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 만들어진 신 >
========================
퍽— 소리와 함께, 이현욱의 몸이 산산이 조각났다.
"........"
그 순간, 온 세상이 고요에 물들었다.
"......."
그 누구도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으니…… 김세희, 박준모, 서은하, 우성문, 에밀리아 뮐러 등 이현욱의 동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충격을 받았다기보다는 오히려 도저히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반응도 하지 못했다.
그간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절대적일 것만 같은 영웅이 한 줌의 핏덩이가 되어서 증발해버리는 장면은…… 결코 현실감 있지 않았다.
"후…… 자, 이게 너희의 반항에 대한 우리의 대답이다.”
그렇게 말하며, 관리자—인간의 이름으로는 니콜이라고 알려진 여자가 날아간 하반신을 재생하면서, 이현욱의 시체 조각을 공중으로 띄웠다.
"—안 돼!”
"이런 개새끼야!”
그러자 뒤늦게, 박준모나 김세희 등이 발끈하며 나섰으나 주변의 플레이어들이 그들을 만류했다.
그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니콜은 ‘시스템’의 힘을 통해서, 그의 몸 안에 담긴 마나를 휘적거리기 시작했으니, 그 살 조각 안에서 피가 울컥울컥 흘러나왔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의 보이지 않았으나, 붉은 그물들이 섬세하게 움직이며 이현욱의 신경계에 엉켜 있는 푸른 빛의 마나 입자들을 하나씩 거둬들이고 있었다.
그런데.......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그녀는 한껏 당황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이현욱의 시체 안에 있어야 할, 그래서 황급히 주워 담아야 할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사라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 가지 의문이 그녀의 머릿속을 잠식해나가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것들이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
‘난…… 죽었다.’
이현욱은 자신이 죽었다는 걸 직감했다.
‘아니, 내 육체가 분해됐다.’
즉, 생물학적인 죽음을 맞이했다.
그러나 이현욱은 더는 생물에 그치지 않는 존재였고 ‘마나’라는 초물질을 오롯이 이해하고, 마나 안에 자신의 정신을 파편화하여 담기 시작했다.
그렇기에 생물학적인 생존 이외에 다른 방식의 실존이 가능해졌으니…… 그는 다수의 마나 속에 파편화되어서 존재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신경계에 마나를 보다 첨예하고 정교하게 엮는 방법을 실시간을 깨달았다.
그에 따라서 마치 고도화된 컴퓨터처럼, 그의 직감은 엄청난 속도로 모든 현상을 분석했으며 모든 물질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들, 이를테면 차원의 벽과 그 뒤의 에너지까지 감지해낼 수 있었으니…….
그는 이 순간을, 이렇게 정의했다.
'……초월이다.’
그래, 그는 지금 진정한 의미의 초월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이 마냥 좋은 건 아니었다.
'……이대로면, 몇 초 후에 내 의지는 증발하고 만다.’
그의 감각이 아주 빠르게 희미해지고 있었다.
‘이 마나라는 건, 현재로서는 오로지 지성체의 신경계와 연결되어야지만 기능을 유지할 수 있다.’
이 지점을 묘사하자면 ‘마나’라를 데이터는 ‘신경계’라는 저장매체에 있어야만 정보를 입출력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육체가 파괴되었으니, 그의 신경계도 빠르게 소멸하고 있는 것이었다.
'……몸이 필요하다.’
훗날, 시간이 더 있다면 생물의 신체 구조를 재정립하고 가상의 신경계를 구축해내는 것도 가능할 테지만, 아직 그 정도의 능력에 도달할 수는 없었다.
‘이 데이터를 옮겨 담을 저장장치인 신경계가, 그것도 나와 완전히 똑같은 신경계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이 신에 근접한 이 ‘데이터’는 오로지 이현욱의 신경계에 적합하게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즉, 적합한 호환성이 필요했다.
그는 찰나의 순간에 차원의 틈새로 정신을 옮겼다.
그게 어딘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불과 몇 초전까지만 해도 몰랐으나, 족쇄를 풀어낸 그의 의지는 빠르게 모든 것들을 이해하고 통제할 수 있게 됐다.
이현욱의 정신은 어떤 진득한 어둠 속에 잠겼다.
‘이건…… 내가 회귀 직전에 봤던 그 어둠이다.’
이내 그때처럼, 저 멀리 어딘가에서 빛이 보였다.
그는 그곳으로 날아가, 빛 안으로 머리를 디밀었다.
그다음 순간—
"......."
그는 천천히, 숨을 내뱉으며 뭄을 일으켰다.
두 손을 들어서 살피고, 고개를 내려서 몸을 훑었으니, 산산조각이 났을 육체가 온전히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곳, 꽤 익숙한 장소였다.
째깍— 째깍—
그가 군 생활을 했던 곳…… 생활관이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남자, 검은색 전투복 차림의 까까머리 일병이었다.
그가 쭈뼛거리며 다가와서 이현욱에게 말했다.
"이현욱 상병님, 일어나셨습니까? 마침 저녁 식사 집합입니다.”
이현욱은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박준모를 마주 보았다.
"박준모……."
"일병 박준모— 예, 말씀하십시오!”
이현욱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피식 웃었다. 이 녀석의 어리바리한 모습을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어…… 왜 그러십니까?”
이현욱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곧 나갈 테니까, 먼저 가 있어.”
"예, 알겠습니다.”
그는 텅 빈 생활관에서 잠시 숨을 들이켜다가, 자신의 관물대를 열고 안에 달린 거울을 살폈다.
이번에도 한껏 앳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이 얼굴, 벌써 3번째 보는 건가?’
이곳은 또 다른 차원의 지구이며, 역시나 관리자의 실험실 플라스크 중 한 곳이었다.
그는 천천히 검은색의 전투복으로 갈아입으며, 아주 잠깐이나마 옛 생각에 잠겼다.
첫 번째 삶의 이 순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기력하게 살았다.
그리고 두 번째 삶의 이 순간에는, 클립을 삼키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삶.......
그리고는 숨을 내쉬며,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감지한 건 금속이 아니었다.
그는 차원의 틈새를 뜯고, 강제로 벌렸다.
그러자 허공에 검은 일렁임이 일어났다.
고—오—오—오——
그건 차원의 통로, 블랙 게이트였다.
이현욱은 그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걸어 나오자—
후우우우——
서울, 그 폐허가 된 도심이 눈앞에 펼쳐졌다.
그곳은 단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이현욱이 서 있던 바로 그곳이었으니….. 고개를 돌리자, 근처에서 플레이어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잔뜩 겁에 질려 있었는데, 몇몇이 이현욱을 발견하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들 중에서는 박준모도 있었다.
“어…… 어……”
그는 눈물을 흘리다가 멍한 얼굴로 이현욱을 마주 보았다.
이현욱은 아는체할 여유도 없이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웬 핏덩어리를, 아마도 이현욱의 시체 조각을 허공에 띄운 채 뒤적이고 있는 여자, 니콜이 보였는데…… 그녀 역시 이현욱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 어! 이, 이게…… 어, 어떻게……."
그녀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 장면은, 이 현상은, 관리자로서도 이해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현욱은 그녀에게 다가가며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하늘에 떠올라 있던 <전체 공지>의 내용이 다시금 기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 종료됩니다.
그리고 일대의 마나를 옭아매고 있던 붉은 입자들이 증발하며 시스템의 통제가 모조리 해제되었다.
즉, 시스템이, 붕괴했다.
그와 동시에 하늘 곳곳에서 베일이 벗겨지듯이 우주의 신기루가 거두어지고, 원형의 외계 비행체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꽤 많은 숫자가 지구의 궤도를 에두르고 있었다. 그 크기도 상당해서 마치 달이 여러 개로 늘어나서 지구를 포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현욱은 단 몇 초 만에 그 비행체들의 내부를 스캔하여, 그것들이 시스템을 운용하기 위한 중계기 역할이자 관리자들이 상주하는 기지라는 걸 알아냈다.
“어, 어— 어—”
이현욱이 다가가자 니콜이 뒷걸음질 쳤다.
이현욱은 그녀를 향해 다가가며 왼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서, 하늘로 뻗었다.
구구구구——
그러자 지구 궤도 상의 관리자 기지들이 지구를 향해서 끌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쾅——! 쾅——!
채 대기권에 닿기도 전에, 그것들은 폭발을 일으키며 무너져내렸다.
그게 의미하는 바는 간단했다.
그간 지구에, 인류에 채워져 있던 모든 목줄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이현욱의 왼손이 앞서서 추락했던 비행체로 향했다. 그곳에는 니콜, 이 관리자의 진체가 들어 있었다.
까가가가——
이내 그곳의 겉면이 종잇장처럼 찢어지더니, 그 안에서 웬 파란색 인영이 하나 날아와서 이현욱 앞 허공에서 멈춰섰다.
"큭!"
그것은 인간처럼 사지가 달려 있었으나, 귀가 길게 늘어지고 큰 눈을 가진, 푸른 피부의 외계인이었다.
그게 바로 관리자라는 외계 종족의 본 모습이었다.
이현욱은 그것을 자신의 앞으로 끌어왔다.
“자…… 이번에는…… 네가 궁금한 게 많아 보이는데, 내가 질문을 받아줘야 할 것 같군?”
이현욱이 차가운 목소리로 농담을 내뱉었다.
이제는 완전히 갑과 을의 관계가 뒤바뀌었다.
이에 니콜, 관리자가 정말로 질문을 던졌다.
“너, 너는 도대체…… 어, 어떻게…… 이제는 정말로 신이 되기라도 한 거냐?”
“그런 유치한 이름을 붙이지는 않겠다만, 너희가 의도한 실험 결과가 성공한 것 같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지구를 향해 추락하고 있는 관리자들의 기지들을 하나씩 으스러뜨렸다.
그의 머리 위에서 쾅— 쾅— 폭발이 울리고, 그의 등 뒤로 거대한 비행체의 파편이 쏟아져 내리는 장면은 흉악하기 그지없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며, 관리자는 허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건 말도 안 돼. 이, 이럴 수는 없어……."
이현욱은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이건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 우리 인간도 그렇고 너희도 그렇고 모든 지성체는 자신이 무언가를 통제하고 있다고 믿는 것 같아. 그게 실험이든 아니면 위험 시설이든 더 나아가 자연이든……."
이는 실험이었다. 그것도 아주 위험한 실험이었다.
그 실험은 큰 사고를 맞이하게 됐다.
그리고 큰 실험인 만큼, 사고도 크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나 생화학 연구소의 바이러스 유출 같은 통제 불능의 대재앙처럼 말이다.
그 사고를 다른 말로 하자면 …….
“……네가 말한 대로, 버그가 일어난 거야.”
버그, 그건 이현욱 그 자체였다.
이 재앙이 게임이라면, 이현욱은 버그였고,
이 재앙이 실험이라면, 이현욱은 사고였으며,
그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변수라고 할 수 있었다.
이현욱은 지금도 계속해서 마나 체화를 확장해나갔고, 그의 감각은 수백 킬로미터 밖의 마나를 통제할 수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몇 번의 판단만으로도 관리자들이 지구상에 퍼뜨려 놓은 모든 시설을 완전히 깨부쉈다.
쾅—— 쾅——
온 세상에서, 폭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얼이 나가 있는 동료들을 돌아보았다.
그들은 언제나 이현욱의 활약에 놀랐지만, 이번만큼은 전혀 다른 규모였다.
그에게서 풍겨오는 격이 엄청났기 때문인데, 정확히 그의 신경계가 모든 마나에 액세스할 수 있었고, 그렇기에 플레이어들의 체내에 얽혀 있는 마나에 자극을 가해서 상태 이상을 만드는 것 때문에, 마치 위압감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게 바로 격이라는 모호한 현상의 정체였다.
이현욱은 그들을 한 명씩 바라본 뒤, 입을 열었다.
“……제가 꽤 오랫동안, 어디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이현욱은 그렇게 말하며 일대의 모든 마나를 끌어모았고, 그의 머리 위로 무언가 빛을 내는 것들이 우후죽순 깔리기 시작했다.
웅—웅—웅—웅—
마치 은하수가 피어나듯이, 하늘을 수놓은 그것들은…… 다름 아닌 거검, 모글레이였다. 그 모든 걸 단 한 번의 손짓만으로 탄생시킨 것이었다.
이어서, 이현욱의 앞에 거대한 검은 일렁임이 피어났고, 니콜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 어디로 가는 문인 거냐?”
그것은 다른 차원으로 가는 포탈, 블랙 게이트였다.
이현욱은 속박 상태의 관리자를 내려다보았다.
"이제부터…… 너희들의 세계에……."
그는 왼손을 들어 올려서 손짓했고, 하늘에 떠올랐던 모글레이들이 포탈을 향해서 폭포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강철로 만들어진 비를 내려줄 생각이다.”
그리고 그 대열 끝으로, 이현욱이 걸어 들어갔다.
이로써, 만들어진 신이 실험실을 탈출했다.