수 있다!’
내공심법은 오러를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줄 뿐만 아니라, 단전 그러니까 오러하트의 손상을 스스로 수복하는 효능까지 가졌다.
머릿속에 들어찬 기억에 따르면, 이것은 운기요상이라 불리는 치료법이라 한다.
그토록 원했음에도 찾지 못했던 치료방법을 잠시 기절했다가 깨어난 것만으로 손에 넣게 되다니, 흥분으로 몸이 떨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적 속에서 시간은 흘러갔다.
날뛰던 오러를 통제하며 내상을 다스리던 칼릭스가, 어느 순간 번뜩이는 안광을 발산함과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잡했던 내부의 기운들이 천천히 가라앉으며, 폭탄이나 다름없던 몸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흐, 흐핫! 하하하!”
웃음이 절로 흘러나온다.
찬란하게 빛나던 그 시절로 되돌아갈 수 있는 방법이 생겨난 것이니,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다.
당장에라도 예전처럼 오러를 사용하며 검을 휘둘러보고 싶었다.
하지만 위험한 상태는 일단 진정되긴 했으나 아직 오러하트의 손상은 극히 일부분이 회복되었을 뿐이니, 아직 무리하게 움직이는 것은 자제해야 했다.
‘아무튼 이 무공이란 능력들을 이용하면, 망가진 오러하트를 완벽하게 수복하고 검으로 정점에 오르는 것도 가능하다. 나는 더 이상 퇴물이 아니야!’
부상의 좌절과 함께 포기했던 자신의 빛바랜 꿈.
칼릭스는 자신에게 일어난 기적에 감사하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검술로 지고한 경지를 이룩하여, 모든 기사들의 선망과 숭상의 대상이 되는 위치를 다시 한번 노려보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